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94
x 594
제54장 종두득두4
시퍼런 안광이 번쩍하고 동공을 쑤셨다. 눈알이 아리고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기어코 올 것이 왔다. 바늘 수천 개가 찌른 듯 온몸이 따끔거리고 횡격막이 굳었다. 서늘한 한기가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달렸다. 이것은 경고다. 헛소리하면 죽여버리겠다는 녀석의 의지다.
‘빌어먹을!’
비명을 꿀꺽 삼키고 자신도 모르게 눈을 꾹 감았다. 마누라의 증오에 편승한 분노, 도를 넘은 분노의 실체는 바로 두려움이었다. 언젠가 저 질문을 들을지 모른다는 끔찍한 공포가 공격성으로 표출되었다.
‘미쳤어, 내가 미쳤어!’
박인보는 아랫도리를 잘라서 창밖으로 집어 던지고 싶었다. 세 가지 끝을 잘못 놀리면 패가망신한다는 경구는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섬연한 몸매와 처연한 미모, 따뜻한 마음씨, 그녀는 천사였다. 천사를 좋아한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수작을 부렸으니 문제다.
‘망할 새끼!’
사단은 이강철이란 놈 때문이다. 부두교인지 두부교인지 납치했으면 물이 가기 전에 삶아 먹든 구워먹든 할 것이지 아가리 잘하도록 내버려둘 건 뭐란 말인가! 그놈이 쌍이에게 뭔 소리를 했는지 알 길이 없으니 문제다. 아차 말 한마디 잘못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그날의 사건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제수씨를 욕보이려던 괴한은 문을 박차고 도주했다. 활짝 열린 방문으로 달빛이 한가득 쏟아졌다. 어둑한 방안에 하얀 박꽃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설백의 속살이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십수 년을 안타깝게 바라만 보았던 천사다. 그토록 여린 몸매 어디에 이토록 풍만한 속살이 숨어있었던가! 눈이 깔깔해지고 침이 말랐다. 황소 같은 뼈대와 악어 피부의 마누라는 인간이 아니었다.
나쁜 손이 제멋대로 움직여서 무릎에 걸려있는 몸뻬를 끌어내렸다. 맹세코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석삼년을 굶은 존슨이 벌떡 일어났다. 사추리가 뻐근하도록 강력한 기립이었다. 나쁜 손이 제멋대로 움직여서 엉치에 걸린 고쟁이를 끌어내렸다.
하얗게 피어난 박꽃 속의 검은 숲이 눈텡이를 때렸다. 갈 곳을 찾은 존슨이 제멋대로 요동쳤다. 모든 사고가 정지되었다. 검은 숲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쳐버렸다.
허리끈을 풀 정신도 없었다. 급한 손놀림으로 존슨을 꺼내서 허리를 밀어붙일 때 제수씨가 등잔을 걷어찼다. 등잔 받침대가 이마를 딱 때리는 순간, 아뿔싸! 짜릿한 통증과 함께 정점에 올라있던 존슨이 폭발했다.
바지 앞섶이 끈적한 액체로 범벅되었다. 타오르던 욕정이 푹 꺼졌다. 세상에 이보다 더 허무한 일은 없다. 울고 싶었다. 아니 죽고 싶었다. 자괴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터진 이마에서 흘러내린 끈적한 액체가 정신을 되돌렸다.
‘이기 머꼬!’
한순간 눈을 의심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 하얗게 빛나는 풍만한 가슴과 그늘진 샅, 찢어질 듯이 부릅뜬 눈, 테이프로 막힌 입을 꺽꺽대며 발버둥 치는 제수씨, 자신도 모르게 질척한 아랫도리로 눈을 돌렸다. 풀죽은 존슨과 풀 먹은 바지 앞섶, 내가 왜? 정신이 아득해졌다.
딸각딸각- 뒤란에서 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무너진 돌담을 넘어오는 소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발각당하면 자신도 제수씨도 끝장이다. 손목을 묶은 테이프만 풀어주고 정신없이 튀어 나갔다. 다행히 어린 무쌍이었다. 녀석이 뭐라고 말을 걸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정신이 아니었다. 자신이 뭐라고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지난 십여 년간 묻고 묻고 또 물은 의문이다. 물론 제수씨를 죽도록 좋아했다. 드러낼 수 없는 사련이기에 안타까움은 더해만 갔다. 때로는 삼형제(작가 주:박인보의 물건 사이즈는 오 형제까지 필요 없음)의 도움을 받아 안타까움을 해소하기도 했지만, 하늘에 맹세코 붕가붕가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제수씨가 집을 나간 원인 제공자는 이강철이지만, 방점을 찍은 사람은 패륜을 저지른 박인보, 바로 자신이다. 제수씨는 동생을 죽도록 사랑했고, 유난히 정조 관념이 강했다. 고아로 자란 탓인지 가족에 대한 사랑도 유별났다. 패륜의 충격이 제수씨의 정신세계를 뒤집어엎었다.
한순간의 실수가 모든 걸 망쳐버렸다. 자책감과 후회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을 보냈다. 언젠가부터 존슨이 기립하지 않았다. 업보려니 하고 모든 열정을 사업에 쏟았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 했던가. 여자를 안을 일이 없다 보니 술과 노름도 멀어졌다. 사업은 순풍에 돛단 듯 잘 나갔다. 그래서 뭐? 인생 최대의 오점이 언젠가는 목을 조를 줄 알았다. 비록 문전옥답에 접촉도 하기 전에 바지에 풀을 먹였지만, 음심이 발동했고 조루가 아니었으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무쌍이 자신이 당한 고초를 바락바락 따지지 않음은 무골호인이어서가 아니라 흉금이 넓기 때문이다. 제수씨와 관련된 일이라면 백 길 땅속을 파내고 천길 물속을 뒤져서라도 진상을 캘 놈이다.
넣지도 못하고 그냥 싸버렸다고 말하면 용서해줄까? 천만의 말씀이다. 제수씨 청백을 더럽히고, 남자로서 자존심이 박살 나고, 목이 댕강 날아갈 주둥이질이다. 진실이 정의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차피 곧 죽을 몸,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지만, 조카가 백부를 죽였다는 또 다른 패륜을 덮어쓰면 죽어서도 진보를 볼 낯이 없게 된다.
박인보는 뇌가 타서 연기가 나도록 잔머리를 돌렸다. 급즉통(急卽通)이라 했다.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박인보의 뇌가 90% 진실과 10% 거짓을 섞은 한편의 시나리오를 뚝딱 작성했다. 숨겨진 10%는 무덤 속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이다.
박인보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진실을 말한다는 비장한 의지가 솜털 하나까지 알알이 묻어났다.
“그날 낮에 마누라와 제수씨가 다투었다. 마누라는 도지 오 할이 너무 많다고 남들처럼 이 할을 주겠다고 했고, 제수씨는 그럴 거면 예전에 받아야 했던 논 열 마지기를 내놓으라고 했었다. 제수씨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내가 진보에 떼주어야 했던 논을 계산하면 도지는 오 할이 아니라 이 할에 불과했다. 평생 대거리 한번 하지 않던 제수씨가 나선 이유는 너 때문이다. 아비 없이 자식을 키워야 하는 제수씨는 그만큼 불안하고 다급했다. 심약한 제수씨가 옳다한들 독사 같은 마누라를 당할 수 있나. 부옇게 닦인 제수씨가 울면서 돌아간 뒤에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마누라가 싫은 만큼 제수씨를 좋아했다. 나도 남자다. 제수씨 같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을 남자가 있겠느냐.”
박인보는 당당히 말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씨알이 먹힌다.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부는 어머니를 지나칠 정도로 좋아했고, 실제로 장 씨 몰래 편의를 많이 봐주었다. 백부가 대리 경작을 해주고 도지 오 할을 준 덕분에 식량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는 박인보의 호의가 사련(邪戀)이었음을 예나 지금이나 몰랐다.
“이래저래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중곡마로 올라갔다. 걱정되어서 견딜 수 없었다. 밤늦게 부르기가 민망해서 봉창 아래서 제수씨가 잠들었는지 기색을 살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했다. 남자 숨소리와 제수씨가 꺽꺽대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나는 귀를 바짝 기울였다. 세상 모든 과부가 남자를 끌어들여도 제수씨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건 그렇지요. 어머니는 아부지밖에 모르는 여자지요.”
무쌍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만큼 살가운 부부가 또 있을까! 이강철에게서 그날의 일을 소상히 들었으니 백부의 말은 사족이다.
“웬 놈이 네 어머니를 겁탈하려는 상황임을 알아차리고 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그놈의 뒷덜미를 잡으려는데 놈이 등잔을 휘둘렀어. 이마를 얻어맞고 주춤하는 순간에 놈이 튀어 나갔다. 제수씨는 적삼과 몸뻬가 벗겨지고 공사용 청테이프로 입이 막히고 손목이 묶여 있었다. 욕을 당하기 직전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청테이프를 제거해주고 얼른 방을 나왔다. 그때 마당에 어린 네가 있더구나.”
목이 탄 박인보는 물컵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부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그날 버들 숲에서 밤늦게 놀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백부는 이마에 청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다. 등잔에 얻어맞은 상처였던 모양이다.
“내외해야 할 처지인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진동한동 짚은다리로 돌아왔다. 네 어머니의 가출을 두고 온갖 소문이 돌았지만, 나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복어는 때릴수록 배가 빵빵해진다. 어설프게 나섰다간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된다. 내 비록 좋은 인간은 아니었지만, 그 날의 일만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럽지 않게 처신했다.”
박인보는 무성영화 변사처럼 비장하고 장중하게 말을 맺었다. 타고난 잔머리에 세월의 노회함까지 얻은 박인보의 언변은 홍수기 낙동강 물처럼 도도했다.
무쌍은 눈을 감은 채 가타부타 말을 않았다. 무쌍은 박인보의 말을 여과 없이 믿어줄 만큼 속 빈 강정이 아니다. 백부의 말 대로라면 백부는 어머니의 정조를 지켜준 은인이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불쌍한 어머니!’
이강철은 일 년 넘게 하숙했다. 아침저녁으로 밥해주던 남자에게 겁탈당할 뻔하고, 연이어 들이닥친 아주버니에게 벗은 몸을 보여주었다. 아버지밖에 모르는 심약한 어머니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아들을 버리고 사라질 만큼 큰 충격이었을까? 남자인 그로서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뭔가 부족했다. 동기가 약했다. 무쌍은 이를 악물었다. 이건 아니다. 백부는 여전히 악당이어야 한다. 당신도 엄마를 욕보이려고 하지 않았냐고 추궁해야 한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들이 어머니를 욕보이는 말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미워도 피를 나눈 백부다. 양아치 다루듯이 쥐어박을 수도 없었다. 앙앙불락 할 때 박인보가 입을 열었다.
“무쌍아!”
박인보가 목소리를 깔았다. 결정적인 쐐기를 박을 타이밍이다.
“너도 이제 성인이다. 나도 남자고 너도 남자다. 남자끼리 때리고 얻어터진 과거사는 나중에 해결해도 된다. 그러나 네 엄마의 일은 아니다. 한 점의 의혹이라도 남아있으면 서로가 껄끄럽게 지내야 한다. 네 아비가 죽고 네 엄마는 실종되었으니 좋든 싫든 백부인 내가 유일한 혈육이 아니겠느냐. 이왕 터는 김에 밑바닥까지 털어보자꾸나.”
“아직도 털게 날았습니까?”
“쪽팔리는 소리지만 나는 임포텐츠가 된 지 이십 년이 넘었다. 마누라가 남편을 홍어좇으로 보게 된 데는 머리 숙인 존슨도 한몫했다.”
‘이기 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여?’
무쌍은 말벌을 삼킨 두꺼비처럼 눈만 끔벅였다.
“병원에 가서 확인해도 좋고, 이 자리에서 확인하고 싶다면 믿을만한 비뇨기과 의사를 부르마.”
박인보가 바지를 벗을 듯이 설레발쳤다. 무쌍의 눈이 번쩍했다. 그렇다. 어린 시절의 일을 지금 와서 따질 만큼 속 좁은 놈은 아니지만, 어머니 사건은 목에 걸린 가시다. 백부 말대로 찜찜함을 털어 버릴 수만 있다면 어머니도 떳떳하고 자신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의사를 부를 것도 없다. 오금공, 공간지각력, 안법의 조합보다 더 확실한 검사방법은 없다. 두웅- 공간지각력이 박인보의 신체를 주르르 훑었다. 뇌와 척수에서 음경까지 이어지는 신경돌기가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백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음경 동맥 혈관이 막혀있고 음경평활근이 끊어졌다. 안법을 발휘하자 미세한 조직이 확대되었다. 돌덩이처럼 딱딱한 혈전이 동맥 혈관을 틀어막았고, 음경평활근은 흔적조차 희미했다. 오래전에 기능이 소실되었다는 증거다.
이래서야 해면체 내피(內皮)세포와 음경 신경 말단에서 산화질소(NO)가 분비되어도 Cyclic GMP가 생성되지 않는다. Cyclic GMP가 생성되지 않으면 정맥이 폐쇄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어떤 자극을 받아도 존슨이 여름철 소불알처럼 늘어진 상태만 계속된다는 소리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기질적 임포텐츠다. 한 가닥 남아있던 의구심이 싹 쓸려나갔다.
“백부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요. 백부는 예전에도 자신이 내뱉은 말에는 책임을 졌거든요.”
말투는 심드렁했지만,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노회한 박인보가 조카의 변화를 모를 리 없다. 됐다. 원죄를 벗었다. 아담은 하느님을 속이지 못했지만, 자신은 아담이 아니고 무쌍이는 하느님이 아니다.
“크허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진짜 검사를 하자고 했으면 조금은 서운했을 것이다. 자신의 말을 믿어준 무쌍을 업어주고 싶었다. 이놈은 대인이고 자신의 혈육이다.
“맞다. 내가 거짓말도 잘하고 비겁한 짓도 많이 했지만, 약속을 어긴 적은 없었능기라. 대충 실타래가 풀렸으니 부탁 두 가지만 들어도고.”
“부탁이요? 하지 마이소. 백부와 내가 부탁하고 들어줄 사입니까? 핏물 줄줄 흘리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무쌍이 몸을 뒤로 빼며 완강히 거부했다.
“클클, 언가이 야박시럽게 구는구마.”
박인보는 매몰찬 반응에 불구하고 끄떡도 하지 않았다. 가족 관계가 회복된 이상 주도권이 자신에게 넘어왔다. 무쌍이 아무리 대단한 인간이고 잘 난 인간이라도 자신은 백부고 무쌍은 항렬 낮은 조카다. 이것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