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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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장 인연중중7
“아버지 이름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고!”
무쌍의 눈에 회한이 스쳐 갔다. 아들은 다 같은가! 무쌍 본인도 누구 자식이라는 말을 들을세라 학대와 굶주림을 견디며 짚은다리에 붙어있지 않았던가. 후레자식이 아니라면 당연히 아비의 얼굴에 먹칠하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는 다 같은가! 당신은 길거리에 버려진 찢어진 고무신, 행인이 밟고 다니는 연탄재, 칼자국 무수한 시장통 생선장수 도마일지언정 자식은 윤기 흐르는 가죽구두를 신고, 기름보일러를 돌리고, 시장통을 기웃거리지 않기를 바라는 존재가 아버지다.
고갯마루에서 갑작스러운 눈보라를 만나도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두렵지 않았다. 육신은 사라져도 아늑한 굴티, 얼굴이 후끈한 모닥불 열기, 등을 감싸 안은 든든한 가슴의 온기는 추억으로 남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특임조 녀석이 그리 미워 보이지 않았다.
“하극도, 너는 일본인이냐?”
무쌍이 첫 번째 시험을 던졌다.
“저는 하극도가 아니라 사성(賜姓) 김 씨, 김극도입니다. 저는 한국인입니다. 시조가 일본인이지만 400년이나 한국땅에서 살았고, 한국 여자와 결혼했으니 한국인이지요.”
“사성 김 씨라면 김충선의 후손?”
무쌍은 얼떨떨했다. 재일교포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재일교포에 관해서 관심 기울여 본 적이 없다. 교포 야쿠자 한 놈 잡도리하는 중에 갑작스럽게 특이 족보가 튀어나왔다.
“그렇습니다. 조선에서 항왜영장이라 불렸던 사야까, 김충선이 제 시조입니다.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화태(사할린) 벌목공으로 강제로 이주당하면서 성이 하씨로 바뀌었습니다.”
하극도의 음성에 울분이 실리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삼대에 걸친 기구한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달성군 지역의 부농이었던 조부는 이유 없이 강제로 이주당했다. 이주지는 남사할린(북위 50도 이남지역은 일본령이었음) 벌목장이었다. 독립군을 도왔다고 하지만, 진짜 이유는 혈통 때문이었다.
일본인 특히, 지배층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한 족속이었다. 400년 전 조선에 항복한 사야까의 후손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죽음의 땅인 사할린으로 추방하고 성까지 바꾸었다. 사성 김 씨는 책망한다. 욕한다는 뜻의 하(荷)로 바뀌었다. 조부는 고된 노동과 거친 자연에 시달리다 아버지를 남기고 일찍 돌아가셨다. 진짜 사망 원인은 울화병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화태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 나던 해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일으켰다. 이듬해 군함도로 끌려간 아버지는 일본이 패망하던 날까지 막장에서 하루 16시간씩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렸다. 일본 패망 소식도 막장에서 들었다고 했다.
패전 후 오사카에 자리 잡은 아버지는 비슷한 처지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다.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진폐증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일본을 저주하고 한국을 원망했다. 아버지만이 아니라 강제 징용자들 모두가 그랬다.
진폐증에 걸린 강제 징용자들은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미쓰이를 상대로 보상금과 치료비를 요구했다. 돌아온 것은 콧방귀였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인 관계로 강제노역이 성립되지 않고, 치료비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때 한국 정부에 지불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열도에서 떠들지 말고 반도로 건너가서 떠들라는 소리였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도 치료 혜택을 받지 못했으니 일본 정부의 행태가 놀랍지도 않았다. 문제는 한국 정부였다. 피폭당하고, 진폐증을 얻은 강제징용자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말 한마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가해자는 일본이지만, 조국인 한국도 아버지를 버렸다.
아버지는 병원비를 아끼려고 줄곧 자가 치료에 매달렸다. 7년 전 어느 날, 누군가가 알려준 단방에 혹한 아버지는 조선호박 속을 긁어내고 요소 비료를 가득 채워서 푹 고아 드셨다. 아버지는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지 못했다. 어쩌면 지긋지긋한 고통이 싫어서 스스로 목숨을 끝장내 버렸을지도…….
아버지는 죽기 전날 밤에 아들을 불렀다. 화태 하씨가 아니라 사성 김씨가 뿌리임을 알려주고, 인간답게 살라고,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라고 당부했다. 불행히도 아버지 당부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십 대의 하극도, 아니 김극도는 혈기방장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무엇이 달라지는데? 아버지는 뿌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인간답게 살라고 당부했지만, 분하고 원통했다. 힘이 없어서 이리저리 휘돌리는 삶이 증오스러웠다.
오사카 뒷골목을 전전하며 칼질하고 주먹질하던 중에 하몽 가문에 스카우트되었다. 그렇게 무사로서의 의로운 결단을 내린 시조 김충선의 후손은 야쿠자가 되었다.
“인간답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동토의 땅 사할린에서 화병으로 돌아가신 조부를 위해서, 조국을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한 아버지를 위해서, 일본이 싫고 깡패 아들이 싫다고 고령 옛집으로 돌아가 버린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크흐흐흐!”
면도날 김극도가 눈물을 쏟았다. 무쌍을 만난 김극도는 시대의 격류에 휩쓸린 삼대의 기구한 운명을 정리될 때가 되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눈앞의 존재를 7년 전에 만났더라면 결코 야쿠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 한 방이다. 죽이면 죽는 거고 살려주면 다리를 잡고 매달릴 참이다.
“내가 살려주면 어떻게 살 것이냐?”
무쌍이 두 번째 시험을 던졌다. 그는 회개하면 천국의 문을 열어주는 목사가 아니라 전장의 악몽 블랙맘바다. 김극도의 사정이 무엇이든 그가 하몽가의 하수인으로서 저지른 죄악의 골은 얕지 않았다.
“재산을 털어서 고아원을 열겠습니다. 부모 없고 배고픈 아이들을 거두어서 저처럼 남을 등쳐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르겠습니다.”
김극도를 물끄러미 내려보던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잘못 들었을 뿐 바탕은 순후한 놈이다. 마침 히가시혼간지 내부 사정을 아는 놈이 필요하던 참이다.
“시간이 없다. 내가 파악한 복지관 내의 인원은 칠십 명이다. 특임조는 저놈 쪽발이까지 22명이다. 다른 인원이 있나?”
‘살았다!’
김극도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확하십니다. 나머지 48명 인원 중에 아동 매춘용 여자아이 8명, 남자아이 2명, 임상시험에 지원한 혈액 치환용 젊은 남녀 20명, 장기 이식 도너 18명입니다. 도너는 돈이 궁해서 지원한 자원자도 있고, 필요 때문에 납치하거나 속여서 데려온 자들도 있습니다.”
김극도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인원 관리와 재무관리를 맡은 덕분에 보스인 우범석 이상으로 현황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다.
무쌍은 가슴이 턱 막혔다. 마지막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패망 후 일본으로 돌아갈 때 다음과 같이 저주를 뿌렸다.
[일본이 졌지만, 조선이 이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조선인에게 총칼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뿌렸다. 패배주의에 빠진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조선은 100년이 지나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나는 그 전에 돌아올 것이다.]놈은 저주를 남긴 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아베 노부유키는 한국에 발을 들이지 못했지만, 놈이 남긴 섬뜩한 저주가 떠돌아다니고 있다.
“흐흐흐, 열도에 동방불패의 저주를 뿌려주지. 너는 즉시 복지관 고객 명부, 아니 짐승 명부를 확보해라. 특임조와 연결된 병원 담당자, 복지관 운영에 관여한 한국인, 외곽 조력자 명단도 챙겨라.”
“알겠습니다. 선생님을 어떻게 부르면 되겠습니까?”
“나는 동방불패다.”
둥- 듣기 좋은 바리톤 음성이 김극도의 고막을 두드렸다. 말에 실린 힘과 의지가 오롯이 느껴졌다. 같은 인간인데 이처럼 다를 수 있을까. 감히 이름을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잠들어 있는 특임조는 어떻게 할까요?”
“죽이라면 죽일 수 있겠나?”
“대의를 위해서라면~”
김극도가 어물거렸다. 온갖 오물을 묻힌 더러운 손이다. 배덕의 피가 더해진들 달라질 것도 없다.
“김극도, 이 세상에 대의는 없다. 대의란 자기변명이고 강자의 화장빨이다. 대의 운운하는 놈치고 사기꾼 아닌 놈이 없다. 흔들리지 않는 의지, 인간의 조건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특임조는 내가 처리하지.”
“감사합니다. 저는 자료를 챙기겠습니다.”
말을 갈아탔지만 몇 분 전까지 동료였던 놈들이다. 명줄을 끊으라면 끊겠지만, 그리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김극도가 캐비닛과 금고를 열어서 자료를 쓸어담기 시작했다.
“선생님, 준비되었습니다.”
김극도가 큼직한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왔다.
“잠시 대기하라.”
무쌍이 번쩍하고 사라졌다. 담배 한 개비 태울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무쌍이 돌아왔다. 눈치 빠른 김극도는 묻지 않았고 무쌍도 알려주지 않았다.
“복지관에 차량이 있나?”
“승용차 두 대와 25인승 마이크로버스가 한 대 있습니다. 키는 제가 관리합니다.”
“잘 되었구마. 사람들을 데려와.”
“저어 그게~”
김극도가 머뭇거렸다.
“숨겨진 장애물이 있나? 담벼락을 돌아다니는 개 여덟 마리밖에 없는데. 열 마리 중에 두 마리는 잠재웠거든.”
“헉!”
김극도는 깜짝 놀랐다. 엄청난 존재인 줄은 알고 있지만 넓은 복지관 대지를 감시하는 번견 숫자까지 정확히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지하실에 몰아넣고 철문을 용접했습니다. 용접된 철문 두 개를 불어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쯧! 가지가지 하는군.”
아파돔베 지하 석실에 갇혀있던 프랑스인들이 생각났다. 악랄하기에는 쪽발이가 부두교도보다 한 수 위다. 무쌍이 벌떡 일어나서 우범석의 팔다리 관절과 턱관절을 잡아뽑고 충권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꾸억!”
우범석이 입을 쩍 벌린 채 부댓자루처럼 픽 쓰러졌다. 이미 관절을 뽑아놓은 무라이도 관자놀이를 한 대 맞고 쭉 뻗었다. 사정 둘 이유가 없는 놈이다.
“가자!”
김극도가 흠칫했다. ‘안내해라,’가 아니라 ‘가자.’다. 무라이와 우범석을 흘끔 돌아보았다. 삶은 문어처럼 퍼진 두 사람의 눈이 게게 풀렸다. 정상적인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상태다. 한겨울 전봇대에 오줌발을 쏟은 듯 후르르 진저리쳐졌다. 분수를 모르고 엉겼으면 자신도 저 꼴이 되었다. 캐리어를 테이블 밑에 밀어 넣고 얼른 뒤따랐다.
무쌍은 장영팔이 대기소라 칭했던 좌측 바라크에 거침없이 들어섰다. 오래 머무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밤이 길면 꿈도 많아진다. 출입구를 열고 들어서자 꾸릿한 냄새가 풍겼다.
김극도가 스위치를 올렸다. 중앙 복도를 두고 좌우로 크고 작은 룸이 줄지어 배치되어 있다. 외부에서 보기보다 실내가 넓었다. 첫 번째 룸의 문을 밀었다. 완강한 저항이 느껴졌다. 절그럭절그럭- 김극도가 황급히 키를 찾았다.
무쌍이 손을 흔들고 염력으로 안쪽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도어 고리가 벗겨졌다. 김극도가 잽싸게 문을 밀고 스위치를 올렸다. 세평쯤이나 될까. 요술 봉을 든 팅크벨이 전사된 핑크 벽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그려진 천장 벽지, 장난감 같은 화장대와 아담한 옷장, 방 가운데 놓인 큼직한 침대만 아니라면 철저히 아동틱한 방이다. 무쌍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용도가 뻔한 방이다.
“특별관광객이 아동 매춘하는 방입니다. 약품으로 냄새를 중화했습니다.”
“음!”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인간의 체취가 감지되지 않고 강렬한 석탄산 냄새만 코를 찌른다 했다.
“나머지 방도?”
“예, 이곳은 아이들과 죽음이 예정된 도너가 기거하는 건물입니다. 자유의사로 장기를 팔고자 하는 사람, 젊은 피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숙소는 오른쪽 건물에 있습니다.”
무쌍은 달다 쓰다 말없이 우측 다섯 번째 방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눈치 빠른 김극도가 커다란 원목 책장을 밀어냈다. 별다를 것 없는 벽이 드러났다. 무쌍이 불문곡직 벽을 후려쳤다. 캉- 고막이 터질듯한 쇳소리가 울렸다.
용접해봐야 프레임이 통째로 떨어지면 소용없다. 철문이 프레임 채로 튕겨 나간 자리에 시커먼 계단이 입을 딱 벌렸다. 김극도가 고개를 설설 저었다. 인간의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는 존재다.
“악당 유전자가 따로 있나? 지구 반대쪽에 사는 놈들인데 하는 짓은 어째 이렇게도 같을까!”무쌍이 계단을 내려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계단이 온갖 잡동사니로 꽉 막혔다. 부서진 책상, 주방 비품, 자동차 타이어, 각종 헬스기구까지 동원되었다. 김극도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 인간은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미물이다. 급한 김에 마구잡이로 처넣었는데 막상 자신의 일이 되자 치울 일이 난감했다.
“잠시 올라가 있어라.”
무쌍은 김극도를 계단 위로 올려보내고 전리품인 고르곤을 꺼냈다. 치우기 힘들면 분쇄하면 된다. 와아앙- 원심력을 얻은 고르곤의 좁은 공간을 찢을 듯이 포효했다. 파아악- 윙윙윙- 고르곤에 난타당한 잡동사니 무더기가 무채를 썰 듯이 자잘한 조각으로 다져졌다. 나무와 플라스틱은 물론이고 강철도 수수깡처럼 잘렸다. 소변보고 끝방울을 털 시간에 잡동사니가 사라지고 자잘한 대팻밥만 남았다. 락샤샤에 비길바는 못되지만 좁은 공간에서는 그런대로 쓸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