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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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장 최도식7
고수의 대결은 호흡에서 결판나는 경우가 많다. 호흡을 뺏기는 촌각의 순간에 목을 내주고 심장이 뚫리게 된다. 폭발적으로 수축 이완하는 근육에 산소를 공급하려면 호흡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장호단흡 호흡법으로 단련된 무쌍의 근육 세포는 반 각(7~8분) 동안 무산소 수축을 유지할 수있다. 고수간의 근접대타에서 사기적인 능력이 아닐 수 없다.
후우- 날숨 한 번에 탁해진 공기가 일시에 밀려 나오고, 흡-흡-흡-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들숨이 진공청소기처럼 산소를 빨아들였다. 잠자던 세포가 깨어나고 늘어져 있던 세포는 팽팽히 긴장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손맛이다.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어지는 익숙한 감각을 맛본 뇌가 환희로 떨었다. 살인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음은 상대가 일본인, 그것도 닌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본의아니게 엽기적인, 아니 공전절후의 살육제 관람객이 된 풍국파는 숨소리를 죽였다. 전대미문의 악귀, 발광(發狂)이 자체 발광(發光)인 악귀다. 심장을 뜯기고 목이 잘릴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힌 양아치들은 눈알도 굴리지 못했다.
옆구리 복사근이 물고있는 수리검을 뽑았다. 형광등 불빛을 받은 검인 다섯 개가 시퍼런 예기를 뿜었다. 보스사우루스 힘줄과 다이니마를 합성해서 만든 방검복도 내력이 깃든 슈리켄을 막아내지 못했다.
무쌍은 난감한 얼굴로 구멍 난 옷을 내려다보았다. 오금연노법으로 단련된 피부와 근육, 임기응변으로 피를 보지 않았지만, 쥐새끼의 잔머리에 상처를 입을뻔했다. 실전감각이 떨어진 탓이다.
실전에 나서지 않은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평화가 오래면 정신이 녹슬고, 근육이 늘어난다. 수련은 수련일 뿐이다. 실전 같은 수련 백번보다 피가 튀고 뼈가 꺾이는 살육쟁투 한번이 효과적이다.
‘에이 씨, 계순이 잔소리를 듣겠구마.’
구멍 난 슈트와 남방이 걱정이었다. 응심제는 엄청나게 넓은 한옥이지만 별도의 관리인을 두지 않았다. 짠돌이 무쌍은 놀고먹는 꼴을 보지 못했다. 깜둥이가 수선과 보수 같은 힘든 일을 슬쩍 처리하고, 오자매가 요리, 청소, 빨래, 정원 관리를 맡았다.
빨래는 계순이 담당이다. 녀석은 야무지게 생긴 것만큼이나 잔소리도 많았다. 달성공원 뒷길에서 퍽치기 양아치 녀석을 한 대 때렸다가 코피가 옷에 튀는 사건이 있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들었다. 옷에 구멍이 났으니 잔소리를 피할 수없게 되었다.
“쪽발이, 소리도 없고 기척도 없다니 제법이야.”
무쌍이 표창을 흔들었다.
“암혼비노 받아내고 버티므니까? 놀랍소다. 본인은 가토 단조므디다. 무사어 존명을 알고 싶소다.”
블랙 쓰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혀짧은 발음이지만 알아듣기에 지장은 없었다.
“노인네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구마. 왜 저놈이 통역했지?”
색이 짙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덮고 목소리도 싱싱하지만, 무쌍의 눈을 속이지는 못한다. 가토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70대 노인이다.
“간코쿠노 열등 신민이므니다. 열등 신민의 언어는 저열해서 사용하지 않스므니다. 간코쿠 무사 대단하므니다.”
가토는 닭 다리는 두 개라는 식으로 말했다. 시간은 자신의 편이다. 놈이 강력한 내력으로 고쿠라쿠 푼(극락선)의 독기를 버티고 있지만, 3분 이상은 버티지 못한다. 미친개가 발작하지 않도록 적당히 응수해주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
‘이런 망할 늙은이가 있나!’
기분이 더러웠다. 말인즉슨 한국어를 사용하면 입이 더러워지지만, 열등 족속답지 않게 뛰어난 인간이라 열등한 한국말을 쓴다는 소리다. 말하는 놈이야 자유지만 듣는 놈은 곱창이 비틀리는 소리다. 곱게 죽여줄 마음이 싹 사라졌다.
“하이고, 지랄도 가지가지 한다. 대동아 망령이 동본원사 경내에 우글거린다 카디마는 미친 망령 한 마리가 여기까지 기어들어왔구마. 장로쯤 되는 모양인데 연격하지 않은 이유가 머꼬?”
살육전은 남은 두 명의 블랙이 가세할 틈도 없이 끝나버렸지만, 닌자의 습성으로 볼 때 공격이 이어졌어야 했다.
“이가류 닌자노 사무라이 므니다. 죠닌(上忍, 상급 닌자)이노 쥬닌(中忍), 게닌(下忍)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스므니다.”
가토가 젊은 블랙 포를 흘끔 쳐다보고 덤덤히 대답했다. 오오산쇼우(일본장수도롱뇽) 표피 진액에 타이판과 복어 독을 녹여낸 고쿠라쿠 푼은 강력한 신경독이자 용혈독이다. 효과가 슬슬 나타날 때가 되었다.
“허이고, 그러셔! 쫄따구를 소모품으로 던져서 전력을 탐색했다는 소리구마. 이 자식아, 젊을 때 깽판 쳤더라도 늙었으면 인간이 되어라. 너 같은 놈을 한국에서는 친삐라(양아치)라 부른다.”
“무사노 모욕받지도 죽지도 않스므니다. 사쿠라 꽃잎 같이노 흩어질 뿐!”
무쌍은 하이쿠의 한 소절을 읊는 노친네가 가소로웠다. 집단광기와 죽음 친화적인 사무라이 신화에 취한 미친 인간과 시비를 가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좋은 주먹과 잘 드는 칼을 두고 힘들게 입을 놀릴 이유가 없다.
일본인답게 간교하고 이중적인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암수와 독도 능력이지만, 무사 운운 사꾸라 꽃잎 운운에 속이 뒤틀렸다.
“풋, 두꺼비 먹은 똥개가 날구지하는 소리하네. 독 바른 슈리켄은 네놈이 아니면 귀신이 던졌나? 한국 무사는 쪽팔려서라도 독을 쓰지 않는다. 몰래 암수를 쓰고 독이 퍼지기를 기다리는 놈이 무사라~ 꼴뚜기를 문어라고 우길 놈일세.”
무쌍이 통렬한 욕설을 퍼붓고 슈리켄의 날을 혀로 핥았다.
“헉!”
가토의 평정이 무너졌다. 놈은 슈리켄에 독이 코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여태 모른척했다. 더욱 기막힌 현실은 놈이 치명적 극독인 고쿠라쿠 푼을 핥아 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쿠라쿠 푼은 신경독이다. 소화기로 들어가면 더욱 맹위를 떨친다. 가토는 한 가닥 기대를 걸었다.
“놀랐나? 쌉쌀하면서 톡 쏘는 맛이 그만이구마. 한국인은 마늘과 고추를 먹으면 입가심으로 독을 먹기도 하지.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지 않고, 광어 뱃속에 바람을 집어넣는다고 복어가 되진 않아. 네놈이 원하는 대로 사꾸라 꽃잎처럼 흩어주마.”
무쌍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으으~”
가토가 가느다란 신음을 뱉었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상대는 최고의 병법가다. 일신의 무예와 능력은 물론이고 대국을 읽고 주재하는 백전기략가다. 본국에서도 오래전에 맥이 끊어진 진골 병법가가 한국에 있다니 기가 막혔다.
우웅- 무쌍의 손에든 슈리켄이 진동했다. 표적은 가토가 아닌 블랙 포다. 무쌍은 가토가 은연중에 블랙 포를 보호하려는 낌새를 눈치챘다. 늙은이가 적극적으로 전권에 뛰어들지 않은 이유도 블랙 포의 안전 때문일 것이다. 더러운 인간은 소중한 것을 잃어봐야 남의 아픔도 안다.
쓔앙- 벌겋게 달아오른 슈리켄이 번쩍하고 공간을 단축했다. 콰아아- 손바닥 절반 크기에 불과한 표창이 태풍처럼 울부짖었다. 소총탄보다 빠른 속력 때문이다.
“컥!”
블랙 포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악귀가 손을 움직이는 순간 명치가 저릿했다. 피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다. 본능적으로 와카자시를 휘둘렀다. 짜앙- 귀가 따가운 충격음이 일었다. 이십 년 고련은 헛되지 않았다.
아뿔싸! 총탄보다 빠른 슈리켄의 역도를 감당하지 못한 와카자시가 두 동강 났다. 퍽- 감속된 슈리켄이 블랙 포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바아앙- 회전이 실린 슈리켄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블랙 포의 뇌는 찰나의 사건을 분석하지 못했다. 잘리고 갈린 신체 조직이 사꾸라 꽃잎처럼 흩날리는 와중에도 자루만 남은 와카자시를 꽉 쥐고 굳건하게 버텼다. 무쌍은 잔인했다. 가토가 말한 대로 돌려주었다. 그래서 모진 놈 앞에서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끄아악!”
뒤늦게 비명이 터졌다. 블랙 포의 눈알이 허옇게 뒤집어졌다.
“안 돼에~”
가토가 미친 듯이 블랙 포의 가슴을 더듬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 저럴 수가!”
박기충이 입을 쩍 벌리고 손가락으로 블랙 포의 가슴을 가리켰다. 가슴에 불붙인 번개탄을 집어넣은듯 연기가 자욱하니 뿜어졌다. 단백질 타는 매캐한 냄새가 순식간에 실내를 덮었다.
갈가리 찢어져서 흩날리는 신체 조직과 핏물, 연기가 뿜어지는 가슴, 찢어지는 단말마와 몸부림, 길길이 날뛰는 동료, 아수라가 연출한 비쥬얼은 인간의 연출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비를 베풀어주지.”
슈앙- 블랙 투의 와카자시가 공간을 갈랐다. 와카자시는 운동에너지가 충만했다. 퍽- 블랙 포를 꼬치 꿰듯 꿰어서 비행했다. 콰앙- 블랙 포가 콘크리트벽에 박혔다. 박제처럼 벽에 박힌 블랙 포의 가슴에서 연기가 물씬물씬 솟았다.
‘보기 좋지는 않구마!’
무쌍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놈들의 실력과 수법은 대충 알았다. 놈이 이등 신민 어쩌고 하지만 않았어도 잔인하게 죽여버릴 생각은 없었다.
“어버버버!”
충격과 경악이 장내를 휩쓸었다. 사슴 대가리나 물소 뿔이 아니다. 산 인간이 벽에 박혔다. 웩- 웨엑- 풍국파 양아치들이 구토를 시작했다. 박기충도 구토 대열에 끼어들었다.
강민석은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삶이 싫어졌다. 자신이 김기택의 사채를 정상적으로 처리했으면 돈을 갚고 조용히 물러갔을 놈이다. 지옥의 뚜껑을 열어젖힌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다. 저토록 무서운 악귀도 조용히 살아가는 데 벌레에 불과한 자신은 세상이 좁다고 나댔다. 자신이 한없이 싫어지고 쪽팔렸다. 지구를 떠나고 싶었다.
“칙쇼!”
가토의 눈알이 벌겋게 물들었다. 벽에 박혀있는 스가 요시히데 죠닌(상급 닌자)은 사문의 후계자다. 풍국파와 협조해서 진행하는 특수사업을 점검할 겸 안목을 넓히려고 나왔다가 어이없이 참살당했다. 현실이라면 믿어지지 않고 꿈이라면 지독한 악몽이다.
“코소 쿠라에!(똥보다 못한 새끼!)”
가식적인 여유를 벗은 가토의 모습은 새끼 잃은 맹수와 다를 바 없었다. 분노와 살기로 악귀처럼 변했다.
“가토라고 했나? 소중한 것을 잃은 기분이 어떤가? 네놈들의 삶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나?”
“쿠다밧테시마에! (죽여주마!)”
가토가 와카자시를 중단 세로 겨눴다.
“좋아, 어차피 센 놈이 정의인 법이지. 오너라! 한 수 겨룰 기회를 주지.”
무쌍이 품속에서 초모랑마를 꺼내 들었다. 유백색 검신이 우웅 울었다.
“검명!”
가토가 움찔했다. 히가시혼간지 육백 년사에 검명을 울린 자는 단 한 명 조센진 출신인 대사부밖에 없었다. 묘한 열패감이 가슴을 채웠다. 가토는 마음을 다스렸다. 무사는 죽지 않는다. 꽃잎처럼 스러질 뿐이다.
차르르- 승추를 이은 쇠사슬이 손목을 감았다. 묵광이 번들거리는 엄지 크기의 추(搥), 수투와 연결된 이장 길이의 승(繩)이 손바닥에 쏙 들어왔다.
‘유성추 축소판인가?’
무쌍은 가토가 승추를 어떻게 다룰지 기대되었다. 와카자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승추는 쉽게 볼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가토가 승추를 두 자쯤 풀어서 흔들었다. 좌우로 흔들리던 추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키이이이- 날카로운 고주파 음이 울렸다. 양아치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끼이- 끼이이- 음이 느려졌다. 빨라졌다 묘한 리듬을 탔다. 추에서 삼색 빛이 번득거렸다. 양아치들의 굳어진 얼굴이 풀어졌다. 입을 헤 벌리고 승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형편없는 잡술이구마.”
승추를 노려보던 무쌍이 혹독한 촌평을 내렸다. 고주파 음과 빛으로 뇌의 특정부위를 자극하는 미혼술이다. 뇌가 마약을 먹었을 때처럼 도파민을 대량 분비하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지저분한 닌자다운 스킬이다.
쑤왕- 승추가 벼락같이 날아들었다. 후우웅- 공기가 진저리치며 밀려났다. 턱- 무지막지한 역도를 담은 승추가 간단히 잡혔다. 승추 아니라 승추 할애비라도 에피듐의 피지컬과 천고의 귀물인 억수갑에 데미지를 줄 수 없다.
“헉!”
가토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푸확- 놀랄 틈도 없었다. 무지막지한 힘이 가토를 끌어들였다. 가토도 만만치 않았다. 저항을 풀어버리고 내력을 끌어올려 몸을 가볍게 했다. 쑤앙- 무쌍이 잡아채는 힘에 반발력까지 보태서 빗살같이 날아들었다.
번쩍- 가토가 발도했다. 공기 결을 파고드는 장로급의 거합술은 칼날이 순간속도 초속 100m 이상이다. 중량 1kg 와카자시의 운동량이 소형 승용차의 충격량과 비슷하다. 쌩- 시퍼런 빛이 정수리에 떨어졌다.
번쩍- 유백색 칼날이 솟았다. 유백색과 연푸른색이 교차했다. 서겅- 와카자시 칼날이 초모랑마에 잘렸다. 초모랑마의 궤적에 가토의 턱이 걸렸다. 좌악- 유백색이 정수리까지 훑고 지나갔다. 가토의 눈이 암울해졌다.
“스고이! 고노코토 오 잇수카 코카이 코 카이시마수 요~ .(대단하다! 오늘 일을 곧 후회하게 될 거다.)”
마지막 말은 끝이 흐려졌다. 말끝을 맺기 전에 가토의 혼은 육체를 떠났다. 한 합에 히가시혼간지의 무사범 가토 장로의 혼이 구천으로 날아갔다. 아수라를 분노케 한 결과다.
내력이 끊어지자 백회혈에서 염천혈(목젖)에 이르는 얼굴 정중앙에 붉은 선이 생겼다. 푸확- 선혈이 폭죽처럼 튀었다. 머리가 세로로 쩍 벌어졌다. 풀썩- 혼이 떠난 육신이 볼썽사납게 바닥에 널브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