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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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장 헤카1
구웅- 응심제가 출렁 흔들렸다. 무쌍의 신체에서 동운(彤雲, 상서로운 붉은 구름) 같기도 하고, 운무(雲霧) 같기도 한 밝은 빛이 뿜어졌다. 거실이 노을빛으로 물들고 전단 향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아, 방광! (放光, 선승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 뻗치는 밝은 기운) 나무아미타불!”
양 여사가 털썩 꿇어앉았다. 불자로서 법상(法床, 깨달음을 얻는 현장 또는 설법하는 자리)에 참여함은 다시 못 얻을 복록이다. 가슴 가득히 들어찬 근심·걱정이 일시에 사라지고 무한한 기쁨이 들어찼다. (방광에 노출되면 정신이 굳건해져서 삿된 기운이 침습하지 못하고, 육신의 병도 사라진다고 전해진다.)
노을빛이 점차 강해졌다. 본채를 응심제 본채가 붉은 기운으로 둘러싸였다. 장중한 오도송(悟道頌)이 흘러나왔다.
“마음에 저어함이 있으면 업이요, 저어함이 없으면 천의무봉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함이 응무소주요 마음이 있는 곳에 내가 머무니 이생기심이다. 누군가는 가고 누군가는 온다. 부처라 여기면 부처고 윤충(바퀴벌레)이라 여기면 윤충이다. 우주는 여전히 넓고 강물은 흘러간다. 한때의 통쾌함을 백일의 근심과 바꾸지 마라. 좋은 인연은~”
투두둥- 무쌍의 가슴 앞섶이 요동쳤다. 잠잘 때도 풀어놓지 않는 비상 파우치다. 무쌍의 가슴이 풀무처럼 들썩거렸지만, 얼이 빠진 대중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듣기 좋은 바리톤 음이 툭 끊어졌다. 법열은 이어지고 있건만, 우주의 신비 한 끄트머리에 접속된 영대가 닫혔다. 안타까워진 무쌍이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
“좋은 인연은 두 번 찾지 마라. 차라리 아껴 간직하면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당하면 되갚는다. 받으면 베푼다. 되갚을 때는 백배로, 베풀 때는 열 배로 베푼다.”
창대하게 시작된 오도송이 은원록의 다짐으로 끝나버렸다. 축구로 말하면 하프라인부터 치고 들어가서 문전에서 똥볼을 날려버린 셈이다. 무참하고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천생산 암자 법당, 계명성이 동쪽 하늘에서 깜박거리는 새벽에 목탁 소리와 진언이 흘러나왔다. 포단에 가부좌를 튼 오척단구의 노승은 당연히 대우선사다.
“앗싸 좋고!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딱- 따악- 딱딱딱-
“……좋고 좋고! 마하가로 니가야 옴 살바 바예수 얼쑤!”
딱- 따악- 딱딱딱-
대우선사는 신 났다. 목탁 장단에 맞추어 신묘장구대다라니 중간마다 추임새를 넣어가며 신명 나게 목탁을 두드렸다. 대우선사는 노느니 염불하는 땡중이 아니다. 깨달음의 순간에 든 제자를 인도하는 중이다.
부처님의 가피에 힘입어 포기했던 의발제자를 얻게 되었으니 기뻐도 보통 기쁜 게 아니다. 세사에 초탈한 대우선사도 제자 욕심은 버리지 못했다. 오백 년 묵은 참나무 껍질 같은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목탁을 두드리는 손길도 신명 나게 움직였다. 이제 한 고개만 남았다. 한 고개만 넘으면 무아는 껍질을 벗는다. 목탁 소리가 천생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옴, 아라남 아라다 옴 아라남 아라다~ 안 되에!”
진언에 비명이 섞였다. 거의 끝에 다다랐을 즈음 제자가 삐끗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윤궐집중((允厥執中)이 흐트러졌다. 아차 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대우선사는 다급해졌다. 파 행진을 이어가다가 마지막 홀에서 트리폴 보기 하는 꼴을 어찌 본단 말인가!
‘이놈아, 힘을 내라.’
딱딱딱- 목탁 소리가 빨라지고 진언이 높아졌다.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가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이런, 빌어먹을!”
제자 놈이 갑자기 깨달음의 한 자락을 움켜쥐길래 좋아라하고 이끌었더니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아수라의 길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와장창- 애꿎은 목탁이 법당문을 뚫고 날아갔다. 펑- 섬전처럼 날아간 목탁이 영고석 중턱에 퍽 틀어박혔다. 화풀이 대상이 된 영고석이 우르르 거체를 떨었다.
‘부처님의 가피는 개뿔이!’
대우선사는 멍하니 좌대를 올려보았다. 부처님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건만, 대우선사의 심중엔 열불이 솟았다. 기쁨과 열정으로 빛나던 눈에 안타까움과 회한이 어렸다.
“이 양반아, 웃으면 다요? 나는 의발을 넘겨줄 제자를 놓쳤단 말이요.”
벌떡 일어나서 좌대 중앙에 앉은 석가모니를 향해 삿대질했다. 부처님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열이 뻗칠만했다. 사랑하는 제자가 무량수의 겁을 벗어던질 순간이었다. 눈 푸른 납자(달마대사 또는 탁월한 불기(佛器)를 뜻함)로 진신이 다시 태어날 찰나에 아수라로 되돌아가 버렸으니 말이다.
“부사의해탈경계((不思議解脫境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깨달음의 경지)를 성취하면 뭣하리. 제자 한 놈 제대로 얻지 못하고 빌빌거리는 땡중 꼬락서니 하고는……. 에이 망할 놈, 속세의 모진 운명과 입맞춤이 그리 좋더냐! 뽀뽀를 하든 키스를 하든 니 맘대로 해라!”
심통이 잔뜩 난 대우선사가 한숨을 푹푹 쉬며 법당을 나섰다. 잠시 후, 요사채 큰방에서 대우선사가 손가락에 걸린 바이크 키를 뱅뱅 돌리며 나타났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가죽점퍼와 수술이 치렁치렁한 가죽 바지, 머리에 질끈 감은 두건, 어깨에 걸린 금속 체인까지 제대로 갖춰 입었다. 민머리에 오척단구로 포스를 제대로 살리기엔 무리지만, 제멋에 사는 폭주족 노승은 보무당당했다.
대우선사는 풀 페이스 헬멧을 쓰고 크롬 도금이 번쩍이는 하레이에 사뿐히 올랐다. 저가 모델인 스포스터가 아닌 원판 CVO 1,820cc 모델로 벨맨이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서 보낸 선물이다. 대우선사는 신경질적으로 키를 콱 꽂아 돌렸다. 두둥 두둥 두두둥- 잠에서 깨어난 하레이가 맥동했다. V형 트윈엔진에서 터지는 말발굽 소리 엔진 배기음이 허탈한 가슴을 위로했다.
“흐흐흐, 속세도 나름 좋은 것이여! 아수라면 어떻고, 의발을 잇지 못하면 어떠리. 헤비메탈에 나무아미타불을 붙인다고 찬불가가 되더냐. 가자 애마야! 달빛을 벗 삼아 화끈하게 달려보자꾸나.”
부아앙- 강력한 트윈 엔진이 오척단구의 라이더를 싣고 폭발적으로 뛰쳐나갔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만나도 만나지 못하니. 예전에도 안타깝고 지금도 안타깝고 훗날도 안타깝구나.”
대우선사의 탄식이 암자 마당을 맴돌았다. 땅을 쳤지만, 천의무봉한 대우선사가 세속의 인연과 미련이 다하지 않았음을 모를 리 없었다. 천지자연의 섭리는 언제나 그렇듯 그럴만한 연유가 있다. 무쌍이 깨달음을 얻어서 납자의 길로 가버리면 기지개를 켠 노바토피아는 어쩔 것이며 수많은 아프리카 난민은 어쩔 것인가. 51구역과 일루미타니 부두교의 발호는 어쩔 것인가. 진순과 에델은 어쩔 것이며 슬픈 운명의 여인 김말순은 어쩔 것인가.
무쌍은 뜨거운 차 한잔을 마실 시간이 지났을 무렵 눈을 번쩍 떴다. 몸과 머리가 날아갈 듯 가뿐한데 귀가 간지러웠다. 무쌍은 어리둥절했다. 양 여사와 진순이 합장 배례하고, 다른 사람은 넋이 빠진 얼굴이다.
“어! 내 얼굴에 밥풀 묻었나? 진순이 니는 머하노? 파리 흉내 내나?”
그는 자신이 적정에 들었고, 깨달음의 문턱에서 실족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비상 파우치에서 한 차례 난동이 벌어졌다는 사실도 몰랐다. 다만, 늘 찌뿌둥하니 머리 한쪽에 남아있던 응어리 같은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로 최도식이 숨겨둔 괴뢰응귀술(傀儡應鬼術)의 핵이다.
“스님이었어요?”
얼이 빠져있던 영희가 얼척없는 질문을 던졌다.
“스님은 무슨 스님. 자신의 마음조차 주체못하고 어둠 속에서 잃어버린 고무신 한 짝을 찾아 헤매는 어리석은 중생이지.”
“아, 다행이다!”
영희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가 무쌍의 말을 이해하기엔 지력이 턱없이 모자랐다. 겉으로 보이는 물상에 집착하는 나이에 정신마저 온전치 못하다.
“왜? 나한테 시집오려고?”
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아, 아름답다!”
영희는 정신이 아찔했다. 남자의 미소가 이렇게 황홀할 수 있다니,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왼쪽 뺨에 흐릿하게 남은 쌍십자 흉터마저 보조개로 보였다. 조각상 같은 몸매에 잡티 하나 없는 갸름한 얼굴, 신비가 철철 넘치는 미소까지, 킹카 중의 킹카다.
그녀는 미나를 연신 훔쳐보았다. 나이로 보면 열여섯 살 차이다. 정말 딸일까? 중학생도 정자가 나올까? 영희의 의문은 끝없이 이어졌다.
“이것아, 꿈 깨! 좋아하는 건 니 자유지만 오빠를 귀찮게 하면 쫓겨날 줄 알아!”
연순이 영희의 핑크빛 상상을 박살 냈다. 좋은 게 좋다고 하지만, 굴러들어온 석삐르기의 행태가 가관이다. 영희의 목이 쑥 들어갔다. 무쌍은 그저 웃기만 했다. 대우선사가 봤으면 재차 복장 터졌을 미소다.
“양 여사님, 미숙이 누나의 큰언니를 이렇게 만난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인연의 시작과 끝이 이토록 엄중하니 누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무쌍이 고개를 숙였다.
“안될 말씀입니더. 깨달은 분에게 나이가 무슨 소용이겠심니꺼. 삼생의 영광이고 가문의 광영입니더. 저는 오로지 무쌍님의 발끝을 따를 뿐입니더. 나무아미타불!”
양 여사가 펄쩍 뛰었다.
“헛, 깨달은 분이라뇨! 누님은 큰일 날 말씀 하지 마이소. 사부가 들으면 다리 몽댕이 부러집니다. 깨알만 한 작은 배움을 깨달음이라 하면 사바세계는 벌써 용화천국이 되었게요.”
“아닙니다. 아녜요. 염치없이 구함 받고 방광 보시까지 받은 마당에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방광 보시? 뭔 일이 있었나?’
무쌍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방광이니 깨달음이니 뭔가 핀트가 살짝 어긋났다. 깨달음은 휘발성이 있다. 끝을 보지 못하면 무의식에 잠긴다. 무의식은 말 그대로 무의식이다. 의식의 표면에 올라올 기약이 없다.
은산철벽(銀山鐵壁)이란 말이 있다. 깨달음이 그만큼 지난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대우선사도 애통해한 것이다. 무쌍은 모르면 그냥 지나간다. 미소 띤 얼굴로 식탁에 앉은 사람들을 죽 둘러보았다.
“보십시오. 알고 보면 만나면 알만한 사람이고, 알고 나면 가족이지요?”
“그 그렇습니다.”
김기택과 양 여사가 얼결에 대답했다.
“아저씨와 가족분들은 일시지간 악몽을 꾸었습니다. 회근보춘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뿌리에 비축해서 봄에 무성히 피어난다는 뜻입니다. 오늘 일신의 곤궁함이 영원할 듯 고통스럽지만, 그 또한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새로운 잎을 피우는 바탕이 될 겁니다.”
양 여사가 눈물을 흘리고 김기택은 자세를 바로 했다. 사람이 달라졌다. 이수복을 잡아와서 결딴내던 사람과 동일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풍기는 분위기는 더욱 부드러워졌지만, 말 한마디에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묻어났다.
“이왕 인연이 이어져 내 품에 날아들었으니 내 식구입니다.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이 날줄 씨줄로 엮이기에 달고 쓴 인생이지 않습니까. 새 인연을 저어함이 없이 받아들여 마음을 편히 하이소.”
양 여사가 일어나서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세 번 대례를 올리고 합장했다. 무쌍은 말리지 않고 빙긋이 웃기만 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다.
“크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신도 생활 삼십 년에 오늘처럼 가슴 울리는 말씀을 들어보지 못했심더. 먹물처럼 시커멓던 속을 이토록 시원하게 씻어주신 은혜를 우예 다 갚겠심니꺼. 살아서 모시고 죽어서도 잊지 않겠심더,”
“과한 말씀입니다. 땡중도 못 되는 놈이 그럴듯한 소리 한마디 하려니 땀이 뻘뻘 납니다. 하하하!”
무쌍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이러다간 한국에서도 뚜바이부르파가 될 판이다.
“오빠, 밤이 늦었어요.”
진순이 적절한 시점에 훈수를 두었다.
“그렇구나. 영지야 마이 묵었나?”
“그럼요. 너무너무 맛있었어요.”
영지가 볼록해진 배를 두드렸다.
“흐흥. 별채와 행랑채 청소를 할라카마 마이 묵어야 할끼다.”
계순이 촉새처럼 끼어들었다.
“청소요?”
“응, 울 오빠는 짠돌이라 공짜는 없어. 니들 둘은 별채와 행랑채 청소를 해야 해. 먼지 한 톨이라도 있으마 언니에게 야단맞을 거야.”
계순이 군기를 잡았다. 영희와 날짜를 맞춰보니 자신이 두 달 먼저 태어났다. 두 달이면 밥이 180그릇이다.
“알았어요. 열심히 할게요.”
영희와 영지가 입을 모아 대답했다. 지긋지긋한 여인숙을 벗어나고 나쁜 놈들의 시달림을 벗어났는데 똥인들 못 퍼낼까. 자매는 별채와 행랑채의 방이 51개나 된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아저씨와 누님은 서재로 가입시다.”
무쌍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설거지라도 해야!~”
양 여사가 팔을 걷었다. 진순이 손을 내저었다.
“저도 큰언니라 부를게요. 큰언니는 어서 오빠와 함께 가시소. 별채는 오래 비어서 청소를 해야 해요. 내일부터 별채를 사용하고 오늘은 본채에서 그냥 주무세요. 큰언니와 영희 영지는 비어있는 우순이 방을 사용하고, 아저씨는 미나 방에 잠자리를 준비할게요.”
“꺄아, 아빠하고 잔다.”
미나가 괴성을 질렀다.
“하이구 저거 바라. 좋아 죽네.”
말순이 눈을 흘겼다.
“와킬,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반로환동한 이인입니까? 도를 통한 고승입니까? 숨겨진 재벌 2세입니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입니까?”
“웬 존댓말입니까?”
“와킬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낫살이라도 묵었다고 말을 놓기엔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와킬이란 이상한 호칭도 입에 설고……. 박 사장님이라 부르고 높임말을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