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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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사라진 두더지 8
“옴부티, 간두라와 리탐이 충분하오?”
“지난번 장사가 시원치 못해 재고가 많이 남았소.”
부리머의 물음을 옴부티가 농으로 받았다. 각박했던 옴부티도 여유 있는 용병들에게 살짝 물들었다.
“인원을 3개조로 나눈다. 깨비텐-장쒼-모리스가 알파, 마이크-미구엘-에밀이 베타, 부리머-블랙맘바-옴부티가 감마다. 벨맨은 캠프에서 샤트르를 간호하도록 한다. 베타조는 후방에서 돌발 사태에 대비한다.
대기조라는 말에 마이크가 코를 실룩거렸지만 블랙맘바를 흘끔 보고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깨비텐의 지시에 부리머가 덧붙였다.
“전투복위에 간두라를 덧입고, 리탐을 꼼꼼히 감도록 한다. 호신용 총기만 휴대하고 옴부티와 모리스만 원주민 접촉을 하도록 한다.
깨비텐이 블랙맘바를 손짓해 불렀다.
“블랙, 마을 진입은 위험하네. 자넬 믿고 가는 걸세. 마을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북부군에 협조할 여지가 많아. 유사시 가차 없이 처리해 주게.”
블랙맘바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헬벨트 북쪽은 무슬림 영역이다. 주민의 대다수가 아랍계다. 북부에서 인구수가 가장 많은 투부(Toubou)족 역시 아랍계다. 원주민인 라카족과 음붐족도 무슬림이다.
종교적 일체감 때문인지 이들은 리비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카다피는 끊임없이 이들을 자극하고, 지원해서 내란을 부추겼다. 에키야 주민들도 반군 게릴라들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께비텐의 지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적정이 보이면 가차 없이 처리하라는 지시다. 생체 레이더에 이어 이레이저맨 역할까지 맡았다. 내키지 않지만 해야 할 일이다.
깨비텐이 심정을 다 안다는 듯이 어깨를 툭툭 치고 갔다.
블랙맘바는 챠드라는 나라, 사하라 사막 곁다리인 사헬이라 불리는 이곳에 만정이 떨어졌다. 짜증나도록 메마른 무더위, 밤낮으로 덤비는 파리와 모기, 쉼 없는 모래 바람,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반군 병사들, 사지에 몰아넣고 배신 때리는 놈들까지…….반군 게릴라도 싫고, 정부군도 싫고, 래쿤이라 불리는 마쿰보 놈도 싫었다.
진정으로 싫은 것은 인간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몇 백 명을 죽였는지 셀 수도 없다. 피비린내가 배인 영혼이 묵지 근해진 느낌이었다.
스승님은 마구니가 된 제자의 모습을 상상도 못할 것이다. 목탁치고 불경 읽으며 보낸 세월이 일 년이다. 살인을 할수록 가슴이 무거워졌다.
용병이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살인은 살인이다.
갈수록 살인에 무감각해지는 자신이 두려워졌다. 가지치기 도끼로 최도식을 쪼개던 모습이 쿠크리를 든 현재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누명을 쓰고 사랑하는 미찌꼬와 헤어진 가지, 국가권력이라는 괴물에 등 떠밀려 원치 않는 전장에 보내진 가지, 만주 벌판에서 미찌꼬를 그리워하며 절규하는 가지의 모습이 자신과 오버랩 되었다.
“젠장,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을 죽여야 한다는 건가!”
고미까와 준페이의 독백이 흘러나왔다.
가면이든 민낯이든 더러 양심적인 일본인이 있긴 했다.
베타가 마을 밖에서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알파와 감마가 마을로 진입했다.
사헬지역의 주거지는 지붕을 갈대로 덮은 움막 형태가 대부분이다. 벽체는 갈대를 엮어서 두르거나 소똥을 진흙에 이겨서 쌓는다. 바짝 마른 갈대는 불쏘시게다. 화재가 나면 순식간에 전소 위험이 높은 가옥 구조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소똥은 사헬지역 특유의 가옥 건축 재료다. 섬유질과 기름기가 섞인 소똥을 이겨 바르면 벽체가 단단해진다.
블랙맘바는 부리머, 옴부티와 조를 이루어 마을에 들어섰다. 낯선 무장 병력을 바라보는 원주민들의 눈에 두려움이 얽혔다.
마을 입구에서 여자들이 항아리에 물을 퍼 담고 있었다.
여자들은 상체를 온통 드러냈고, 흙탕물이 고인 웅덩이는 바닥을 드러냈다. 여자들이 움직일 때마다 늘어진 젖가슴이 덜렁거렸다.
“니미 떠그럴!”
부리머가 혀를 차고 고개를 돌렸다. 한국산 욕은 급기야 라텔팀의 공용어가 되었다.
블랙맘바도 민망함과 혐오감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여자 젖가슴에 대한 환상이 홀딱 깨었다. 엄마의 젖가슴은 그리움이요, 혜영의 젖가슴은 욕정이다. 세상 여자들의 젖가슴이 모두 예쁘지는 않다는 진실을 깨달았다.
사헬 지역은 어디를 가나 웅덩이를 식수로 사용했다.
웅덩이는 솟는 물이 아니라 고인 물이다. 탁도도 높지만 위생적이지 못하다. 몇 몇 오아시스 마을 외에는 물 맑은 우물을 보지 못했다.
왜 우물을 파지 않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블랙맘바 입장에서 더욱 이해 안 되는 모습은 기도였다.
이들은 툭하면 알라를 찬양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엎드려서 알라의 은혜를 외친다.
짚은다리에서는 식량이 모자라면 여자들이 들로 나간다. 쑥을 뜯고, 쌀겨를 구해오고, 산나물을 뜯어 온다. 여물지 않은 보리 이삭을 잘라 오기도 한다.
이들은 기도만 한다.
‘자식이 굶어 죽어가는 판에 무슨 알라의 은혜인가?’
그는 혀를 찼다. 어쩌면 현실이 힘들수록 종교에 매달리는지도 몰랐다.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여자와 아이들만 집 앞에 올망졸망 앉아 있었다. 한창 뛰어놀 나이의 아이들도 집 그늘에 드러누워 있었다. 하나같이 갈비뼈가 앙상하고 배만 뽈록했다. 퀭한 눈동자가 낯선 이들을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옴부티, 남자들이 별로 없다. 내전 탓인가?”
“그렇다고 봐야지요. 프롤리나트 놈들이 강제 징집을 했을 겁니다.”
“휴, 내가 많이 죽일수록 징집도 많이 당하겠군.”
블랙맘바가 한숨을 쉬었다.
“와킬, 마음에 두지 마시오. 이들의 인생입니다.”
“그렇지.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블랙맘바는 씁쓸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품에 뼈가 앙상한 젖먹이가 안겨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배낭에서 초콜릿 파우치를 꺼내 여자에게 내 밀었다.
“아슈쿠르카!(감사합니다!)”
여자가 조그맣게 말하며 초콜릿을 받았다. 초콜릿을 까서 아이의 입에 넣어주는 여자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젠장!”
블랙맘바가 외면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세상 어디나 엄마는 같았다. 그는 백팩에 든 씨레이션을 몽땅 꺼내서 애기를 안고 있는 여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모습을 옴부티가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옴부티가 여자들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블랙맘바는 빠른 아랍어를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옴부티가 고개를 흔들었다. 성과가 없는 모양이다.
블랙맘바는 비참한 모습이 보기 싫어 고개를 돌렸다. 마을 안쪽에 거대한 아간 가시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가시나무 위에 시커먼 염소 서너 마리가 올라가 잎을 뜯어 먹고 있었다.
표범처럼 나무를 타는 염소라니, 웃기는 모습이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한줌의 잎을 먹겠다고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 염소가 애잔해 보였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블랙맘바와 부리머는 옴부티의 경호원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안면 있는 마을 장로를 만난 옴부티가 의미 있는 정보를 얻었다.
“깨비텐, 마쿰보가 이곳에 잠시 들르긴 한 모양이오. 나이든 남자와 무장 경호원 셋이 이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게 언제요?”
“삼일전이요.”
“으음!”
깨비텐은 난감했다.
간난신고 끝에 목표 지점에 도착했지만 너구리는 오줌발만 남기고 사라졌다.
보델레는 넓어도 너무 넓었다. 너구리가 어느 굴에 숨었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본부가 엉터리 정보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옴부티, 주변을 수색 해야겠소.”
“알겠소. 마을 장로가 돈을 지불하면 마을의 집을 빌려 주겠다고 합니다.”
“믿을 수도 없고, 벼룩과 빈대는 반군보다 더 싫소.”
에밀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희한하게도 대원들 중에 에밀이 벌레의 공격을 가장 많이 받았다.
용병들은 잔뜩 경계하는 원주민들의 눈초리가 하나같이 부담스러웠다. 눈치를 보며 쇠똥 냄새나는 더러운 움막에 기거할 의사를 가진 용병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저녁까지 암자오와 융수르 마을을 탐문했지만 유의미한 흔적을 찾지 못했다.
블랙맘바는 안간힘을 쓰는 깨비텐이 딱했다.
어려서부터 수없이 뒤통수를 맞아 본 블랙맘바다. 그는 다른 팀이 너구리를 빼내 간 정황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짐작이라 함부로 입을 열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라텔팀은 융수르 마을에서 5km떨어진 바위 그늘에 캠프를 차렸다. 꼬박 3일에 걸쳐 에키야 오아시스 인근을 샅샅이 수색했다.
크고 작은 마을 다섯 개를 방문했고, 인근 탕가(Tanga)의 와디와 계곡을 조사했다. 보델레 저지 깊숙이 들어가 폐허가 된 응가잘라 지역까지 조사했다.
그야말로 돌 한 개까지 들추어 보았다. 그럼에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너구리가 둔갑술을 썼는지 꼬리도 보이지 않았다.
“부리머, 마쿰보와 하비브군의 전투가 벌어진 곳이 어디라고 했지?”
깨비텐의 물음에 잠시 기억을 더듬던 부리머가 대답했다.
“옹우르입니다.”
“옴부티, 옹우르를 아시오?”
“치차 서쪽 70km지점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주민은 아랍계로 칠팝십호쯤 됩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군. 그곳부터 다시 더듬어 봐야겠어.”
깨비텐은 말을 하면서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책임감 때문에 움직이지만 마음 한구석에 계속 회의가 남았다. 정확한 정보도 없이 래쿤을 찾아 떠돌아야 하는지, 귀환 요청을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래쿤 몰기 17일째,
석양이 질 무렵, 픽업 세 대에 분승한 라텔팀이 옹우르 근처에 도착해서 숙영에 들어갔다. 라텔팀은 부상당한 샤트르와 벨맨만 캠프에 남기고 정탐에 들어갔다.
옹우르 오아시스는 칠십여 호 가까운 마을이다. 보델레 저지대에 산재한 마을 중에 제법 큰 편에 속한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옴부티와 모리스가 앞장섰다.
“우후, 야알라이히!(세상에 이럴수가!)”
마을에 진입한 옴부티가 운전대를 내리치며 비명을 질렀다.
누구나 그렇듯 급하거나 놀라면 본국어가 튀어나온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옴부티가 놀랄 만 했다.
마을이 사라지고 폐허만 남았다.
대부분의 집들이 무너지고 불탔다. 목재로 뼈대를 삼아 갈대로 지붕과 벽체를 엮은 집이다. 불탄 집들이 팍삭 무너져 시커먼 잔해만 남았다.
“이런, 젠장!”
모리스가 번개처럼 픽업에서 뛰어 내려 웅덩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얕은 웅덩이 바닥에 바짝 몸을 낮춘 모리스가 스코프로 마을을 관찰했다. 마을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개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위험이 없다고 판단한 모리스가 웅덩이에서 기어 올라왔다. 간두라가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썩을, 이게 무슨 꼴이야!”
지레 삽질한 모리스가 투덜거리며 옷에서 진흙을 떼어냈다.
“들어간다.”
옴부티도 권총을 빼들었다.
마을에 진입하자 집 안팎으로 시체와 가축이 늘려 있었다. 등에 총상을 입은 시체가 즐비했다.
“오, 알라시여! 심판의 날을 당겨서 놈들을 불의 양탄자로 둘둘 말아 주소서.”
옴부티의 이빨이 악물렸다.
데쟈뷰다. 두조랍 에르그의 아힘 마을, 북부 대도시인 파야에 가려면 모래사막과 황무지를 230km나 가로질러야 하는 작은 오아시스 마을이다.
이십 초반에 얻은 사랑스러운 딸, 젖가슴이 채 여물지도 않은 어린 꽃이 무참히 떨어졌다. 마을 전체가 소실되고 아내와 딸이 간살 당했던 바로 그 장면이다. 옴부티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모리스, FAP 놈들이겠지?”
“틀림없다. 놈들의 신병 훈련이다. 저주받을 놈들!”
모리스가 잔뜩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주민들을 위협해서 도망치도록 만든 다음 뒤쪽에서 사격 연습을 하듯 쏘아 죽였다. 소년병들의 실 사격 테스트로 인간을 제공했다. 프롤리나트 FAP계열이 흔히 저지르는 만행이다.
“블랙이 무스타와 아무드란 놈에게 천벌을 내렸군.”
모리스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