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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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장 인연중중8
“쓸만한데!”
무쌍이 살짝 감탄했다. 고르곤 강선과 편추는 72mm 경량 박격포탄 폭발력에 해당하는 압력을 거뜬히 버텨냈다. 소재 산업은 제조업의 바탕이자 국방력이다. 질 좋은 강철로 포신을 만들어야 사거리를 늘릴 수 있고, 질긴 섬유가 있어야 경량 방탄복을 만들 수 있다.
포탄 몇 발 날리고 포신이 터지는 야포, 어군 탐지기를 단 구난함, 순간 가속력이 떨어지는 파워 팩을 장착한 전차가 유사시에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슬프게도 쓸만한 고르곤의 소재는 일본산이다. 한국은 기껏 나일론과 타이어코드지를 만드는 수준이다.
아레바의 원자력 기술을 한국에 이전하려고 했을 때 정부는 미국 눈치를 보며 거절했다. 무쌍은 차려준 밥상을 걷어차는 행태에 질렸다. 한국이 갈 길은 너무나 멀고 아득했다.
잔해를 걷어낸 자리에 강철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잡이와 돌쩌귀를 없애고 몽땅 용접해 버렸으니 문이 아니라 그냥 철벽이다. 안쪽에서 철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쿵쿵 울렸다.
“허, 이것도 용접했어!”
무라이 일당이 나 몰라라 하면 안에 갇힌 48명은 십 년, 백 년이 지나도 햇빛을 보지 못한다. 한마디로 영구 실종자 명부에 오른다.
“이기 머꼬? 현대판 고려장이가?”
무쌍이 곱지 않은 눈길로 김극도를 돌아보았다. 계단을 내려오던 김극도가 살벌한 눈길에 화들짝 했다.
“대정익찬회는 일본인과 미국인, 유럽 코카서스만 인간 취급하는 극우 인종주의자들입니다. 무라이는 유별난 혐한 주의자로 한국인을 돈과 교환되는 물건으로 여기는 놈입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증거 인멸을 염두에 두고 봉인했습니다.”
“이들을 유기한 채 토낀다고?”
“죄송합니다.”
김극도가 퍼렇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특임조를 지휘해서 만든 상황이니 할 말이 없었다.
“그동안 희생자는 어떻게 처리했나?”
“사료 분쇄기로 갈아서 금호강에 버리거나 와룡산에 암매장했습니다.”
“와룡산?”
무쌍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와룡산에서 어린아이 유골 다섯 구가 발견된 적이 있었다. 와룡산은 해발 300m에 불과하지만 제법 골이 깊은 산이다. 직선거리로 4km, 서대구로를 따라가도 7km밖에 안 된다. 발견된 어린아이 유골은 두말할 것 없이 이들이 암매장한 아이다.
“대정복지관이 사업을 시작한 지 몇 년이나 되었나?”
“1965년부터입니다. 일본 유흥가에서 필요로 하는 접대부와 매춘녀 중개를 시작으로 차츰 사업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우범석이 아동매춘을 시작했고, 무라이 감사가 취임한 5년 전부터 장기 밀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끙! 클로스트리듐(파상풍균) 같은 새끼구마. 사료 분쇄기로 갈아버려야겠어. 방풍림 관리원으로 보냈다간 선량한 악당까지 오염되면 큰일이지.”
무쌍이 이를 갈았다. 우연히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악랄한 쪽발이와 빌붙은 매국노가 연연 세세 빨대를 꽂고 피를 쪽쪽 빨았을 상황이다. 방풍림 인턴 관리원으로 예정된 무라이와 우범석의 운명이 갑자기 변경되었다. 노바토피아 종신노역형이 합당하지만 받은 대로 돌려준다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강철 문을 노크하듯이 두드렸다. 떵떵- 울림이 둔중했다. 강철판 두께가 적어도 50mm 이상이다. 안쪽의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을만했다. 비상 파우치에서 발사라를 꺼내 들었다. 좋은 연장 두고 땀 흘릴 이유가 없다.
발사라로 용접선 안쪽을 죽 그었다. 문구 칼에 종이 잘리듯 강철 문이 소리없이 잘렸다. 흡공파로 잘린 철판을 흡착해서 바깥으로 끌어냈다. 대형 컨테이너선 홀수에나 사용될 후판에 사람이 깔리면 쥐포가 된다.
텅- 강철 문을 번쩍 들어서 벽에 기대 세웠다. 노가다 지존 쌈디가 아쉬운 대목이다. 지하실 특유의 굼굼한 곰팡내와 인간의 몸에서 발산된 온갖 채취가 코를 쥐어박았다.
딸깍- 김극도가 스위치를 올렸다. 천장에 매달린 백열들이 주르륵 켜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들어찬 실내에 빛의 폭우가 쏟아졌다.
“꺄악!”
벽을 두드리던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지하실 안쪽으로 도망쳤다. 공포는 전염된다. 다른 사람들도 출입구와 멀리 떨어진 구석으로 몰렸다. 겁에 잔뜩 질린 얼굴들이 숨을 죽이고 침입자를 흘끔흘끔 훔쳐보았다. 30평 남짓한 지하실에 48명의 남녀노소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지만,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김극도가 무쌍을 흘끔 쳐다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청바지와 청남색 남방, 챙이 긴 모자와 나이방은 특임조 패션이다. 공교롭게도 선생님의 옷차림도 특임조 패션과 거의 비슷했다. 어젯밤부터 대기자들을 쥐잡듯했으니 놀랄만했다.
무쌍은 문설주를 밟고 겁에 질려있는 대기자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어린아이들을 스쳐 갔다. 아이들의 시선도 일제히 무쌍을 향했다.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을 연령대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잔뜩 웅크린 자세, 불안과 공포로 울음을 터뜨릴듯한 표정,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공허한 눈빛, 입술을 진하게 물들인 연분홍 루주가 슬프고, 시퍼런 마스카라가 가슴을 찔렀다.
“망할 놈들!”
불덩이가 욱하고 치밀었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일상다반사인 아동 매춘이 한국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을 줄이야. 성인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매춘을 한다면 개인의 책임이고 탓할 일도 아니지만, 아동 매춘은 전혀 다른 문제다. 어린 나이에 정신과 육체가 망가진 아이들은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해진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종자가 아동 성폭행범이다.
“저 애는 머꼬?”
무쌍이 중년 여자의 치마꼬리를 잡고 있는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를 가리켰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내린 아이의 도드라진 이마가 누군가를 닮았다. 아무리 짐승들이지만 설마 저토록 연약하고 귀여운 것을 건드리랴 싶었다. 열두세 살짜리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심장 이식용 도너입니다. 일본 측 물품 인수자가 도착해 있습니다.”
김극도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어서 속삭였다.
“머라?”
합숙소 휴게실에 웬 양복을 입은 놈이 있나 했더니 그놈인 모양이다.
“교통사고로 심방이 파열된 정계 거물의 손자가 대기 중이랍니다. 최고 수준의 의사들이 달라붙어서 보전과 생명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한계에 달했다고 합니다. 저 애는 이억 엔짜리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상대의 신분 때문에 하몽가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일본으로 데려간다고? 검문검색이 만만치 않을 텐데.”
“김달수 부장 검사가 본인의 차량을 내주기로 했습니다.”
“끙! 똥 덩어리 새끼가 가지가지 하는 구마.”
무쌍은 할 말을 잃었다.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검사와 판사는 사회 정의를 유지하는 법의 최후 보루다. 스폰서 검사, 스폰서 판사, 스폰서 의원 등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토록 썩은 놈이 있을 줄은 몰랐다.
어린 소녀를 향해있던 시선이 중년 여자를 향했다. 인생의 절정기를 넘긴 나이지만 색기가 남아있는 얼굴에 잘 관리된 몸매다. 여자가 눈웃음을 쳤다. 눈 안쪽에서 눈꼬리 쪽으로 물결치듯 번져가는 묘한 눈웃음이다. 무쌍이 흠칫했다.
‘윽, 이민주!’
무쌍은 하마터면 입 밖으로 소리를 낼 뻔했다. 혜영의 친모인 이민주 여사다. 페미니즘의 대모로 불리는 여성 운동의 기수, 국회 배지까지 달았던 여자다. 혜영에게 말은 많이 들었어도 이민주와는 딱 한 번 만났다. 그 한 번의 만남이 치명적이었다. 찢어 죽이고 싶었던 여자, 저 여자가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저 여자도 모성애가 있었던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민주는 혈관에 찬피가 흐르는 여자다. 혜영을 집권당 당수의 조카와 결혼시키려고 별별 수단을 다 썼던 여자다. 혜영이 미국으로 떠나버린 배경엔 이민주도 큰 몫을 했다. 혜영이 끝내 결혼을 거부하자 딸이 거주하는 적산 가옥을 팔아버릴 정도로 독한 여자다. 무쌍 본인도 이민주가 경찰에 압력을 넣는 바람에 다섯 번이나 연행되었다. 세상은 넓고도 좁았다.
“저 여자는 머꼬?”
무쌍은 이민주를 모른 체하고 김극도에게 물었다. 아는척할 이유도 없고, 내키지도 않았다. 똥을 밟으면 종일 찝찝해진다. 그냥 피해 가는 것이 상수다.
“골든 블러드라 불리는 알에이치 널(Rh null) 혈액을 보유한 여자입니다. ‘알에이치 널’ 혈액을 가진 자는 전 세계에 여섯 명만 알려져 있습니다. 저 여자가 일곱 번째입니다. 물론 비공식적입니다.”
“엘에이치 널! 거기 머꼬?”
알에이치 혈액형 중에 주요 항원 다섯 가지가 모두 결여된 바디바바디바(-D-/-D-)는 유명하지만, 알에이치 널은 금시초문이다.
“적혈구에 존재하는 160개 항원 전부가 없는 피입니다. 골든 블러드는 어떤 혈액형을 가진 사람에게도 수혈할 수 있습니다. 바디바바디바도 문제없죠. 골든 블러드의 진정한 가치는 장기 이식 수술 시에 위력을 발휘합니다. 골든 블러드를 수혈하면 면역 저항이 현저히 낮아집니다. 저 여자의 피 400mL 한 팩 국제 시세가 10만불입니다.”
“허, 나름 비싼 여자였군. 그러니까 부인과 여자애가 한 세트란 말이구마.”
“그렇습니다. 저 여자는 모르고 있지만, 자신의 피만 팔아도 한평생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저 조합을 찾아내는데 내각조사실까지 동원되었답니다.”
“허, 기가 막히는 소리구마. 저 여자는 얼마야?”
“저 여자는 수혈 조건으로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와 오찬을 요구했습니다. 천만 엔은 덤이고요. 특임조가 받는 보수는 도너와 알에이치 널 한 세트로 5억 엔입니다.”
“헐, 사람 둘을 배달하고 40억 원이라~ 물건을 찾기만 하면 엄청나게 남는 장사군.”
“예, 아다리만 잘 맞으면 한방에 100억을 벌 때도 있습니다. 대정익찬회가 마약에 손대지 않는 이유도 장기 밀매 수익이 워낙 크기 때문입니다. 노다지 시장이지만, 병원의 적극적인 협조와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필요한 하이테크 산업이라 아무나 덤비지 못하는 사업입니다.”
“백억!”
무쌍이 흠칫 놀랐다. 세계적인 어둠의 조직들이 장기 밀매에 매달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정자를 팔 생각이 없느냐고 묻던 아레바 회장 자베르가 생각났다. 우월한 난자와 정자는 서유럽 국가에서 상품화 된 지 오래고, 지하시장에는 인간의 심장, 폐, 콩팥, 간 등이 안심, 등심, 도가니, 안창살처럼 매매되고 있다.
‘흐흐, 늙은이가 앙게 시카거를 찾아주면 4억 달러를 주겠다고 했지. 장사라면 블랙맘바가 최고지. 앙게 시카거가 퍼플 치킨으로 변신했다는 사실을 알면 얼굴이 썩어 문드러지겠지. 그놈은 가루라의 비밀을 알고 있으려나?’
상황과 관계없는 한가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다.
“선생님, 어떻게 처리하실 계획입니까?”
김극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입이 48개다. 여간 골치 아픈 상황이 아니다.
“고민할 것 없다.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은 돌아가고,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은 여비를 줘서 보내라.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내가 거두기로 하지.”
“아하, 그렇군요!”
김극도가 큰 깨달음을 얻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자들은 두 부류다. 납치된 사람과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제 발로 온 사람이다. 매춘에 동원된 아이들은 전부 고아다. 고아 열 명 외에는 풀어주면 그만이다.
대정복지관 사건이 세상에 알려져도 상관없다. 대기자들이 아는 것도 없지만, 외부에 떠들면 더 좋다. 널리 알려져서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생님은 그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말씀하셨다.
“아앙!”
꼬마 숙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무서운 아저씨 둘이 입구에 버티고 서서 숙덕거리자 잔뜩 겁이 났던 모양이다. 대기자들의 눈길이 일제히 아이를 향했다. 불안, 초조, 짜증으로 흔들리는 눈빛이다.
“닥치지 못해!”
누군가 잔뜩 목소리를 낮추어 아이를 야단쳤다.
“애 좀 못 울게 해요.”
몇몇 여자가 소리치고, 사람들의 시선이 이민주를 향했다.
“영숙아, 울면 큰일 난다. 우리는 곧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갈 거야. 뚝 그치지 않으면 비행기도 못 타고 아이스크림도 못 먹어.”
이민주가 아이를 다독거렸다.
“아앙!”
“흑흑흑!”
“아저씨, 살려줘요!”
꼬마가 울자 매춘 아동들이 가세했다.
“조용히 못 해!”
“씨바, 클 났네.”
아이들의 울음이 커지자 사람들이 안절부절못했다. 무쌍의 미간에 내 천자가 그려졌다. 고난에 처하면 본성이 드러난다. 짐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인간들이다. 돼지를 밀식하면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는다. 닭장에 갇힌 닭은 다른 닭의 볏을 쪼거나 항문을 쪼아댄다. 이들도 그와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이다.
“조용!”
묵직한 음성이 지하실을 드르릉 울렸다. 거짓말처럼 아이들의 울음이 딱 그쳤다. 무쌍이 저벅저벅 걸어서 꼬마 아이의 앞에 섰다. 꼬마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올려보았다.
“너 이름이 영숙이니?”
“……”
아이가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무쌍의 얼굴에 미소가 주르륵 퍼졌다. 아이도 따라서 배시시 웃었다. 진정한 간섭장 공능이다. 무쌍이 주저앉아서 팔을 벌렸다.
“아저씨에게 오너라.”
아이가 이민주의 손을 뿌리치고 도도도 달려서 무쌍의 품에 덥석 안겼다.
“어머나! 저년이?”
이민주가 탄성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