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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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장 최도식12
인간이 비행 중인 파리 날개를 날붙이로 잘라내려면 정교한 검술도 중요하지만, 초인적인 동체 시력과 스피드가 있어야 한다. 최도식이 허초와 실초를 구분할 수 없는 절묘한 기격으로 파탄을 유도했지만, 무쌍은 현란하게 몰아치는 암혼격을 반 박자 빠르게 걷어냈다. 촘촘히 깔린 공간지각력과 강력한 근육이 뿜어내는 포뮬라 원을 방불케 하는 압도적인 스피드 덕분이다.
무쌍은 체계적인 검술을 사사한 적은 없다. 오금공 초식을 응용하고 현대 무술과 맘루크 시르께시 스킬을 커닝해서 얼기설기 엮어낸 잡탕 사이비 검술에 불과했다. 반면에 최도식은 50년간 히가시혼간지 닌자 비기를 수련한 고수 중의 고수다. 상식적으로 무쌍이 일패도지해야 할 상황이지만 전황은 팽팽하게 흘렀다.
격투는 각자의 상성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은밀하게 파고들어야 할 최도식은 한치라도 멀어지려고 발악하고, 거리를 벌려야 할 무쌍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고수의 싸움은 공간의 싸움이다. 공간을 잃은 쪽은 합이 거듭될수록 점점 수세에 몰리게 된다.
공간을 확보하려면 움직임이 최소화되어야 한다. 상대의 공격을 회피할 때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회피해야 곧바로 공격할 수 있다. 고수의 기준인 공방일체의 묘리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귀결된다. 검법의 완성도로 보면 아이와 어른의 차이다. 검술이 딸리는 무쌍은 바짝 달라붙어서 힘과 스피드로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최도식은 스킬을 마음껏 구사하지 못하는 답답한 격투를 강요받아야 했다. 전장의 악몽은 고스톱 쳐서 따지 않았다.
살기 넘치는 근접 박투에 전설적인 무기까지 가세하자 싸움은 더욱 흉험해졌다. 인간 같지 않은 두 사람 사이를 희고 푸른 검광이 번개 치듯 흘렀다. 채채채챙- 고막이 찢어질 듯한 고주파 충격음이 울렸다. 촹- 챙그렁- 그나마 성한 유리창이 음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서로 죽이고야 말겠다는 필생의 의지와 악의가 충돌했다. 일신에 익히고, 수련한 살인 기예가 줄줄이 튀어나왔다.
고수 간의 격투는 한번 균형이 무너지면 승부는 순식간에 결정지어진다.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든다. 승패는 실력보다 의지와 기백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무쌍과 최도식의 공통점은 자부심과 자긍심이 하늘을 찌르는 인간이란 점이다. 서로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얼굴을 마주하다시피 초근접전을 벌였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연속 터졌지만, 귀를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양아치 태반이 기파에 휘말리고 쇄설물에 맞아 죽었다. 용케 살아남은 놈들도 의식을 잃은 지 오래다.
무쌍의 표현대로라면 아까운 방풍림 관리 인력 상실이다. 고래는 새우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괴물의 싸움에 말려든 양아치들의 죽음은 10원짜리에도 끼지 못했다.
츄릿, 무쌍이 흡공파로 무라마사의 궤적을 비틀었다. 공교롭게도 최도식도 암혼흡기공으로 초모랑마를 빨아들였다. 서로가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심산이었지만, 철컹- 무라마사와 초모랑마가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오랜 원수이자 숙적인 노소는 칼을 맞대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조잡하다. 오사까 덴노지 삼류 야쿠자도 그따위로 칼을 휘두르지 않는다. 검법이라 말하기도 창피하다.”
최도식이 이를 갈며 으르릉거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37호는 검법을 모르는 놈이다. 명인에게 제대로 배운 칼질은커녕 영자팔법도 몰랐다. 조잡한 군대 단검술과 여기저기서 한 수씩 끌어온 잡탕 초식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예민한 반사 신경과 폭발적인 파워로 자신의 칼을 너끈히 받아내고 반격했다. 이게 재능의 차이란 말인가! 그러면 50년이나 피땀 흘린 자신은 썩은 낫토(일본식 청국장)란 말인가. 억장이 무너졌다. 어쨌든 쥐새끼도 호랑이만큼 커지면 쥐새끼가 아니라 끔찍한 맹수다.
“나는 기술과 독심이 전부라 여기는 네놈이 한심하다. 진정한 강자는 타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는 사람,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다.”
최도식은 고개를 흔들었다. 타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고?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왜 그래야 하지?”
“인간은 타인이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인간을 수단으로만 보는 네놈은 영원히 알 수 없는 말이겠지. 흐흐흐!”
무쌍이 비죽이 웃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
놈의 말이 도꼬마리 열매처럼 뇌리에 달라붙었다. 기분이 나빠졌다. 말짱 헛소리다. 나 아니면 이용물일 뿐이다. 벌레는 벌레일 뿐이다.
“개소리!”
스팟- 최도식이 왼손을 불쑥 내밀었다. 공간지각력의 그물이 최도식의 은밀한 손짓을 감지했다. 핏핏핏- 오지에서 회색 거미줄이 빗살처럼 빠져나왔다. 깨진 창으로 스며든 희미한 달빛만 일렁이는 실내다. 거미줄처럼 가는 실은 눈을 부릅뜨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헛!”
파악- 칼을 맞대고 있던 무쌍이 찰나에 십여미터를 공간 이동했지만, 폭발적으로 비산한 거미줄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지이잉- 거미줄이 쭈욱 오그라들었다. 최도식을 여유 있게 상대하며 닌자 비기를 커닝하던 그로선 생각지도 못한 낭패다.
“이기 머꼬?”
“흐흐흐, 암혼지주망이다. 잘 가라!”
보통 사람이라면 그대로 두어도 몸뚱이가 오코노미야키에 들어가는 양파처럼 잘게 다져지겠지만, 상대는 37호다. 파악- 최도식은 촌각의 틈도 주지 않고 바닥을 박찼다. 쉬릭- 허공에서 시퍼런 섬광이 떨어졌다.
‘웃어!’
최도식은 섬뜩했다. 37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위험 경보음이 맹렬히 울렸다.
“차앗!”
최도식은 왼발로 오른발 뒤축을 찼다. 신형이 잡아당기듯 쭉 미끄러져 나갔다. 파아앗- 무쌍의 몸에서 회오리가 뿜어졌다. 수천수만의 공진파 칼날이다. 조여들던 암혼지주망이 흔적도 없이 분쇄되었다. 쉬릭- 순간 이동한 무쌍이 막 착지하려는 최도식의 발목을 후려 찼다.
위기의 순간 최도식은 날개가 없지만 암영비가 있었다. 바바리코트가 펄럭하며 허공을 딛고 재차 도약했다. 그 정도의 틈이면 충분했다. 무쌍의 팔이 문어 다리처럼 쭉 늘어났다. 쉬악- 초모랑마가 공간을 갈랐다.
“헉!”
다급한 비명이 터졌다. 최도식의 가슴이 쩍 벌어졌다. 후두둑- 핏물이 튀었다. 암혼어린강도 초진동 블레이드에는 종이짝에 불과했다. 스팟- 최도식이 전권에서 몸을 빼냈다. 핏핏핏- 한 호흡에 번개 치듯 열 번이나 위치를 바꾸었다.
“암혼지주망을……”
최도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암혼지주망은 이름처럼 거미줄이 아니다. 허무하게 용도 파기될 기물은 더더욱 아니다. 암혼지주망은 히가시혼간지에서 최근에 만들어 낸 최강 최악의 법기(法器)로 현대 생명공학과 고대 주술의 합작품이다.
암혼지주망의 재료는 일본 해구가 쿠릴 해구와 마주치는 지점인 에리모 해산에서 채취된 에리모 홍합의 족사(足絲)다. 홍합은 족사를 뽑아서 바위에 달라붙는다. 에리모 홍합의 족사는 지름 1mm 한 가닥이 100kg을 거뜬히 지탱하고, 접착력은 공업용 순간 본드가 울고 갈 정도로 강력하다.
에리모 족사의 점착 단백질인 도파(DOPA, 다이하이드록시 페닐알라닌)를 효소 처리해서 손바닥 표피 아래 침적하면 암혼지주망이 완성된다. 사용할 때는 암혼기로 압축해서 땀구멍을 통해 발사한다. 최강이라 함은 일단 걸려들면 대라신선도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악이라 함은 찰나의 순간에 손톱 범위로 수축한다는 점이다. 머리카락 십 분의 일 굵기의 실 수 천 가닥이 신체를 관통하면 희생물은 당연히 수천조각의 고깃덩이로 변한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
놀란 최도식은 쩍 벌어진 가슴을 암혼기로 이어붙이는 것도 잊었다. 놈은 37호가 아니다. 인간이 암혼지주망을 벗어날 수는 없다.
“짐승을 때려잡는 사나운 짐승, 염불하며 모기를 때려잡는 모순적인 인간!”
무쌍은 최도식이 알아듣도록 두 소절의 하이쿠로 답변했다. 말하고 보니 블랙맘바와 무쌍의 본질을 제법 그럴듯하게 표현했다. 최도식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칙쇼! 그 자세로 어떻게 베었나?”
최도식은 울화를 꾹 참고 물었다. 감각적으로 몸을 빼냈지만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인간의 팔뼈는 칼슘 복합체지 고무줄이 아니다.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성질 나쁜 노인네에게 날마다 얻어맞으면 다 돼.”
“쿠소 야로!(빌어먹을 놈!)”
최도식은 짜증이 만장을 치솟았다. 손끝만큼이나 혀끝도 매운 놈이다. 매번 묘한 말로 복장을 뒤집었다.
“아직 남은 밑천이 있나?”
무쌍이 비시시 웃었다. 대충 볼 건 다 본 것 같았다.
“빠가야로 로쿠데나시!(죽일 놈!)”
천하의 냉혈한이자 사이코패스인 최도식이 벌컥 했다. 손해 본 것도 견디기 힘든 판에 이죽거리는 뚜껑을 열었다. 펄럭- 바바리코트가 공간을 덮었다. 달빛으로 부윰하던 실내가 암흑으로 변했다. 스스스- 최도식의 신체가 공간으로 스며들었다. 닌자 비기 최고봉인 암혼동화술이다.
최도식이 방태산에서 어이없이 당한 이유는 엉겁결에 자연동화술을 발휘한 무쌍의 기척을 놓쳤기 때문이다. 한이 맺힌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어둠과 섞이는 암혼동화술을 완성했다.
“풋, 삽질하고 자빠졌네.”
무쌍이 픽 웃었다. 스스스- 공간지각력이 범위를 넓혔다. 공간지각력은 기를 느끼는 기감과는 차원이 다른 영적 능력으로 공간에 녹아든 깜둥이의 기척도 잡아낸다. 인간의 감각을 현혹해서 이득을 얻는 닌자 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생기를 지닌 존재는 간섭장의 그물을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최도식이 아무리 날고뛰어도 그물처럼 펼쳐진 공간지각력을 속일 수 없다. 장안술에 불과한 암혼동화술은 귀신 앞에 머리 풀어헤치는 격이다.
무쌍의 머리 위 천장에 노란 눈알 두 개가 슬며시 나타났다. 무라마사가 소리 없이 떨어졌다. 최도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놈이라도 보이지 않는 칼을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최도식은 행여나 공기가 유동할세라 검첨을 느릿느릿 백회혈에 밀어 넣었다.
‘허이고 이 새끼, 뜸은 더럽게 들이네. 밥이 다 타겠구마.’
무쌍은 최도식의 움직임을 빤히 알고 있다. 놈은 공격 찰나에 진신을 드러난다. 한 방에 패대기쳐서 싸움을 끝낼 참이다. 지루해할 새우들의 입장도 생각해야 할 것 아닌가.
‘흐흐, 가거랏!’
두 치를 남겨둔 지점에서 칼날이 내리꽂혔다. 쩡- 억수갑이 짓쳐드는 무라마사의 검 면을 두드렸다.
“컥?”
최도식의 삼백 안이 사백 안으로 변했다. 놀랄 틈도 없이 두툼한 손바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최도식은 눈을 질끈 감고 양쪽 뺨에 암혼기를 집중했다. 쩍- 도끼로 단단한 참나무 장작을 빠개는 소리가 울렸다.
핏핏핏- 뺨을 얻어맞은 최도식이 팽이처럼 휘돌았다. 쿵- 최도식은 역도를 완전히 풀어내지 못하고 벽에 패대기쳐졌다. 쨍- 그제야 부러진 무라마사 도첨이 도끼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슈악- 틈을 주지 않고 무쌍이 덮쳤다. 악독한 인간은 처리할 수 있을 때 처리해야 한다. 도주하면 귀찮아진다.
“칙쇼!”
최도식이 그간 사용하지 않던 오른쪽 팔을 들어 올렸다.
“헉!”
겨우 5m 앞에 시커먼 구멍이 지옥 입구인양 자신을 향해 있다. 무쌍이 공간을 차고 사마귀 만난 메뚜기처럼 튀었다. 최도식의 오른쪽 의수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투투투투- 묵직한 총성이 울렸다. 같은 총기라도 초고수의 손에 들리면 미사일이 된다. 무쌍이 회피하는 속도만큼 최도식의 반응도 빨랐다.
퍽퍽퍽- 무쌍의 몸에서 피가 튀고, 콘크리트 파편이 자욱이 튀었다. 핏핏핏- 신형이 번득번득 공간 이동했다. 투투투투- 총탄이 미사일처럼 번득이는 표적을 추적했다. 퍽퍽퍽- 순식간에 총탄을 뒤집어쓴 무쌍이 팽이처럼 굴러서 기둥 뒤로 피신했다.
“빌어먹을!”
놈의 의수가 자동소총일 줄 꿈에도 예상 못 했다. 펀치력도 장난이 아니었다. 충격량으로 볼 때 5.56mm 표준 탄을 개조한 덤덤탄(JSP탄, Jacketed Soft Point)이다. 상체는 보스사우루스 내피가 방어했지만, 팔다리에 다섯 발이나 맞았다. 부시도(무사도) 어쩌구 하던 놈의 행태치고는 비열하기 짝이 없지만, 욕할 입장도 아니다.
생사를 건 격투는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적을 악어 우리에 처넣거나, 이상한 기구에 매달아서 하늘로 띄우거나, 절벽에서 밀어 버리는 등등의 온갖 번잡한 짓거리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헛짓거리다. 간단히 이마에 콩알을 박아 넣으면 될 일을 그런 병신 짓을 할 이유가 없다. 최도식은 자신이 할 일을 했고, 당한 자신이 병신이다.
더욱이 용병과 닌자의 싸움이다. 블랙맘바는 적을 효율적으로 말살시키는 전투 머신이고 최도식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부모도 망설임 없이 죽이는 닌자이자 사이코패스다. 정정당당은 황소 앞차기 하는 소리다. 무사도는 찾을 곳에서 찾아야 한다. 닌자가 총을 쓰지 말란 법도 없고, 이기는 놈이 정의다. 눈에 침을 뱉고 불알을 잡고 늘어져서라도 이기는 놈이 제 할 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덤덤탄은 관통력을 희생해서 펀치력을 강화한 탄자다. 신체에 박히는 순간 총탄 앞부분이 깨지며 깨알 같은 파편 수백 개가 조직에 박힌다. 둥- 공간지각력이 발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