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82
x 582
제53장 인연중중3
“땅은 좁아터지고 머릿수는 많은데 제대로 휘저었다간 사달이 나게요. 아귀 같은 인간말종과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들만 골라서 단디 타일렀습니다.”
“허, 네놈이 잘 타일렀다는데 노납의 가슴이 덜컹하는 연유가 무엇이더뇨?”
“헤헤헤! 여름도 갔는데 따땃한 공양 드시고 구들장에 등을 뜨끈하이 지져야지요. 큰 누님은 신심이 깊고 손이 매워서 살림을 잘 챙길 낍니다.”
무쌍이 잽싸게 화제를 돌렸다. 본의 아니지만, 생목숨 수십 개를 묻어버렸다. 사부가 사실을 알게 되면 한나절 금강경을 암송해야 한다.
“인연은 어디서 오는가? 고인(古人)은 서쪽에서 온다 했는데 정따라 오는구나. 주장(한 가정의 가장)은 가정의 기둥이요 대들보다. 가족의 평안함은 주장의 희생과 분투 덕분이니 평소에 잘해야 한다. 주장이 실족하면 고통은 가족의 몫이 된다. 이를 망각하고 아침밥도 제대로 차려주지 않고 삼식이니 일식이니 괄시하면~”
“사부님!”
무쌍이 꽥 소리 질렀다. 샛길로 빠진 대우선사가 양 여사를 슬쩍 훔쳐보고는 얼른 말을 바꾸었다.
“정따라 인연이요. 인연따라 정이니 이곳이 사바세계로다. 보살님, 공양에 그리 신경 쓸 것 없다오. 그냥 편하게 지내시구려. 전생에 쌓은 복락이 있어 제자 놈과 인연이 닿았으니 시주를 범접한 잡귀 따위는 홍수 만난 흙담처럼 쓸려 나가리라. 산사에 속세의 즐거움은 없어도 맑은 바람과 푸른 공기는 풍족하다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상처 난 마음이나 추스르시오. 나무아미타불!”
대우선사의 얼굴은 솜사탕처럼 포근하고 말투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웠다. 양 여사의 얼굴이 흠모와 존경으로 팽만해졌다. 사람 혼을 빼기는 제자나 스승이나 도찐개찐이다.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천지간에 몸 둘 곳 없던 박복한 년이 큰스님의 후의를 입어 찌든 마음을 씻게 되었습니다. 무량한 부처님의 가피에 언제나 큰스님과 우리 사장님께 머물기를 바라옵니다. 나무아미타불!”
양 여사는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호랑이는 호랑이를 낳는다고 했던가. 큰스님을 뵙고 보니 박 사장의 그릇이 이해되었다.
실패한 사업자에게 찾아오는 첫 번째 손님은 수치심이다. 재산이 떠나가면 인정도 떠나간다. 빈곤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이 창문으로 도망친다. 인정과 사랑이 떠나간 자리를 수치심이 채운다.
수치심도 무뎌질 즈음이면 두 번째 손님, 이별이 찾아온다. 부부가 찢어지고 자식이 떠나간다.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라고 노래한 시인도 있지만, 가난이라고 같은 가난이 아니다.
가난한 자와 가난해진 자의 차이는 생과일 주스와 과일 향을 넣은 맹물만큼의 차이가 있다. 중년의 끈적한 정도 각박한 현실의 질곡에 난도질당하면 도마에 올려진 꽁치 한 토막이 된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두 번째 손님이 찾아오기 직전에 귀인이 찾아왔다. 이 어찌 부처님의 은덕이 아니랴!
양 여사는 곧바로 살풍경한 공양간으로 들어가고 대우선사와 무쌍은 법당으로 올라갔다.
“앉거라.”
무쌍이 조심스럽게 포단에 꿇어앉았다.
“어디 보자.”
대우선사가 두 손으로 무쌍의 백회혈을 감싸고 눈을 감았다.
“오호, 사라졌어. 끈질기게 남았던 번뇌의 씨가 사라졌구나. 깨달음의 자락은 놓쳤으되 망 외의 소득이 있었구나. 선재, 선재로다.”
“아비지옥과 화탕지옥을 오가는 놈인데 선재는 무신 선재입니까. 마음의 짐을 쪼매 덜었을 뿐입니다.”
“어허, 이놈이 이젠 제법 땡중 흉내를 내는구나. 선재로다. 이바구 해 보거라.”
자글자글한 주름이 알알이 미소로 변했다. 신통력으로도 제거할 수 없었던 악의 씨앗이 사라졌으니 스승으로서 기쁘기 한이 없었다. 무쌍은 김기택 사장의 가족을 안돈한 사연과 대화 중에 갑자기 적정에 들었던 일, 가루라의 탄생, 최도식과 결전을 치른 사건까지 요약해서 아뢰었다.
“오호, 선재로다. 악을 징치하는 큰 악의 행보는 어쩔 수 없다지만, 생명을 가엾게 여기거라. 생령을 타고 난 것은 나름대로 살아갈 이유가 있느니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대우선사는 눈을 지그시 감고 한동안 염불을 외웠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쌈디, 연원을 알 수 없는 존재인 깜둥이, 기이한 가루라, 영통한 괴수 디노, 세상을 벌컥 뒤집을 존재들이 제자에게 몰려든다.
영안으로도 제자의 미래를 볼 수 없음은 제자의 본령이 자신보다 크기 때문이다. 하긴 작은 깨달음을 얻었기로서니 감히 수라왕의 본체를 가늠할 수 없다. 막강한 존재들이 모여들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세상이 요동칠 징조다. 속세에 남겨둔 한 가닥 연이 심령에 그늘을 드리웠다.
“사부대중이 아수라를 파괴의 신으로 알고 있지만 아수라는 초고대의 전투 종족이니라. 아수라의 왕이 수라왕이다. 가루라는 수라왕의 권속이다. 네 녀석이 수라왕의 화신이라는 증거다. 수라왕에게 권속이 모이면 비슈뉴의 질서가 흔들리게 된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구분한들 의미 없는 짓거리……. 나무아미타불!”
“사부님, 이기 재질이 뭡니까?”
무쌍이 품속에서 최도식의 병기인 고르곤을 꺼내서 대우선사에게 건넸다.
“어허, 살기가 충천하는 물건이구나.”
대우선사가 가볍게 휘둘렀다. 스컹- 궤적에 걸린 옥 불전함이 썽둥 잘렸다. 희사받은 값비싼 불구(佛具)지만, 천성사에서는 천지 쓸모없는 물건이다.
“노납도 모르겠다. 천하에 이보다 더 질기고 예리한 물질은 없을 듯싶구나. 게다가 사악한 주술 처리까지 했구나.”
대우선사가 승표 강선을 손으로 죽 훑었다. 끼아아- 새된 비명이 울리고 푸르스름한 연기가 물씬 피어났다. 대우선사가 손을 휘휘 저어서 푸른 연기를 구슬처럼 뭉쳤다. 눈깔사탕처럼 동그랗게 말린 구슬을 입에 톡 던져넣고 꿀꺽 삼켰다.
“끄억, 왜놈 물건이라 간이 약하구나.”
대우선사는 과장되게 트림하고, 승표를 무쌍에게 돌려주었다. 주술을 제거해서일까. 색상이 흑색에서 은색으로 변했다.
“네놈이 은근슬쩍 늙은 사부를 부려 먹는구나. 이젠 위치를 추적당할 일도 심령을 침습 당할 일도 없다. 최모 악종의 심기가 놀랍구나.”
“최도식이 일부러 고르곤을 넘겨주었단 말입니까?”
“훗날을 기약했겠지.”
“그러고도 남을 놈이긴 하지요.”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도식은 사람을 해치는 분야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울 천재다. 그 정도 잔머리는 쓰고도 남았다. 어쨌든 넙치 놈에게 쓸만한 선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최모라는 악종이 괴뢰응귀술 운운했다고?”
“네, 괴뢰의 핵을 심었는데 왜 응귀하지 않느냐고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얼마나 웃기던지. 끄끄끄!”
무쌍이 낄낄거렸다. ‘히자마주쿠 가이시’를 외치다가 갑자기 한소끔 삶아낸 암탉 꼴로 망연자실한 최도식의 행태는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웃을 일이 아니야. 진정 악종이로다. 백 년 전 선사께서 사악한 술법 전승자들을 처단하러 혼슈로 건너가셨다. 삭초제근을 못다 하시고 천수를 다하시더니 하몽가의 뿌리가 남아 있었구나.”
“사부님의 사부님이요?”
“인석아, 노납은 사부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더냐. 사부님은 중국보다도 늘 바다 건너 왜놈을 경계하셨느니라. 노납이 의발 전수에 연연하는 것도 사부님의 유지 때문이니라.”
“제자가 열도를 박살 낼까요?”
“아서라 이놈아, 천지자연의 흐름은 제 갈 길이 있고, 국가의 흥망성쇠도 천지자연의 흐름에 따라가느니라. 인위적으로 간섭하면 반작용의 부담을 고스란히 안게 된다.”
“쩝! 괴뢰응귀술이 뭡니까? 최도식이 무척 기대했던 모양이던데요.”
“그럴 것이다. 괴뢰응귀술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병법 가문이었던 하몽가의 주술이다. 괴뢰의 핵은 남방남색꼬리부전나비의 애벌레에서 채취한 화학 물질을 주술 처리해서 피시술자의 뇌간에 심어둔 구슬이다. 시술자가 특정된 파장의 주술을 외면 시술자의 뇌파에 감응한 괴뢰의 핵이 깨어난다. 피시술자의 뇌가 오염되면 시술자의 명령에만 반응하는 괴뢰가 되느니라.”
“헐, 그게 가능합니까?”
어이가 없는 말씀이다. 주술적 효력이 실재하고 수없이 겪었지만, 이건 지나쳤다. 인간의 복잡한 사고 작용을 어떻게 전기 스위치처럼 껐다 켰다 할 수 있단 말인가.
“가능하다. 서일본 도야마 현에 중국의 황산 대협곡을 능가할만한 장대한 쿠르베 협곡이 있느니라. 그곳에 서식하는 남방남색꼬리부전나비 애벌레는 특이한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애벌레의 분비물을 빨아먹은 개미는 뇌가 위축되고 도파민 분비가 줄어들게 된다. 도파민이 줄어들면 기억과 호기심을 상실하고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게 된다. 중독된 개미는 죽을 때까지 나비 애벌레의 달콤한 진액을 빨아먹으며 애벌레를 보호한다. 괴뢰응귀술에 걸려든 사람도 다를 것 없다. 기억을 잃고 호기심이 사라진 희생자는 파장이 일치하는 시술자의 명령만 듣게 되지. 네가 괴뢰응귀술에 당하지 않은 이유는 깨달음의 과정에서 방사되는 방광(放光)이 괴뢰 핵을 녹여버렸기 때문이니라. 천하에서 네놈보다 악운에 강한 놈은 없을 게다. 컬컬컬!”
긴 설명을 마친 대우선사가 껄껄 웃었다.
“헐!”
무쌍은 순간적으로 소름이 쭉 끼쳤다. 최강의 독인 보툴리누스 톡신조차 눌러버린 신체다. 포토마인이나 칸타렐라같은 합성 독도 어쩌지 못하는 신체다. 잡술 따위에 당할 리야 없지만, 이물질이 직접 뇌를 공격하면 일시적 공백에 빠질 수도 있다. 촌각을 다투는 근신 공박 중에 편두통이라도 발동되면 치명적이다.
“사부님께서 툭하면 지팡이로 머리를 두드린 이유가 따로 있었구마요.”
“흘흘흘, 노납의 능력으로 뇌 깊숙이 박힌 핵을 제거하기 쉽지 않았느니라. 수시로 두드려서 분리하려고 애는 썼다만 네놈의 머리가 어디 보통 철두냐.”
“사랑의 몽둥이에 감정도 살짝 실렸겠지요?”
무쌍이 불량스런 눈으로 스승을 쳐다보았다. 사부의 명아주 지팡이는 공사장 파일 타공기를 찜쪄먹을 수준이다.
“흠흠!”
대우선사는 헛기침으로 대신했다. 딱 잡아떼고 싶었지만, 곧 왕산 할 몸으로 어린 제자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열쩍었다.
“최모라는 악종에게 공진파를 썼느냐?”
대우선사가 얼른 말꼬리를 돌렸다. 말발 좋은 제자 놈에게 휘말리면 본전도 못 찾고 밑천을 탈탈 털린다.
“호신기공으로 둘렀지만, 공방용으로 활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대타 스피드가 너무 빨라서 파동을 싣기도 힘들었습니다.”
“잘했다. 고대 닌자술에 상대의 기운을 흡수해서 분산시키는 법술이 있었느니라. 무협 식으로 표현하면 흡기공이지. 악종을 말살했으면 모르되 놓쳤으니 비기를 드러내지 않음은 잘했다.”
“막판에 지풍으로 다리 한 개와 눈 한 개를 못 쓰게 만들었습니다.”
“지풍? 소림일선지의 지풍 말이냐?”
“에이, 그건 지풍이 아니라 통배권 비슷한 격산타우의 일종이죠. 이렇게 말입니다.”
무쌍이 손바닥을 펴서 손목을 까딱했다. 포단에 놓고 두드리는 큰목탁이 휭 날아와서 손에 잡혔다. 큰목탁은 휴대용인 도량 목탁보다 열 배는 크다.
“허! 또 좌도방 기술 한 자락을 얻었구나.”
대우선사가 혀를 찼다.
“죄송합니다. 제자가 미욱해서 불법은 멀어지고, 사람 상하게 하는 무법만 자꾸 늘어나네요.”
무쌍이 뒷머리를 득득 긁었다.
“허허, 아수라의 업보 아니더냐.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시연이나 해 보거라.”
무쌍이 손바닥을 목탁에 슬쩍 붙였다가 떼었다. 대우선사의 동체 시력이 따르지 못할 빠르기다. 퍽- 목탁 반대쪽이 산산이 터져나갔다. 손바닥을 붙인 쪽은 멀쩡했다.
“오! 공진파가 경지에 올랐구나.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겠구나.”
“헤헤헤, 명아주 지팡이만 아니면 누가 저를 때리겠습니까. 소림일선지든 통배권이든 물체에 접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요. 진짜는 이겁니다.”
무쌍이 검지를 들어 허공을 콕 찍었다. 바우웅- 대기가 진저리쳤다. 물론 대우선사의 영안에 비친 심상이다. 퍽- 영고석 중턱에 두 뺨 깊이의 구멍이 뻥 뚫렸다. 대우선사가 무쌍의 깨달음을 돕다가 삑사리 나는 바람에 집어 던진 목탁이 박혔던 그 자리다. 수만 년을 버텨온 영고석이 성질 나쁜 스승과 제자의 손찌검에 몸살을 앓았다.
“헐!”
대우선사의 눈이 커졌다. 격산타우와 공간을 격한 기격은 차원이 다르다.
“거기 머꼬?”
“지풍입니다.”
“허, 진짜구나. 미려골이 찌릿하더냐?”
“네. 항문까지 저릿합니다.”
“흘흘흘, 전설로 전해지는 대력파천지를 내 눈으로 볼 줄이야.”
대우선사가 평소와 달리 홍소를 터뜨렸다.
“대력파천지요? 원리가 뭡니까?”
“이놈아, 나도 평생 궁리만 했지 실현 못 한 스킬이니라. 정법사 조사가 대력파천지로 삼백 장 밖의 당고조 눈을 뚫었다는 전설만 전해질뿐, 나도 아는 게 없다.”
“온갖 끔찍한 법술로 제자를 개 패듯 하는 사부님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심더. 불위야비불능야((不爲也非不能也)라,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허허! 제자 놈이 외국물을 처먹고 돌아댕기더니 입심만 늘었구나.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인 노납이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느냐. 짐작건대 이질적인 두 개의 기 사이에 걸린 양압 반발이 기를 발출한 듯싶구나.”
“레일건처럼요?”
“그렇지. 전기 뱀장어 신체조직이 발전기로 진화했듯이 네놈 신체조직이 고순도의 초전도체화 했을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