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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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장 최도식8
칼을 든 자의 운명이다. 만인과 만인이 투쟁하는 세계는 영원한 강자도 없고 영원한 약자도 없다. 무쌍을 용병으로 보낸 대우선사의 결단은 신의 한 수였다. 깨달음을 통해서 이 능력을 얻고, 오금공은 무초식의 경지에 이르고, 아이템 빨까지 갖추게 되었다. 가토와 닌자 삼인방이 약해서가 아니라 무쌍이 지나치게 강했다.
맹자는 천시, 지리, 인화 중에서 으뜸은 인화라 했지만, 천시야말로 우주의 근본 진리다. 싹을 자른다는 말이 괜히 생기지 않았다. 가토 일행은 천시를 얻지 못했기에 한 덩어리 혈구가 되었다.
“후회는 개뿔! 홍수는 제방으로 막고, 친삐라는 주먹으로 막으라 했다. 어머니만 찾으면 열도로 건너가서 락샤샤로 마늘 다지듯이 다져주마. 겉 다르고 속 다른 더러운 새끼들!”
무쌍이 투덜거렸다. 세상은 좋은 놈만 있으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나쁜 놈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러운 놈은 아니다. 더러운 놈은 녹과 같은 존재다. 더러운 놈이 달라붙으면 좋은 놈이고 나쁜 놈이고 가릴 것 없이 부식된다.
고래로 인간의 역사는 땅따먹기 역사다. 정복할 수도 있고 정복당할 수도 있다. 나쁜 놈이 될 수도 있고 좋은 놈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은 녹과 같은 존재다. 함께 어울릴 줄 모르고 포용할 줄 모른다. 녹처럼 달라붙어서 상대를 끝없이 갉아먹고 형질을 바꾸려 든다. 그래서 더러운 놈이다.
‘이거 일이 커졌구마.’
난감해진 무쌍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초모랑마에는 피 한 방울 기름기 한 점 묻지 않았지만, 실내는 바닥, 벽, 천장 할 것 없이 온통 피 칠갑이다. 양아치들이 피신한 안쪽은 비교적 멀쩡했지만, 히가시혼간지 문하생들과 격투를 벌인 출입구 쪽은 목불인견이었다.
될 수 있으면 피를 보지 않으려고 양아치들을 적당히 두드렸는데 닌자 놈들 때문에 말짱 헛수고가 되었다. 경찰에 알려지면 치안본부가 벌컥 뒤집힐 일이다. 뒤처리가 망망했다.
‘저것들은 어떻게 한다?’
양아치들은 독수리 그림자에 놀란 병아리처럼 대가리를 처박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중증 PTSD 환자가 나무를 제대로 심을 수 있을지…….
‘아 몰라! 어떻게 되겠지.’
계획은 미리 세워야 하지만, 걱정은 미리 당길 이유가 없다. 대부분의 걱정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거나 그냥 걱정이었을 뿐이다.
“넙치!”
“……”
“넙치!”
목소리가 커졌다.
“예? 예 예!”
혼이 빠져 있던 넙치가 기둥 뒤에서 후다닥 튀어왔다.
“까만 놈들 나이방과 마스크를 벗겨 봐.”
“넵!”
넙치의 다리가 달달 떨렸다. 첫 번째 당한 놈이 제일 엉망진창이었다. 상체가 으깨지고 목이 뽑히고 얼굴이 뭉개져서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 와중에 표창이 다섯 개나 박혔다. 넙치는 슬그머니 표창을 챙겼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기물이다.
두 번째 당한 놈은 상체가 박살 났지만, 얼굴은 온전했다. 벽에 박힌 놈도 얼굴은 온전했다. 마지막에 죽은 늙은 놈은 얼굴이 쪼개져 버렸다. 얼굴이 성한 놈은 두 번째 죽은 놈과 벽에 박힌 놈뿐이었다. 넙치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벗겼다. 둘 다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짧게 치고, 얼굴이 깡마른 30대 중반이다.
무쌍은 은근히 걱정되었다. 이런 놈들이 한국에 떼거리로 들어와서 밤세계를 장악하면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다. 치안이 바닥부터 흔들리게 된다.
“박기충!”
“……”
입을 헤 벌리고 침을 주르르 흘리는 모양새가 정상이 아니다.
“점마 저거 혼이 나갔구마. 델꼬 와.”
“옙!”
넙치가 박기충의 뺨을 갈기려는 순간 벽에 기대어 서 있던 놈이 맥을 놓고 풀썩 주저앉았다. 하늘 같던 본사 감사님들이 끝장났다. 그들이 누구던가. 주먹을 쥐면 차돌이 으스러지고, 칼을 휘두르면 쇠파이프가 잘리는 고수다. 전국구라고 깝죽대는 한국의 주먹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악귀 놈을 제압하리라 의심치 않았던 분들이 일 초도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나버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건 꿈이야! 악몽이라고. 나는 인정 못 해!”
박기충이 중얼거렸다. 퍽- 넙치가 박기충의 뒤통수를 발바닥으로 찍었다.
“새꺄, 니깟 놈이 뭘 인정해! 어따 존함 아닌 존함을 씨부리 쌌노. 악몽이 아니라 길몽 님이시다.”
‘씨파, 내가 줄을 잘못 선 기가!’
언 놈은 길몽이라는데 자신은 악몽이다. 그런데 이 새끼는 누군데 아프게 때리지?
“으~ 왜 때려!”
박기충이 어눌한 목소리로 항의했다. 여전히 눈에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정신은 다른 곳에 접속된 상태다.
“존만아, 큰형님이 부르신다. 박제되고 싶어?”
“박제?”
삼도천 강변을 헤매던 의식이 현실과 접속되었다. 고개가 부러지라 홱 돌아갔다. 벽에 매달린 시체가 눈을 쥐어박았다. 핀으로 고정된 곤충이 아니다. 와카자시로 벽에 박힌 감사님 일행이다. 사람의 몸에 피가 저렇게 많았던가? 박기충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허억!”
박기충이 벌떡 일어났다. 벽을 타고 흘러내린 선혈이 바닥을 벌겋게 물들였다. 옷이 척척하다 했더니 피바다에 앉아 있었다. 외출했던 정신이 귀가했다.
“예, 갑니다요!”
언제 다쳤냐는 듯이 번개같이 달려가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이것들은 머꼬?”
“먼저 죽은 나쁜 새끼 둘은 히가시혼간지에서 나온 감사고 늙은 쪽발이는 장로입니다. 벽에 박힌 쪽발이는 처음 보는 새낀데 감사 두 놈이 윗사람 모시듯 했습니다.”
박기충의 말투가 다시 원위치 되었다. 풍국 수호자는 나쁜 새끼가 되고, 본사에서 오신 분은 쪽발이가 되었다. 무쌍은 개의치 않았다. 이놈은 지극히 정치적인 인간일 뿐이다. 기부포비(飢附飽飛)는 양아치의 본능이다.
“쪽발이는 이놈들이 전부냐?”
“네! 아, 아닙니다. 해골처럼 빼빼 마른 중늙은이가 오늘 낮에 도착했습니다.”
“해골처럼 마른 중늙은이? 혹시 외팔이는 아니고?”
무쌍의 눈이 번쩍했다.
“그 글쎄요. 바바리코트를 입어서……. 외팔이는 아닌 듯했습니다.”
“혹시 목에 큰 흉터가 있었나?”
“죄송합니다.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눈이 마주쳤는데 귀신을 마주한 듯 정신이 쑥 빠졌습니다. 얼마나 무섭던지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으음!”
무쌍이 침음했다. 미혼술은 최도식의 주특기다. 보통사람은 최도식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한다. 본능적으로 놈이 최도식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팔이야 만들어 달면 그만이다.
51구역은 키메라를 양산하고, DGSE도 인공 근육과 스텐스를 만들었다. 군사적인 면에서 미국의 파트너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미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한국의 군사 기술 개발을 억압하고 일본에는 최신 기술도 풀어주는 행보를 보여왔다.
CIA와 석연치 않은 이인삼각 행보를 보이는 내각조사실이 생체공학 기술을 공여받았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히가시혼간지는 일본 정부와 짝짜꿍이다. 최도식이 인공 팔을 부착했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무쌍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예전이라면 최도식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고 정신이 멍해졌다. 지금은 무덤덤했다. 아니 무척 반가웠다. 에피듐의 유전자에 각인된 전투 본능이 끓어올랐다.
“어디 갔나?”
“도착하자마자 안내인을 데리고 급히 나갔습니다.”
“다른 말은 없었나?”
박기충은 죽으라고 머리를 쥐어짰다.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박제가 되거나 온몸이 부서진다. 처참하게 짓이겨진 시체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장로님과 대화할 때 야마나시 콜렉션이라는 말을 언뜻 들었습니다.”
“크크크!”
무쌍이 낄낄 웃었다. 알만했다. 최도식과 가토 등이 입국한 목적은 인애원 지하의 야마나시 콜렉션이다. 술법에 뛰어난 최도식이 확인차 갔다면 앞뒤가 맞아떨어진다. 알맹이가 사라진 인애원 지하실에 선우방나 모녀가 설치한 진이 기다리고 있다. 낭패를 당한 최도식이 미칠 듯이 분노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받은 대로 갚아주마. 백배로 되돌려 주마.’
무쌍의 눈이 시퍼렇게 살아났다. 일단 쓰레기를 정리하고 놈을 추적할 참이다.
“장영팔이라는 놈도 여기 있나?”
“저기 저놈입니다.”
박기충이 제꺽 짝귀를 가리켰다. 상대는 악귀다. 망설이고 주춤거리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오호, 저놈은 토마호크를 다루던 놈?”
무쌍이 비시시 웃었다. 제법 연장께나 놀리던 그놈이다.
“으악, 사람 살려!”
장영팔이 벌떡 일어나서 출입구로 뛰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머리가 세로로 쪼개지고, 믹서기에 투입된 사과처럼 가슴이 갈리는 꼴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부서진 턱뼈가 덜거덕거리고 부러진 팔이 덜렁거렸지만, 공포가 두 다리를 미친 듯이 움직였다.
“저거 웃기는 놈이네!”
무쌍이 뜨악한 표정으로 넙치를 돌아보았다.
“옙, 잡아오겠습니다.”
넙치가 장영팔의 토마호크를 집어들었다. 쌩- 직선으로 날아간 도끼가 장영팔의 어깨에 푹 박혔다. 우연인지 실력인지 모르지만, 넙치가 한 칼했다.
“끄아악!”
막 출입문 손잡이를 잡으려던 장영팔이 몸부림쳤다. 넙치가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목을 틀어잡고 바닥에 사정없이 메다꽂았다.
“존만이가 뛰어봐야 벼룩이지.”
넙치가 쭉 뻗은 장영팔을 질질 끌고 왔다.
‘저놈이 약을 먹었나?’
무쌍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본래 무식한 놈이긴 하지만 과감하고 화끈해졌다. 훗날 한국의 밤세계를 통일해서 노바토피아 인력 송출 본부를 차린 넙치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장영팔 맞나?”
발끝으로 툭 차서 엎어진 놈을 뒤집어 놓고 물었다.
“……”
“이 새끼들은 어째 몽지리 대답이 늦어.”
무릎관절을 지그시 밟았다. 풍국 캐피탈의 핵심은 특수영업팀이다. 공식적인 대부업은 구색일 뿐이다. 특수영업팀 팀장인 이놈이 실세고 악질이다.
“마 맞습니다. 으흐흑!”
“이 자식아, 남의 눈에 피눈물 뽑을 때는 니놈도 피눈물 흘릴 각오쯤은 했겠지?”
“한 번만 용서해 주십쇼. 똑바로 살겠심더. 다시는 이런 짓 하지 않겠심더.”
장영팔이 우는소리를 하며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는 정말로 이 바닥을 떠나고 싶었다. 자신 같은 피라미는 한순간에 훅 간다. 악귀가 설치는 바닥에 오만 정이 떨어졌다.
“몇 살이야?”
“사십 둘입니다.”
“사십 둘이 되도록 등쳐먹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변할 수 있겠나? 정치하는 놈들의 젤로 큰 직무유기가 뭔지 아나? 형법을 물로 만든 기다. 별을 열 개, 스무 개 단 놈이 거리를 활보하는 세상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나?”
발에 슬쩍 힘을 주었다.
뿌드득-
“끄아악!”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무쌍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짐승처럼 힘으로 살아가는 놈은 힘을 꺾어놓아야 선량한 사람을 억압하고 위협하지 못한다. 무릎 관절이 박살 나면 현대 의학을 총동원해도 자력으로 걷기는 틀렸다.
“히이익!”
무쌍이 스윽 돌아보자 양아치들이 결사적으로 눈길을 피했다. 백납처럼 허옇게 뜬 얼굴이 가관이다.
“즐겁게 관람했나? 너희에게 새 삶을 살 기회를 주겠다. 둘 중에 선택해라. 한 가지는~”
무쌍이 말을 멈추었다. 바깥에서 환한 전조등 불빛이 비쳤다. 뒤이어 택시가 도착했다. 부웅- 택시가 떠났다. 말을 멈춘 이유는 버스와 택시 때문이 아니다. 택시에서 내린 인간 때문이다.
“큰형님, 대기하라고 할까요?”
넙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다려라.”
택시에서 내린 인간이 문제다. 파리 하수구만큼 음습하고, 부두교 사제처럼 사악한 기운이 드러날 듯 말 듯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미약한 뇌파는 사망선고를 기다리는 중환자와 비슷했다. 물론 중환자가 야밤에 금호강 변의 외딴 건물을 찾아올 이유가 없다. 자신처럼 기파를 갈무리할 능력을 갖춘 인간이다.
‘저런!’
택시에서 내린 인간과 버스 기사의 뇌파가 겹치는가 했더니 정상적인 뇌파가 툭 꺼졌다. 스포츠화된 무술을 백 년 익혀도 인간의 목숨을 한 순간에 기척 없이 지울 수는 없다. 기파를 갈무리하는 수준의 인간, 생명을 찰나에 끊어버리는 무감정한 인간을 조합하면 놈의 정체는 뻔했다.
최도식은 인간을 개나 소, 아니 개미나 바퀴벌레와 달리 보지 않는 사이코패스다. 개미를 밟았다고 가책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놈이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버릇은 여전했다.
최도식이 적면을 양성하고 재물에 집착하는 이유는 백백교를 재건하려는 야망 때문이다. 음양진이 파괴되고 먼지만 날리는 수장고를 목격한 놈은 잔뜩 짜증 난 상태다. 먹이를 탈취당한 맹수와 맞닥뜨린 버스 기사의 불운이다.
“팔 년 만의 재회인가!”
무쌍이 중얼거렸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넙치, 화장실로 들어가라. 내가 나오라고 신호할 때까지 나오지 마라. 숨도 크게 쉬지 마라.”
“넵, 큰형님!”
눈치 빠른 넙치는 두말하지 않았다. 잽싸게 여행용 가방과 보스톤 백을 챙겨서 화장실로 사라졌다. 넙치의 장점은 아무리 급해도 챙길것은 챙기는 근성이다. 장수하는 놈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엔 반드시 죽여주마!”
신경이 칼날같이 곤두섰다. 긴장으로 손발이 굳었다. 공진파를 휘돌렸다. 쏴아아- 뇌와 척수에서 생성된 수백억 개의 하얀 알갱이, 에피듐 뷰렛이 혈관 속으로 풀려 들어갔다. 세포가 올올이 깨어났다.
삐드득- 두꺼운 방화문이 열리고 그보다 훨씬 두터운 방음문이 열렸다.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파나마 중절모를 깊숙이 눌러쓴 인간이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늦더위가 가시지 않은 8월 하순과는 어지간히 어울리지 않는 패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