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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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장 인연중중5
‘쪽발이 새끼 좆퉁소 부는 소리 보소. 씨발놈아, 김빠진 맥주가 당근 오줌 맛이지. 꿀맛일 줄 알았나.’
잔뜩 벨이 꼬인 우범석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물 건너온 맥주를 마셔본 적이 없어서 국산 맥주가 맛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지만, 오쟁이 진 마누라도 남이 욕하면 성질난다. 속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바탕 쏟아내고 싶지만 무라이는 갑이고 자신은 을이다. 갑이 불평하면 을은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무라이상, 찝찝한 맥주는 치우고 화끈한 양주로 한잔 합시다.”
우범석이 인터폰을 눌렀다.
“형님, 부르셨습니까?”
벨 소리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20대 중반의 청년이 나타나서 허리를 구십 도로 꺾었다.
“면도날, 발렌타인 삼십 있지. 그거 두 병만 갖고 온나.”
“형님, 삼십짜리는 13호 검사실에 보낼 한 상자밖에 없는데……. 이십으로 하시지요?”
“새꺄, 가져오라면 가져와!”
우범석이 반쯤 마신 맥주잔을 집어던졌다. 무라이를 향한 짜증이 분출구를 찾았다. 청년은 날아오는 맥주잔을 빤히 보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퍽- 맥주잔은 깔끔한 청남방에 얼룩을 남기고 추락했다. 청년이 떨어지는 맥주잔을 발등으로 툭 차올려서 테이블에 정중히 올려놓았다. 모욕을 당했음에 불구하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특임조가 어깨 후까시나 넣는 양아치가 아니란 소리다.
“임마, 선물이고 뭐고 다 틀렸어. 아사리판에 선물 돌렸다간 눈치 없다고 욕만 먹는단 말이다.”
우범석이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면도날은 하몽 가문에 소속된 재일교포다. 특임조에 속해있지만 막 대할 수 있는 군번이 아니다.
“준비하겠습니다.”
면도날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탕비실로 들어갔다.
“휴우,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구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애꿎은 쫄따구만 잃었어.”
우범석이 침울한 얼굴로 김빠진 맥주병을 집어들고 병나발을 불었다. 캐피탈 빌딩에서 사달이 났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채업은 추잡하지만, 돈벌이는 그만이다. 썩은 고기에 파리가 꼬이게 마련이다. 배고픈 조직이 단물을 나눠 먹자고 풍국파를 건드린 사건이 한두번이 아니고, 박기충과 장영팔이 만만한 인간도 아니다.
곧 정리되리라 했던 싸움이 갈수록 격렬해졌다. 풍국파와 특임조는 이빨과 입술 관계다. 지원군을 보내려 했지만 무라이가 막았다. 캐피탈 건물에 신선조가 머문다고 했다. 우범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선조 둘이면 전국구 조직을 말아먹을 수 있다.
그런데 제대로 사달 났다. 폭탄이 터지고 건물이 무너졌다. 풍국파는 결딴났다. 신선조도 결딴나고, 정찰 보낸 특임조 둘은 돌아오지 못했다. 바로 코앞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습격자가 누구인지, 건물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몇 명이 죽었는지……. 당장 복지관의 코가 석 자다 보니 이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무라이상, 계집애를 배달한다는 말씀이 진심입니까?”
우범석이 책상에 놓인 손바닥 전단지를 흔들었다. 실종 아동을 찾는다는 문구와 멜빵 치마를 입은 귀여운 여자아이 흑백 사진이 인쇄된 전단지다.
전날 밤 폭발사고는 아직 언론을 타지 않았지만, 시내와 외곽에 경찰과 군인이 좍 깔렸다. 검문검색을 뚫고 전단지가 뿌려진 아이를 부산까지 배달할 자신이 없었다. 무라이의 약속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걸쩍지근할 수밖에 없었다.
“우상, 니뽄이노 조센진처럼 디디하게 일 처리 않스므니다. 부산 니뽄문화원이 움직였스므니다. 말썽 날 만한 자리에 전부 약을 처발랐스므니다. 조센진이노 뇌물만 먹이면 신칸센이 되므니다.”
무라이가 테이블 다리는 4개라는 식으로 단언했다.
‘씨발놈, 지들이 자랑하는 신선조도 콘크리트에 파묻힌 주제에 조까는 소리하네.’
우범석은 속마음과 달리 한숨을 푹푹 쉬었다. 무라이의 말을 반박하기 힘들었다. 필요한 자리, 필요한 지위에 앉은 놈치고 특임조 돈을 처먹지 않은 놈이 없다. 소금 먹은 놈이 물을 켠다지만, 이상하게 불안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우상, 외부 일은 문화원에 맡기고, 우리는 우리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되므니다. 기자재 정리는 끝났스므니까?”
“걱정하지 마시오. 통상적인 의료시설만 남기고 싹 정리해서 지하창고에 밀어 넣었습니다. 출입문은 용접하고 벽을 쌓아버렸소. 반골과 불독이 나와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우범석은 장담했다. 조금 전에 경찰이 한 차례 둘러보고 갔다. 물론 약 먹은 놈들이다. 김달수가 반골 박병규 검사와 불독 추부식 형사를 견제하겠지만, 마냥 믿을 수는 없다.
“사료 파쇄기는?”
“덩치가 커서 뒷마당에 파묻고 나무를 옮겨심었습니다.”
“대기자들은 정리됐스므니까?”
“입도 뻥긋 못하게 단속을 해 두었습니다.”
“단속?”
무라이가 눈을 치떴다.
“신체 포기각서를 쓴 도너와 말썽의 소지가 있는 것들은 지하실에 격리하고 임상시험 지원자는 생활관에 있습니다.”
“안 되므니다. 그들도 지하실에 처넣고 폐쇄해야 하므니다.”
무라이가 눈을 번들거렸다.
“증거물이 없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오히려 의심받을 텐데요?”
우범석이 뜨악한 눈으로 무라이를 쳐다보았다. 조심성도 지나치면 민폐다. 쪽발이는 입만 열면 되지만, 자신은 손발을 움직여야 한다.
“입이 증거므니다. 우상은 지시에 따르면 되므니다.”
무라이는 완강했다.
“휴우!”
우범석은 한숨이 나왔다. 어젯밤부터 잠 한숨 못자고 이놈에게 시달렸다. 의료시설과 기자재를 깨끗이 치우고, 바닥과 벽을 미싱하우스했다. 병동의 피비린내를 지우려고 암모니아수까지 뿌렸다.
“하야꾸 하야꾸!(빨리빨리!)”
무라이가 테이블을 탕탕 쳤다. 무라이는 무라이대로 몸이 달았다. 한국의 안기부는 부장검사 백으로 제어하지 못한다. 준비가 부족해서 문제지 지나치게 준비해서 잘못될 것은 없다. 지휘체계를 존중해서 직접 나서지 않는 것도 모르고 뻗대는 조센진이 답답했다.
‘어휴, 주먹이 운다 울어.’
우범석은 가슴 밑바닥에서 불덩이가 올라왔다. 쥐새끼같은 쌍판을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위치도 실력도 언감생심이다. 인터폰을 눌러서 면도날을 불렀다.
“팀원들 전부 출동시켜. 생활관에 남은 임상 지원자도 지하 대피소에 쓸어 넣어. 물과 빵을 충분히 넣어주고 출입문을 용접해라. 용접한 다음에 황산과 흑연을 섞어서 뿌리는 거 잊지 말고.”
우범석은 나름 용의주도했다. 용접 선에 황산과 흑연을 섞어서 뿌리면 급속 산화된다. 몇 시간만 지나면 몇 년 전에 용접한 듯 녹이 슬고, 색이 바랜다.
“알겠습니다.”
면도날이 날렵한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사무실을 나선 면도날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대답은 시원하게 했지만, 가슴이 답답해졌다.
“빌어먹을, 언제까지 백정 짓을 해야 하나!”
면도날이 중얼거렸다. 일본땅에서 먹고 살려다 보니 조직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
“흐으, 게이단렌(경단련) 회장 손녀가 문제인데…….”
무라이가 한숨을 푹 쉬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제도와 규칙은 선악에서 출발하지도 않았고, 선악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권력을 가진 자의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렇게 활용된다.
도너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괴팍한 노인이 눈에 어른거렸다. 한국인이야 죽든 말든 상관없지만, 오쿠 히토시는 본가인 히가시혼간지도 난처해하는 거물이다. 최고의 황금알을 낳는 한국 사업소를 접는 상황이 벌어지면 할복으로도 가문에 끼친 누를 사죄하지 못한다.
“요시, 세키가하라!(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시다 미쓰나리를 상대로 벌인 건곤일척 승부)”
무라이가 이를 악물고 불안을 다스렸다. 과연 세키가하라가 가능할지 두고 볼 일이다.
금호강 강변에 밤 도깨비가 후르르 날아내렷다. 양키 모자를 눌러쓰고 나이방을 걸친 무쌍이다.
“이것들 머하는 기고? 성의가 더럽게 없구마!”
무쌍이 황당한 눈으로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를 바라보았다. 밤을 새워 생존자 발굴을 해야 할 현장에 현장 보존 요원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만 하루가 지났음에 불구하고 건물 잔해를 손도 대지 않았다. 현장엔 폴리스 라인이 얼기설기 처져 있고, 포크레인 세대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경찰 인력의 태반이 데모 진압과 학원 사찰에 투입되었으니 인력이 부족하기도 할 것이다.
당국 책임자의 머리 뚜껑을 열어보고 싶었다. 최소한 인명 구조는 해야 할 것 아닌가. 어쩌면 생존자와 검은 장부가 발굴되었을 때 벌어질 사태를 감당할 회의를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사회는 그렇게 굴러왔다.
무쌍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풍국 캐피탈에 볼일은 없다. 나머지는 당국이 알아서 할 일이다. 지금은 바라크 건물을 확인할 시간이다. 세상의 부조리를 모두 상관할 수야 없지만, 눈앞에 뻔히 보이는 부조리를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다.
“대정 복지관?”
검은 철문 앞에서 무쌍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제는 간판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대정(大政)이란 일본식 한자어가 눈에 거슬렸다.
“행복한 삶의 복지(福祉)인지 뒤집히는 복지(覆地)인지 조사해보면 밝혀지겠지.”
쉭- 한 줄기 바람이 두 길 높이의 담을 넘어갔다. 사뿐 내려선 곳이 하필 개집 앞이다. 그림자에 놀란 도사견 두 마리가 개집에서 튀어나왔다. 으르르- 미처 짖기도 전에 손바닥이 대가리를 쓰다듬듯이 지나갔다. 낑- 덩치가 송아지만 한 도사견 두 마리가 풀썩 엎어졌다.
“한 시간만 푹 자라. 견생이 불쌍해서 죽이지는 않으마.”
둥- 공간지각력이 부챗살처럼 좍 퍼졌다.
‘하나 둘 셋 넷……. 뭐가 이리 많아?’
무쌍의 얼굴이 곤혹스러워졌다. 심상에 그려진 인간의 생기가 무려 칠십이다. 장영팔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 상주하는 특임조는 20명이다. 놈의 말을 액면대로 믿는다면 50명은 부외 인물이란 소리다. 휭- 밤 도깨비가 사라졌다.
무쌍은 자연동화술을 발휘해서 첫 번째 바라크 현관을 밀고 들어섰다. 퀴퀴한 땀 냄새와 발 고린내가 코를 후려쳤다. 합숙소가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중앙에 거실을 두고 방이 네 개다.
잠들어 있는 놈은 열아홉, 한 명이 비었다. 무쌍은 문을 밀고 들어가려다 귀를 세웠다. 건너편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바라크 규모로 볼 때 다른 공간이 있다. 합숙소를 조용히 빠져나와서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무라이상, 김달수 부장검사의 연락이 왔습니다. 수사 회의에서 반골과 불독을 수사팀에서 배제했답니다.”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요시, 안기부가 문제므니다. 오열의 연락은 왔스므니까?”
“장팔수와 연락이 안 됩니다. 이 새끼가 처먹을 때는 귀신처럼 나타나더니…….”
우범석이 이를 갈았다. 그가 아무리 성질 내봐야 응심제 지하 이 층의 식물인간과 연락이 닿을 턱이 없다.
‘빙고!’
무쌍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편복주렴으로 창문에 거꾸로 매달려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암막 커튼에 가려져 빛 한점 스며 나오지 않았다. 손을 살짝 흔들자 커튼 한쪽이 스르르 올라갔다. 염력은 의외로 쓸모가 많았다.
척 보기에도 밝은 세상에서 살 것 같지 않은 두 놈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쪽발이로 보이는 놈과 주변머리를 바싹 쳐올린 놈은 제법 무술을 수련한 티가 났다.
“문화원 쪽에선 소득이 있습니까?”
“대구 지부장 성깔 더러운 놈이므니다. 기름칠 안 되므니다. 시라이상도 손을 들었스므니다.”
무라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세간엔 다이세이요쿠산카이가 국민의용대에 흡수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경제계 거물, 중의원과 참의원, 고급 관료, 자위대 등의 주요 인물이 거의 대정익찬회에 소속되어 있다. 문화원 원장 시라이는 다이세이요쿠산카이(대정익찬회) 멤버다. 한국 인맥이 넓은 시라이가 몇 가지 경로로 지부장을 접촉하려 했지만 이대덕은 요지부동이었다.
“시라이상까지 손을 들었다면 당분간 사업을 접고 잠수해야 합니다. 도너는 어떻게 배달할 겁니까?”
“바늘은 짚단에 숨기라는 말이 있스므니다. 부장검사의 승용차를 이용하면 되므니다.”
“김달수가 자신의 목을 조르는 짓을 할까요?”
우범석은 회의적이었다. 아무리 돈을 좋아하는 김달수라도 차량까지 내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흐흐흐, 김달수가 그 나이에 영계를 안는 맛을 포기할까?”
“아하, 혈액치환!”
우범석이 무릎을 쳤다. 김달수는 복지관에서 분기마다 전신 혈액을 십 대 후반의 신선한 혈액으로 치환한다.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절륜한 정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영계 맛을 계속 보려면 협조할 수밖에 없다.
‘흐흥, 썩은 냄새가 풀풀 나는구마. 김달수! 흐흐흐!’
무쌍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김달수는 어차피 살려둘 생각이 없었지만,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한가지 늘었다. 무라이도 귀에 익은 이름이다. 무라이 유우소오, 일본군을 지휘해서 궁궐 수비대를 사살하고 건청궁에 난입한 지휘관 중의 한 놈이다. 물론 우범선이 일본군과 내통하지 않았으면 수비대가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백 년, 무라이라는 성을 사용하는 왜놈이 더러운 발을 한국에 들이고, 결탁한 한국놈이 있고, 비호하는 권력층이 있다. 흑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네놈들은 곱게 죽지 못한다.”
바라크 지붕에 시퍼런 맹수의 눈이 둥실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