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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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장 종두득두3
“허어, 숨쉬기가 이렇게 편안해 보기는 처음이구마. 이기 머꼬?”
들숨 날숨을 내쉬던 박인보가 신천지를 발견한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근래 몇 년간 죽음을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을 못 끝내는 것이 죽음보다 두렵다고 호언장담했다. 죽음을 직감한 순간, 자신의 호언장담이 겁이 나서 짖는 개소리임을 깨달았다. 죽음은 너무나 두려웠다.
숨을 쉴 때마다 찢어질 듯 느껴지던 통증이 사라졌다. 호흡이 창통하고 천근만근 무겁던 가슴이 가뿐해졌다. 조카는 손짓 몇 번으로 절대의 두려움, 고통, 공포에 허덕이는 자신을 건져 올렸다. 약사여래라도 된단 말인가!
“기를 다룰 줄만 알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잔재주입니다.”
무쌍이 심드렁하니 대꾸했다. 까진 상처에 안티푸라민을 바르고 대일밴드 붙였다는 식이다.
“잔재주? 대단한 잔재주구마. 내가 얼마나 더 살지는 의사보다 네가 더 잘 알겠구나. 흐흐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신의 신체 상태는 자신이 잘 안다. 폐기종 8년을 앓는 동안 현대 의학은 악성종양과 섬유화가 진행된 장기를 보전하기 급급했다. 기공 치료, 안수기도, 한방요법, 민간 단방, 백약이 무효인 병을 단번에 되돌려놓고 잔재주라 말하는 조카는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가!
“폐, 간, 심장, 위장, 내장까지 성한 장기가 없구마요. 쌓인 미세먼지와 염증 물질을 털어내고, 혈관을 막은 혈전을 대충 녹였심다. 섬유화된 조직에 모세혈관이 형성되고 면역체계가 복구되면 오 년쯤은 더 살겠지요.”
그대로 두었으면 의사가 도착하기 전에 백부는 죽었다. 죽음의 천사가 대라신선으로 변신한 웃기는 상황이다.
“오호! 그거면 됐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고맙다.”
박인보의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
“좋아할 것도 없심다. 기름이 떨어진 등잔을 기울여서 심지를 적신 회광반조에 불과하니까요. 무리하면 이삼 년 안에 요단강을 건널 수도 있심다.”
은근히 속이 뒤틀린 무쌍이 악담을 던졌다. 받은 대로 되돌려주마 하고 달려와서는 패 죽여도 시원치 않을 악당에게 엉겁결에 호의를 베풀었다. 물러터진 자신이 싫지만, 어쩌랴. 백부는 하늘 아래 제일 가까운 가족이다. 일단은 살려놓고 볼 일이다.
“서방에게 독약을 쳐 먹이는 마누라, 뽕쟁이 짓 하다가 사라져버린 딸년, 허구한 날 양아치들과 어울려서 사건이나 치는 아들놈, 몸과 가정도 망가진 덧없는 삶을 엿가락처럼 늘려봐야 뭔 의미가 있겠노. 육체의 허기는 곰탕 한 그릇으로 달랜다지만 영혼의 허기는 무엇으로 달래겠나.”
박인보가 사설을 늘어놓았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은 쑥부쟁이가 되고, 돌밭에 던져진 놈은 굳건한 소나무로 자랐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후사를 조카에게 맡길 줄 몰랐다. 하늘의 셈법은 인간이 감히 염량할 바가 아니었다. 먼지가 빠져나간 가슴을 회한이 가득 채웠다.
“종두득두지요. 저승에 가서 아부지를 만나거든 사과하이소.”
무쌍이 모진 말을 던졌다. 세상사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이다. 백부는 남의 눈에 피눈물을 뽑아서 자신의 배를 채우는 삶을 살았다. 끝이 좋을 리 없다.
“글쎄다. 내가 진보 얼굴을 쳐다볼 수나 있으려나. 일전에 진보가 편지를 보내서 못난 형을 살려주었지. 전설의 고향이 아니고서야 이승과 저승 간에 물질이 오갈 수 있겠느냐. 천하에 ‘진보가 형에게’라고 할 놈은 딱 한 놈밖에 없지.”
박인보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무쌍을 빤히 보았다. 무쌍은 가타부타 말없이 창밖에 흘러가는 새털구름에 시선을 주었다. 인심은 난측해도 계절은 정해진 대로 흘러간다. 저 하늘 아래 어딘가 모진 삶을 이어갈 어머니가 있다. 머쓱해진 박인보가 말꼬리를 돌렸다.
“묻기도 미안하다만 그동안 우예 지냈노? ”
“가축은 우리를 벗어나면 살아남기 힘들지만, 맹수는 우리를 벗어나야 산다 아임니꺼.”
“그렇지.”
박인보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였다. 조카는 맹수다. 어중간한 스라소니나 표범이 아니라 시베리아 대호다. 녀석은 나름의 목적이 있었기에 짚은다리에서 참고 버텼을 뿐, 우리에 갇혀있을 재목이 아니었다.
“내를 마이 원망했제?”
“아니라고 하면 쉰소리지만, 아수라장에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험난한 세상을 겪다 보니까 그것도 벨 거 아입띠다.”
“후~ 미안하다.”
박인보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 쉬었다.
“한평생 잘 먹고 잘살 것 같더니 꼴이 거기 뭡니까?”
“업보인 거라.”
“흐흥!”
무쌍이 코웃음 쳤다. 인제 와서 업보라니, 이 양반이 장난하나.
“중곡마 집하고 토지는 머땀시 지 앞으로 등기했습니까? 아이고 감사합니다. 할 줄 알았습니까?”
“진보의 논밭과 집, 진보가 받아야 했던 논 스무 마지기를 원래대로 돌리 논기다. 등기 이전된 논은 서른다섯 마지기고 밭은 네 마지기다. 성경에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라고 쓰여있더라. 진보가 없으니 진보 아들이 받아야제. 다 내 잘못이다. 후회를 그렇게라도 줄이고 싶었다. 세상에서 부모·형제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어. 미안하다.”
“허, 마이 변하셨네요.”
무쌍은 뜨악했다. 백부는 확실히 변했다. 이 양반은 칼이 목에 들어와도 미안하다고 말할 양반이 아니다. 땅이라면 조상을 팔아먹을 양반이 백부다.
“죽을 때가 된 기제. 사람이 변하마 죽을 때가 됐다 안카나. 흐흐흐!”
박인보가 툴툴 웃었다.
“그래서 안지랑이 인애원과 고아원 네 개 운영비를 댔습니까.”
“허, 니는 모르는 기 없구마. 일전에 범우 스님을 만났다. 이인이 나타나서 위기에 빠진 어린 생명을 구해주고 조폭을 처단했다 카디마는 거기 너였구나. 하긴 어릴 때도 니는 보통사람이 아니었제. 드러낼 일도 아이다. 기양 마음의 위로라도 얻을까 싶어서 한 일인 거라. 내가 가진 건 돈밖에 없따.”
“그 돈 때문에 장씨와 사이가 틀어지고 처가 기둥뿌리를 뽑았습니까?”
“참 희한하데이. 니는 우예 내 행사를 그래 훤히 알고 있노 하긴 니가 모르고 있었으면 나한테 편지를 보낼 일도 없겄제. 돈 때문이라기보다 자존심 문젠기라. 사나자슥이 받았으마 돌려조야제.
“제가 4개월 치 밀린 육성회비를 몽땅 납부했던 사건 기억납니까?”
무쌍이 까마득한 이야기를 끌어냈다. 15년 전 철없이 저지른 일로 도둑 누명을 썼지만, 자신의 삶에서 유일하게 떳떳하지 못했던 행사다.
“십오 년이 지난 일이구마. 니가 돈을 훔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너는 가게를 박살 낼 놈이지 돈 몇 푼 훔칠 쪼잔한 놈이 아니거든.”
“훗!”
무쌍이 픽 웃었다. 인간 박무쌍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진순이와 사부님이다. 백부는 세 번째쯤 된다.
“그날 업구렁이가 처마에서 물받이를 타고 내려오데요. 답삭 잡아서 읍내 한약방에 팔아 먹었심다. 천이백 원을 받아서 밀린 육성회비를 내고 책을 샀심다. 저도 돌려드리지요.”
무쌍이 1,200원을 꺼내서 티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백부가 뒤늦게 토지를 돌려준 행사에 대한 반발이다.
“크크크, 돈이 어디서 생겼을까 궁금했는데 업을 잡아다 팔았군. 내가 부자가 된 걸 보면 그놈은 짝퉁이야. 돈 한 푼 안주고 부려 먹은 내가 나쁜 놈이지. 클클클!”
박인보가 낄낄 웃었다. 밀린 육성회비 때문에 교감에게 걷어차여 갈비뼈가 부러지고 장이 터졌던 조카다. 자신은 그 틈에 교감을 협박해서 뒷주머니를 채웠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인면수심의 세월이었다. 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박인보가 머리를 설설 흔들었다.
“그래 내가 돌려줄것은 돌려줬고 돌려받을 건 돌려받았다. 그걸 여태 가슴에 품고 살아온 너도 엔간히 독한 놈이다. 성질머리가 그러니까 지금도 장씨라 부르는구나. 하긴 열 살 때부터 장씨라고 불렀던가? 미워하면서 닮는다더니 니는 천상 내를 닮은 거라. 흐흐흐!”
박인보는 기분이 좋았다. 남자가 큰일을 하려면 독해야 한다. 조카는 회사를 물려주기에 제격이다.
“아부지 무덤을 파서 유골에 방자까지 한 년을 백모라 부를 수야 없지요.”
“허, 그년이!”
박인보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긴 남편을 독살하려는 여자가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하수인들은 몽땅 묻어버렸습니다. 장씨도 죽이려고 찾아갔다가 손을 더럽히기 싫어서 꾹 참았습니다.”
“허어!”
박인보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생명력이 담배 연기처럼 하늘하늘 빠져나가는 듯한 한숨이다. 아내의 악행에서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다. 조카를 볼 낯이 없었다.
“미안하다. 니가 손댈 필요도 없다. 장씨 가문은 끝장났다.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재기하기는 어려울끼다.”
‘킹코브라와 블랙맘바의 싸움인가?’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킹코브라와 블랙맘바는 서식지가 달라서 야생에서 부딪힐 일은 없지만, 제한된 장소에 가둬두면 서로 삼키다가 양패공사한다. 블랙맘바의 독이 강하지만 덩치와 힘은 킹코브라가 앞선다.
삼식을 통해서 백부가 얼마나 악랄하게 장씨 가문을 털었는지 훤하게 알고 있다. 백부는 독하고 뒤끝이 강하기로 당할 자가 없고 장씨는 한 수 위의 인간이다. 독한 인간들끼리 부딪혔으니 피투성이가 될 일밖에 없다.
“백부, 지금 행복합니까?”
무쌍이 뜬금없는 질문을 툭 던졌다. 박인보가 움찔했다. 행복이란 말을 잊고 산 지 오래다.
“살아온 인생이 덧없는데 무슨 행복이 있겠나. 삶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지금 듣기엔 참으로 야속한 질문이구나.”
박인보가 두 손으로 버석한 얼굴을 쓰다듬었다. 돈이란 파랑새를 쫓아서 평생을 달렸건만 파랑새는 허무의 날개를 가진 아집에 불과했다.
“백부,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합니다. 행복과 불행은 상대방이란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입니다. 고통과 분노에 찌그러진 본인의 모습을 맨날 봐야 하는데 행복할 리 없지요. 백부와 장씨는 서로의 분노와 증오를 자양분 삼아서 자신을 망치고, 독기를 뿜어서 가까이 있는 가족들까지 초토화했습니다. 화자가 망가지고, 우탁이 엇나가고, 멀쩡한 희자 누나까지 이상해졌습니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실종되었습니다.”
‘읔!’
박인보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기어코 제수씨 이야기가 나왔다. 조카가 잊어버리기를 바랐지만, 역시 잊을 놈이 아니었다. ‘제가 바보라서 매 맞으며 농사를 도맡은 줄 아십니까? 언젠가 돌아올 엄마를 기다려야 했기에 소처럼 참았심더.’ 함박눈이 퍼붓던 날 조카가 가방을 챙기며 했던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했다. 질기기가 쇠심줄 같은 놈이 무쌍이다.
“백부, 팔 년 전부터 엄마를 찾는 이유가 뭡니까? 그것도 조직까지 동원해서 말입니다.”
“허억!”
박인보는 불에 덴 듯 놀랐다. 제수씨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그날의 사건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둥둥 뛰었다. 슬그머니 눈치를 보았지만, 동화사 갓바위처럼 묵묵한 모습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우예 알았노?”
“백부, 저를 아직도 매 맞던 어린 조카로 생각합니까?”
무쌍이 냉랭하니 반문했다. 무쌍이 표정을 바꾸자 한순간에 북풍한설이 몰아쳤다.
“끙!”
박인보는 된 한숨을 뱉었다. 기이한 능력에다 심기까지 깊은 무서운 녀석이다. 얼렁뚱땅 피하려고 했다간 피바람이 몰아치게 생겼다.
“미안하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진보의 죽음도, 제수씨의 실종도, 네가 죽도록 고생한 일도 모두 내 잘못이다. 너는 어릴 때 엄마와 기와집에서 쌀밥과 고깃국을 배불리 묵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 소원도 마찬가지였다. 너는 훌륭히 자랐고, 집과 토지는 돌려주었다. 마지막 남은 일이 제수씨를 찾는 일이었다. 진보는 갔지만, 제수씨와 네가 오순도순 사는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나는 오늘 죽어도 좋은 기라.!”
박인보가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자신의 탐욕과 아내의 빗나간 질투가 하나뿐인 동생을 죽이고, 제수씨와 조카를 정처 없이 떠돌도록 만들었다. 돌아보면 후회와 회한밖에 남지 않았다. 메마른 얼굴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양반이 미쳤나? 혹시 도플갱어?”
무쌍은 마주 앉은 인간이 과거부터 박인보라 불렸던 인간과 동일 인물인지 의심스러웠다. 백부는 감상에 젖을 인간도 아니고, 눈물을 흘릴 인간도 아니다. 내 팔 흔들어서 내가 먹고사는데 뭔 소리냐고 버럭 해야 정상이다. 미안하다고 사과한 것만도 놀라자빠질 사건인데 눈물이라니! 죽을 때가 되긴 된 모양이다.
“아프리카에서 이강철을 구해주었습니다. 부두교라는 사교 집단에 납치되어 양 손목이 잘리고 패혈증으로 죽어가던 놈이었습니다.”
무쌍이 이를 꾹 악물었다. 어머니 정조와 관련된 일을 입에 담고 싶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의구심만 남겨놓을 수는 없었다. 백부를 죽이든 살리든 결착을 지어야 서로가 깔끔해진다.
“이강철이 누군데?”
박인보가 눈을 끔벅였다. 이강철이 누군데 갑자기 화제에 오른단 말인가? 은근히 뒷골이 당겼다.
“어머니를 욕보이려던 하숙생입니다.”
‘헉!’
박인보는 비명을 결사적으로 삼켰다. 17년 전, 천중에 박힌 보름달이 휘영청 빛을 뿌리던 그 날 밤의 일들이 어제인 듯 선명히 떠올랐다. 제수씨를 범하려다 자신의 등장에 놀라서 도망간 놈이 이강철이었던가! 그놈이 누군지 몰랐는데 조카는 이미 그것까지 알고 있다. 시커먼 먹구름이 눈앞을 가렸다.
“백부, 그날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