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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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장 인연중중10
“읍읍!”
사태를 짐작한 우범석이 몸부림쳤다. 입을 열 수 있어야 협상이든 애걸이든 해 볼 것 아닌가. 결사적으로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무라이는 눈을 꾹 감았다. 관리담당이 배신했을 때 이미 다 틀렸다. 이래서 조센진은 이등 신민이다. 젖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다향 그윽한 고향 다이센이 눈앞을 스쳐 갔다. 다이센지에서 마지막 수련에 몰두해 있을 동생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 달이면 동생도 한국으로 파견된다.
‘유키, 간코쿠에 오면 안 된다. 텡구, 아니 오가미(大神)가 도사리고 있다.’
생을 포기한 무라이는 간절히 기원했다.
무쌍이 천돌혈과 거궐혈을 두드려서 성대를 터주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우범석이 갈라진 성대를 다스려서 결사적으로 소리쳤다.
“도대체 이유가 뭔가?”
목숨을 포기한 무라이는 눈물 콧물을 흘리는 우범석과 대조적으로 침착했다.
“이유? 네놈은 이유가 있어서 이따위 짓을 하고 있었나? 이십 세기 판 조선감화령(일제가 1923년에 18세 이하 걸식 아동과 청소년을 강제 수용한 법령. 실제로는 독립만세 시위 가담자와 노동착취 수단으로 쓰였다.)과 국가총동원령이라도 떨어졌나?”
‘저놈이 어떻게 알았지?’
무라이가 흠칫했다. 사태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죽더라도 회에 정보를 알리고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너희 두 놈은 영혼을 희롱하고 생명을 농락했다. 네놈들이 갈 곳은 무혈지옥(無血地獄)이다. 영혼은 육도(천상, 인간, 축생, 수라, 아귀, 지옥)에 속하지 못하는 무유영혼이 될 것이며 육체는 소멸과 재생을 끝없이 반복할 것이다. 하루 열두 번은 겨자씨만큼 오그라들어 죽고, 열두 번은 수미산만큼 팽창해서 터져 죽을 것이다. 오늘은 무혈지옥에 들어기 전에 오픈 게임으로 몸풀 기회를 주고, 유언 한마디 남길 기회도 주겠다. 이만하면 자비롭지 않은가?”
무쌍이 악당다운 썩은 미소를 흘렸다.
‘과연 사마!“
김극도는 사마의 말발에 감탄했다. 듣기만 해도 으스스해지고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사 살려주시오.”
“무사노 죽지 않스므니다. 꽃잎처럼 스러질 뿐.”
우범석이 비통하게 울부짖고, 무라이는 눈을 감은 채 웅얼거렸다. 무쌍은 의연한 척하는 쪽발이가 가소로웠다. 무치시바리아게로 다져주고 싶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유언은 잘 들었다. 나머지 지랄은 무혈지옥에 떨어져서 계속하도록. 시작해!”
“옙!”
신의 말씀은 이유가 없다. 김극도는 촌각도 망설이지 않고 우범석을 번쩍 들어서 파쇄기 투입구에 밀어 넣었다. 사악하게도 발부터 집어넣었다.
“더러운 배신자 놈, 악귀가 되어서 찾아가마.”
우범석이 찢어질 듯이 눈을 부릅뜨고 김극도를 노려보았다.
“그러던가!”
김극도가 심드렁한 한 마디를 던지고 스위치를 올렸다. 우르릉- 이송 롤러가 재료를 물고 헬리컬 기어로 끌고 들어갔다.
“아악, 살려줘!”
처참한 비명이 밤하늘을 울렸다. 빠그작- 거대한 헬리컬 기어가 다리부터 먹기 시작했다. 우범석이 입을 쩍 벌렸다. 와르릉- 평소와 달리 단단한 물체가 삽입되자 기계가 진동했다. 하체가 사라질 때까지 우범석의 비명은 계속되었다. 좌악- 재료를 먹어치운 파쇄기가 배출구로 겔 상태의 오물을 쏟아냈다. 우범석이 한 줌 핏물로 변하기까지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으으으!”
무라이가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펄펄 날뛰던 인간이 눈앞에서 산채로 다져져서 한 줌 핏물로 변했다. 원초적인 극한의 폭력이 두렵지 않으면 이미 죽은 인간이다. 김극도가 무라이를 번쩍 들어서 투입구에 올렸다.
“센세이, 타스케테 쿠다사이! 유르시테 쿠다사이!(선생님, 살려주세요! 용서해주세요!)”
무라이가 발버둥 쳤다. 비주얼 충격의 쓰나미에 꽃잎 어쩌고 하던 기개가 흙담처럼 쓸려나간 지 오래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부하를 선생님이라 부르겠는가.
“꽃잎처럼 스러진다며? 존만아, 추하게 굴지 말고 가라!”
김극도의 눈이 가학적인 쾌감으로 번들거렸다. 쪽발이를 죽도록 싫어하면서도 빌붙어 살아야 했던 울분과 분노가 여과 없이 튀어나왔다. 참고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왔다. 스위치가 올라갔다. 롤러 가이드가 무지막지한 힘으로 무라이를 뱃속으로 끌어들였다.
“끄아아!”
우르릉- 파쇄기 기어 구동음이 비명을 삼켰다. 배출구가 믹서기로 갈아낸 당근 같은 죽탕을 확 뱉어냈다. 윙윙- 우범석과 무라이를 먹어치운 파쇄기가 다음 재료를 투입하라고 보챘다.
“미쓰이 제품이라 성능이 좋기는 좋구마.”
미쓰이는 일제 강점기에 미쓰비시와 함께 한국인 강제 징용자를 가장 많이 동원한 기업이다.
‘흐흐, 애들이 잘 봤겠지.’
버스를 힐끔 쳐다보는 김극도의 얼굴에 설핏 미소가 스쳤다. 일부러 커튼을 치지 않았다. 아이들은 사마의 상상 이상으로 처참한 삶을 살아왔다. 우두머리인 무라이와 우범석의 비참한 최후는 아이들에게 주는 자신의 선물이다.
“저런!”
무쌍이 혀를 찼다. 버스 창문에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커튼을 치지 않는 바람에 아이들이 처참한 장면을 고스란히 보았다. 사나운 눈길이 김극도를 향했다.
“사마,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김극도가 쿵 무릎을 꿇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어쩌겠나. 아이들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지. 쯧!”
무쌍이 혀를 찼다.
“소인의 잘못입니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단또(손잡이를 포함해서 한 자 이내의 칼)를 뽑아든 김극도가 서슴없이 가슴을 찔렀다. [바다에 가면 물에 잠기는 시체가 되고, 산에 가면 풀에 묻힌 시체가 되리. 천황의 곁에서 죽으면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으리.] 우미유카바가 귀에 쟁쟁했다. 한국인이 쪽발이만 못하면 수치다. 주군을 기만했으니 당연히 셋보쿠로 사죄해야 한다.
“읔!”
칼날이 피부만 살짝 찌르고 딱 멈추었다. 자신의 팔이 자신의 의지를 거역했다.
“멍청한 놈, 당장 집어넣어!”
고막이 쩡 울리며 팔이 자유를 찾았다. 놀란 김극도가 손잡이를 놓쳤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무쌍이 방아깨비처럼 머리를 조아리는 김극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일본인은 오랜 중세와 근대 군국주의를 거치는 동안 개인을 집단의 소모품으로 여기는 사고가 굳어졌다. 닌자 집단인 하가시혼간지와 하몽가는 더욱 극단적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줄곧 일본에서 자란 탓에 일본인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한 녀석이다.
“김극도, 이곳은 한국이다. 한국인은 함부로 무릎을 꿇지 않는다. 스미마셍을 연발하지도 않는다. 오버하지 말고 생활관에 뻗어있는 중생들이나 버스에 실어놔.”
무쌍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옙, 알겠습니다.”
김극도가 허둥지둥 버스를 몰고 사라졌다.
“저놈이 일부러 그랬구마.”
무쌍이 비시시 웃었다. 귀신을 속이지 자신을 속이지는 못한다. 일본인은 이해할 수 없는 족속이다. 미국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던 일본이 패전하게 된 단초가 미드웨이 해전이다. 미국보다 월등한 해군전력을 투입한 일본이 패한 이유는 미국이 승리한 이유만큼이나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과잉 충성심이었다. 텐노 반자이가 피해를 기하급수적으로 키웠다.
자식을 해전에 내보낸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자식이 이역만리 차디찬 바다에 수장되었음에 불구하고 대본영에 몰려가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자식의 충성심이 부족해서 천황 폐하께 누를 끼쳤다. 이는 잘못 가르친 부모의 잘못이다.’ 이런 내용의 사죄가 줄을 이었다. 심지어 포로가 된 자식에게 셋보쿠(할복)를 권유하는 편지를 낭독하고, 단도로 배를 그은 아비도 있었다.
진심인지 군국주의 광기에 오염된 절규인지 알 수 없지만, 극단적인 집단주의, 인간의 조건을 팽개친 미치광이들이다. 어떤 미식평론가는 ‘당신이 먹은 음식을 말해 보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웃기는 소리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야 아는가? 인간과 짐승은 척 보면 알 수있다.
상현달이 서쪽으로 기울 무렵, 응심제 대문이 열렸다. 부르릉- 엔진 소리가 대문을 통과했다. 소리가 대문을 통과했다 함은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는 의미다. 엔진 소리는 사랑채 후원에서 멈추었다.
“오셨다!”
댓돌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던 넙치가 벌떡 일어났다. 엔진 소리가 꺼지고 공간이 물결치듯 흔들렸다. 버스 앞부분이 드러났다. 옥수수 껍질을 벗기듯, 바나나 껍질을 까듯, 버스 본체가 주르르 빠져나왔다.
“저 저럴 수가!”
넙치 눈이 진짜 넙치처럼 툭 튀어나왔다. 더 이상은 놀랄 일이 없으리라 했지만, 주군의 능력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칠흑처럼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무쌍의 어깨에 훌쩍 뛰어올랐다. 조직을 펼쳐서 버스를 감쌌던 깜둥이다. 깜둥이의 조직이 가시광선을 몽땅 흡수했으니 버스가 눈에 보일 리 만무했다.
“친구, 취미 생활을 지나치게 즐기다가 학점 빵구나는 농땡이 많더라.”
깜둥이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무쌍은 일시지간 할 말을 잊었다. 표범 오지랖이 자신의 학점을 걱정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임마, 저것들이나 지하실에 처박아 둬. 대충 인원이 찼으니 비행기를 함 띄워야겠구마.”
무쌍이 버스 뒤쪽에 짐짝처럼 포개져 실린 특임조를 가리켰다.
“돈도 없다면서 쇳덩어리는 왜 띄우나. 헤카가 돌아오면 간단하다.”
“퍼플 치킨이 수송기냐?”
“삼 단계 각성만 마치면 내부 공간이 생성된다.”
“오호, 너보다 훨씬 낫군.”
“용도가 다를 뿐이다.”
“임마, 넌 밥값도 못 하잖아.”
“그놈의 밥값은 비싸기도 하지. 생 노가다를 해야겠구마.”
웅- 공간이 물결쳤다. 깜둥이와 특임조 한 명이 사라졌다. 스스스- 5초 후 깜둥이가 나타났다. 또 한 명이 사라졌다.
“사마, 이 이것은?”
“공간이동이다.”
“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음양가의 술법은 인간의 감각을 속이는 주술과 도구를 혼합한 기만술이다. 고도의 기술이지만 눈앞의 공간이동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이다. 저런 엄청난 존재를 부리는 주인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에고고 허리야!”
깜둥이가 허리를 두드렸다. 21회나 지하실과 버스를 오갔으니 생 노가다라고 투덜댈만했다.
“엄살 부리지 말고 버스나 치워!”
무쌍이 영숙을 안고 내렸다. 그 뒤를 열 명의 고아들이 따라 내렸다. 특임조와 엮여있을 검경이 대정복지관을 제대로 수사할지 의문이지만, 찜찜하게 증거물을 남겨둘 이유도 없다.
“다녀오셨습니까!”
대기 중이던 넙치가 넙죽 허리를 숙였다.
“응, 잠시 물러나라.”
무쌍이 애들을 데리고 멀찍이 물러섰다. 스스스- 깜둥이가 본체로 돌아갔다.
“우와!”
아이들의 함성을 질렀다. 거대한 흑표범이 달빛 아래 우뚝 서 있는 광경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캬우우- 깜둥이가 광역 ELF를 방사했다. 에너지를 만 충전한 깜둥이의 ELF는 커패시티가 달랐다. 대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바우웅- 강력한 자장이 마이크로버스를 휘감았다.
휘스스스- 하르마탄에 사구가 쓸려가듯 버스 형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래알처럼 잘게 분해된 조각이 재차 분자 단위로 쪼개졌다. 25인승 버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까지 채 일분이 지나지 않았다. 버스가 있던 자리에 그을린 잔디만 흔적으로 남았다.
“나 밥값했다잉!”
퍽- 깜둥이가 사라지고 입이 쩍 벌어진 인간들만 남았다.
“니는 머꼬?”
넙치가 멍하니 서 있는 김극도를 툭 쳤다.
“김극돕니다. 잘 부탁합니다.”
화들짝 놀란 김극도가 깍듯이 인사했다. 어쩐 조직이든 고참에게 찍히면 삶에 먹구름이 낀다.
“어, 반갑수다. 난 넙치, 아니 문인도요.”
상대가 알아서 기자 넙치의 입이 헤 벌어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신참을 받았다. 이만하면 군번 복이 대낄이다.
“오빠!”
진순이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미안타. 식구가 또 늘었다.”
무쌍이 계면쩍은 웃음을 흘렸다.
“오라버니, 재주도 좋수. 시앗을 얼마나 봤길래 열이 넘는 자식을 데리고 왔수. 내가 본부인이면 가슴을 쳐야 하는 씬인가?”
진순이 드라마 한 장면을 횽내내며 킬킬 웃었다.
“그러게 말이다. 애는 영숙이, 재들은 아직 이름도 몰라. 갈 곳 없는 아이들이다.”
“잘됐네. 큰스님도 여자가 많아야 좋다고 하셨잖아.”
진순이 함박웃음을 짓고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짙은 화장에 고급 의복, 눈물과 먼지로 얼룩진 얼굴에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사연이 많은 아이들이다.
“영숙아, 이리온!”
진순이 팔을 벌렸다.
“아저씨, 저 언니는 좋은 언니야?”
영숙이 무쌍의 눈치를 보았다. 무쌍이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영숙이 냉큼 진순에게 안겼다.
“애들아, 배고프지?”
“……”
아이들이 멀뚱멀뚱 진순을 쳐다보았다.
“너희 엄마다.”
무쌍의 한마디에 잔뜩 굳어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스르르 풀렸다. 졸지에 숫처녀에서 엄마가 된 진순이 눈을 하얗게 흘겼다.
“아, 이 친구는 김극도다.”
“아가씨, 잘 부탁드립니다. 전기 작업, 정원수 돌보기, 보일러 수리, 타일 붙이기 등등 못 하는 게 없습니다. 마구 부려 주십시오.”
김극도가 붙임성있게 허리를 숙였다.
“반가워요. 애들이 졸리고 힘들어 보이네요. 정식 인사는 내일 해요.”
진순이 가볍게 인사를 받고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배고프고 힘들지?”
“네, 엄마!”
“이놈들아, 큰언니라고 불러.”
진순이 활짝 웃으며 종주먹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