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70
x 570
제52장 최도식5
“헉, 안 돼~!”
박기충이 물에 빠진 놈처럼 양손을 휘저었다. 쭉쭉 빠진 다리와 빵빵한 젖가슴이 가물가물 넘어가는 정신을 붙잡았다. 허옇게 뒤집어지던 눈이 거짓말처럼 제자리로 돌아왔다.
넙치가 비시시 웃었다. 가진 것이라곤 돈과 정력밖에 없고 할 일은 없는 놈이다. 이런 놈이 주색잡기밖에 더하겠는가! 쾌락의 원천인 존슨은 삶 그 자체요 목숨과 동급이다.
“새꺄, 앉아서 오줌 누고 싶어? 노래를 부르라면 부르고, 춤을 추라면 춰. 알았어!”
넙치가 웃어도 불량스러운 삼백 안을 부라렸다.
“아 알았소.”
“알았소? 이 새끼 보게.”
빡빡- 넙치가 쇠파이프로 정수리를 연타로 두들겼다.
“악!”
박기충이 머리를 감싸고 웅크렸다.
“새꺄, 아무리 세상이 혼탁해져도 거머리가 물뱀은 될 수 없는 벱이여. 업자 꼭지(보스)새끼가 어따 하소를 하고 지랄이여! 대갈통 뽀사지기 전에 버스나 불러 새꺄.”
“예 예!”
박기충은 두말 못 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넙치가 뱁새눈을 뜨고 노려보았다. 헛소리 한마디만 하면 머리를 부술 기세다.
“쓰레기는 쓰레기구먼. 쯧쯧.”
이놈은 양아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리더는 위기에 진가가 드러난다. 피 칠갑으로 자빠진 부하들은 관심 없고, 피륙의 고통조차 참지 못하는 놈은 쓰레기다. 방검복까지 챙겨입고 쓰레기 수거하러 나온 셈이다.
“넙치, 저 새끼 끌고 와.”
“옙!”
넙치가 강민석을 질질 끌어서 소파에 패대기치고는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얼굴이 이쪽저쪽으로 휙휙 돌아갔지만, 정신을 되찾지 못했다. 넙치가 난감해진 얼굴로 눈치를 보았다.
“골이 흔들리마 정신 차리겠지.”
강민석의 뒤통수를 잡고 공진파를 운용했다. 우르르- 강력한 진동이 뇌를 흔들었다. 아차 하면 백치가 되거나 뇌성마비가 될 거친 처방이다.
“끄으~”
강민석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쌔꺄, 뒈지고 싶지 않으마 눈깔 똑바로 박아라잉.”
짝- 넙치가 사정없이 뺨을 갈겼다. 강민석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무쌍이 계산기를 던졌다.
“원금 삼백, 연이율 이십오 프로, 기간 46개월, 계산 틀리면 손목을 잘라버린다.”
“아게스무니다.”
턱뼈가 깨지고 입안이 걸레처럼 찢어졌으니 발음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강민석은 끙끙거리며 성한 왼손으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헉, 저 괴물이 김기택이라는 놈 대출금 때문에 깽판을 쳤단 말인가?’
박기충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거야말로 빈대 잡으러 온 놈이 초가삼간을 홀랑 태워 먹은 격이 아닌가. 억장이 무너진 박기충은 계산기를 두드리는 강민석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악마를 집안에 불러들인 놈의 대가리를 박살 내고 싶었다.
‘조또, 내가 뭘 잘못했다고 도끼눈을 뜨고 지랄이여!’
눈치로 밥벌이하는 강민석이 박기충의 기색을 모를 리 없었다. 자신은 사장의 영업방침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그 대가가 개작살난 몸뚱이다. 정작 억울해서 울고 싶은 놈은 바로 자신이다.
“한동안 피우지 않았는데…….”
품속에서 금장 케이스를 꺼냈다. 샤트르가 즐겨 피웠고, 자신이 즐기게 된 코히바지골로다. 담배를 피우게 된 동기는 샤트르의 권유 때문이지만, 피비린내가 싫어서 한 대 두 대 피우다 보니 어느새 끽연가가 되었다. 코히바지골로는 구수하고 향기가 찰지다. 예민한 후각을 중화하기 딱 좋다.
국산 담배와 차원이 다른 독특한 향이 양담배 단속반을 불러들였다. 전매청 단속반에 걸려서 외교관 신분증을 제시하는 어이없는 헤프닝도 벌어졌다.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지만 88올림픽 직전까지도 양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적잖은 벌금을 물어야 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양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국가 경제 좀먹는 양담배 사지도 피지도 말자]는 현수막이 거리를 덮었다. 국산 담배를 피우면 애국자, 양담배를 피우면 매국노가 되었다. 그 결과 형편없는 국산 담배의 품질은 나아질 줄 몰랐다.
단속이 심할수록 양담배의 위상은 높아졌다. 돈 없는 사람은 봉초를 신문지로 말아서 피웠지만, 돈푼이나 있는 사람은 카멜, 말보로, 럭키스트라이크를 피웠다. 국산담배의 질이 형편없는 탓도 있었지만, 하지 말라면 유난히 더 하는 한국인의 기질도 한몫했다.
전매청(현 담배인삼공사) 단속반은 경찰인 양 소지품을 수색하고 사무실을 뒤지고 가택 수색까지 했다. 양담배가 적발되면 현물 압수는 물론 입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군사 독재 시절의 슬픈 자화상이지만, 그만큼 외화 한 푼이 절박한 시절이기도 했다.
코히바지골로는 한 개비당 미국 수입가가 일 달러인 고급 담배다. 밀수해서 판매하려면 열 개비 한 케이스에 수십만 원은 받아야 할 것이다. 팔리지도 않을 담배를 위험을 무릅쓰고 밀수할 멍청한 업자는 없다.
코히바지골로는 벨맨이 미국에서 보내준다. 일천 개비가 들어있는 한 박스가 지난달에 배달되었으니 당분간 담배 떨어질 일은 없다. 손톱으로 끝을 툭 쳐서 잘라내자 라이터를 들고 대기하던 넙치가 번개같이 불을 붙였다. 구수한 담배 향이 꾸릿한 피 냄새와 어울렸다.
“고맙다.”
“가 감사합니다.”
넙치가 구십 도로 허리를 꺾고 물러났다. 넙치의 얼굴에 존경, 동경, 경악, 온갖 감정이 뒤섞여 떠올랐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굵직한 시가를 물고 있는 모습이 미치도록 멋있어 보였다. 권태로운 표정마저 멋있다.
‘저것이 강자의 여유인가! 나도 저런 포즈를 취할 날이 올까?’
넙치는 평소답지 않게 철학적인 명제를 떠올렸다.
“워그까이 오배파시유마이워니다.”
계산을 마친 강민석이 박기충의 눈치를 보며 꿍얼거렸다. 발음이 불분명했지만, 액수는 알아들었다. 무쌍이 품속에서 만 원권 한 다발을 꺼냈다. 미리 계산해서 준비한 육백만 원이다.
“갚을건 갚아야지. 사채 장부와 부대 서류, 김기택 사장 대출 계약서와 원금 변제 확인증을 챙겨 오도록.”
강민석이 난감한 표정으로 박기충의 눈치를 살폈다.
“저어~ 형님, 김기택 대출금 상환 확인서는 제가 직접 써드리겠습니다. 인제 그만~”
퍽- 넙치가 박기충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악!”
날벼락을 맞은 박기충의 허리가 새우처럼 꼬부라졌다.
“이 새꺄, 직원이 사장 눈치 보느라 고객관리를 제대로 못 하잖아.”
퍽퍽- 넙치가 사정없이 걷어찼다. 박기충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존만아, 회사를 요따우로 운영하니까 공사다망한 큰형님이 행차하셨다. 아이가.”
넙치의 손이 점점 매워졌다. 견디다 못한 박기충이 버럭 했다. 영업 장부가 목숨만큼이나 중요하지만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 내 회사를 니놈이 왜 걱정하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살모사, 뒈질래! 퍼뜩 서류 보여드리고, 상환증 끊어드려. 씨발놈아, 얼른!”
박기충이 눈물 콧물을 쏟으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강민석이 어마 뜨거라 하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캐비닛을 향했다.
무쌍은 한 아름이나 되는 사채 장부와 대출계약서, 주민등록 등본, 인감증명서, 각서 등의 부대 서류철을 대충 확인하고 넙치에게 넘겼다. 넙치가 골프 백을 찾아와서 클럽을 몽땅 쏟아버리고 서류로 채웠다.
‘멍청한 새끼, 김기택이 서류만 넘기랬지 몽땅 넘기랬나.’
박기충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영업밑천이 사라지면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 몸이 단 박기충이 더듬이 떨어진 개미처럼 애면글면했지만, 두려움에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흐흥, 가관이구마.”
김기택의 대출계약서를 확인한 무쌍이 코웃음 쳤다. 사업하는 김기택 사장이 이따위 조건으로 사채를 빌렸을 리 없다.
“강 대리, 사문서 위조죄를 추가해야겠지?”
무쌍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지만, 눈은 서늘했다. 강민석은 감사합니다 하고 얼른 대답하고 싶었다. 악마 놈에게 계속 당하느니 경찰에 넘겨주면 백골난망이다. 공갈·협박에 사문서위조를 붙여봐야 2년 안쪽이다. 그것도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악마 놈이 경찰에 넘기기는커녕 끔찍한 폭행만 가할 것 같은 예감이다.
“……”
“쓰읍!”
넙치가 장영팔의 토마호크를 들었다.
“네, 제가 가라로 만들었심더.”
재깍 대답이 튀어나왔다.
“이건 증거물로 내가 보관하지.”
무쌍이 위조 대출계약서와 원금 변제 확인증을 챙기고 돈뭉치를 던졌다.
“돈을 갚았으니 사장도 서명해야겠지.”
멍하니 벽에 기대앉아있던 박기충이 후다닥 달려들어서 일필휘지로 서명했다.
“의리 때문에 갚아주긴 했다만 나는 뭘 먹고 사나. 손가락 빨아봐야 짠내만 나는데……. 누구처럼 삥 뜯을 수도 없고…….”
뒷말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척하면 착이고, 스적하면 남정네 고픈 옆집 과부가 치마꼬리 푸는 소리다.
‘됐다. 악마가 이제야 돌아가려나 보다.’
박기충은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드디어 악마 같은 놈이 돌아간다. 아니 장부와 대출 서류를 돌려받을 길이 열렸다.
“저어 형님, 삼 층에 잠깐 다녀오겠심더.”
박기충이 손을 비볐다. 호랑이는 배가 불러야 순해진다. 집안에 들어온 호랑이를 내보내려면 푸짐한 먹이를 주는 수밖에 없다. 금고에 보관된 돈을 몽땅 줘서라도 얼른 돌려보내고 싶었다.
툭- 무쌍이 피우던 담배를 탁 튕겼다. 씨웅- 빨간 점이 박기충의 마빡을 때렸다. 퍽-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으뜨뜨~”
박기충이 펄쩍 뛰었다.
“너같이 팍삭 삭은 동생 둔 적 없다. 넙치, 무거운 짐은 들어드려라.”
“옙!”
넙치가 따라나서자 박기충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흐흐, 내가 짱구냐. 자원봉사하게! 이 새끼들은 대가리를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는 경향이 있어.’
무쌍이 비시시 웃었다. 무쌍 사전에 유노동 무임금은 없다. 고생했으면 대가를 받아야 한다. 무쌍의 계산법은 수혜자 부담 원칙이 아니라 가해자 부담원칙이다. 사헬, 시리아, 이투리 등 굵직한 작전마다 수혜자와 거마비 지급자가 달랐다. 오늘의 수혜자는 김기택 가족, 거마비 지급자는 박기충이다.
박기충이 여행용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넙치가 소형 보스턴 백을 들고 바짝 뒤따랐다. 소위 거마비다.
“풋!”
박기충의 눈두덩이 시퍼렇게 물들었다. 보지 않아도 스토리가 뻔했다. 박기충이 적당히 거마비를 챙기려다 얻어맞고 금고를 탈탈 털렸다.
“형님, 영업 자금과 비자금까지 탈탈 털어왔습니다. 장부와 서류는 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형님은 이곳에 온 적이 없고 저는 형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박기충이 간절한 얼굴로 손을 비볐다. 표정만으로 보면 탈출 와중에 가족을 모두 잃은 에리트레아 난민 남자보다 더 불쌍해 보였다. 무쌍은 인간의 어리석음에 한숨이 나왔다. 자신의 운명이 곧 나락으로 떨어질 판인데 장부 걱정하는 놈이 딱했다.
“박기충, 남의 눈에서 뽑은 피눈물로 번들거리는 슈퍼살롱을 타고, 똘마니 수십 명이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일 때는 제왕이라도 된 기분이었지? 양아치가 양아치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뿌리가 없기 때문이다. 폭력으로 타인을 갈취해서 살아가는 양아치는 야만의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야만의 세계는 힘센 놈이 장땡인 세상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약자를 괴롭혔지만, 더 센 놈이 나타나는 순간 뿌리가 뽑히는 삶이 양아치의 운명이다.”
무쌍은 말을 멈추고 사방에 널브러진 양아치들을 둘러보았다. 김기택 사장의 빚을 갚고 상환 확인서를 받았으니 일차적인 방문 목적은 끝났다. 풍국파 놈들의 관광이 국내에서 끝날지 아프리카로 연장될지는 지금부터다.
“박기충, 옛사람이 말하기를 세상의 동물은 모두 벌레라고 했다. 인충(鱗蟲, 비늘 있는 벌레), 우충(羽蟲, 깃 있는 벌레), 모충(毛蟲, 털 있는 벌레), 개충(介蟲, 갑옷이나 껍질 있는 벌레), 마지막으로 벌거벗은 벌레 나충(裸蟲)이 있다. 네놈의 남은 삶이 나충으로 끝날지, 인간으로 복귀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는 네놈의 대답에 달렸다.”
‘이기 먼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여?’
박기충은 어리둥절했지만, 정신을 바짝 차렸다.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라 말꼬리 잡히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담으로 둘러싸인 뒤쪽 건물은 머꼬?”
“미군 시설물을 불하받아서 합숙소로 쓰고 있심더.”
“네놈 식구가 전부 몇 놈이고?”
“오십 두 명입니다.”
사무실에 자빠져있는 놈이 강민석까지 35명이다. 아직도 17명이 남았다는 소리다.
“제법 많구마. 오십 두 명이 전부 합숙하나?”
박기충이 흠칫했다.
“그 그건 아이지마는~”
“좋게 말할 때 탈탈 털어라. 백 평짜리 바라크가 세 동이면 삼백 명은 합숙할 수 있어. 담장을 오질 나게 높인 이유는 뭐야? 구린 구석이 있지?”
“아닙니다. 시설은 미군 시설 그 대롭니다. 체육시설도 있고, 직원 의료시설도 있고~”
박기충이 펄쩍 뛰었다.
“의료시설?”
무쌍의 입매가 슬쩍 올라갔지만, 눈빛이 예리해졌다. 낡은 바라크 건물에 관심을 둔 이유가 강한 소독약 냄새 때문이었다. 소독약과 뒤섞여서 공기 중에 떠도는 비릿한 피 냄새, 전장에서나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멀쩡한 도심에서 풍길 이유가 없다.
또 한가지, 양아치는 기본적으로 의리가 없다. 돈 들여서 직원을 위한 의료시설을 운영할 정도면 양아치라 불리지도 않았다.
“그 그냥 간호사 한 명 두고 링게르 꽂아주는 정도입니다.”
박기충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썩을 놈, 쪽발이 새끼들은 머한다꼬 꾸물대는 거야?’
박기충은 잔뜩 몸이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