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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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장 종두득두9
김극도가 그릴을 설치하고 토치로 숯에 불을 댕겼다. 연순이 삼겹살을 올리자 냄새에 끌린 말벌 몇 마리가 날아들었다. 피피핏- 허공에 섬광이 죽죽 그어지고 붕붕거리던 말벌이 후두두 떨어졌다. 난데없이 품속에서 칼을 꺼내 휘두른 김극도나 보는 여자들이나 심상했다. 그 정도 퍼포먼스는 응심제에서 일상에 속한다.
“아저씨, 소주 한잔 해요.”
연순이 잔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소인은 근무 중이라…….”
김극도가 정중히 사양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어휴, 그림자 아저씨도 병이다. 병!”
연순이 혀를 찼다. 무쌍이 피식 웃었다. 책임감만이 아니다. 김극도는 환혼구타술을 시술받고 무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후로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고 보면 세차례나 환혼구타술에 당하고도 기죽지 않는 선우현이 대단한 인간이다. 문득 노바토피아가 그리워졌다. 이 땅은 걸리적대는 인연이 끝도 없다.
“어제 백부를 만났다.”
대나무 젓가락으로 삼겹살을 뒤적이던 무쌍이 불쑥 말했다.
“오빠야, 뭔 일 없었지?
연순이 눈알을 굴렸다. 박인보 아저씨와 오빠는 견원지간이다. 만나면 사달이 나도 크게 난다.
“임마, 내가 호로자식이냐? 백부를 손찌검하게. 흐흐흐!”
무쌍이 툴툴 웃었다.
“끓는 기름과 찬물이 만났는데 별일 없었다고요?”
“복잡한 이야기는 할 거 없고, 회사를 주길래 받았다.”
“거기 먼 말씀이래요?”
연순이 눈을 끔벅거렸다.
“정신이 나갔는지 정신을 차렸는지 모르지만, 본인 회사 지분을 전부 내 앞으로 돌려놨더라.”
“하이고, 잔머리 마왕답네요. 어린 여차장들 등골 빼먹는 썩은 회사를 물려주고 지난 세월을 퉁치자고? 일없다 카시소. 실속 없고 이미지 나쁜 회사를 받아봐야 짐만 됩니데이.”
입바른 연순이 촉새처럼 조잘댔다. 백질간에 패인 감정의 골은 깊고도 넓다. 아저씨가 엉뚱한 흉계를 꾸몄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여객이 아이고 섬유다. 여객은 우탁이에게 갈 거다.”
“에엑, 섬유라꼬예! 뒤바뀐 거 아이라예?”
“정말이가? 여객보다 열 배 스무 배 큰 알짜 회사를 오빠에게 넘겼다고? 돌아가실 때가 되었구마.”
진순도 깜짝 놀랐다.
“맞다. 백부는 시한부 생명이다. 내가 손을 썼지만 잘해야 오 년이 한계다.”
“시상에! 그렇게 포악을 떨더니만…….”
“그란다고 오빠 멤이 풀리나.”
연순이 어이없는 얼굴이 되고 진순이 중얼거렸다.
“많이 후회하고 있더라. 오빠도 용서했다. 니들도 집안 어른으로 대하도록 해라.”
“오빠!”
진순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가족 간의 다툼이 오래 지속되면 피학과 가학이 뒤죽박죽 섞이게 된다. 종내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불분명해진다. 어떤 형태로든 화해했다면 오빠는 큰 짐을 내려놓은 셈이다.
“회사를 장씨 가문에 넘길 수야 있나. 싫어도 받아야지. 그렇다고 숟가락만 올릴 생각은 없다. 주당 순 자산을 계산해서 양수 대금을 치를 생각이다. 대략 35억 원쯤 되겠더라.”
“35억! 너무 큰돈 아이라예?”
연순의 눈이 똥그래졌다.
“흥! 오빠는 니 생각보다 훨씬 부자다. 인보 아저씨가 그까짓 회사로 생색내려는 모양인데 망초밭에 콩 한 줌 뿌리기지.”
진순이 코웃음 쳤다.
“사장님 한 잔 드시옵소서. 영문을 모르지만 축하해요. 소녀가 졸업하면 취직자리는 굳었네요. 헤헤헤.”
“옹야!”
무쌍은 진순과 연순이 주는 대로 술잔을 받았다. 변심한 백부, 아리송한 혜영의 편지가 술을 불렀다. 어느새 금복주 빈 병이 열 개나 쌓였다. 술기운이 돈 무쌍이 진순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좋구나, 죽림 정자도 좋지만, 진보연이 완성되면 말순도에서 더욱 운치 있게 한 잔 빨아야지.”
“맙소사! 진짜 이름을 그렇게 지을라 캅니까?”
연순이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다.
“그게 어때서? 아버지는 이 몸을 품어주는 연못이요 어머니는 이 몸이 쉴 수 있는 섬이라네. 향기로운 술과 맛있는 요리까지 준비되면 그곳이 묘연거가 아니겠나. 진순아, 오빠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기억나는 기 머꼬?”
“오빠 자취방에서 만들어 먹었던 누른국수! 오빠는?”
“갈비뼈가 부러져서 행랑방에 누워있을 때 니가 들고온 닭죽! 또 뭐가 있지?”
“오빠가 하중도에서 만들어준 꿩 구이! 오빠는?”
“술 취했을 때 만들어준 얼큰한 콩나물 해장국, 아침에 눈 떴을 때 풍기는 미역국 냄새!”
“난 오빠 냄새가 더 좋은데.”
“으이그, 닭살 커플!”
연순은 오빠와 언니가 벌이는 닭살 행각에 몸서리를 치고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렇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뚜렷한 기억은 함께 먹은 음식이다. 오래전에 함께 먹은 음식이 기억에 남은 누군가는 사랑했던 사람이다. 수십 년 전에 헤어진 옛연인의 얼굴은 흐릿해져도 함께 먹은 요리는 생생히 기억날 때가 있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개체보존적 본능이 아니다. 관계 확인에 기인한 충족감이고, 행복을 공유하는 의식이다. 누른국수, 닭죽, 콩나물 해장국, 미역국은 평범하다 못해 진부한 음식이다. 행복으로 새겨진 기억이 세월이 흐를수록 평범하고 진부한 음식을 미화해서 천상의 요리로 격상시킨다.
“니가 내를 좋아하마 나도 니가 좋다. 바위를 내려친 칼날은 부러지지만, 물방울은 구멍을 내는구나. 사랑의 밑바닥을 파헤치면 성욕밖에 없다는 거시기한 교수도 있더라만, 사랑의 밑바닥은 함께한 정이더라.”
끝말이 흐릿해졌다. 엄마가 미영 밭에서 목화솜을 따며 부르던 사설이 들렸다.
[못 따겄다 못 따겄다. 오늘도 다 못 따겄다.에이요~ 에이요~
몽실한 솜은 아들내미 겨울옷 누벼주고
벌떡한 솜은 서방 옷 누벼주고
에이요~ 에이요~
서산에 해 넘어간다. 쌍이 놈 허기질라.
아까븐 서방 힘 빠질라
에이요~ 에이요~ ]
무쌍은 진순의 무릎인지 엄마 무릎인지 구분이 안 되는 무릎을 벤 채 편안히 잠들어 버렸다.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는 진순의 얼굴에 만감이 서렸다. 니가 내를 좋아하마 나도 니가 좋다는 말에 가슴이 벌떡거렸다. 땀 냄새 풍기는 등에 업혀서 듣던 클레멘타인 노래가 귀를 울렸다.
세상이 끝나는 그 날까지 함께 보듬어 갈 사람이다. 오빠가 사장이든, 살인마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빠는 언제나 낙동강 봇도랑에서 듬직한 등을 내밀던 오빠다. 행복이 별건가. 함께 비비고 함께 먹고 살면 행복이지.
무쌍은 말순도 정자에 묘연거 현판을 올렸다. 8월 말에 시작한 정원공사는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중순에 끝났다. 이백 평을 예상했던 연못은 삼백 평으로 늘어나고 연못 중앙의 인공섬도 그만큼 커졌다. 연못을 빙 둘러서 복숭아나무를 심고, 연못에는 연꽃과 옥잠을 심었다.
응심제, 진보연, 말순도, 묘연거는 완성되었지만, 정작 어머니 행방은 찾지 못했다. 넙치가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었지만, 거짓 제보로 인해 혼선이 빚어지는 역효과만 발생했다.
초조해진 넙치는 경상남북도 일대의 건달이란 건달은 모두 투입했다. 남해 바닷가에 살다시피 하며 포항에서 해남에 이르는 해안 도시와 마을, 수백 개의 유인도, 제주도, 울릉도까지 뒤졌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머리를 쥐어뜯는 넙치 외에는 평온한 일상이 이어졌다. 득달같이 입국한 에밀은 정아영과 의기투합해서 열흘간 (주)금복주 매상만 잔뜩 올렸다. 두 사람 사이에 또 다른 의기투합이 있었음은 불문가지다. 정아영은 결혼을 서둘렀지만, 에밀은 보스보다 먼저 결혼하면 알라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는 이상한 이유를 들어서 결혼을 미루고 프랑스로 돌아갔다. 무쌍을 압박하려는 수작이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무쌍은 어머니를 찾기 전에는 결혼할 생각이 없으니 말이다.
김기택은 성실했다. 심야식당 간판을 단 푸드 트럭은 쉴 틈이 없었다. 새벽이면 토스트와 김밥, 호떡을 팔고, 심야에는 누른국수와 우동을 팔았다. 심야식당은 큰 인기를 끌었다.
통금 해제의 반동으로 각양각색의 손님들이 여명이 틀 때까지 심야식당을 찾았다. 야근을 끝낸 노동자, 셀러리맨, 경찰, 야간업소의 삐끼와 논다니, 건달, 이유 없이 거리를 쏘다니는 청춘이 허기진 배를 푸짐한 누른국수와 뜨끈한 우동 국물로 달랬다. 무쌍은 가타부타 간섭하지 않았다. 김극도를 보내서 장사를 방해하는 동네 양아치들만 싹 치워주었다.
“짐은 와 챙기노?”
심기 불편한 음성이 쨍 울렸다. 우탁이 고개를 돌렸다. 엄마가 한 발만 문지방을 넘기고 문틀에 기댄 자세로 비딱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집에서 나갈라꼬요.”
우탁은 영혼 없었던 대답을 던지고 대형 트렁크에 옷가지를 쑤셔 넣었다. 엄마와 말다툼하기도 지쳤다.
“빌어먹을 놈!”
장씨 이마에 파란 정맥이 도드라졌다. 씨비를 인수한 후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친정이 뿌리까지 흔들리고, 친척들은 툭하면 찾아와서 어깃장을 놓았다. 자식들은 하나같이 속을 썩이는데 크게 성공한 김말순 새끼는 짚은다리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느는 것은 흰머리요. 줄어드는 곳은 통장 잔고다.
“아부지 아파트로 들어갈라 카나?”
“야!”
우탁이 힐끔 돌아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엄마가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아무리 낳아준 엄마지만, 이제는 한집에서 얼굴 보며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았다.
“저 저, 배은망덕한 놈!”
장씨가 치를 떨었다. 아들의 눈초리에서 남편이 가출하던 날 자신을 쳐다 보던 눈빛을 읽었다. 당신과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모멸의 눈빛이다.
“아부지 건강도 좋지 않은데 밥이라도 챙겨드려야지요.”
속이 뒤집어지는 한마디가 부록으로 붙었다.
‘내가 지놈을 어떻게 키웠는데……!’
은근히 비난하는 말에 신트림이 올라왔다. 장씨 눈이 세모꼴로 변하고 미간의 주름이 수자골 굴티처럼 깊어졌다. 그나마 말벗이라도 되어 주던 화자 년이 행방불명 되었는지도 일년이 넘었다. 희자는 딸을 잃은 뒤로 혼이 나갔다. 그나마 온전한 자식놈마저 남편과 한편이 되었다.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며칠 전 간만에 회사로 남편을 찾아가서 수모를 당했던 기억이 우르르 떠올랐다.
“무슨 일로 왔소?”
남편이 대뜸 내뱉은 말이다. 적십자 회비를 받으러 온 수금원 취급이다. 전혀 반갑지 않지만, 쫓아내기엔 껄끄러운 그런 손님 말이다. 속에서 울컥하고 뜨거운 기운이 치밀었다.
“마누라 없이 사니까 조니껴?”
“나쁠 것도 없소. 무신 일이요?”
박인보가 국어책 읽듯이 반문했다. 억양 없는 대답에 짜증 강도가 높아졌다.
“마누라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서방 보러 오는 기요?”
박인보가 장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적십자 회비 수금원을 보는 눈이 악질 지방신문 쓰레기 기자를 보는 눈으로 바뀌었다.
“그건 보통 마누라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지. 제삿날 받아놓은 서방을 두 달 만에 찾아와서 안부 한마디 묻지 않는 마누라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이 인간이!’
급소를 찔린 장씨의 속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남편은 작년부터 변했다. 친정 때문에 두 사람의 역학 관계가 뒤집히는 개 같은 상황이 벌어졌지만, 이처럼 대놓고 냉대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시도한 독살 미수의 내막을 남편이 알고 있음을 꿈에도 몰랐다.
“화자를 우얄라 캅니꺼? 마냥 기다리기만 할겁니까?”
“음!”
박인보의 얼굴이 흐려졌다. 경찰에 실종 신고만 해두고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워낙 제 멋대로인 딸년이라 포기하고 내버려 두었다. 평소에도 돈을 뜯어가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귀가하지 않던 년이다. 돈이 떨어지면 돌아오겠거니 했는데 가출한 지 일 년이 지났다.
“경찰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소?”
“야, 아무래도 무슨 사달이 났는갑소.”
“휴우, 에미가 딸년을 그따우로 키웠으니…….”
박인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머라카요! 얼라를 나 혼자 키우요? 이녁 잘못은 생각 안 하고 와 나만 가꼬 카요.”
장씨가 발칵 했다. 평소엔 표준말을 쓰지만 흥분하면 여지없이 본 성질과 함께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을 챙기야 된다 아이가. 내 말이 억울하나? 내는 사업을 제대로 키웠다. 자네는 집안을 제대로 단속했나? 내 잘못을 말해 봐라.”
말투가 하소에서 반말로 바뀌었다. 장 씨는 입술만 오독오독 씹었다. 할 말이 없었다. 반박해봐야 본전도 찾지 못한다.
“여자가 조신하게 집안을 챙길 요량은 않고, 칠락팔락 회사에 입대고, 친정에 붙어사니까 애들이 그 모양이다 아이가.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라. 답답한 사람아.”
박인보가 한 번 더 장씨의 속을 뒤집어 놓고 인터폰을 눌렀다.
“아영아, 들어와 봐라.”
사장실에 들어온 정아영은 장 씨에게 목례만 하고 지시를 기다렸다. 장 씨의 눈꼬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니는 인사도 제대로 못 하나?”
“사모님, 이곳은 회사고 저는 사장님 부하입니다.”
태연한 대답에 발작하려는 순간 박인보가 손을 저었다.
“중부서에 화자건 확인해보고 삼식이 불러라. 부산을 뒤져봐야겠다.”
“삼식용역은 그 껀 때문에 여력이 없는데요.”
정아영이 장씨의 눈치를 보며 말을 돌렸다.
“다른 조직을 소개받을 생각이다.”
박인보는 넙치가 조직이란 조직을 몽땅 쓸어다 김말순 추적에 투입했음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