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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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장 최도식9
뼈에 가죽을 덮은듯한 대꼬챙이 체형, 역삼각형의 강파른 얼굴, 파충류처럼 감정 없는 눈, 송곳 대용으로 써도 될 만큼 뾰족한 턱, 도드라진 광대뼈, 등의 신체적인 특징은 볼 것도 없다. 공간지각력을 비켜가는 동화술과 방금 선보인 암행보만으로도 놈은 식별부호 더블제로, 백백교주 최도식이다.
천돌혈 부근의 흉터가 비교적 최근에 생겼고, 잘렸던 오른팔이 멀쩡히 붙어 있는 정도는 본질 확정에 별다른 고려 사항이 못 된다. 깜둥이가 표범 개념을 얻어 깜둥이가 되었듯이 최도식이라는 이름에 최도식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놈이 트렌스젠더나 뚱보로 변신해도 놈을 알아보고 남는다. 선한 자는 잡아도 빨리 가고 악한 자는 떠밀어도 늦게 간다더니 나쁜 놈의 목숨은 역시 질겼다.
무쌍의 눈이 깊숙이 가라앉았다. 잡동사니 창고에서 뛰쳐나온 영사기가 낡은 필름을 되감았다. 방태산 흑소에서 괴물 구렁이와 생사 투를 벌이고, 최도식에게 납치당하고, 종유굴에서 지네와 노래기로 연명하고, 적면 다섯을 참살하고, 치명상을 당한 최도식이 도주하고, 세혼술의 부작용으로 기억을 잃고, 눈 덮인 방태산을 방황하고, 죽기 직전의 상태에서 무호 형에게 발견되고, 아침가리골에서 미나와 함께 보낸 시간이 찰나의 순간에 후르륵 스쳐갔다.
밝은 세상의 이면에서 자행되는 사악한 주술, 마법, 생체실험을 수없이 경험했지만, 세혼술보다 악독하고 비인간적인 술법은 없었다. 세혼술은 마약, 침, 몽둥이가 시술 도구다. 마약으로 의지를 약화하고, 침으로 직접 기억 중추를 조작하고, 무치시바리아게로 극한의 반복적인 고통을 가함으로써 기억을 대체하고 인격을 바꾼다. 시술자는 신이 되고 피시술자는 노예가 된다.
시술 성공률은 0.5%에 불과하지만 살아남은 피시술자는 일반인의 수십 배에 상당하는 힘과 감각을 얻게 된다. 생명력을 깎아 먹는 대가다. 그렇게 살아남은 자들이 적면(赤面)이다.
무마취 상태에서 뇌를 헤집는 은색 장침과 근육을 찢고 뼈를 부수는 무치시바리아게는 공포의 아이콘이었다. 최도식은 신이고 주인이었다. 놈이 나타나면 허리가 저절로 꺾였다. 놈이 뱉은 가래침도 명령이 떨어지면 기꺼이 핥아 먹었다. 죽이라면 죽이고, 살리라면 살렸다. 에피듐 뷰렛과 아버지와 어머니의 강렬한 기억이 주입된 기억을 밀어내지 못했으면 볼 것 없이 적면 6호가 되었다.
“흐으음~”
무쌍은 부지불식간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최도식을 만나는 순간 적개심이 끓어오름은 세혼술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의미다.
세혼술의 저주가 손톱만치라도 남아있었으면 최도식이 나타나는 순간, 무한한 사랑과 경애감이 솟았을 것이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고 교주님이라 불렀을 것이다. 세혼술의 저주는 그만큼 무서웠다.
사부의 세심정업법(洗心淨業法) 덕분에 세혼술의 저주가 대폭 약화하였지만, 피의 갈구와 분노의 트랜스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아수라는 피바다에서 태어난다는 사부의 말씀은 틀림없었다. 홀로코스트를 통해서 피의 갈구를 해소하고,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 일평생 세혼술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님과 사부님의 은혜는 크고도 높았다.
선연은 찾아오지 않고 악연은 한 번으로 끝나는 법이 없다고 했다. 우연히 김기택 사장을 만나고, 사기꾼 이수복이 나타나고, 풍국 캐피탈이 연결되고, 히가시혼간지가 튀어나오고, 마지막 고리인 최도식이 등장했다. 자신의 인생에 끼어든 고춧가루, 허덕이는 엔진에 설탕을 집어넣은 놈, 백배로 원한을 갚아야 할 놈이 보란 듯이 살아났다.
‘최도식, 살아나서 진심으로 고맙다.’
무쌍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가슴이 용광로 쇳물처럼 달아오르고 머리는 얼음물에 집어넣은 듯 서늘해졌다.
최도식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그가 한국에 입국한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야마나시 콜렉션 회수, 두 번째는 역혈충기대법을 받기 위해서였다. 두 가지 목적으로 인해 조선땅을 밟지 않을 수 없었다. 보물도 한국에 있고, 순수한 피도 한국에 있으니 말이다.
사문의 장서고에서 야마나시 콜렉션이 숨겨진 지도를 얻었을 때는 미칠 듯이 기뻤다. 야마나시 콜렉션의 자세한 목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국보급만 500점이 넘는다고 했다. 국보급 100점, 보물급 1,200점이라는 오구라 콜렉션이 가소로운 수준이다. 대구의 일개 기업인인 오구라와 조선 총독 야마나시는 스케일부터 달랐다.
내각조사실의 요청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아베 가문의 음양진 설계도도 얻었다. 한국에서 누가 자신의 행사를 막을 수 있겠는가. 진법 설계도를 손에 넣은 즉시 주박을 풀어낼 법기인 케즈나(머리카락으로 짠 밧줄, 히가시혼간지 아미타 당에 전시 중.)를 들고 숨겨진 수장고를 찾았다.
그런데 손에 들어온 것이나 진배없었던 보물이 사라졌다. 음양진은 파훼 되고 수장고는 텅 비었다. 요상한 진법에 걸려서 고생만 진탕 했다. 진법 주변의 땅을 뒤집어엎는 고생을 하고서야 빠져나왔다.
야마나시 콜렉션은 백백교가 재기할 밑천이다. 실망보다 분노가 앞섰다. 사문의 전력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보물을 훔쳐간 도둑놈을 한시바삐 잡아야 했다. 마음이 바쁜 판에 벌레가 앞을 가로막고 이것저것 물었다. 짜증이 폭발했다. 버스를 호출한 친삐라가 언제 탑승할지 자신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벌레를 밟아 죽이자 짜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빌어먹을 상황인가!
무채색 삼백안(三白眼)이 사진을 찍듯이 실내 전경을 담았다. 피 칠갑이 된 실내와 겁에 질려 대가리를 처박은 벌레 35마리, 담담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파에 앉은 놈은 번외다. 시야를 가득 채운 정물 네 개, 유카타와 하오리를 걸친 시체 네 구가 눈을 쥐어박듯이 달려들었다. 도너를 준비해야할 문하생 두 놈과 가토 장로, 장령 제자인 요시히데가 왜 저 모양이란 말인가!
식겁할 상황이지만 최도식은 담담했다. 히가시혼간지 대사부는 골패놀음으로 딴 위치가 아니다. 만신창이 시체 두 구를 스쳐 간 눈길이 얼굴이 세로로 쪼개진 늙은이와 벽에 꽂혀있는 장년인에 머물렀다. 그제야 무표정한 시선이 살짝 흔들렸다. 최도식이 보인 최초의 인간적인 반응이다.
“가토! 요시히데!”
말이 토막토막 잘려 나왔다. 칠판을 플라스틱 바가지로 박박 긁는 듯한 거친 음색이다. 그나마 한국에서 조달한 마루타의 성대를 이식한 덕분에 정상적인 발성이 가능해졌다.
최도식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불운은 어깨동무하고 찾아온다더니 상상도 못 할 사건이 벌어졌다. 조선에 특급 닌자인 이대 제자 둘, 가토 장로, 요시히데 장령제자를 곤죽으로 만들 수 있는 인물이 있었던가?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소리다.
최도식이 무쌍을 힐끗 노려보고 벽에 박힌 요시히데 앞에 섰다. 직접적인 사인은 가슴을 파고들어 척추에 박힌 슈리켄이 만들어낸 가슴 부위의 공동이다. 강력한 회전이 걸린 슈리켄이 조직을 톱날로 썰 듯 뜯어냈다. 신이라도 가슴에 손바닥이 드나들 만큼 큰 구멍이 뚫리면 살 수 없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숯처럼 타버린 주변 조직이다. 험한 세상을 살아왔지만, 이토록 처참한 시신은 본 적 없다. 슈리켄이 음속으로 상당한 거리를 비행하면 공기 저항으로 인해 달아오른다. 그러나 전권은 긴 변이 25m에 불과하다. 25m 거리는 슈리켄을 달굴 정도로 충분한 거리가 아니다. 최도식은 경각심이 생겼다. 이해 못 할 현상이 벌어졌을 때는 이해못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파악- 콘크리트벽에 깊숙이 박힌 와카자시가 쑥 뽑혔다. 요시히데의 시체를 바닥에 눕히고 와카자시 손잡이를 잡고 눈을 감았다. 부우우- 와카자시가 진동했다. 진동이 점점 강해졌다.
파아아- 칼이 강화유리 깨어지듯 산산이 조각났다. 우웅- 반짝이는 쇳조각이 그물로 잡아채듯 고스란히 최도식의 손바닥에 얹혔다. 암혼공명장(暗魂共鳴障)이다. 최도식이 칼날 조각을 요시히데의 시체에 뿌렸다. 사건은 이미 벌어졌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사요나라 요시히데, 부시 노 토리뷰토 오 모테 이코우 테키 와 카나라주 무쿠리테 야루!(잘가라 요시히데, 무사의 공물을 받아라. 원수는 반드시 갚아 주겠다!)”
최도식은 간단한 의식을 마치고 무쌍을 노려보았다. 뿌연 막이 한 겹 덮인듯한 기분나쁜 눈빛이다. 강자는 강자를 알아본다. 무쌍이 살기와 기파를 갈무리해도 본질적인 기도는 숨길 수 없다. 최도식은 묻지 않아도 사건의 범인을 알고도 남았다. 왜라는 질문은 나중에 던져도 된다. 가토와 요시히데의 원혼을 위로해줄 제물이 필요한 시점이다.
‘역시 잔머리는 통하지 않는구마!’
무쌍은 감탄했다. 가토와 블랙 포를 잔인하게 살해한 이유는 놈들의 행태에 분노한 탓도 하지만, 최도식을 흔들려는 의도도 있었다. 사문의 중요 인물들이 처참한 시체로 변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분노로 미쳐 날뛰거나 난리법석을 떨어야 한다. 최도식은 꿈쩍도 않았다. 역시 잔머리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다.
“난데스까?(뭐지?)”
최도식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맹룡과강, 소파에 앉아있는 놈이 제법 그럴듯한 그림을 그린 장본인이다. 태연함은 이해되지만 강렬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의 냄새가 풍기는데 기도는 그놈이 아니다.
삼십칠호는 야수보다 더 야수 같은 놈이다. 눈앞에 있는 놈은 깊은 산중 호수다. 산사에서 도를 닦는 선승을 마주한 느낌이다. 사람의 기질은 지문과 같다. 한번 형성된 기질은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 최도식은 혼란을 느꼈다.
“대사부님!”
느닷없는 부름이 생각의 허리를 툭 끊었다. 흐릿한 막이 삼백안을 덮었다. 쥐를 노리는 능구렁이 눈이다. 박기충이 무릎걸음으로 기어갔다. 이 자는 본사 고수들조차 어려워하던 사람이다. 이대로 있다간 악귀 놈에게 밟혀죽는다. 자신이 살길은 본사 실력자의 뒷다리를 잡고 늘어지는 길밖에 없다.
카멜레온 박기충은 이번에도 줄을 잘못 섰다. 아니 큰 실수를 했다. 최도식을 인간으로 보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엔 무시 요?(웬 벌레야?)”
퍽- 최도식의 왼발이 박기충의 엉덩이를 섬광처럼 걷어찼다. 공중부양한 박기충이 고속으로 비행했다. 의도적인지 우연인지 비행 궤적에 내력기둥이 버티고 있었다. 꽝- 골편과 으깨진 근육이 사방으로 튀었다.
최도식의 발길질 한 번에 인간 박기충은 사라지고, 가죽, 근육, 뼈, 피, 체액, 털이 짓이겨진 한 덩이 혈괴만 남았다. 기분에 따라 인간을 개미 밟듯이 밟아 죽일 수 있는 비인간, 최도식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지하금융계의 신흥 강자 박기충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그가 10여 년간 저지른 살인, 납치, 강간, 장기밀매, 인신매매 등등 온갖 흉악한 범죄에 비하면 너무나 자비로운 최후였다.
“흐으으으~”
놀란 양아치들이 한 뼘이라도 전권에서 더 멀어지려고 아수라장을 연출했다. 최도식은 벌레 따위에 관심 없다. 무쌍에게서 한시도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런, 소중한 노가다 인력인데…….”
무쌍이 혀를 찼다. 노바토피아의 국경선 방풍림 관리는 최악의 일자리다. 너무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모두가 기피하는 일터다. 잔머리 대가인 옴부티 총독은 종신노역형을 받은 죄수와 별 세 개를 단 죄수를 투입했다. 그래서 노바토피아에는 별을 네 개 이상 단 전과자가 없다. 문제는 강력한 형법으로 인해 국경선에 보낼 죄수가 태부족이라는 점이다. 무쌍은 우수한 방풍림 관리원을 잃었다.
“너냐?”
최도식이 목적어를 빼고 불쑥 물었다. 무쌍이 벌떡 일어났다. 깊은 호수처럼 서늘한 눈이 혼탁한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최도식이 움찔했다. 바늘에 쿡 찔린 느낌이다.
“악귀가 응보의 사슬을 빠져나오니 하늘의 그물코가 넓긴 넓구나.”
무쌍이 선문답 같은 말을 툭 던졌다.
“너-는-누-구-냐?”
흠칫한 최도식이 한자씩 딱딱 끊어서 질문을 던졌다. 후두를 교체한 덕분에 일본어 발음은 어렵지 않지만, 한국어 발음은 여전히 힘들었다. 역시 자신은 일본인이지 한국인 따위가 아니다.
“적면 다섯의 안부를 알고 싶지 않나?”
굵직한 바리톤 음성이 최도식의 고막을 천둥처럼 울렸다.
“큿! 삼-십-칠-호!”
파충류의 눈처럼 감정 없는 눈이 확 불타올랐다. 아카이 카오의 존재를 아는 놈은 있어도 적면이라 부르는 놈은 단 한 놈, 방태산의 37호밖에 없다. 달라진 기도는 알 바 아니다. 놈은 37호다.
불현듯 잘려나간 팔에서 은은한 통증이 느껴졌다. 원로들의 도움을 받아서 단전을 재생하고, 내각조사실의 협조로 인공 팔을 달았다. 인공 팔은 뇌가 전하는 전기 자극을 인공 근육의 영동 센스가 받아들여서 작동한다. 통증을 느낄 신경이 없음에도 통증이 느껴짐은 놈이 팔을 자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지옥도 네놈이 싫었던 모양이지. 지옥을 기어 올라오는 데 7년쯤 걸렸나 보지.”
무쌍이 한껏 이죽거렸다. 37호는 37번째 희생자란 의미다. 방태산에 숨어든 최도식은 적면을 동원해서 건장하고 싹수 있는 십 대를 납치해서 마루타로 사용했다. 세혼술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간 남자가 36명이다. 자신이 37번째 실험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