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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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장 최도식4
악쓰는 소리와 비명이 한순간에 툭 끊어지고 운동장처럼 넓은 실내에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양은 재떨이를 던져서 한 놈 보내고, 도끼를 빼앗아서 다섯을 보내는데 딱 두 호흡 걸렸다. 놀랍게도 악몽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무실 집기 한 개 부서지지 않았다. 벽걸이 선풍기는 변함없이 털털 돌아가고, 브라운관은 질펀한 장면과 민망한 효과음을 열심히 토해냈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도끼다시 바닥에 주르르 퍼져가는 선홍색 핏물만 아니라면 한여름 낮 꿈이라 여겼을 것이다. 넙치는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흐으으~”
강민석이 묘한 신음을 뱉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널브러진 조직원들을 스쳐 갔다. 어쩐지 놈이 사무실에 나타나는 순간부터 찜찜했었다. 좋지 않은 예감은 너무 잘 맞아서 탈이다.
암울한 시선이 토마호크를 들고 설쳤던 40대 중반 남자에 머물렀다. 바람 빠진 풍선 꼴로 널브러져 있지만, 한때 무라카미 구미에서 질풍의 쌍도끼라 불렸던 남자다. 히로시마 항쟁이 절정에 이른 1970년 중반, 오카 구미 행동대장의 저택을 피바다로 만든 장본인이 쌍도끼 장영팔이다. 특수 영업팀 팀장 장영팔이 도끼를 빼앗기고 본인의 도끼에 맞아 죽었다. 꿈이라면 나쁜 꿈이고, 농담이라면 아주 질 나쁜 농담이다.
“민석아, 하던 이바구는 마저 해야지.”
“허억, 괴물!”
현실과 접속한 강민석이 정신없이 뒷걸음쳤다. 마치 큰형이 막내를 타이르는듯한 고즈넉한 목소리가 새삼 끔찍했다. 강민석은 외계인을 보듯이 무쌍을 쳐다보았다.
“어서 앉아. 하던 일은 마저 해야지.”
무쌍이 싱긋이 웃으며 소파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강민석의 눈동자가 초점을 찾았다. 특수영업팀은 풍국파의 수입 90%를 책임지는 핵심 조직이다. 강민석은 실력 좋고 독한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독기 하나로 중간 보스 자리를 꿰찬 만만치 않은 인간이다.
“형님, 어디서 오셨습니까?”
강민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큰 조직에서 나왔으면 무조건 협상해야 한다. 아무리 계보를 짚어봐도 이 정도 실력자를 보유한 조직은 기억에 없었다. 조직끼리 싸움 끝에 손을 잡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호, 이놈 봐라!’
호칭과 말투가 바뀌었다. 무쌍은 강민석의 잔머리를 훤히 읽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면피 구실뿐 아니라 공을 세울 기회까지 노리는 놈이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의 피 빨아 먹는 거머리 주제에 그거 알아서 뭐하게? 니 모가지 걱정부터 해.”
‘씨불놈!’
강민석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시간을 벌어보려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늘의 사단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다. 고객관리 실패로 몰리면 손가락 두 개쯤은 상납해야 한다. 팀장까지 당했으니 손목을 상납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전에 이놈의 손에 죽거나 잘해야 병신이다.
‘씨팍, 사시미에 배때기 구멍 안 나는 놈 있나. 내가 시방 살모사 강민석이여!’
이판사판이다. 강민석은 볼펜을 툭 쳐서 떨어뜨리고 줍는체하며 종아리 칼집에서 사시미를 슬그머니 뽑았다. 이마에 맺힌 진땀이 주르르 흘렀다. 놈은 상상할 수 없는 고수다. 기회는 단 한 번밖에 없다.
강민석이 허리를 튕겨 올렸다. 퍽- 왼손으로 두툼한 서류 파일을 쳐날리고, 칼을 잡은 이래 가장 빠르고 강력하게 사시미를 내질렀다. 강민석은 불행히도 일 분 전에 장영팔이 도끼를 뺏기고 박살났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헉!”
강민석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놈의 시야를 가려주기를 기대한 서류 파일은 종이 한 장 날리지 않았고 칼이 살을 파고들 때의 살벌한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괴물이 비죽이 웃는다고 느낀 순간 손이 허전해졌다. 십 년이나 함께 해온 연장이 주인을 배신하고 놈의 손에 넘어갔다. 기겁할 틈도 없이 오른손이 확 끌려갔다.
“뼛속까지 양아치 근성으로 물든 놈이구마.”
고막이 천둥 치듯 울렸다. 퍽- 사시미가 핑글 돌아서 티테이블에 내리꽂혔다. 칼날이 꽂히는 위치에 팔목을 잡힌 손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컥!”
강민석의 눈에 핏발이 곤두섰다. 손에서 시작된 감각이 신경을 타고 뇌로 치달렸다. 뇌가 통증이라는 판단을 내리기까지 찰나였다. 강민석은 손잡이만 남기고 손등에 박힌 자신의 연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기시감이 찾아들었다. 까마득히 잊었던 기억, 국민학교를 다닐 때 곤충채집은 단골 방학숙제였다. 마분지 상자에 비닐 카바가 씌어진 곤충채집 상자, 핀으로 고정된 잠자리, 풀무치, 방아깨비, 메뚜기, 왕거미, 그것이 왜 지금 생각날까?
“끄아악!”
뒤늦게 비명이 터졌다. 곤충채집 판에 핀으로 박힌 잠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오른손이다. 시퍼런 칼날이 손등뼈와 힘줄을 끊어내고 탁자에 칼자루까지 박혔다. 통증보다 경악과 공포가 더 컸다.
“억수로 독종이라 카디마는 벨로구마.”
쩌억- 장작을 도끼로 빠개는 소리가 울렸다. 입에서 핏물과 하얀 알갱이가 튀어나왔다. 강민석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공중 부양했다가 철퍼덕 떨어졌다. 그 서슬에 오른손은 넝마처럼 찢어졌다. 눈을 까뒤집고 푸르르 떨던 강민석이 축 늘어졌다.
“흐으~”
넙치가 마지막 소변 방울을 짜내듯 부르르 떨었다. 강민석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옥수수 알갱이가 선명히 보였다. 저 정도면 이빨만이 아니라 잇몸뼈와 턱뼈까지 깨졌다. 넙치는 악몽이 가산산성에서 크게 봐주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악몽에 감사하고, 김말순 여사 추적에 직접 나선 보스에게 감사했다.
“점마 저거 지혈해 줘라. 아직 일 끝나지 않았다.”
“넵!”
넙치가 양아치의 상의를 북북 찢어서 거의 두 조각 나다시피한 손을 둘둘 말았다. 한 점의 망설임이나 경고 없는 살벌한 손속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넙치도 간담이 서늘했다. 어린 계집애의 잔소리에 쩔쩔매고 추레한 중늙은이를 깍듯이 대하던 인간과 동일인인지 의심스러웠다.
꽝-
철제 출입문이 부서지라 활짝 열렸다. 각종 흉기를 든 떼거리가 우르르 밀고 들어왔다. 양복 입은 놈, 체육복 입은 놈, 남방 걸친 놈, 러닝만 입은 놈, 심지어는 꽃무늬 잠옷을 입고 쇠파이프를 손에 쥔 놈도 있었다. 각양각색이지만 기세 하나는 흉흉했다.
영업부장의 연락을 받은 풍국파 패거리다. 박기충은 연락이 닿는 패거리를 모아서 발에 땀 나도록 달려왔다. 일백 평이 넘는 실내지만, 남자 30명이 들이닥치자 순식간에 꽉 찼다.
“넙치, 물러나라!”
넙치가 잽싸게 반대쪽 코너로 피했다. 연장 든 놈 수십 명이 들이닥치는 판에 끼어봐야 순식간에 젓 된다. 다구리에 장사 없다. 두놈쯤은 골로 보낼 수 있겠지만 그게 한계다. 한 놈 패고, 두 놈 움켜잡을 때 이미 뱃가죽 뚫리고 뒤통수 까인다. 그게 다구리의 무서운 점이다.
출입구 주변에 몰려있던 조직원들이 홍해 갈라지듯 양쪽으로 벌려 섰다. 슈트를 걸친 40대 후반의 남자가 느긋한 걸음으로 들어섰다. 늘어진 아랫배, 긴장감 잃은 걸음걸이, 두툼한 볼살, 탐욕만 남은 전형적인 늙은 조폭이다. 여유 있게 실내를 둘러보던 남자의 눈길이 장영팔에 꽂혔다.
“이런 빌어먹을! 확인해 봐.”
“옙!”
한 놈이 잽싸게 장영팔의 가슴에 귀를 붙였다.
“기절했습니다.”
“일단 병원으로 옮겨.”
“풋!”
실소가 터졌다. 자신의 몸 관리도 제대로 못 하는 놈이다. 양아치 몇 놈 끌고 와서 거들먹거리는 꼴이 가관이다. 윙- 쇠파이프가 날아갔다. 쾅- 장영팔을 부축하던 놈의 사타구니 바로 밑의 도끼다시 바닥을 뚫고 깊숙이 박혔다.
“히익!”
식겁한 놈이 장영팔을 팽개치고 후다닥 물러났다.
“멈춰라! 한 발짝만 움직이면 꼬치구이가 될줄 알아라.”
웅- 굉렬한 묵직한 저음에 실내가 부르르 떨렸다. 소란하던 실내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무쌍은 박기충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넙치를 돌아보았다.
“넙치야, 요즘 양아치 새끼들은 동사무소 알바 하냐? 보는 놈마다 호구조사를 할라카네.”
“어릴 때 집 나간 아부지를 찾는 게 아닐까요? 크크크!”
넙치가 낄낄거렸다. 박기충의 얼굴이 돼지 간처럼 검붉게 변했다. 다른 여자와 바람난 아버지,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인간은 평생의 트라우마다. 넙치는 본의아니게 박기충의 역린을 건드렸다.
“죽여! 무조건 죽여!”
박기충이 상처 입은 짐승처럼 으르릉거렸다. 도끼다시 바닥에 꽂힌 쇠파이프와 널브러진 쌍도끼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죽여라!”
“우와와!”
풍국파 조직원들이 흉흉한 기세로 돌격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들개는 무리를 지으면 겁을 상실한다. 서민 등쳐먹는 양아치들이 전열과 포진, 합격술을 알 리 만무다.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허접한 새끼들, 단순해서 좋겠다.”
쾅- 무쌍이 소파를 걷어찼다. 지프도 날려버리는 강력한 킥이다. 원목에 물소 가죽을 씌운 육중한 소파가 포탄처럼 날아갔다.
“으악, 피해~”
전열에서 달려들던 양아치들의 눈빛이 암담해졌다. 피하고 말고 할 여유가 없다.
“크악!”“아악!”
전면에서 달려들던 셋이 소파를 육탄 방어한 대가로 추풍낙엽으로 패대기쳐졌다. 우쩍- 소파가 미처 피하지 못한 양아치 둘을 추가로 박살 내고 콘크리트벽에 충돌했다. 콰앙- 소파는 양아치 다섯을 박살내고 장렬히 전사했다.
“헉! 죽여!”
박기충이 악을 썼다. 공포가 공격성으로 표출되었다. 용기가 아니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절박감이다. 사방에서 쇠파이프, 오토바이 체인, 이형철근(리브와 아디가 있는 철근), 장검 등등 온갖 흉기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독하기로 말하면 사채 조직이 일반 조폭보다 두어 수 앞선다는 말이 있다. 과연 그랬다. 기가 질릴만한 상황에서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 놈들이다. 평소 행실이 어땠을지는 보지 않아도 비디오다.
“니들은 좀 맞아야겠다.”
무쌍이 성큼 한 발 떼었다. 넙치의 눈이 커졌다. 악몽의 몸이 종이짝처럼 얇아졌다. 얇아진 몸이 연기처럼 흐느적거렸다. 온갖 흉기가 거짓말처럼 엉뚱한 곳을 휘두르고 찍었다. 청파보에 자연동화술이 결합하자 시각 왜곡 현상이 생겼다.
기세 좋게 달려들었지만, 무리의 위세는 딱 거기까지였다. 흐느적대던 몸이 광풍폭우로 변했다. 짜자작- 퍽퍽퍽- 신형이 번쩍 이동할 때마다 격타음이 연속 터졌다. 뺨따귀를 맞고 엉덩이를 걷어차인 양아치들이 콩타작 마당의 콩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그나마 쇠파이프라도 한 번 휘둘러본 놈은 다행이다. 손에 든 무기 한 번 휘두를 틈도 없이 홍수에 무너지는 흙담처럼 우르르 무너졌다.
따귀 한 방이라고 우습게 볼 상황이 아니다. 잇몸뼈가 부서지고 경추가 금이 갈 정도의 충격을 받으면 뇌가 흔들린다. 뇌가 흔들리면 시각을 잃고 균형도 잡지 못한다. 맷집 약한 놈은 기절하고 맷집 좋은 놈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끙끙거렸다.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 초침이 반 바퀴 돌기도 전에 사무실에 뛰어든 29명이 몽땅 바닥에 코를 박았다. 백 평이 넘는 사무실은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어진 조폭들의 신음과 피비린내로 가득 찼다. 두 다리로 서 있는 놈은 박기충이 유일했다.
“아름답다!”
넙치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헤 벌어진 입꼬리로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은 하수에게나 사용될 말이다.
너무 멋있어서 한마디 하고 싶은데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넙치는 느낌을 말로 표현 못 할 때도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점점 철학을 알아가는 넙치다.
“이름?”
“바 박기충입니다.”
박기충은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가 떨렸다. 독하기로 말하면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부하 36명이 한순간에 박살 났다. 이놈은 엉겨보고 말고할 상대가 아니다. 그는 시쳇말로 염라대왕 콧털을 뽑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앉아!”
무쌍이 소파를 가리켰다. 수십 명이 박살 난 실내치고는 멀쩡했다. 날려버린 소파 외에는 부서진 집기가 한 개도 없었다. 티테이블에 놓여있던 계산기와 재떨이도 온전했다. 전권을 완전한 통제하에 두는 전투의 신, 죽음의 천사 블랙맘바만이 가능한 스킬이다.
“옙!”
박기충이 국민학생처럼 대답하고 소파 끝에 엉덩이를 조심스럽게 걸쳤다. 무리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믿는 자는 무리가 흩어지는 순간 겁쟁이로 변한다.
“이자제한법에서 정한 최고 이율이 얼마냐?”
“……”
대답이 제꺽 나오지 못했다. 고의가 아니다. 혼이 빠져나간 박기충의 뇌는 시냅스 접속을 제대로 못 했다. 따악- 박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딱밤도 딱밤 나름이다. 시속 100km로 날아든 딱밤은 그 자체로 흉기다. 쿵- 눈이 허옇게 뒤집어진 박기충이 뒤로 넘어갔다.
“허, 이래 부실한 놈도 깡패라고 설치고 다니나!”
짝짝- 뺨 두 대를 모질게 얻어맞은 박기충이 눈을 떴다.
“임마, 법정이자 제한율?”
“예 예, 이십오 프로임다.”
생존본능이 발동한 뇌가 결사적으로 답을 찾아냈다.
“알긴 아는구마. 박기충, 관광버스를 한 대 불러라.”
“관광버스는 왜~?”
“이 자식이 매를 버네. 임마, 니가 지금 물을 군번이여?”
따악- 여지없이 딱밤이 이마를 두들겼다.
“끄으윽!”
넙치가 뒤로 넘어가는 박기충의 머리카락을 잡고 귀에 속삭였다.
“기절하면 아랫도리 싹둑!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