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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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장 인연중중11
“네, 큰언니!”
아이들이 눈치 빠르게 대답하고 일제히 무쌍을 쳐다보았다. 무쌍이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아이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가자, 큰언니가 라면 끓여줄게. 얼른 먹고 목욕해야지.”
“네, 큰언니!”
진순이 오리 새끼 몰고 가듯 애들을 데리고 안채로 향했다.
‘내과 외과적 치료보다 신경정신과 치료가 더 급하구마.’
무쌍의 얼굴이 흐려졌다. 매춘과 학대에 길든 아이들의 자아는 수동적 체념형으로 변해버렸다. 진순의 친화력이 의심받을 정도로 아이들의 정신은 망가졌다. 슈퍼파워로 인식된 자신에 기대어 유지되는 유리그릇 같은 정신이 언제 박살 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
한국은 아동학대와 아동매춘에 대한 법률도 미비하고 인식도 부족한 상태다. 게다가 ‘내 자식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주의와 금전만능주의가 만연해 있다. 하마 생가죽 채찍 치코테가 날아다니는 음지가 대정복지관 뿐이랴.
“천사 얼굴, 천사 몸매, 천사 마음씨를 가진 진짜 천사가 존재할 줄은 몰랐습니다.”
김극도가 다들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진순이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치를 아시는 분이네요. 오빠를 많이 도와주세요.”
“하이, 잘 모시겠습니다.”
김극도가 로봇처럼 절도있게 허리를 숙였다.
‘제기랄, 나는 저놈처럼 멋있는 말을 못했는데.’
넙치가 이마를 쳤다. 응심제 최고 존엄은 진순 아가씨다.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소통을 잘해야 하고, 소통의 왕도는 칭찬이다. 칭찬 듣고 싫어할 사람은 없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소통이 칭찬이라면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칭찬은 아부다. 입바른 소리로 죽는 놈은 봤어도 입에 발린 소리로 죽는 놈은 보지 못했다.
“큰형님은 이십 세기 정의의 사도이십니다.”
넙치가 나름 머리를 굴려서 아부했다.
“임마, 정의의 사도가 지난겨울에 전부 얼어죽었냐. 제발 만화 영화만 보지 말고 책 좀 읽어라. 쯧쯧!”
무쌍이 혀를 찼다. 넙치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입에 발린 소리가 통하지 않는 인간도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아니 진실을 외면하는 인간이 큰형님이다.
“사마, 행복해 보입니다.”
“행복이 별거 있나. 잘 먹고 잘 어울리면 된다. 인간은 서로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일본에서 따돌림과 고립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운지 충분히 겪었겠지?”
“그렇습니다. 인간의 정이 간절했습니다. 무조건 저를 편들어주고 제 말을 들어줄 사람이 고팠습니다.”
김극도의 얼굴에 회한이 어렸다. 독고다이의 한계를 절감하고 조직에 들었지만, 영혼의 공허는 더욱 커졌다. 일본인의 의식엔 기본적으로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유전자가 박혀있다. 조센진은 어디를 가나 개밥에 도토리였다. 잘 먹고 잘 어울리기는 기본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렇다. 행복이 별거냐. 지친 몸을 눕힐 내 집이 있고, 반겨 맞아줄 식구가 있고, 식탁에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으면 행복이지. 연고를 너무 많이 짰을 때 나누어 바를 사람이 있고, 짜장면 배달이 왔을 때 나무젓가락을 쪼개줄 식구가 있고, 함께 손잡고 목욕탕에 갈 아들이 있고, 새치를 뽑아주는 딸이 있고, 술 좀 작작 마시라고 잔소리하는 마누라가 행복이다. ‘창밖에 비가 오네요’ 하고 말할 때 ‘여름도 다 갔네.’ 하고 받아줄 사람이 있으면 행복하다. 내가 예로 든 행복의 공통점이 뭔지 알겠나?”
“상대방이 있습니다.”
김극도가 재빨리 대답했다.
“그렇다. 행복은 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 행복감이 얼마나 가겠나? 사랑하는 여자와 붕가붕가할 때 행복감이 얼마나 지속하겠나? 내 행복은 내 주위에 있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라.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다양한 삶의 순간이 내 주변에 널려있다.”
“아!”
김극도와 넙치가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말이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콕콕 박혔다. 김극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을 느끼는 다양한 삶의 순간이 주변에 널려있다는 말에 울컥했다.
“넙치가 형이다. 극도는 큰형님이라 불러라. 그리고 진순이는 착한 천사가 아니라 무서운 천사다.”
무쌍이 대답도 듣지 않고 서재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큰형님!”
등 뒤에서 넙치와 김극도가 우렁차게 외쳤다. 넙치의 목소리가 좀 더 컸다. 후임을 받긴 했는데 눈빛과 말빨이 만만치 않아서 은근히 버겁던 참이다. 위에서 선을 그어주니 불감청 고소원이다.
“극도, 너 재일교포냐?”
넙치의 말투가 바로 바뀌었다.
“예, 큰형님께서 죽을 목숨을 살려주셨습니다. 마음의 주군으로 모셨지만, 도대체 알 수 없는 분입니다. 큰형님은 도대체 어떤 분입니까?”
“나도 모른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 약하고, 무섭지만 자상하고, 냉정하면서 정이 깊고, 특별하지만 평범하고, 도를 깨달은 고승인가 하면 아수라처럼 살벌한 분이 주군이시다. 한마디로 적에게는 자연재해고, 한편에겐 부처님이라 할 수 있지. 어쨌든 넌 지옥에서 지장보살 뒷다리를 잡은 셈이다.”
“복이 터졌지요. 주군이 너는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 물을 때는 오금이 저렸습니다. 일본인이라고 말했으면 사료 분쇄기에 들어갔을 겁니다.”
김극도가 부르르 떨었다.
“사료 분쇄기?”
“장기를 적출하고 피를 뽑은 후에 시체는 사료 분쇄기로 갈아서 강에 버렸습니다. 큰형님 명령을 받아서 제 손으로 특임조 조장과 일본 감사를 사료 분쇄기에 집어넣었습니다.”
‘으아, 이 새끼 진짜 무서운 놈이네!’
넙치는 가슴이 덜컹했다. 악질 사채업자인 풍국파가 명함도 못 내밀 악당들이다. 이놈은 그 악당 중에 한 놈이다. 겁나게 살벌한 쫄따구를 받은 셈이다.
“흐흐, 내가 어제처럼 큰형님과 함께 갔어야 하는데.”
넙치가 벌렁대는 가슴을 누르고 짐짓 여유를 부렸다.
“그럼 어제 풍국 캐피탈 건물은?”
“큰형님과 내가 박살 내버렸지.”
“존경합니다.”
김극도가 허리를 구십 도로 꺾었다.
“무슨 존경씩이나. 어제 쓸어버리려 했는데 캐피탈 건물이 붕괴되는 바람에 처리하지 못했어. 거기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
“지하실에 갇혀있던 사람은 모두 풀려났습니다. 큰형님이 갈 곳 없는 고아들은 거두어 왔습니다. 특임조 이십 명과 쪽발이 한 놈은 공간이동으로 사라졌습니다. 지하실에 재수 없는 중년 여자가 한 명 남아 있습니다. 주군께 해가 될 것 같아서 슬쩍 처리하고 왔습니다.”
“죽였나?”
넙치가 인상을 찌푸렸다. 큰형님은 일반인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
“죽이지는 않고 이따이를 전두엽에 투입했습니다.”
“이따이가 뭔가?”
“제가 속했던 하몽가에서 사용하는 약물입니다. 나비 애벌레 추출물로 뇌에 직접 투입하면 도파민 분비가 중단됩니다. 단기적으로는 기억 혼재와 조울증 증상이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면 중증 치매로 이행됩니다.”
“헐, 차라리 죽는 게 낫겠구마.”
넙치가 학을 뗐다. 고향에 계신 할머니가 치매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람도 못 알아보고 똥오줌도 못 가리는 사람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치매라는 말만 들어도 섬뜩했다.
“보스는 지저분한 일에 손을 담그면 안 됩니다. 아랫사람이 알아서 처리해야 합니다.”
김극도가 닭 다리는 두 개라는 투로 말했다.
‘화, 이 새끼 정말 무서운 놈이구마.’
하는 말마다 살 떨리는 소리다. 큰형님께 잘못을 범하면 자신의 머리에 이따이인지 이따위인지를 쑤셔 넣을 놈이다.
“잘했다. 우리 손 맞춰서 잘해보자고.”
넙치가 김극도 어깨를 두드렸다. 폼생폼사는 건달의 헌법이요 신앙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김극도가 자세를 바짝 낮추었다. 고참인 문인도가 별로 세 보이지는 않지만, 주군을 먼저 모셨다는 한가지 사실만으로 존중받아 마땅했다.
“큰형님이 안고 오신 꼬마도 고아냐?”
“영숙이는 일본에 보낼 도너입니다. 특임조가 조건에 맞는 아이를 납치했습니다. 보호자가 전단까지 뿌렸습니다.”
김극도가 주머니에서 전단을 꺼내서 넙치에게 건넸다.
“사진도 귀엽네!”
실종 아동을 찾는다는 문구 아래 멜빵 치마를 입은 귀여운 여자아이가 활짝 웃고 있다.
“상황이 워낙 정신없이 돌아가는 바람에 주군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상한데. 실종 아동을 찾는 전단은 보호자 연락처와 담당 지역 경찰서 전화번호를 나란히 인쇄하는데…….”
넙치가 고개를 갸웃했다. 전단에 올라있는 전화번호가 딸랑 한 개다. 이런 경우는 없다. 삼식 용역의 주 업무가 사람 찾는 일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숯이 된다. 담당 경찰서는 물론이고 행여나 연락을 받지 못할세라 친척의 전화번호를 대여섯 개 추가하는 보호자도 있다.
“큰형님은 바쁜 분이다. 이건 내가 알아보지.”
넙치가 전단을 접어서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알겠습니다.”
“가세, 자네도 씻고 쉬어야 할 형편이구마.”
아닌 게 아니라 김극도의 행색은 거지가 동료로 착각할 수준이다. 넙치와 김극도가 별채로 향했다.
이튿날 아침, 갑자기 식구가 12명이나 늘어나는 바람에 16인석 식탁 자리가 모자라는 사태가 벌어졌다. 연순이 창고에 처박혔던 양은 밥상까지 끌어냈다.
응심제 식탁은 언제나 풍요롭다. 진순은 잘 먹어야 한다는 무쌍의 방침에 이의 없이 따랐다. 하얀 쌀밥과 쇠고기를 넣은 미역국, 푸짐한 두루치기, 노릇하니 익은 생선구이, 신선로에서 지글거리는 갈비, 아이들은 급작스럽게 달라진 환경에 숟가락도 들지 못하고 어리바리 눈치만 보았다. 미나의 방에서 밤을 보낸 영숙은 하룻밤 만에 달라졌다. 미나와 재잘대는 영숙을 보는 무쌍의 눈이 한없이 부드러웠다.
“아저씨는 나가셨나? 영지도 보이지 않네.”
“아침 일찍 차를 맡긴 철공소에 가셨어요. 중고 트럭을 푸드 트럭으로 개조해서 토스트와 호떡을 파신다네요. 영지는 아저씨를 따라갔고요.”
“그래! 영희는 왜 따라가지 않았지?”
“쪽 팔려서요.”
영희가 고개를 숙이고 들릴락 말락 대답했다. 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속담의 잘못된 사례다.
“흠, 먹고사는 일에 쪽팔리는 일은 없다. 쪽팔림을 극복하지 못하면 계속 쪽팔리는 삶을 살게 된다.”
“네, 잘못했어요.”
영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해 못 하는 오빠가 야속했지만, 오빠께 엉기다간 언니들에게 박살 난다.
“배고프지? 기도는 않아도 된다. 어서들 먹자.”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합창하고 식탁에 코를 박고 걸신들린 듯 음식을 흡입했다. 전날 종일 지하실에 갇혀있었으니 허기질만했다.
“흑흑!”
왜소한 여자아이가 흐느꼈다.
“어머나! 넌 왜 우니?”
말순이 우는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너무 좋아서요.”
“뭐가 좋아?”
“때리는 사람도 없고, 욕하는 사람도 없어서 좋아요. 따뜻한 밥이 너무 좋아요. 다른 데로 팔지 않을 거죠?”
“뭐?”
오 자매의 눈이 똥그랗게 변했다. 팔다니 뭘 판단 말인가?
“아저씨, 말 잘 들을게요.”
“여기서 살게 해주세요.”
“흑흑흑!”
아이들이 모두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얼굴이 썩어 문드러진 김극도가 슬며시 무쌍의 눈치를 보았다. 무쌍은 말없이 밥을 퍽퍽 퍼먹었다. 밥알이 모래알로 변했다.
“오빠, 애들이 무슨 짓을 당한 거야?”
진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쌍이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많이 상했더나?”
짐작했던 일이다. 신체가 여물지도 않은 나이에 변태를 받았으니 몸이 성할 리 없다.
“두 눈 뜨고 못 볼 지경이야. 영양실조에다 채찍 흉터, 담뱃불 자국은 셀 수도 없고, 여자애들은 국부가 파열되고 유두가 떨어진 아이도 있어. 도대체 애들이 무슨 짓을 당한 거야?”
“네 짐작대로다. 아동매춘 조직에 납치되어서 길게는 이년, 짧게는 두 달 동안 온갖 부류의 변태에 혹사당했다.”
“포주와 조직 놈들은?”
진순의 눈이 시퍼레졌다.
“보스 두 놈은 기계에 갈아버렸다. 하수인들은 노바토피아로 종신노역 보낼 거다.”
“오빠가 사람을 죽였는데 잘했다고 말해야 하는 내가 슬프다. 애들 치료가 급한데 우짜노?”
“병원에 보내면 난리 나겠지?”
“간호원이 당장 경찰에 신고할걸.”
“육체적인 손상보다 정신적 손상이 더 문제야. 국내엔 믿을만한 전문가가 없어. 프랑스로 보내야겠어.”
“치료가 끝나도 한국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노바토피아로 보낼 생각이다. ”
“그게 좋을 것 같아.”
진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원의 소견으로 볼 때 국내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치료받기도 힘들고, 완치되어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사회에 녹아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무쌍이 전화기를 들었다. 보니파스와 기즈 박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이다. 사흘 후, 성남공항에 무쌍의 애기인 팔콘이 도착했다. 프랑스 대사관 소속 버스가 주기장으로 들어섰다. 무쌍이 한국 사회에 적응 못 하고 떠났듯이 열 명의 아이도 그렇게 새로운 운명을 찾아서 떠났다.
노원동에서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지만, 언론은 실체 없는 대명동 무장공비 사건만 요란하게 떠들었다. 지방신문에 풍국 캐피탈 건물이 부실공사로 인해 붕괴하였다는 간단한 기사만 실렸다.
무쌍은 기가 막혔다. 조용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대정익찬회와 연결된 정관계의 검은 커넥션이 뿌리 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흑역사는 진행 중이다.
“이것들을 다 죽여버려!”
무쌍의 분노 게이지가 슬금슬금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