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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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장 최도식3
떡대의 얼굴은 그 짧은 순간에 침과 눈물, 콧물로 범벅되었다. 넙치는 기시감을 느꼈다. 부평 7320부대, 날마다 계속되는 구타와 얼차려는 이골났지만, 삼일마다 시행되는 가스 교육은 석 달이 지나도 처음과 마찬가지였다.
호흡이 턱 막히고, 목구멍이 불타고, 얼굴 껍질이 벗겨지는 듯한 고통은 기억조차 끔찍했다. 맑은 공기가 그토록 고맙고 소중한 줄 그때 알았다. 폐를 쥐어짜고 심장을 비트는 저 고통은 삼청교육대 가스실에 비길만하다.
“에이, 더러운 놈!”
넙치가 얼굴을 찌푸렸다. 말과 달리 동병상련의 정에 가슴 한구석이 짠했다. 악몽의 한 수는 당해봐서 안다. 스쳐도 중상 아니면 치명상이다.
따악-
“악!”
딱밤을 맞은 떡대가 머리를 움켜쥐고 비틀거렸다.
“얼빠진 놈, 명대로 살고 싶으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짓던 농사나 지어라. 니놈 손바닥 바깥쪽에 굳은살이 박여있는 덕분에 산 줄 알아라. 앞장서!”
“예? 예예!”
두 말 못하고 앞장서는 떡대의 다리가 보기 딱할 정도로 달달 떨렸다.
“쯧쯧!”
무쌍이 혀를 찼다. 무기를 오래 잡으면 손바닥 안쪽에 굳은살이 배기고, 농기구를 오래 잡으면 손바닥 바깥쪽에 굳은살이 배긴다. 이 녀석은 양아치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신삥이다. 차돌이 바람들면 십 리를 날아간다 했다. 양아치 생활에 물들면 발을 빼고 싶어도 못 뺀다.
양아치, 매춘, 간첩은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군사정권 초기의 살벌한 분위기가 풀리자 농사짓기 싫고 힘은 남아도는 철딱서니들이 너도나도 도시로 기어들어 양아치가 되었다.
공격성, 욕정, 의심은 개체보전과 종족보존 본능이다. 진공은 채워지기 마련이고 풍선은 한쪽을 밟으면 다른 쪽이 커진다. 양아치와 매춘은 단속한다고 없어질 직업(?)이 아니다.
무쌍이 계단을 오르다 말고 슬쩍 뒤돌아보았다. 전화기를 들던 중년 남자가 얼음 땡이 되었다.
“하던 일 계속하더라고.”
무쌍이 씨익 웃고 계단을 올랐다. 바라던 바다. 개떼를 불러들이면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서 좋다. 이 층에 오른 떡대가 두 번째 방화문을 두드렸다.
“머꼬!”
안쪽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들렸다. 목적이 무엇이든 방음장치가 상당히 잘 된 건물이다.
“막상춥니더.”
“새꺄, 영업장이나 지켜!”
문 안쪽에서 거친 고함이 들렸다.
“막상추? 크크크, 이 새끼들은 채소 족본가?”
넙치가 낄낄거렸다. 연원을 알 수 없지만, 대구 지역의 족보는 전부 생선 이름이다. 떡대는 못 들은 척 문을 열었다. 호리호리한 인간이 너무 무서워서 대꾸할 정신도 없었다.
스나이퍼의 눈이 0.7초 만에 사진 찍듯이 전장 환경과 인물을 분석했다. 그저 그런 양아치 다섯, 제법 몸이 만들어진 놈 둘, 실내 면적 365㎡ 중 130㎡는 매트 깔린 수련장, 천장 높이 2.8m, 내력 기둥 6개, 철제 캐비닛 7개, 철제 책상 5개, 회전의자 6개, 짝퉁 물소 가죽을 입힌 3인용 소파 2조, 천 소파 3인용 2조…….
“흐흐흐, 존만이들 노는 꼬락서니 보게.”
넙치가 실실 웃었다. 소파에 걸터앉은 이삼십대 남자 다섯의 눈이 육덕 좋은 금발여자가 흑인 남자를 올라타고 열심히 허리를 놀리는 화면에 못 박혀 있다.
“새꺄, 들어오지 말랬잖아.”
한창 열중해 있던 비디오 감상을 방해받았기 때문일까. 벗은 상체를 잉어 문신으로 휘감은 놈이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떡대를 노려보았다.
“강 대리님 찾아온 분입니더.”
떡대가 손을 비비며 어물어물했다.
“긍게 썩을 놈아, 와 일로 델꼬오고 지랄이여.”
잉어 문신이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를 뒤섞어서 떡대를 추궁했다. 누구는 오고 싶어서 왔나. 죽기 싫어서 왔지. 떡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더듬이 떨어진 개미처럼 허둥거렸다.
“강민석 있나?”
묵직한 바리톤 음성이 울렸다.
“화따 그 새끼 목소리 좋네. 나가 강 대리님이여. 뭔 일이당가?”
뒤쪽에서 연습용 골프채를 휘두르던 삼십 대 초반의 남자가 건들건들 다가섰다. 사람을 얼굴로 평가할 일은 아니지만, 뱁새눈에 하관이 쪽 빠진 얼굴에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자 영판 쥐새끼다. 강민석이 나서자 무쌍을 쳐다보던 눈길들이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김기택 사장 대출금 갚으러 왔다.”
“근디 쎄바닥은 왜 반 토막이여? 시방 시비 걸러 왔어라?”
사람을 많이 접하다 보면 자연 보는 눈이 생긴다. 나 조폭이요 하는 분위기가 풀풀 풍기는 떼거리를 앞에 두고 태연한 놈은 뇌 작동에 이상이 생겼거나 한 수 있는 놈이다. 강민석의 판단은 당연히 후자였다.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중생도 급이 있다. 버르장머리없는 양아치지만, 똥인지 된장인지 알아보는 눈치 빠른 놈이다. 이런 놈이 오래 산다.
“앉아 보슈. 김기택이라~”
강민석은 일단 예감에 충실하기로 했다. 십 년을 닦아온 감각이 손발을 제지했다. 주먹이야 언제든 쓸 수 있다. 철제 캐비닛에서 두툼한 파일을 챙겨서 소파에 털썩 앉았다.
“막상추!”
“옙!”
철썩- 철썩- 강민석이 경고도 없이 뺨을 떡 치듯 두들겼다. 막상추는 입을 꾹 다물고 고스란히 뺨을 헌납했다.
“이 새끼야, 청소 똑바로 안 해? 먼지 나잖아.”
“시정하겠습니다.”
막상추가 목이 터지라 소리쳤다. 양아치 노릇도 쉬운 게 아니었다. 무쌍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째 레퍼토리가 넙치와 판박이다. 대가리가 나빠서인지 창조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놈들이다.
“이봐 강 대리, 불쌍한 놈 괴롭히지 말고 돈 계산이나 하자고.”
무쌍이 막상추를 돌아보았다.
“이놈시키, 아직 스무 살 전이지? 뼈도 여물지 않은 놈이 남 눈에 피눈물 빼내는 짓부터 배울 참이여. 후딱 보따리 챙겨서 부모님 계시는 시골로 튀어.”
“어 어~”
막상추가 강민석의 눈치를 보며 버벅거렸다.
“얼래! 이 새끼 보소. 니가 뭔데 내 쫄따구를 오라 가라야.”
강민석이 막 발작하려는 순간 넙치가 나섰다. 큰형님이 나서지 말라고 했지만, 버르장머리없는 핏덩이를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혔다.
“나 삼식이 형님 밑에 있는 넙치여. 주딩이 닥치고 일이나 혀.”
강민석이 뱁새눈을 홉뜨고 넙치를 노려보았다. 넙치가 어느 물에서 노는 물고기인지 모르지만, 이 바닥에서 족보는 실력과 동의어다. 똥개도 제집에서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지만 곰 같은 체격과 솥뚜껑 같은 손바닥에 기가 눌렸다.
“에이 씨, 재수 옴 붙은 날이어라. 새꺄, 꺼져!”
강민석이 애꿎은 막상추에게 화풀이하고 소파에 허리를 내려놓았다.
“김기택 사장과 어떤 관계여?”
“그거 알아서 뭐하게? 나는 돈을 갚으면 되고 너는 돈을 받으면 된다.”
“흐흐, 그건 그렇군. 일시금으로 갚을 거여?”
“너 같으면 못생긴 상판대기를 자꾸 보고 싶겠나?”
강민석은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불덩이를 꿀꺽 삼켰다. 이놈은 말 한마디로 부아를 돋우는 재주가 있다. 이죽거리는 턱을 박살 내고 싶었지만, 서늘한 눈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몸이 굳었다.
“흐흐, 그것도 그렇군. 1982년 8월 15일에 삼백을 빌렸구마. 이자는 월 오 푼으로 시작해서 복리계산이네. 매달 일 푼씩 늘어서 상한액인 월 오부가 되었구마. 원금 상환을 못했응께 할증을 붙이면~ 씨바, 계산하기 더럽게 복잡하구마.”
“황소 영각 키는 소리 고마해라. 그래서 얼마를 갚으라는 거야?”
무쌍이 강민석의 말을 툭 끊었다.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리던 강민석이 뿌사리 황소처럼 눈을 치켜떴다.
“이번 달 이자는 감해주고 삼천이백칠십만 원, 뚝 잘라 삼천이백. 씨바, 그 인간 인생이 졸라 불쌍해서 인심 썼다.”
‘흐미, 징한 놈들!’
넙치가 움찔했다. 3백만 원이 4년 만에 3,200만 원이라니, 원금의 열 배다. 통발이 사람 잡는다더니 문디 콧구멍에 끼인 마늘을 빼먹을 놈들이다.
통발은 매달 이자율이 높아지는 에스컬레이터 사채를 지칭하는 은어다. 물고기를 잡는 통발처럼 들어가기는 쉬워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의미다. 통발의 시조는 삼식, 아니 박인보다. 박인보가 장 씨 가문의 기둥뿌리를 뽑으려고 고안한 사채가 통발이다.
“그거 대단한 계산법이군.”
무쌍의 얼굴에 흰 선이 그어졌다. 지갑에서 만 원짜리 열 장을 꺼내서 티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강 대리, 내가 너한테 십만 원 빌려줬다. 상환 기한은 십 년, 이자는 월 오 할, 이자율은 매달 일 할씩 올라간다. 조기 상환하려면 원금 백배에 해당하는 기한이익 상실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머라꼬?”
강민석이 전철에 받힌 얼굴로 무쌍을 쳐다보았다.
“푸하하!”
넙치가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큰형님은 주먹만큼 말빨도 좋았다. 말이 주먹보다 통쾌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씨발놈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니 해결사제?”
바보가 된 강민석의 얼굴이 돼지 간으로 변했다. 이놈은 김기택의 청부를 받은 놈이다. 밥그릇은 피보다 숭고하다. 현시점에서 놈을 박살 내지 못하면 이 바닥에서 돈놀이는 끝이다. 강민석이 벌떡 일어나며 티테이블을 걷어찼다. 꽝-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욱!”
비명은 강민석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티테이블은 미동도 않았다. 무쌍의 한 손이 티테이블에 올려져 있었다. 반작용으로 돌아온 충격을 고스란히 감당한 강민석은 앉지도 서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자세로 오만상을 찡그렸다.
무쌍의 발이 채찍처럼 휘어져 올라갔다. 발목에 강민석의 목이 척 걸렸다. 쉭- 꽝- 강민석의 안면이 티테이블에 처박혔다. 목을 아래로 잡아채는 강력한 힘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끄악!”
비명이 터졌다. 인간의 얼굴이 세 치 두께의 원목보다 단단할 수는 없다. 코가 깨지고 입술이 터졌다. 피 칠갑을 했지만, 무쌍이 적당히 힘 조절을 한 덕분에 뼈가 함몰되지는 않았다.
“이 자식아, 니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니놈은 말도 안 되는 계산을 해도 되고 나는 안되는 법이라도 있냐? 있냐고?”
퍽 퍽 퍽- 안면이 티테이블에 연속 처박혔다. 강민석이 몸부림쳤지만, 뒤통수에 붙은 손은 꿈쩍도 않았다. 무쌍이 준법 시민이라서 강민석을 살살 다루는 게 아니다. 겁을 잔뜩 줘서 김기택의 대출계약서를 회수할 심산이었다. 맛이 가버리면 서류를 찾기 힘들어진다.
화면은 금발 여자와 흑형의 자세가 뒤바뀌었다. 윽 헉, 윽 헉헉- 헐떡이는 소리와 강민석의 비명이 화음을 이루었다. 포르노에 심취한 양아치들은 뒤쪽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도 몰랐다. 비명이 들려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자를 갚지 못한 채무자가 끌려와서 얻어터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어라! 저 새끼 머꼬?”
“깡철이가 당하는 구마요.”
철제 접의자에 앉아서 빙글거리던 매부리코와 테이블에 두 발을 올려놓고 담배를 피우던 짝귀가 급변한 상황을 알아챘다.
“처리해!”
짝귀가 손으로 목을 슥 그었다. 저런 놈은 살려두면 두고두고 골치다. 죽여서 금호강 바닥에 가라앉히면 그만이다. 매부리코가 벌떡 일어나서 사시미를 뽑아들었다. 쌩- 티테이블에 놓여있던 양은 재떨이가 공간을 단축했다. 따악- 마른 박 바가지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끄악!”
매부리코가 이마를 움켜쥐고 모로 쓰러졌다. 눈동자가 허옇게 뒤집어졌다.
“이 자식들은 툭하면 연장부터 꺼내네. 무서워 살겠나. 이 자식은 매를 버네.”
짝- 강민석이 뺨을 얻어맞고 푹 엎어졌다. 뒤통수를 누르던 힘이 느슨해진 순간에 빠져나가려 했지만, 귀신은 속여도 무쌍은 속이지 못한다.
“뭣들 해, 조져!”
짝귀가 품속에서 앙증맞은 토마호크를 꺼내 쥐고 고함쳤다.
“뭐여?”
“오메, 저 잡것이 깡철 해임을 담가버렸네잉!”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양아치들이 우르르 연장을 집어들었다. 쇠파이프, 야구 배트, 시멘트가 덕지덕지 묻은 공사장 각목, 곡괭이 자루, 연장이랄 것도 없는 채무자 위협용 아이템이다.
무쌍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시답잖은 도구에 묻은 혈흔이 눈에 들어왔다. 끌려와서 복날 개처럼 두들겨 맞은 채무자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우르르 달려드는 양아치들을 노려보는 눈에 한광이 어렸다.
쌩- 토마호크가 날아들었다. 손바닥 절반 크기의 도끼날이 정확히 가슴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턱- 도끼날이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였다. 피익- 또 한 자루의 토마호크가 번쩍했다. 목을 향해 사선으로 끊어 찍는 솜씨가 아마추어를 벗어났다.
무쌍의 목이 90도로 툭 꺾였다. 구수가 토마호크를 쥔 팔꿈치를 툭 치는 순간 흉기는 무쌍의 손으로 넘어갔다. 토마호크가 빙글 돌았다. 쩍- 넓은 도끼 면에 뺨을 얻어맞은 짝귀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퍽 엎어졌다. 입에서 하얀 물체 몇 개가 튀어나왔다.
무쌍의 신체가 남포등 불빛에 너울거리는 그림자처럼 흔들렸다. 쇠파이프 등이 일부러 비껴치듯 무쌍의 몸을 타고 흘렀다. 처덕- 처덕- 처덕- 처덕- 묘한 소음이 딱 네 번 울렸다. 과거 사시미파가 강제 퇴출당한 역사를 풍국파가 재현하는 소리다.
“아악!”
“끄윽!”
각양각색의 비명이 울렸다. 도끼 면으로 뺨을 얻어맞은 양아치 넷이 사이좋게 엎어졌다. 광대뼈가 깨지고 잇몸뼈가 박살 난 놈들은 적어도 6개월은 지나야 밥을 먹을 수 있다.
“흐으~”
넙치는 긴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