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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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장 최도식2
드르륵- 벽면을 가로막은 1,700ℓ 업소용 대형 냉장고와 냉동고 여섯 개가 한꺼번에 쭉 밀렸다. 냉장고에는 시레이션, 동결건조 식품이 가득하고, 냉동고에는 급속 냉동 고기와 생선, 700m 심층 지하수를 얼린 얼음이 꽉 들어차 있다. 바퀴가 있지만 가벼운 손짓에 5톤 무게가 밀려나는 완력은 지극히 비현실적이었다.
밥값 압박을 받은 깜둥이가 구시렁거리며 틈틈이 옮겨놓은 시설과 비상 물품은 깜둥이, 쌈디, 진순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지하 이 층은 배금장군 야마나시 콜렉션 수장고를 겸하고 있지만, 순전히 가족의 안전을 위한 시설이다.
무쌍이 지나칠 정도로 가족들의 안전에 신경 쓰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혈맹인 미국 때문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충돌이 멀지 않았음을 예견했다. 그 상대가 소크라테스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는 미국 정부일지 51구역을 움직이는 특정 매파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미국이 먼치킨인 이유를 백 가지도 넘게 꼽을 수 있지만, 첫 번째는 기동력과 상륙능력이다. 미국을 제외한 어떤 나라도 일거에 사단 병력을 타국에 전개할 능력이 없다. 미국의 11개 항모 전단은 30년간 연료 보급 없이 대양을 누빌 수 있고, 공군 기지가 세계 곳곳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 안마당이다. 미군 기지는 한국 정부의 간섭없이 미군이 무시로 드나들 수 있다. 오키나와 카데나 공군기지에서 2시간이면 오산 공군기지로 전투력을 투입할 수 있다. 요코스카의 7함대는 24시간 이내에 평택항에 기항할 수 있다.
자신과 깜둥이가 노바토피아에 있을 때 쉐도우와 프레데터가 침입하면 대책이 없다는 소리다. 지하 이 층은 최소한의 골든 타임을 벌어줄 마지노선이다. 기우일지라도 준비가 과해서 문제 되는 일은 없다.
육중한 냉동고가 밀려난 자리에 키패드가 나타났다. 양쪽 엄지를 기판 위에 얹었다. 삐익- [확인 완료] 기계음이 울렸다. 지잉- 폭 2m 두께 300mm 벽면이 활짝 열렸다. 국정원이나 경찰이 목격하면 놀라자빠질 엄청난 물건들이 주인을 맞았다.
블랙맘바가 죽음의 천사일 수밖에 없는 장대한 검붉은 채찍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여 명의 피를 빨아먹은 락샤샤다. 무쌍은 회한 어린 눈으로 분신인 락샤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득한 고대 생물의 신체 조직과 최첨단 소재 과학이 탄생시킨 지상 최강 최악의 무기, 아수라만이 휘두를 수 있는 유니크 아이템, 인간 박무쌍을 인간이 아니게 만드는 요물이다.
동그랗게 말려있는 락샤샤 안쪽에 쿠크리와 유백색 단검 두 자루가 락샤샤의 독아인 양 시퍼런 예기를 뿜었다. 단검은 사르코수쿠스의 아래턱 송곳니 두 개로 만든 진정한 팡게 데 레비마(Fang de l’abîme, 심연의 송곳니), 초모랑마다. 초모랑마는 보니파스 등에게 지급한 팡게와 달리 금속성에 가까웠다. 무게도 두 배 이상 무겁고 예기와 강도가 명검인 쿠크리를 능가했다.
벽감에 진열된 살상 무기는 끝이 없었다. 드라구노프 2정, MP5sd3 3정, 글록 5정, 미니미 기관총 2정, 탄약 박스 수십 개, 수류탄 다섯 박스, 수전 20세트, 방탄복, 방검복……. 빼곡히 들어찬 무기 목록은 향토 사단 한 개쯤은 두드려 잡을 물량이었다.
무쌍은 착잡한 얼굴로 진열된 무기를 훑어보았다. 한국은 야만의 아프리카가 아니다. 한국의 치안 수준은 세계적이다. 여자 혼자 밤길을 다닐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51구역의 괴물과 쉐도우가 아니라면 쓸 일이 없는 무기다.
관계 기관에 소크라테스 프로젝트의 전모와 51구역에서 생산된 프레데터의 위험성을 밝히면? 턱도 없는 소리다. 미국은 한국 위정자와 기득권 세력의 신앙이다. 사회 불안을 조성하는 빨갱이로 몰려서 서빙고로 끌려가거나 청량리동 46번지에 감금되기 십상이다.
한국땅에서 쉐도우와 맞붙으면? 한국 군대와 경찰은 블랙맘바를 말살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설칠 것이다. 물론 자신이 당할 일도 없지만, 자국의 군대와 경찰을 믿지 못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무쌍이 지하실에 내려온 이유는 히가시혼간지와 최도식의 이름이 주는 무게 때문이다. 김기택 사장을 도와서 지저분한 족제비 몇 마리 처리하렸더니 들개가 나타났다. 풍국파 따위야 한 손으로 쓸어버릴 수 있지만, 히가시혼간지의 닌자와 화기를 사용하는 야쿠자는 데면데면한 상대가 아니다.
아베는 일급 닌자였다. 특급 닌자는 일급 닌자 열 명을 감당하고, 장로급은 특급 닌자 열 명을 감당한다고 했다. 대사부로 불리는 최도식의 무위는 쉽게 예단할 수 없다. 히가시혼간지가 자랑하는 신선 조나 장로급 인물이 풍국파에 출장 나와 있으면 한바탕 굿을 해야 한다.
야쿠자도 문제다. 야마구찌 구미를 비롯한 삼대 조직이 권총을 사용한 지 오래다. 조직 간 항쟁에 자동소총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허접한 놈들이 쏴대는 눈먼 유탄에 맞으면 그것만큼 짜증 나는 일이 없다. ‘준비가 부족하면 핏값을 치른다.’ 외인용병대의 격언이다.
무쌍은 벽감에서 민소매 적갈색 셔츠를 꺼냈다. 보스사우루스 힘줄과 다이니마를 합성해서 뽑아낸 방탄.방검복이다. 한 손에 뭉쳐 쥘 수 있을 정도로 얇은 재질이지만, 38구경 리볼버와 사시미에 뚫리지 않는다. 방검복을 걸치고 역시 같은 재질의 벨크로 수갑을 손목에 찼다.
오랜만에 쿠크리를 손에 잡았다. 잘난 락샤샤와 발사라가 등장하는 바람에 찬밥 신세가 되었지만, 현대 야금술로도 만들기 힘든 명검이다. 지이잉- 쿠크리가 울었다.
“미안하다. 이곳에선 사용하기엔 네놈이 너무 장대하구마.”
한국에서 칼날 길이만 한 자 넘는 대형 쿠크리를 들고 돌아다니다간 불법무기소지죄로 체포당하기 딱 알맞다. 쿠크리를 벽면에 거치하고 팡게를 챙겼다. 무기는 성능도 중요하지만, 휴대성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청남색 슈트를 걸치고, 팡게를 품속에 질러 넣는 것으로 준비를 마쳤다.
다산 정약용은 격몽정지(擊蒙正旨)에서 배움이 가장 잘 먹히는 시기가 12살부터 16살까지 5년간이라 했다. 그 시기에 총명과 지혜가 죽순 돋듯이 솟아난다 했다. 그보다 어리면 지각이 없고, 17세부터는 이성에 눈뜨고 고집이 발아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했다.
배움의 시간인 천금 같은 5년을 장 씨와 백부가 망치고, 최도식이 이어받아서 삶을 망쳐놓았다. 놈이 아니었으면 혜영과 이별할 일도 없었다. 장 씨와 백부가 삶을 힘들게 만든 쑥부쟁이라면 최도식은 잘나가는 인생에 뿌려진 고춧가루다.
“흐흐흐! 최도식, 이왕이면 네놈을 만났으면 좋겠어.”
무쌍이 스산한 웃음을 지었다. 간절히 찾는 어머니는 소식 없고 생각지도 못했던 최도식이 살아났다. 선연은 말이 없고 악연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온다더니 딱 그 짝이다. 최도식이란 이름은 목에 걸린 가시다. 최도식을 하루도 잊은 날이 없고, 놈을 잊지 못하는 한 진정한 평안은 없다. 영원히 잊는 길은 말살이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못 한다.
시간은 공평하다. 이젠 세월이 역으로 작용한다. 백부와 장 씨, 최도식은 내리막이지만, 자신은 계속 오르막을 타고 있다. 자신의 능력은 일일신 우일신 하지만 최도식은 노쇠함을 피하지 못한다. 무쌍은 물 빠진 청바지에 흔해 빠진 청남색 슈트 차림으로 지하실을 나섰다. 무기는 팡게 한 자루만 챙겼다.
“사장님, 풍국파로 바로 갈라캅니까?”
김기택이 옷깃을 잡았다.
“영희와 영지 때문에라도 빨리 정리해야지요.”
일호의 긴장감도 없는 태도다.
“우야뜬동 조심하시소. 놈들은 수틀리마 사시미로 푹 쑤시는 악질인기라요.”
김기택은 몸이 달았다. 이인도 칼에 찔리면 다친다. 은인이 다치면 무슨 낯으로 응심제에 머물 수 있겠는가.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 뱃가죽은 제법 두껍습니다. 담당자가 강민석이라는 놈이지요?”
“예, 그놈이 책임자입니더.”
“미륵님의 가호가 우리 사장님을 보호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나무아미타불!”
양 여사가 앞뒤 맞지 않는 기도를 드렸다. 무쌍이 씩 웃고는 시트로앵에 올랐다.
“진순아, 오빠 후딱 갔다 오꾸마. 저녁엔 열무 비빔밥하고 삼계탕 해묵자.”
“오빠가 좋아하는 꼼장어도 구워놓을게요.”
진순이 배시시 웃었다. 오빠는 무예를 익히지 않았을 때도 사시미파를 끝장냈다. 허접한 조폭 따위에 다친다면 오빠가 아니다.
“오빠, 너무 세게 때리지 마요. 죽으마 클납니데이. 버르장머리 고칠 정도로 살살 때려요.”
계순이 걱정했다.
“가시나가 무신 소리하노. 강간범은 씨를 말려야 해. 오빠, 그 새끼들 물건을 확 뽑아 버리고 오이소.”
연순은 본인이 강간당한 듯이 바락했다.
“오빠야, 옷에 피 묻히오마 국물도 없습니데이. 핏물은 지문이 닳도록 비비도 안 빠지는 줄 알고 있지요?”
계순이 경고했다.
“알따, 알았어. 그 자슥들 차암 말이 많네.”
무쌍이 머리를 설설 흔들고 떠났다. 승용차 꽁무니가 대문을 벗어나자 김기택과 양 여사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진짜 조폭은 이들 오 자매다. 겁이 난 영희가 슬그머니 자신의 방으로 피신했다. 그래도 기분은 째졌다.
시트로앵은 만평 네거리에서 우회전했다. 복잡한 3공단 도로를 가로질러서 금호강으로 빠져나갔다. 풍국 캐피탈은 노원동 3공단과 금호강 하중도가 보이는 강변도로 사이에 있다.
노원공단이라 불리는 제3공단은 1960년대 말에 대구의 공해 기업을 몰아서 조성된 산업단지다. 섬유 관련 업체가 200여 개, 기계장비 업체가 300여 개로 대부분이 영세업체다. 노원공단과 비산동에 난립한 700여 개 영세업체가 풍국 캐피탈의 영업 밑천이다. 정확히 말하면 빨대 꽂아서 꿀 빠는 호구다.
“큰형님, 저 건물입니다. 건물 일대의 이만 평이 전부 풍국 캐피탈 소유입니다.”
넙치가 금호강 강변에 외따로 떨어진 건물을 가리켰다. 5층 백색 건물과 건물 뒤쪽에 5m 담장으로 둘러쳐진 시설이 보였다.
“작정하고 본거지를 만들 작정이군. 나야 좋지.”
무쌍은 승용차를 멀찍이 세워두고 건물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두웅- 공간지각력이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개방된 5층 건물 내 인원은 20명, 담장 안쪽엔 바라크가 세 동 있다. 감지된 인원은 30명이다.
“미숙이 누나 얼굴을 봐서라도 깔끔히 처리해야지.”
소위 개전의 정이 보이면 몇 대 두들기고 말겠지만, 뼛속까지 물든 놈들은 묻어버릴 작정이다. ‘은혜는 열 배로, 복수는 백배로!’ 사막 부족이 살아가는 방식이자 무쌍의 규칙이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현관 경비가 앞을 막았다.
“돈 때문에 왔지 놀러 왔겠소.”
“아 예, 들어가시지요.”
불퉁한 대답에 경비가 물러섰다. 풍국 캐피탈을 찾는 사람치고 기분 좋은 사람이 없다. 무쌍이 강화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여섯 쌍의 눈동자가 집중되었다.
새마을 금고 창구와 다를 바 없는 구조다. 고객 창구에 앉은 여직원 둘, 뒤쪽의 남자 직원, 책임자급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 그리고 위압적인 자세로 서 있는 떡대 한 놈. 청경 모자를 썼지만, 잔뜩 불린 비계와 치켜든 턱이 ‘나는 양아치오’ 하고 웅변했다.
서비스 데스크에는 예금, 대출, VIP가 새겨진 아크릴판이 세워져 있다. 자신이 처리하고자 하는 업무와 상관없는 정상적인(?) 영업장이다. 무쌍은 객장을 휘 둘러보고 2층 계단으로 향했다. 뒤쪽에서 발소리가 쿵쿵 울렸다.
“손님, 오데로 가십니까?”
무시하고 계단을 밟았다. 떡대가 후다닥 앞을 막았다.
“손님, 영업장은 일 층입니다. 화장실 갈라카마 뒤쪽으로 돌아가십시오.”
말은 공손하고 태도는 불량했다. 무쌍이 고개를 돌렸다. 떡대가 움찔 물러났다. 떡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신이 왜 움찔 물러났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상대는 호리호리한 젊은 놈일 뿐이다.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족보도 없는 핏덩이가 감히!”
눈치를 보던 넙치가 성큼 나섰다. 무쌍이 말없이 손을 들었다.
“넵, 죄송합니다.”
넙치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물러났다.
“강민석 있나?”
“무슨 일인교?”
결기가 돋은 떡대의 말투가 달라졌다.
“대출 건이다.”
“그런데 혀가 반 토막이십니다.”
시답잖은 핏덩이와 말을 섞어봐야 무슨 소용인가. 스윽-물결처럼 떡대를 지나쳐서 2층 계단을 올랐다.
‘저놈이 어떻게 빠져나갔지?’
떡대는 어리둥절했다. 좁은 계단을 큰 덩치로 꽉 막고 있었는데 상대는 어느새 자신을 타고 넘어갔다.
“씨바, 요즘 어린놈들은 말을 디기 안 들어요.”
떡대가 뒷덜미를 움켜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무쌍이 돌아보지도 않고 팔을 뻗어 젖꼭지 바로 위에 위치한 장대혈을 삼황포추로 쿡 찍었다. 팔이 문어 다리처럼 불가능한 각도로 휘어졌다.
“헉!”
떡대가 격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결사적으로 코를 벌렁거렸지만, 공기는 흡입되지 않고 꺽꺽 소리만 났다. 장대혈을 찍히면 횡격막이 굳는다. 그대로 두면 청색증이 발생하고 뇌사가 진행된다. 산소 결핍에 빠진 떡대가 부들부들 떨었다.
“이 자식아, 니가 요즘 어린놈이여. 엄살떨지 말고 안내나 해.”
떡대의 어깨를 쳐서 빙글 돌리고, 명문혈을 손바닥으로 탁 때렸다.
“푸흡! 콜록콜록”
호흡을 되찾은 떡대가 정신없이 기침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