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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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장 최도식13
허벅지와 상박에 박힌 납 알갱이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빼곡했다. 피탄된 탄자는 다섯인데 파편은 756개다. 어떻게 아느냐고? 그냥 안다. 공간지각력은 뇌의 연산 작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저분한 쪽발이 새끼, 부시도가 어쩌고 어째!”
무쌍이 투덜거렸다. 최도식이 사용한 탄자는 내부에 폭약을 충전한 악질적인 덤덤탄, 일명 할로탄이다. 덤덤탄은 맹수 사냥용이나 테러 진압용으로 사용되지만, 할로탄은 국제적 합의에 따라 퇴출당한 탄종이다.
할로탄의 출처는 보나 마나 자위대다. 제국주의 망령을 보듬고 살아가는 일본인 다운 야비함이자 이중성이다. 하긴 FMJ 탄에 맞아 죽으면 인도적이고, 할로탄에 맞아 죽으면 비인도적이란 기준 자체가 웃기는 소리다.
칼에 목이 잘리든 심장에 총알이 박히든 죽는 건 마찬가지다. 생선살을 잘 발라내는 회칼이 좋은 칼이듯이 살상 무기는 살상 효과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비인도적 운운하는 자체가 위선이고 가식이다.
중요한 것은 할로탄이 아니라 다섯 발이나 피탄당했다는 점이다. 인간이 자극에 합리적으로 반응하는 메커니즘은 위치를 기억하는 place cell, 공간에서 현재 위치를 인식하는 grid cell, 속도와 방향을 잡아주는 speed cell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세 가지 세포가 자극을 전달받아 반응하기까지 최소 0.3초가 소요된다. 달아오른 난로에 접촉했을 때처럼 인식 단계를 생략한 반사적인 반응은 대략 0.1초 이내에 이루어진다.
공간지각력은 수용체 릴레이 과정이 생략된 사기적인 감각이다. 뇌가 실시간으로 신경계에 자극을 전달하므로 미오신이 액틴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0.1초면 반응할 수 있다.
생체 내비게이션이라 불리는 세 가지 세포의 숫자와 질에 따라 개인적인 반응 편차가 생긴다. 최고의 스나이퍼가 표적을 고정해서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0.3초가 소요된다. 조준 사격으로 블랙맘바를 잡을 가능성은 제로라는 소리다. 반면에 조직적으로 광역 화망을 구성하거나 초능력자와 무예 고수가 화약 무기를 사용하면 상당한 위협이 된다는 반증이다.
외과의사가 파편 756개를 일일이 적출 할 수도 없고, 보통 사람이 할로탄 다섯 발을 맞으면 의사가 손을 쓰기도 전에 강림도령을 따라나섰을 것이다. 무쌍은 외과의도 아니고 보통 사람도 아니다. 강림도령을 패대기칠 인간이다.
공진파에 일차 저지당한 탄자는 추진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조밀한 근육을 뚫지 못하고 파편이 확산하지도 못했다. 무쌍은 손바닥을 피탄 부위에 접촉하고 흡공파를 운용했다.
우웅- 근육에 박혀있던 탄자와 파편이 줄줄이 끌려 나왔다. 크고 작은 파편이 따개비처럼 달라붙은 손바닥을 탈탈 털고 벌떡 일어났다. 소총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괴물이 무쌍이다.
최도식은 연푸른 총연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의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시에 내장된 총탄 100발을 쏟아낸 티타늄 합금이 열기를 뿜었다. 내각조사실 기술부가 의수에 발사체를 장착할 때는 설마 사용하랴 했었다.
‘이젠 해 볼 만한가?’
37호는 적어도 이십여 발은 얻어맞았다. 초인이 그 정도 타격에 죽지야 않겠지만, 전투력은 상당히 깎였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던 최도식이 흠칫했다.
“도-시테 곤나후-니 고-도-스룬데스카?(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최도식이 중얼거렸다. 자신은 인간의 혼백을 주무르는 긍지 높은 천인이다. 천인이 천박한 노예의 손발에 정신없이 얻어맞고, 견디다 못해 총기로 기습했다. 무너진 자부심이 분노를 끌어냈다.
문득 ‘참기 힘든 고난을 참아내고, 견디기 힘든 고난을 견뎌낸다’는 히로히토 천황의 육성 녹음이 가슴을 저몄다. 천황은 신민 2,000만 명을 지옥에 쑤셔 박고, 원자폭탄까지 얻어맞았지만 의연했다.
천황을 눈 아래로 보는 백백교 교주가 이 정도 고난에 의기소침할 때가 아니다. 회색빛 혼탁한 눈에 진한 살기가 감돌았다.
“요시!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지.”
최도식은 머리를 흔들어서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찜찜한 기분을 털어버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치욕을 보상받으려면 37호를 죽여야 한다. 이긴 자가 정의요 자부심이다.
“그러엄,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무쌍이 기둥 뒤에서 걸어 나왔다. 하코네의 벚꽃 유람객처럼 느긋한 발걸음이다.
“으헉!”
최도식이 닌자답지 않게 헛바람을 불었다. 회색 삼백안이 수레바퀴처럼 무쌍의 아래위를 굴러다녔다. 멀쩡했다. 피 칠갑을 했지만, 피륙의 상처에 불과했다. 총탄 수십 발을 맞은 놈이 저렇게 멀쩡해도 되나? 저놈이 인간이란 말인가? 최도식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최도식, 밑천도 대충 털린 모양인데 슬슬 판을 걷어야지. 밤도 늦었어. 통금은 없어졌지만, 늦게 들어가면 엄마가 야단치거든.”
무쌍이 말을 멈추고 출입문을 가리켰다. 두터운 철제 방화문과 방음 덧문이 갈가리 찢어졌다. 페어 글라스 창은 애저녁에 전부 터져나갔다.
“그만 끝내자고. 네놈도 빛 한점 없는 공간에서 노래기를 잡아먹으며 질긴 목숨을 연명해 봐야지.”
무쌍이 이죽거렸다. 풍국 캐피탈 건물이 외따로 떨어져 있지만, 노원 공단과 300m, 주거지와 400m 떨어져 있다. 폭음이 연속 울리고, 총성까지 들렸는데 주민 신고가 들어가지 않았을 리 없다. 지금까지 출동하지 않은 경찰이 더 이상했다.
경찰은 이미 출동했다. 풍국 캐피탈이 아니라 직선거리로 9km 떨어진 대명동 안지랑이로 바리바리 몰려갔다.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해봐야 전화를 받을 사람도 출동할 인력도 없었다.
안지랑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원인 모를 대형 폭발이 연속 발생하고 곳곳에 씽크 홀이 생겼다. 멀쩡한 주택 수십 채가 매몰되고, 도로를 달리던 차량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파악된 사상자만 백여 명에 이르렀다.
안기부 대구 지부장 이대덕은 즉각 무장간첩의 소행으로 판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실종된 장팔수로 인해 신경이 곤두서 있던 참이다. 50사단과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50사단 병력이 앞산 일대를 차단하고 경찰력은 사고수습과 검문검색에 투입되었다.
사달을 일으킨 자는 당연히 최도식이다. 선우방나의 결계에 빠진 최도식은 지하 방공호를 사정없이 때려 부수고 탈출했다. 그 와중에 음양진에 설치된 TNT 5톤이 연쇄 폭발했다.
야마나시는 재물에 미친 인간이다. 강제로 음양진을 파훼해서 보물을 훔쳐가려는 도적놈을 두고 볼 인간이 아니다. 무쌍은 물론이고 최도식도 안지랑이의 난장판을 알지 못했다. 최도식은 알아도 신경 쓸 인간이 아니다.
“빌어먹을 놈!”
최도식은 이죽거리는 놈을 씹어먹고 싶었지만, 놈의 말마따나 씹을 이빨이 없었다. 숨겨둔 마지막 한 수는 효과가 확실하지만, 본인도 등가교환의 데미지를 입는 양날의 검이다.
괴뢰응귀술(傀儡應鬼術)!
최도식이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주술이자 실행을 망설이는 사악한 주술이다. 괴뢰응귀술을 실행함은 적을 죽이자고 원자포(1960년대에 만들어진 원자탄 투발용 야포, 대표적 원자포인 M65는 사거리 30km로 투발 당사자도 피폭된다.)를 투발하는 격이다.
최도식의 손이 품속으로 들어갔다. 비장의 무기 고르곤으로 놈을 흔들어 볼 참이다. 슝- 승표가 무쌍의 머리를 노리고 공간을 단축했다.
“옳커니! 숨겨둔 밑천이군.”
무쌍이 고개를 툭 꺾었다. 슈앙- 파르스름한 금속 추가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최도식이 손목을 까딱했다. 빈 공간을 친 승표가 방향을 틀어서 뒤통수를 노렸다. 턱- 무쌍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취리릭- 재질을 알 수 없는 강선이 손목을 휘감았다.
“요시!”
최도식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고르곤의 치명적인 위험은 추가 아니라 강선이다. 강선의 재질은 구로다 박사가 발명한 탄소나노튜브다. 탄성률은 강철 7배, 인장 강도는 100배다. 이중벽 구조의 강선 표면에 상자해파리 촉수 같은 미늘 수만 개가 돋아있다. 아름드리나무도 단숨에 잘라버리는 예리무비한 강선을 인간의 뼈와 근육이 버틸수는 없다. 파악- 사정없이 고르곤을 잡아챘다. 37호의 손목이 싹둑 잘리는 장면을 연상하면서.
“억!”
최도식이 경호성을 질렀다. 무지막지한 힘, 이륙 중인 항공기가 뿜어내는 추력에 버금갈 힘이 그를 잡아챘다. 최도식은 고르곤에 연결된 수투를 벗을 틈도 없이 무 뽑히듯 끌려갔다. 낚시에 걸린 붕어가 따로 없었다.
슁- 장권이 번갯불처럼 날아왔다. 피할 시간도 공간도 없다. 최도식은 눈을 부릅뜨고 암혼장으로 맞섰다. 꽝- 꽝- 꽝- 공진파를 두른 웅장삼첩장과 암혼장이 연속 충돌했다. 일격에 왼쪽 어깨가 탈골되었다. 이격에 폐가 찢어지고, 삼격에 갈비뼈가 내려앉고, 오장육부가 뒤집혔다.
‘틀렸어!’
최도식은 포기했다. 만부막적, 산사태를 방불케 하는 압도적인 파워다. 화경에 이른 내기운용과 노화순청에 이른 초식이 목조 가옥처럼 힘없이 부서졌다. 마지막 수단, 괴뢰응귀술을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슁- 손바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최도식은 이빨을 악물었다. 피할 여력도 없지만, 피할 생각도 없었다. 이빨 몇 개 내주고 최강의 노예를 얻으면 엄청나게 남는 장사다. 암혼기를 얼굴에 집중해서 타격에 대비했다.
뻑- 장권이 턱에 작렬했다. 푸확- 이빨이 튀고 피가 자욱이 뿜어졌다. 펑- 최도식이 뿜어낸 피가 폭발했다. 피안개가 무쌍의 얼굴을 덮었다.
“에이, 더런 놈!”
무쌍이 손바닥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최도식은 턱뼈가 깨지고 이빨 대여섯 개가 튀어나왔지만, 얼굴색조차 변하지 않았다. 번들거리는 회색 눈에 막이 한 꺼풀 덮였다.
“기미 와 보꾸 노 도레이다. 히자마주쿠! 히자마주쿠!(너는 내 노예다. 꿇어라! 꿇어라!)”
최도식이 눈을 감고 웅얼웅얼 주문을 외웠다. 정수리에서 허연 김이 솟고 팽팽하던 얼굴에 가는 주름이 잡혔다. 새까맣던 귀밑머리도 회색으로 바뀌었다. 노화 시계가 수천 배 빨리 돌아가는 모양새다.
“이 자식아, 엽전이 얼치기 쪽발이 흉내 내지 말고 알아듣게 한국말로 해라.”
어이없이 핏물을 뒤집어쓴 무쌍은 짜증이 폭발했다. 주문을 외는 최도식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가이시!(개시!)”
뻑- 주문을 끝냄과 동시에 타격음이 울렸다. 쾅- 포탄처럼 날아간 최도식이 기둥과 충돌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기둥이 삐드득 하고 기울었다. 내력 기둥 여섯 개 중에 네 개가 기능을 상실했다. 나머지 두 개도 별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끄으으~ 왝!”
최도식이 검붉은 핏물을 울컥 한 사발 토했다. 괴뢰응귀술을 펼치느라 호신기공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아니 호신기공을 펼치기 힘들 정도로 몸이 망가졌다.
“히자마주쿠! 히자마주쿠! 가이시! 가이시!”
최도식이 악을 썼다.
“미쳤나?”
무쌍이 눈을 멀뚱거렸다.
“왜? 왜에 괴뢰가 응귀하지 않냐고오~”
최도식이 미친 듯 고함쳤다. 37호의 전두엽 피질 속에 심어둔 괴뢰의 핵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핵이 심어진 자는 죽어도 혼이 자유롭지 못하다. 시술자는 응귀술을 시전해서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낼 수 있다.
사악한 대법인 만큼 발동 조건도 까다롭고, 등가교환의 대가도 만만치 않다. 시술자의 신선한 피로 괴뢰 핵을 깨워야 하고, 정신 조작에 엄청난 정신력이 소모된다. 최도식의 외모가 급작스럽게 변했다. 검은 머리가 회색으로 변하고, 팽팽하던 볼이 처졌다. 목 가죽이 늘어나고 눈꼬리가 쳐졌다. 넘치던 기력도 바람 빠지듯 피시식 꺼졌다. 생명력을 깎아먹은 대가다.
“왝~”
최도식이 재차 검은 피를 토했다. 호신갑을 입었지만 만만치 않은 데미지를 입었다.
“미친놈, 괴뢰는 뭐고, 응귀는 또 머꼬!”
무쌍은 아무것도 몰랐다. 김기택 가족을 받아들일 때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빠져들었다. 그때 최도식이 심어둔 마지막 족쇄인 괴뢰 핵이 녹아버렸다. 그래서 안 되는 놈은 로또 당첨금보다 더 많은 로또를 사고, 되는 놈은 남이 버린 로또를 주워서 당첨된다.
최도식은 말이 없었다. 대답할 기분도 아니고 기력도 없었다. 먼지와 선혈로 얼룩진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천장을 올려보았다.
“애써 대답할 필요 없다. 조잡한 좌도방 술법 나부랭이겠지. 이건 뭐야? 엄청나게 질기네. 네놈을 묶을 밧줄로 딱 맞구먼.”
무쌍이 고르곤을 양손으로 잡고 팽팽 당겼다. 최도식이 허탈한 눈으로 자신의 애병을 노려보았다. 고르곤은 등산용 로프가 아니다. 암혼쇄혼수를 익힌 자신도 특수 장갑을 끼고 고르곤을 다뤄야 한다. 저놈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이란 말인가!
“고르곤!”
최도식이 한숨 쉬듯 대답했다.
“고르곤?”
무쌍이 눈을 치켜떴다. 고르곤은 시리아에서 지저 세계에 끌려들어 갈 때 잃어버린 자신의 채찍 이름이다. 묘한 인연이 느껴졌다.
“흐흐흐, 쓸만하군. 밑천 떨어졌으면 엉덩이 털고 집에 가야지.”
무쌍이 고르곤을 빙빙 돌리며 썩은 미소를 지었다. 최도식은 만신창이가 된데다 졸지에 늙은이가 되었다. 이놈은 그냥 죽으면 안 된다. 암흑속에서 바퀴벌레와 노래기를 먹다가 죽어야 한다. 지하 2층에 바퀴벌레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그러지. 하늘이 원망스럽다. 천인의 세상이 눈앞인데 애송이 조센진 따위에게…….”
최도식이 이를 갈며 주절거렸다. 괴뢰 핵을 심어 둔 놈이 꿈쩍 않으니 미칠 노릇이다. 갉아먹은 자신의 생명력은 어디서 보상받는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