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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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장 해묵은 인연21
노바토피아 강제노역형은 한국의 징역형처럼 헐렁한 노역이 아니다. 강제 노역은 3년 이상 장기 수형자, 객관적인 처벌조건으로서의 고의범, 살인·절도·강도·강간·방화·사기·공갈·횡령 등의 파렴치범에게 병행 부과된다.
비죠(통나무)로 불리는 강제노역자는 외부와 단절된 사막에서 채석, 자트로파 식재, 물길 관리, 도로 보수, 목초 수확 등의 돈내기 작업에 투입된다. 당일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식사 배급을 받지 못한다. 밥 한 끼쯤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사막에서 장시간 소모된 열량을 보충하지 못하면 목숨이 오락가락한다. 비죠는 죽자사자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종신노역형은 ‘일손도 부족한데 왜 죽여!’라는 무쌍의 한마디에 사형제 대신에 도입되었다. 동일한 범죄 전과 3회 이상자도 종신 노역장에 투입된다. 한국처럼 별을 대여섯 개, 많게는 수십 개를 단 전과자가 재차 법정에 설 일이 없다.
노바토피아는 범죄자 인권 타령을 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라브 비죠(무거운 통나무)’라 불리는 종신노역자는 뺨에 낙인이 찍히고 채찍질까지 당한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사막에서 일 년만 강제노역에 시달리면 자살하거나 양처럼 순해졌다. ‘죽을 죄지은 놈에게 무슨 인권이야!’ 뚜바이부르파의 법의식은 단순무식했다.
“어! 나오는 구마.”
아주머니는 40대 중반, 큰딸로 보이는 아가씨는 20대 초반, 작은딸로 보이는 여고생은 교복을 입었다. 언뜻 보기에도 여자 셋은 상태가 별반 좋아 보이지 않았다. 몸에서 쉰내가 풍기고, 빨래도 제대로 못 한 듯 입성이 꼬질꼬질했다. 삼복더위에 할 짓이 아니다.
‘큰일 날 뻔~이 아닌가?’
여고생은 겁에 잔뜩 질려있었지만 정작 강간 위기를 겪은 큰딸은 태연해도 너무 태연했다. 지문이나 홍채 인식은 백만분의 일로 오차가 발생하지만, 공간지각력으로 파악된 고유의 기는 착오가 있을 수 없다. 강간위기를 건져준 상대는 큰딸이 확실했다. 성격이 담대한지 영혼이 자유로운지 알 수 없지만, 그러한 상황에 익숙해졌다는 의미다. 자신이 그것까지 상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바라, 이분이 내가 말했던 은인이시다. 퍼뜩 인사해라.”
외제 차에 기대어 담배 연기를 뿜는 무쌍이 생경해서일까. 김기택의 재촉에 불구하고 자매는 쭈뼛거렸다. 떡진 머리, 때가 꼬질꼬질한 옷깃, 한창 깔끔 떨 나이에 행색이 말이 아니다.
“반갑습니다.”
무쌍이 먼저 인사했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주머니가 들릴 듯 말 듯 인사했다. 딸 둘은 고개만 까닥하고 눈치를 살폈다. 세 모녀의 눈동자가 잠시도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무쌍이 속으로 탄식했다. 불안과 불신이 몸에 배어있고 경계심이 생활화된 여자들이다.
“이젠 걱정할 것 없다.”
짠해진 그가 무심코 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꺄악!”
여자애가 자지러졌다. 화들짝 놀란 무쌍이 손을 뗐다. 뚜바이부르파가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았던가! 치한이 된 듯 몹시 민망했다.
“저런 망할 것, 미안하네. 쟤는 놈들이 툭하면 건드리는 바람에 노이로제가 생겼네. 정말 미안하네.”
김기택이 손을 비볐다.
“아닙니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심다.”
무쌍은 상대방이 고슴도치처럼 경계하는 상황에서는 간섭장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연스러운 간섭장이 통하지 않으면 형태공명장인 공진파로 뇌를 흔들 수는 있어도 호감을 끌어낼 수는 없다. 부처나 예수처럼 강력한 간섭장 능력자도 모든 사람을 끌어들이지는 못했다. 무쌍이 옷 가방을 트렁크에 집어넣고 뒷문을 열었다.
“아주머니 걱정 마이소. 우신에 내 집으로 가입시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데이.”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딸들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얼마나 당했으면 사람을 저토록 무서워할까?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안정이다. 시트로앵이 밤길을 되짚어서 응심제로 달렸다.
지이잉- 대문이 열렸다. 승용차가 거침없이 잔디밭을 가로질러서 응심제 앞에 멈추었다. 외등이 주르륵 켜지면서 응심제의 위용이 드러났다. 자정이 한참 넘은 시간에 군식구가 들이닥쳤다.
“아!”
영지는 아찔했다. 끝없이 넓은 잔디밭, 웅장한 한옥, 줄지어 늘어서서 어둠을 밝히는 주황색 외등, 해외토픽에서 언급된 저택이다. 번쩍이는 외제 차와 잘생긴 미남 오빠, 동화 속 궁전 같은 저택, 꿈일까? 영지는 살며시 팔뚝을 꼬집었다. 꿈이 아니다.
“언니!”
영지가 언니를 돌아보았다. 영희는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두 눈이 환상을 좇았다. 그토록 원했던 마법이 이제야 발동되었다. 공동 샤워장에서 덮친 양아치가 저주를 받고, 킹카 중의 킹카가 외제 차를 몰고 나타났다. 그리고 꿈의 궁전에 도착했다. 나는 신데렐라다. 이제 왕자의 구혼만 받으면 된다.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인 영희의 상상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오빠, 늦었네요.”
안채에서 나타난 늘씬한 미녀 셋이 끝없이 이어지는 자매의 상상을 끝장냈다.
“응, 그렇게 되었다.”
“오빠, 피곤하시죠.”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
연순과 계순이 양쪽에서 매달렸다.
“이 자식들, 용돈 떨어졌구나.”
무쌍이 퉁을 놓았다.
“헤헤, 아닌데요.”
“임마, 귀신을 속여라. 니들 이마에 다 쓰여있어.”
“헤헤, 내일 성심원에 봉사 나가거든요.”
“그래? 애들 물놀이 기구하고 수박이나 넉넉히 사가라.”
“오빠, 고마워! 이분들은?”
“인사해라. 김 씨 아저씨 가족이다.”
계순의 의문에 간단히 대답했다.
“늦은 밤에 죄송해요. 폐를 끼쳐서 면목없습니다.”
김기택의 아내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청년과 처녀들의 다정한 모습에 가슴이 저렸다. 깨져버린 가정, 다시는 행복한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이 새삼 엄습했다.
“환영해요.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와야죠. 홀로 즐거운 사람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밖에 없죠. 조금도 부담 갖지 마시소.”
진순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
미나가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아이쿠, 우리 강아지 깨버렸어?”
무쌍이 미나를 안아 들었다.
“웅, 시끄러워서 깼어요. 아빠, 곰 인형?”
미나가 손을 내밀었다. 무쌍이 잔뜩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가 일이 생겨서 못 샀어. 우짜노. 내일 꼭 사줄게.”
“쳇, 아빠가 약속 안 지켰어. 스누피도 사줘요.”
“그럼 그럼! 스누피도 사줄게.”
영희의 눈이 샐쭉해졌다. 응석 부리는 계집아이, 쩔쩔매는 남자, 바보라도 부녀지간임을 안다. 잠시 신데렐라의 꿈에 젖었던 영희의 가슴에 비가 내렸다.
‘상태가 좋지 않은데…….’
무쌍이 영희를 힐끔 쳐다보았다. 좋아서 히죽대더니 지금은 비련의 주인공 얼굴이다. 공간지각력에 잡힌 뇌파가 미친년 널 띄듯 불안정했다. 분열정동성장애는 해리성 기억 상실증만큼이나 고약한 정신병이다. 멀쩡한 처녀를 저 지경으로 만든 놈들은 락샤샤에 맞아 죽어도 마땅하다.
단잠에서 깨어난 자매는 아무도 연유를 묻지 않았다. 오빠가 하는 일은 그만한 이유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절로 알게 된다. 연순과 계순이 행랑채로 짐을 옮기고, 진순은 초췌한 몰골의 세 모녀를 본채 목욕탕으로 데리고 갔다.
“오빠, 술상 보까예?”
연순이 눈치 빠르게 물었다.
“아이다. 아저씨 입을만한 옷 챙기오고, 여자분들 필요한 거 챙기 드려라.”
“속옷도?”
“응, 늦었지만 저녁도 차려라.”
“네!”
연순이 안채로 쪼르르 달려갔다.
“우와!”
영지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밖에서 볼 때도 큰 건물이지만, 실내는 생각보다 더 넓었다. 높은 천장과 툭 터진 공간을 마주하자 우울하던 기분이 한층 가벼워졌다.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그럼, 내가 할머니로 보이디?”
진순이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영지는 눈이 부셨다. 몸매 좋고, 예쁘고, 마음씨도 좋은 언니다.
“고맙습니다.”
영지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진득이 눌어붙어 있던 불안감이 흔적없이 사라졌다. 진순이 화덕에 물을 퍼부었다. 슈아아- 달아오른 자갈이 찬물을 만나자 김을 뭉게구름처럼 뿜어 올렸다. 사우나실이 순식간에 뜨거운 증기로 가득 찼다.
“어머나!”
놀란 세 모녀가 출입구로 물러났다.
“일단 씻어요. 오빠가 직접 설계한 핀란드식 사우나랍니다. 오빠는 능력 있는 사람이니까 물을 아끼지 말고 팍팍 써도 돼요. 욕조에 차가운 물이 담겨 있어요. 화덕에 퍼부으면 증기 샤워를 할 수 있어요. 몸을 달구고 차가운 물로 씻어내면 생각보다 개운할 거예요.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고 싶으면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가요. 열탕이 있어요. 속옷하고 실내복은 드레스룸 앞에 둘게요. 그럼 목욕 끝나고 봐요.”
진순이 설명을 끝냈지만, 세 모녀는 제대로 대답도 못 했다.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넋이 나갔다. 가위에 눌렸다가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엄마, 욕실이 옛날 우리 집 거실보다 커요. 얼마나 부자면 집이 이렇게 클까요?”
“이년아, 난들 아나. 암만해도 우리가 단체로 도깨비에 홀맀는갑다. 퍼뜩 씻어라. 물 아끼고.”
양 여사가 평소 하던 대로 세숫대야에 물을 받았다. 영지가 눈을 흘기고 샤워 수전을 올렸다.
“이 은혜를 우예 갚노!”
뜨거운 물을 덮어쓴 양 여사가 눈물을 글썽였다.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좋겠어.”
영희가 중얼거렸다. 따뜻한 샤워는 두 달 만이다. 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따뜻한 물에 마음껏 씻을 수 사실만으로 너무나 행복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물에 눈물이 섞였다. ‘이건 꿈이야!’ 야반도주할 때 속으로 외쳤던 말이 반대의 의미로 재생되었다.
“이것아, 물 아껴!”
“놀래라!”
엄마가 버럭 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영희가 떡진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영지는 욕조에 몸을 푹 담갔다. 뜨거운 물에서 장미꽃 향기가 났다. 행복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냄새나고 벌레 기어 다니는 좁은 여인숙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고 흥얼거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니. 지나가 버린 것이 그리움이 되리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거실 액자의 시구가 이처럼 가슴을 울릴 줄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공장이 부도났다. 당연하게 누리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망가졌다. 집이 사라지고, 아버지가 사라지고, 넉넉한 용돈이 사라지고, 투정하던 밥상이 사라지고, 집까지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이 나타났다. 빚쟁이!
사채업자라 불리는 그들은 밤도 낮도 없었다. 툭하면 나타나서 욕설을 퍼붓고 세간을 발로 걷어찼다. 엄마가 매달려 사정해봐야 들은 척도 않았다. 돈을 갚으라고 고함만 버럭버럭 질렀다. 어느 날부터 손버릇이 나빠졌다. 불쑥 나타나서 유방을 만지고 아랫도리를 툭툭 쳤다. 말리던 엄마는 발에 차여 나뒹굴었다. 수치심에 죽고 싶었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옆방에서 언니의 비명이 들릴 때는 죽고만 싶었다.
장기 포기 각서라는 것을 받았다. 그날 밤, 야반도주했다. 급히 도망치는 바람에 옷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아버지가 데리고 간 곳은 싸구려 여인숙이었다. 세평도 안되는 냄새나는 방, 곰팡이가 시커멓게 끼어있는 벽, 먼지 솜을 넣어서 울룩불룩한 눅눅한 이불, 방바닥을 질주하는 바퀴벌레와 벽틈에서 기어 나오는 발이 수십 개 달린 벌레, 지옥이었다.
욕실도 없었다. 복도 끝의 공동 세면장에서 씻어야 했다. 세면장에는 샤워 시설이 없었다. 배고픔보다 씻지 못하는 고통이 더 컸다. 새벽에 언니와 번갈아 망보며 몸을 씻었다. 웬 변태가 훔쳐 보는 바람에 근래 일주일간은 머리도 감지 못했다.
그렇게 좁은 방에서 밥을 해먹기도 하고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굶기도 하며 두 달을 보냈다. 날마다 죽고만 싶었다. 학교도 가지 못했다. 친구도 만나지 못했다. 여인숙 벽에 옷걸이 용으로 박힌 커다란 못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튼튼한 끈을 구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아빠가 나타났다. 원망스럽고 반가워 눈물이 쏟아졌다.
아빠는 울고 있을 틈도 주지 않았다. 엄마와 언니를 닦달해서 여인숙을 빠져나왔다. 승용차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키 큰 남자, 사채업자다. 그들은 늘 승용차를 타고 와서 담배를 피워물고 난장을 치곤 했었다. 드디어 장기를 뺏기고 죽는구나 하는 두려움에 다리가 풀렸다.
눈을 뽑히고 콩팥을 떼고 간이 빠져나간 채 헝겊 인형처럼 배드에 널브러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남자가 머리에 손을 댔을 때는 죽는 줄 알았다. 아버지가 도와주는 분이라 했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사채업자들은 경찰이 되었다가 동사무소 직원이 되었다가 제멋대로기 때문이다.
아직도 의심은 풀리지 않았지만, 적어도 사채업자의 집은 아닌 것 같았다. 하느님, 부처님이 계시면 사채업자가 이렇게 좋은 집에 살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분해서 죽을 것 같았다. 사채업자에게 예쁜 여동생이 셋이나 있고, 예쁜 딸이 있을 리 없다. 게다가 남자는 사채업자라기엔 너무 멋있었다. 저렇게 멋있는 남자라면 사채업자라도 좋을 것 같았다. 긴장이 풀어진 영지는 깜박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