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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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장 헤카2
“아랫사람 아니었던 윗사람 없고, 아랫사람은 언젠가 윗사람이 되지요. 마음가는 대로 하시소.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내가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지요. 아저씨는 몇 시간 전에 젊은 십장의 욕을 먹으며 돌을 날랐습니다. 지금은 집 주인인 저와 함께 값비싼 와인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진짜 아저씨입니까?”
“아!”
김기택이 땡중 도 터지는 소리를 냈다.
“그렇습니다. 돌을 나르든 값비싼 술을 마시든 아저씨는 아저씨일 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막노동판의 잡부는 기성섬유 사장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후우! 사장님 말씀은 이해하지만,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김기택이 긴 한숨을 쉬었다.
“성공한 삶보다 평안한 삶이 백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돌부리에 걸려서 엎어져 봐야 돌부리를 조심하고, 피하는 요령도 생기지요.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본래의 자리를 찾을 겁니다. 가족은 생활이 안정될 때까지 내가 보호해드리지요.”
김기택의 어깨가 들썩였다. 가족을 걱정하지 말라는 한 마디에 가슴이 녹았다. 전생에 무슨 큰 선업을 쌓았길래 이런 귀인을 만난단 말인가! 김기택이 기어코 눈물을 흘렸다.
“크흑흑! 고맙심더. 그저 고맙심더.”
“세상만사가 잠시광경(暫時光景)이지요. 삶이 고단하게 느껴짐은 외로움과 허망함이 원인입니다. 내가 아는 특급 요리사는 어린 딸을 건사하려고 호텔 주방장 자리를 마다하고 야간 업소에서 단품 요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챙기려면 외롭고 허망할 틈도 없습니다. 오늘의 기쁨이 십 년 뒤의 기쁨이 아니듯이 오늘의 고단함은 아팠다는 추억만 흐릿하게 남을 겁니다. 누님도 부담 갖지 마시소.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이 집안엔 여자들이 많을수록 좋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자들이 자꾸 느네요. 아무 걱정 마시소. 아저씨도 곧 재기할 겁니다. 조금만 고생하면 좋은 날이 올 겁니다.”
‘젠장, 내 코가 석자인데 누굴 걱정하나!’
무쌍은 김기택 부부를 위로하다 본인의 가슴이 아렸다. 어머니 행방은 찾을 길 없고,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그녀는 아련한 기억으로 존재했다. 가슴이 온통 타오르던 열정도 시간 속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렸다.
“고맙습니다. 두려워서 피할 생각만 해온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여보, 조금만 더 고생합시다.”
김기택이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럼요. 당신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어요.”
무쌍은 손을 맞잡고 눈물 흘리는 부부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남자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사장님, 내자는 언제 천성사로 가면 될까요?”
“바쁠 것 없어요. 당분간 누님이 계셔야 영희와 영지도 빨리 안정을 찾지 않겠습니까. 일단 풍국파 건을 해결합시다.”
“천성사요?”
양 여사가 물었다.
“아, 내가 미처 말하지 못했구마. 천생산에 있는 절인데 사장님 사부님이 계셔. 당신이 선사님의 공양을 챙겨야겠어. 개안치?”
양 여사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모요. 사장님 사부님을 모시는 일이라면 떼를 써서라도 가야지요. 저는 언제든지 가겠심더. 그런데 애들 학교는 우야지예?”
양 여사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외출도 못 하는데 학교는 언감생심이다.
“당연히 가야지요.”
무쌍이 김기택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그놈들이 해코지하마 우야지예.”
“하하하, 걱정 마이소. 든든한 경호원이 보호해 줄 겁니다.”
“아, 경호원까지! 이래 폐를 끼치가꼬 우얍니꺼. 머리를 풀어 신발이라도 삼고 싶심더.”
양 여사가 눈물을 흘렸다. 새삼 그동안 겪었던 악몽 같은 일들이 떠올랐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기어 올라온 현실이 여전히 실감 나지 않았다.
“하이고, 그런 말씀 마시소. 어려운 시절에 5년이나 미숙이 누나와 의지해서 살았심더. 도움도 마이 받았지요. 그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염치가 없심더!”
“흑흑흑, 고맙심더! 고맙심더!”
양 여사는 흐느끼느라 대답도 제대로 못 했다. 어느 누가 십수 년 전의 작은 인연을 이토록 소중히 여길수 있겠는가. 진정 깨달은 분이고 대인이다.
“여보!”
김기택이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무쌍은 부부가 얼싸안고 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호탕한 아버지, 다정한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공짜 아입니데이. 치부책에 동전 한 푼까지 기록해놓을 낌니더. 내 돈 떼묵을 생각은 꿈에도 하덜 마이소.”
무쌍이 짐짓 눈을 부라렸다.
“호호호! 그럼요 그럼요.”
흐느끼던 양 여사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아, 그리고 영희는 장애가 있는 듯합니다만…….”
무쌍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알아챘구먼요. 정신이 깜박깜박하고 어린애 같은 집착을 보이고……. 그 나쁜 놈들이…….”
양 여사가 말을 잇지 못했다. 뒷말은 듣지 않아도 뻔했다. 곱게 키운 딸이 당한 횡액에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이로써 풍국파는 작량감경이 사라졌다.
“지난 일이야 어쩔 수 없지만, 치료는 걱정하덜 마시소. 내 가족 중에 세계 최고의 뇌과학자 겸 신경정신과 의사가 있어요. 지금 아프리카에 있는데 즉시 오라고 하지요.”
무쌍이 전화기를 들고 국제전화를 신청했다. 김기택과 양 여사는 멍해졌다. 자신들로서는 엄두도 안 나고 막막하기만 한 난제가 이 사람에겐 돌멩이 한 개 치우는 수준이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존재할 줄이야! 세상 그 무엇도 걸림돌이 될 수 없는 사람, 세상을 거침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람이다.
하룻밤 사이에 많은 사건이 벌어졌지만, 진짜 큰 사건은 무쌍의 품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새벽 세 시경, 설핏 잠들었던 무쌍이 눈을 번쩍 떴다.
“이거 왜 이래?”
비상 파우치가 달군 쇠처럼 뜨거웠다. 보스사우루스 힘줄과 가죽을 가공해서 만든 주머니가 아니었으면 불이 붙을 정도로 열기가 확확 뿜어졌다. 놀란 무쌍이 벌떡 일어나서 파우치를 열었다. 루스루훼를 감금한 수정 병, 발사라, 아미 로프, 그리고 앙게 시카거, 열기의 근원은 앙게 시카거였다.
“얼래? 알이 부화하는 거야? 엇 뜨거!”
하마터면 앙게 시카거를 손에서 놓칠뻔했다. 본래 따뜻하긴 했지만, 이처럼 손이 델 듯 뜨겁지는 않았다. 스스스- 억수갑이 손을 덮었다.
“이 자식은 또 왜 이래?”
투탕탕탕- 수정 병에 감금된 루스루훼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이놈이 몸부림치는 모습을 수차례 보았지만, 병이 깨질 정도로 난동을 피우는 모습은 처음이다. 앙게 시카거를 티 테이블에 올려놓고 비상 파우치를 닫았다. 그제야 루스루훼의 발작이 멈췄다.
“허, 이거 화재 나겠구먼.”
앙게 시커거가 백열했다. 오크목 티 테이블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서재 온도가 후끈 올라갔다. 무쌍은 잠든 미나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앙게 시카거, 발사라, 루스루훼는 모두 심상치 않은 물건이다. 행여나 통제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면 낭패다.
무쌍의 모습이 번득하고 서재에서 사라졌다. 쉬이익- 담을 타고 넘은 무쌍이 바람을 갈랐다. 청파보를 극성으로 시전해서 평소 조깅 코스인 영신고등학교 뒷길을 돌아서 공산 저수지로 향했다. 어쩐지 물이 필요할듯한 예감 때문이다. 금호강이 가깝지만, 더위를 피해서 강변에 텐트를 치고 밤새우는 시민들이 많다. 인적을 피할만한 장소는 팔공산 자락에 있는 공산 저수지가 제일 가깝다.
응심제 지하 이 층, 무쌍이 유사시에 대비한 방공호는 깜둥이 거처가 되었다. 깜둥이는 본체 상태에서만 대기 중의 원소와 태양광을 흡수해서 에너지화할 수 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낮이면 응심제 용마루에서 대기 중의 원소와 햇볕을 흡수하고, 밤이면 지하 이 층에서 에너지화 했다. 간혹 나타나는 살쾡이 크기의 고양이 정체를 아는 사람은 진순이 유일했다.
“뭐야?”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늘어져 있던 깜둥이가 벌떡 일어났다. 익숙한 신호가 스카우터에 잡혔다. 지능망이 수천억 엑사바이트의 메모리와 신호를 대조했다.
“헤카? 이럴 수가!”
깜둥이가 인간처럼 당혹한 감탄사를 뱉었다. 콘크레투스의 흔적이 사라진 지 1억 5천만 년이다. 바다와 육지가 뒤바뀌고, 지각이 몇 차례 재구성되는 시간이다. 자신은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영겁의 세월 동안 존재했지만, 또 다른 잔재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이 헤카는 자아와 형상이 분리된 존재다. 특정 신호와 에네르기 파가 없으면 무생물과 다를 바다. 지구에 헤카를 깨울 신호와 에네르기파가 있을 리 없다.
깜둥이는 턱을 앞발에 올려놓고 눈을 감았다. 비잉- 비잉- 스카우터가 반경 4km를 샅샅이 스캔했다. 순간적으로 느꼈던 헤카의 신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무쌍이 앙게 시카거를 들고 튀었으니 신호가 잡힐 리 없다.
인간이라면 자신의 느낌을 착오로 돌릴 수 있지만, 깜둥이는 인간이 아니다. 스카우터에 포착된 신호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헤카의 껍질이 날뛰면 세상이 뒤집어질 텐데!”
깜둥이는 슬슬 걱정되었다. 집단지성을 가진 형상은 제한적인 학습능력이 있지만, 자아가 없으면 공격성만 극대화 된다. 대우선사의 혹독한 조련을 받은 깜둥이의 사고체계는 사회 혼란을 걱정할 정도로 인간화되었다.
“혹시?”
깜둥이는 스카우터의 스캔 값을 인간 수준으로 낮추었다. 장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헤카의 껍질이 어떻게 변했을지는 누구도 장담 못 한다.
‘어럽쇼! 이건 뭐야?’
담벼락에 인간이 붙어있다. 새벽 세시, 담벼락, 인간, 불안정한 뇌파 신호, 인공 지능망은 종속변수를 종합해서 도둑놈이라는 값을 내놓았다. 천하의 동방불패 서식지에 도둑놈이라니, 인간이 아닌 깜둥이도 기가 막혔다. 스스스- 깜둥이가 대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쓰벌, 저 새끼는 전생에 삼천궁녀라도 구했나? 뭔 여자가 저렇게 많아. 넓기는 오질 나게 넓구먼!”
야시경을 쓴 장팔수가 투덜거렸다. 프랑스 문화원의 동태를 감시한 지 보름째다. 알아서 감시하고 수상한 점이 있으면 보고하라는 정필수의 지시를 받아 감시 임무 중이다. 조직에서 알아서 하라는 말만큼 모호한 말이 없다. 믿고 맡긴다는 뜻이 아니라 잘못되면 독박쓰라는 의미다. 혼자 바가지 쓰지 않으려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군번도 새카만 새끼가 말이야.”
장팔수는 보름째 밤이슬을 맞으며 저택 외곽을 빙빙 돌아다녔다. 일을 시키는 놈은 입만 달싹이면 되지만, 일하는 놈은 머리와 손발을 움직여야 한다. 정필수는 10년 후배다. 개고생 중인 장팔수는 배알이 꼴릴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신분증을 들이밀고 싶지만, 상대는 강대국인 프랑스 문화원이다. 시끄러워지면 첩보원 목숨은 파리 목숨이다.
정보원은 두 종류가 있다. 정보망을 짜고 정보를 분석하는 오피서와 오피서의 지시에 따라 일선에서 직접 뛰는 에이전트다. 무쌍처럼 오피서의 역할까지 겸하는 에이전트가 컨설턴트다.
안기부에서 오피서는 정식 국가공무원이지만 에이전트는 비정규직 공무원이다. 장팔수는 에이전트다. 사북사태 당시에 뒷돈만 챙기지 않았으면 에이전트로 밀려날 이유도 없었고, 남들이 단잠 잘 시간에 밤이슬을 맞을 이유도 없다. 장팔수는 이래저래 짜증 났다.
“씨바, 말만 문화원이지 젊은 아새끼 아방궁이고만.”
장팔수는 야시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보름 동안 감시했지만 별다를 것 없었다. 저택에는 참사관인 박무쌍과 상주 관리인(?)들밖에 없었다. 코쟁이들도 가물에 콩 나듯이 드나들었다. 이마빼기에 피도 안 마른 젊은 놈은 쭉쭉빠진 아가씨 대여섯명을 꿰차고 놀아나고, 국가 안위를 책임진 자신은 개고생하는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친구 아방궁이 맞아. 근데 너 큰일 났거든.”
난데없이 등 뒤에서 묵직한 음성이 고막을 때렸다.
“헉!”
식겁한 장팔수가 반사적으로 팔꿈치를 휘돌려 쳤다. 사십 중반에 들어섰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특공무술을 익힌 몸이다. 뻑- 팔꿈치가 저항 없이 휭 돌아가는 순간 관자놀이에 강력한 충격이 가해졌다.
‘털이 더럽게 많은 새끼네!’
까무룩 의식이 꺼지는 순간 장팔수가 느낀 감각이다.
“잠자는 동방불패를 깨울 수야 없지. 인간은 잠을 충분히 자야 에너지가 충전되거든. 너는 엉아하고 놀자고.”
깜둥이가 꼬리로 장팔수의 허리를 말아 올려서 휭 사라졌다.
무쌍은 저수지 가장자리에 우뚝 서 있는 바위에 앙게 시카거를 올려놓고 기다렸다. 웅웅- 달아오른 앙게 시카거가 진동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기대에 찬 무쌍은 미동도 않고 앙게 시카거를 노려보았다.
-이봐 친구! 어디 있나?
깜둥이의 텔레파시가 울렸다.
-묻기는 왜 물어. 찾아오면 되지.
-역장 때문에 스캔이 안 된다. 급하다.
-북북서 방향 6km 지점에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 우측 상단이다.
-알았다.
스스스- 대기가 유동했다. 알았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깜둥이가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 깜둥이는 다짜고짜 앙게 시카거를 저수지에 집어 던졌다. 퐁- 돌은 물에 가라앉게 마련이다.
“위험한 물건인가?”
산전수전 다 겪은 무쌍이다. 태연히 물었다. 깜둥이가 돌발 행동을 할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