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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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장 종두득두11
“이 자리가 어떤 자린데 패악을 부리노.”
“커허험!”
장경모가 짐짓 조카딸을 나무라고 장경주가 헛기침으로 자존심 강한 대꼬챙이 늙은이들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늦었다. 불씨는 사방에 널린 마른 깔비와 장작에 옮겨붙었다.
“이런 버르장머리 보소. 형님이 오죽하매 그러시겠나. 내도 이판사판이다. 내로라하는 구미 유지 장경남이 아들 하숙비 걱정에 잠을 못 잔다 카마 누가 믿겠노? 이기 말이 되나! 말을 해봐라. 말을!”
“하이고, 존장께 눈알 부릅뜨는 꼬라지 보소. 장 씨 가문의 법도가 거꾸로 서는구마.”
장경남의 처가 방바닥을 두드렸다.
“어허, 이 사람 자중하게. 장 씨 가문은 아직 죽지 않았어.”
“숨 쉰다고 살아있으마 풍구(풀무)도 살아 있게요. 밥은 먹어야 살지요. 종가에서 이자라도 맡아 주이소.”
“형님도 어려운 형편일세. 알면서 왜 그러나.”
“소작꾼들이 머라카는지 압니까? 장 씨 가문이 대가리에 돌 맞은 능구렁이 꼴이 되었답니다.”
“은행이자가 석 달째 연체되가꼬 압류가 들어올 판인 거라. 어이쿠 복장 터져 죽겠구마.”
머리 허연 노인네들이 악마구리처럼 떠들었다. 종가에서 손실을 보전해야 한다는 둥, 종가 피해가 제일 크다는 둥, 장씨가 변상해야 한다는 둥, 양반가의 체통을 지켜야 한다는 둥, 고성과 하소연이 난무했다. 비난은 장필녀 남매에 집중되었다. 장경주 형제가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끙!”
장 씨가 신음을 흘리고 픽 쓰러졌다. 눈알이 허옇게 돌아가고 입가에 거품이 부걱거렸다.
“아이고, 박실아!”
장경주가 고함을 질렀다. 여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찬물을 얼굴에 뿌리고 손발을 주물렀다. 시세 불리해진 장씨가 꼼수를 부렸지만, 워낙 연기력이 뛰어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자신의 지병까지 상황에 맞춰서 이용하는 장 씨도 보통이 아니었다.
장 씨를 안방으로 옮긴 후에도 다툼은 그치지 않았다. 한창 갑론을박할 때 장기수와 장철수가 나타났다. 장기수의 안색은 그리 나쁘지 않았고 장철수는 무엇이 못마땅한지 찌뿌둥한 얼굴이었다.
“큰아버님, 별고 없었습니까?”
“오냐, 퇴근하는 길이구나. 국사에 바쁠 텐데 시간을 냈구나.”
장경주가 조카 장철수를 반갑게 맞았다. 장경모의 얼굴도 밝아졌다. 부지사인 아들은 가문의 자랑이다.
“가문이 누란의 위기에 빠지고, 어르신들 심려가 자심한데 전들 일이 손에 잡히겠습니까.”
매끄러운 언변과 달리 장철수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얼굴이 불콰한 모양새들을 보아하니 한바탕 입씨름이 벌어진 모양이다. 늙은이 무르팍 세우기란 말이 있듯이 뚜렷한 대책도 없이 날마다 모여서 떠들어봐야 답이 없다.
3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별별 수단을 썼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지극히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고 사채를 썼다곤 하지만 아무리 꼬투리를 잡으려 해도 하자가 없었다. 중앙 정계와 관계에 진출한 굵직한 친척들도 이번 사건에는 체 머리를 흔들고 손사래를 쳤다. 나름 한 수를 준비했지만, 워낙 치사해서 말하기도 내키지 않았다. 사촌 형이 연락하지 않았으면 오지도 않았다.
“아비야, 소득은 있더나?”
장경주가 아들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예, 대일방적 여사장과는 이야기가 잘 되었심더.”
“오호! 얼마에 넘길라 카더노?”
장경주가 반색했다.
“주당 35,000원에 쇼부봤심더. 여사장 지분이 20,000주니까 7억 원입니다.”
“35,000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도둑놈이 주워 먹는구마. 자금은 우예 장만할라 카노?
“여객 주식을 담보로 5억을 대출받기로 대구은행과 이야기 되었심더.”
“그래? 그라마 나머지는 내가 준비하꾸마.”
듣고 있던 장경모가 끼어들었다.
“장조카, 이기 무신 소리고?”
“당숙님들도 이리 와 보시소.”
장기수가 뚱해 있는 당숙들을 불렀다. 자금을 보탠 방계 친척들도 엉덩이 밀이로 자리를 좁혔다.
“오늘 4%를 확보했응께 우리 지분이 44.8%로 박인보 사장보다 앞섰심더.”
“그라마 머하노. 서로 삐까삐까한 마당에 나머지 6%가 박인보 사장 편인데.”
장경남이 말허리를 특 잘랐다.
“계속 들어 보이소. 매형이 일반주주들을 믿고 있지만, 따지고 보마 전부 남인기라요. 피붙이도 돈 때문에 갈라서는 시상인데 소금 처먹이면 물켜지 않을 놈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사장도 넘어오지 않았습니까. 나머지 주주들이 박인보 사장을 편들어도 승산은 충분합니더. 우리 지분 45%에 희자 삼 남매 지분 7%를 합치마 52%입니다. 게임 끝나는 거지예.”
“그렇구먼. 솟아날 구멍이 있었구마.”
장경택 형제의 얼굴이 환해졌다. 주축 인물 중에 두 사람의 형편이 제일 곤궁하고 다급했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길바닥에 나앉을 판이다.
“임시 주총을 열어서 대표이사만 갈아치우마 향심섬유는 우리 가문의 회사가 되는 겁니다. 현대와 삼성이 별겁니까. 우리도 재벌이 되는 기지예.”
탕- 의기양양해진 장기수가 티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애들은 우얄라카노. 가들이 우리 핀을 들겠나?”
장경택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희자와 이야기 끝났심더. 희자가 이혼 위자료로 화자 주식까지 사들여서 16,000주 3.2%를 보유하고 있거든요. 향심여객 주식 30%에 현금 2억을 얹어 주기로 했심다. 3.8%를 가진 우탁이 기권하면 게임아웃이지요.”
“자네 말대로 되마 더 이상 좋을끼 없지마는 여우 같은 박 사장이 손놓고 있겠나?”
장경남의 처가 걱정했다.
“그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장철수가 나섰다.
“대구 지검의 김달수 검사가 나서주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에 향심섬유 압수수색이 들어갑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회사가 있겠습니까.”
“이보게 조카, 너무 거친 수단 아닌가. 회사 가치가 떨어지마 결국 우리 손핸기라.”
장경주가 걱정했다.
“걱정하지 마시소. 광주고법 부장 판사로 있는 만수와 경북 지방경찰청장으로 있는 인수 형님이 외곽에서 압박하고, 제가 행정력을 동원해서 공장폐수부터 식당 위생까지 후드려 잡을 겁니다. 꼬투리를 잡아서 대표이사 개인비리로 몰아야지요. 매형이 워낙 깨끗한 분이라 조작 없이는 힘듭니다.”
“허, 역시 젊은 피가 다르구먼. 우리 늙은이들은 뒷방으로 물러납시다. 허허허!”
장경모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래서 권력이 좋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어르신들이 중심을 잡아야 가문이 바로 서지요. 그라이끼네 당숙도 쪼매만 참고 힘을 모아 주이소. 경영권만 잡으마 화수분이 손에 들어온다 아임니꺼. 손해 본 재산을 두 배로 돌려드리겠심더.”
“장손이 다르기는 다르구마.”
자신만만한 장조카의 말에 장경택 형제의 얼굴이 풀렸다. 조카를 고소한다고 설쳤던 장경택이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장기수의 등을 두드렸다.
“여사장은 사람이 가벼워서 가능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박 서방과 친분도 깊고, 거래도 오랜 사람들이다. 너무 쉽게 생각 말고 단디 추진하거라. 필요한 자금은 내가 만들어주꾸마.”
장경주 옹이 앞서 가는 아들을 진정시켰다. 책임 소재를 따지며 집안싸움으로 번지던 자리가 화기애애한 친목 도모의 자리로 급변했다. 이들은 뚜바이부르파의 거대한 그림자가 향심섬유를 덮었음을 꿈에도 몰랐다. 행정력과 사법기관을 동원한 압박이 먹힐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장경주 옹이 걱정한 대로 박인보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 촉수를 통해 회동에 참석한 면면을 전해 들은 그는 곧바로 움직였다.
진평동 장경택의 사랑방, 장경택은 외출복을 입은 채로 잠들었다. 환갑은 넘긴 나이에 몇 시간이나 이어진 갑론을박은 체력적으로 무리였다. 따르르- 전화벨 소리가 선잠을 깨웠다.
“머꼬!”
목침을 밀어놓고 부스스 일어나서 수화기를 들었다.
-어르신 별고 없었습니까? 이 변호사입니다.“
“어허, 변호사 양반이 웬일이오?”
고소 고발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장경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변호사가 고스톱치자고 전화했을 리 없다.
-내일 이선장 횟집에서 다금바리 한 접시 하입시다. 경남 어른도 함께 나오시소.
“무신 일이당가?”
-어르신께 손해 날 일은 아입니다. 나오실 때 주식 실물을 챙겨 오시소.
이 변호사는 변호사 아니랄까 봐 속내를 비치지 않았다. 잠시 염두를 굴리던 장경택이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대지주로 한평생 평온한 삶을 살았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박인보의 단골인 이선장 횟집, 장경택과 장경남이 좌정하기도 전에 이 변호사가 들어섰다. 조바가 밑반찬을 깔고 홍합이 그득한 스텐 보울과 금복주를 들였다. 목이 탄 장경남이 대뜸 병목을 잡았다.
잔이 한 순배 돌아가고 홍합이 실팍하다느니 털이 억세다느니 흰소리가 몇 마디 오갔다. 이 변호사가 딱하고 잔을 내려놓았다.
“어르신, 요즘 많이 힘들지요?”
“큼, 말해 무엇하겠는가.”
장경택이 자작으로 잔을 쳐서 홀짝 마셨다. 이 변호사가 비시시 웃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양반이다. 협상 자리에서 속을 그대로 드러내면 어쩌잔 말인가! 주식을 가져오라고 했을 때는 어떤 자린지 짐작했을 것 아닌가.
“박 사장이 처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지요.”
“종가 큰형님이 사람을 좀 가리는 편일세. 속 좁은 인사가 그런 대접을 받고 좋아할 리 없지.”
“박 사장이 두 당숙님은 달리 여깁띠다. 인간 대접하고 명절에 덕담이라도 건네는 사람은 처당숙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이 변호사가 맘대로 지어낸 이야기다. 처당숙이 덕담을 건넸는지 악담을 건넸는지 알지도 못하고 중요하지도 않다. 그렇게 믿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으로 호감을 사고 경계심을 푸는 효과가 있다.
“그랬나? 박 서방이 인물도 재산도 없었지만, 사람은 여물었어. 나는 사람을 까다롭게 가리지 않네. 허허허!”
기분이 좋아진 장경택이 헐헐 웃었다. 힘 있는 인간이 자신을 좋게 본다는데 나쁠 게 없었다.
“그저께 수성동 사모님이 박 사장을 찾아왔습니다. 찌붓찌붓하다 갔지만, 박 사장이 누굽니까. 바로 속내를 알아차렸지요.”
“흠, 그랬었군.”
“거두절미하고 주당 35,000원 쳐 드리지요.”
장경택과 장경남의 눈이 화등잔처럼 변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본전치기에 주식을 넘기려고 했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회사가 곧 가문으로 넘어 올낀데 만다꼬 내가 넘기노.”
장경택이 배짱을 퉁겼다. 회사 경영권만 쥐면 만사가 해결된다.
“훗!”
이 변호사가 딱하다는 듯이 픽 웃고는 장경택 형제를 직시했다.
“택도 없는 소리 하덜 마이소. 백기사 주식 10%만 합쳐도 52%인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어제 여사장이 장 전무에게 주식을 넘겼어. 우리 가문이 제일 대주주란 말일세.”
장경남이 우쭐해서 해서는 안 될 말을 뱉었다. 시골 노인은 각박한 지분 싸움이 얼마나 예민한 문제인지 알지도 못했다. 이 변호사는 속으로 움찔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밀어부쳤다.
“두 분만 알고 계시소. 박 사장이 누굽니까. 장 전무가 아무리 설쳐도 발끝도 못 따라가는 수완꾼입니다. 내막은 함구하겠습니다. 희자가 아버지를 제쳐놓고 외가 손을 들어줄까요? 우탁이가 집 나와서 박 사장 아파트에 들어가려고 하는 건 아시지요?”
“음!”
장경택 형제는 와락 불안감이 들었다. 사실 그 불안감 때문에 한달음에 달려왔다. 장조카와 필녀가 큰소리치지만, 종조카사위는 절대로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일반주주들은 박인보를 지지할 게 뻔하고, 아이들이 아버지를 제쳐놓고 외가 쪽 손을 들어준다고 보기도 어렵다. 대일방적 주식 양도에도 모종의 음모가 개입한 것 같았다.
“씨비를 매입하고 많이 후회했지요? 기회를 놓치마 두 번 후회하게 됩니데이. 장 전무 말 듣고 그 많은 농토를 다 꼬라박았지예? 사채는 껐지만, 은행이자를 물어야 하고, 남은 토지와 집이 저당 잡혀 있지요. 어물어물하다가 길바닥에 나 앉으마 우얄라캅니까?”
“험험!”
“박 사장도 자금 여유가 많지 않심더. 이만 주 정도밖에 매입할 여력이 없어요. 오백 더 쳐서 육억 삼천에 매수하지요. 육억 삼천이면 상황이 한 번에 풀린다 아임니꺼. 집안도 안정되고, 빚쟁이에 시달릴 필요가 없고, 농토를 다시 사들여도 되지요. 우신에 내가 살아야 한다 아임니꺼.”
“험험!”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이 장경택 형제의 귀에 쏙쏙 파고들었다. 우신에 내가 살아야 한다는 변호사의 말이 가슴을 쳤다. 두 늙은이는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것 같았지만, 대뜸 그러마 소리를 못했다. 가문의 일원으로써 배신때리기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장경남이 형을 쳐다보았다. 형제의 눈이 마주쳤다. 홀린 듯이 장조카와 박실이 추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그저 예전으로 돌아가고만 싶다는 눈빛을 서로 읽었다. 두 사람이 머뭇거리자 이 변호사가 한마디 더 했다.
“마지막 기회인데……. 아차 하마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는데 그 우사를 우예 견딜라 캅니꺼. 박 사장이 두 분 어르신을 위해서 힘들게 내린 결정인데 호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어쩔 수 없지요. 기회는 두 번 오지 않습니데이.”
이 변호사가 쐐기를 박았다. 변호사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다. 밀고 당기는 현란한 말발에 시골 노인네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