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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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장 종두득두14
“교환이라꼬?”
“야, 일종의 인질 교환이라예.”
“경찰이 협상에 나서나?”
“그럼예. 지들이 먼저 교환하자 캅니더. 점마들을 한 명씩 내줄 때마다 조건을 붙여서 잡혀간 학우들을 빼냅니더.”
“허이고, 체계가 잡혔구마.”
한국의 앞날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샤트르의 말이 생각났다. 아프리카나 중동에서는 부도덕한 위정자, 불의한 정권에 맞서는 민중 데모를 본 적이 없다. 한국보다 백배는 심각한 상황에 불구하고 각자도생이다. 어쩌면 이러한 열정과 오지랖이 역동적인 발전의 원동력인지도…….
무쌍이 열람실을 죽 둘러보고 김숙의 얼굴에 시선이 머물렀다. 피가 튀는 액션과 총성에 놀란 초식남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웅성거릴 때 김숙은 전장 분석을 마치고 행동 방향을 결정했다. 웬만한 남자도 쫓기고 구타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얼이 빠진다. 뛰어난 지휘관, 장군감이다.
‘머스마 찜쪄먹을 가시나구마!’
김숙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다부진 얼굴에 크고 작은 주근깨 65개가 다도해 섬처럼 점점이 흩어져 있다. 미인이란 수식어를 붙이기엔 무리지만 나름 귀여운 얼굴이다. 무엇보다 다부진 성격과 동료를 챙기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노바토피아에 우글우글한 노총각 리스트가 주르륵 스쳐 갔다. 수입 좋고 능력좋은데 일에 미쳐서 짝없는 놈들이 많았다.
‘선우현을 쥐고 흔들기엔 딱인데! 나이 차이가……. 쩝!’
“몇 살이야?”
“스물 둘이라예.”
뜬금없는 질문에 김숙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K 대학에서 다스베이더를 모르면 간첩이다. 교수들도 쩔쩔매는 실력, 조각상 같은 신체와 준수한 외모, 후배들 술값도 잘 내주고 밥도 잘 사주는 성격 좋은 인물이 다스베이더다.
재벌 2세, 최고 권력자의 숨겨진 아들, CIA 첩보원, 외계인 등등 온갖 소문이 나도는 정체불명의 인물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돈 많고 똑똑하고 인물좋고 성격좋은 최고의 남편감이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저런 남자는 잡아야 한다.
“좋은 나이다. 짭새와 턱이 깨진 두 놈은 병원에 입원시키고 나머지 똘마니들은 알아서 해라. 점마들도 불쌍한 인생이다.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손발인 기라. 때리지 말고 밥 굶기지 마라. 지금은 정당방위를 주장할 수 있지만, 가둬놓고 때리면 특수폭행죄에 공무방해죄까지 따라 붙는다.”
“알았어예. 상태가 부실해서 때렸다간 개값 물어주겠어예.”
장치수와 부상당한 백골 대원은 대학병원으로, 나머지 백골 대원 열 명은 지하 동아리방 행이 결정되었다. 김숙의 얼굴은 허락이 떨어졌음에 불구하고 실망감이 역력했다. 나이를 물었으면 진도가 나가야지. 할배처럼 ‘좋은 나이다.’가 뭐람! 김숙의 속마음이다.
삑삑- 뒤늦은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머꼬 머꼬!”
“언놈이 도서관에서 소란 피우노.”
경비아저씨들이 시커먼 방망이를 휘두르며 우르르 뛰어들었다. 설레발치는 모습이 바깥에서 눈치를 보다가 상황이 종료되자 욕먹지 않으려고 한 다리 끼어든 모양새다.
“시끄러워요!”
김숙이 빽 소리 질렀다. 경비 아저씨들이 움찔하고 김숙의 눈치를 보며 찌그러졌다. 바닥을 향한 시커먼 곤봉이 고개 숙인 거시기를 연상케 하는 안스러운 장면이었다. 학내 소요가 벌어지면 제일 불쌍한 사람이 경비아저씨다. 학교 당국, 흥분한 학생, 악에 받친 경찰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없는 존재다.
“장치수, 오늘은 맛보기야. 곧 지옥을 열람시켜 주지. 물론 구경은 공짜야.”
무쌍이 들것에 실려가는 장치수를 만감이 서린 눈으로 쫓았다. 어차피 날 잡아서 족칠 놈인데 저절로 엮였다. 마치 알 수 없는 큰손이 먹잇감을 몰아주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무쌍은 구닥다리 리볼버와 발사된 탄자를 챙겨서 귀가했다. 공부할 분위기도 아니고, 곧 전경 중대가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동안 애쓴 보람도 없이 한바탕 번잡스러움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아빠, 웬일이야? 나보고 싶어서 빨리 왔지?”
무쌍이 일찍 귀가하자 미나가 좋아라. 뛰쳐나왔다.
“그러엄, 아빠는 우리 미나를 한 시간만 보지 못해도 눈이 침침해지거든.”
“어! 그럼 안 되는데. 아빠가 할아버지 되는 거야?”
커다란 눈망울을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이 깨물어주고 싶도록 귀여웠다. 폐유 찌꺼기처럼 남았던 불유쾌한 기억들이 깨끗이 증발되었다.
“하하하, 그게 아니걸랑. 남자는 예쁜 여자를 보면 눈이 번쩍하면서 밝아진단다.”
“에이, 아빠는 엉터리!”
미나가 배시시 웃었다.
“아이고, 요 귀여운 것!”
무쌍이 미나를 번쩍 들어서 무동 태우고 우쭐우쭐 맴돌았다.
“캬하하하!”
짤랑한 계집애의 웃음이 응심제를 울렸다.
“하이고, 저 가시나는 오빠만 보면 좋아죽네! 죽어.”
무쌍을 맞으러 나온 계순이 악의없이 투덜거렸다.
“학교는 재미있어?”
“응, 인제국민학교보다 훠얼씬 재미있어. 미나 따라다니는 친구가 열 명도 넘어.”
“짜식, 골목대장이 되었구나. 아빠 딸인데 어련하려고.”
“근데 선생님과 애들이 아빠가 너무 젊대. 아빠가 아니라 오빠래.”
“그래? 미나는 아빠가 좋아 오빠가 좋아?”
“당근 아빠지.”
“왜?”
“아빠에게 맘대로 안기고 뽀뽀하지만, 오빠에게는 그렇게 못 해. 언니들은 오빠라 부르니까 안기고 뽀뽀 못 하잖아. 아빠가 훨씬 좋아.”
“으이그, 졌다.”
“영악한 것.”
오빠라 부르는 처녀 일곱이 미나를 노려보았다.
“오늘은 별일 없었어?”
“있었어. 동선이 녀석을 또 때려주었어.”
“엉? 지난번에 미나가 때렸던 녀석이잖아.”
“응, 고무줄놀이하는데 가위로 고무줄을 싹둑 잘랐어. 뿔따구나서 업어치기로 패대기치고 살짝 때렸는데 코피가 터졌어.”
“어이쿠, 우리 집에 깡패 났네.”
무쌍이 짐짓 인상을 썼다. 공진파로 신체를 활성화하고 장난삼아 호신술 몇 가지를 가르쳤더니 또래에서는 천하무적이 되었다.
“아빠, 미안해!”
미나가 슬그머니 눈치를 봤다.
“괜찮아. 비겁한 남자는 때려도 돼. 지난번처럼 동선이 엄마가 학교 찾아올까 봐 걱정돼?”
“응, 사과는 했는데……. 동선이 아빠가 굉장히 높은 사람이래. 지난번에도 어떤 아저씨가 찾아와서 야단쳤어. 어쩌지?”
“걱정하지 마, 아빠는 더 높은 사람이야.”
듣고 있던 진순이 빙긋이 웃었다. 김달수가 부장 검사 아니라 검찰총장이라도 의미 없다. 그렇지 않아도 오빠가 벼르는 인간인데 딱 걸렸다. 오빠가 한 번은 웃어넘겼지만, 두 번 넘어갈 무골호인이 아니다.
“정말! 걱정 않아도 돼?”
“그러엄, 내일 선생님 만날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
“와! 엄마 최고!”
미나가 만세를 불렀다. 진순이 쓴웃음을 짓고 무쌍을 쳐다보았다. 오빠가 미나의 아빠가 되는 바람에 처녀 딱지도 떼지 않은 주제에 엄마가 되어버렸다.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모호했다.
다음 날 아침, 무쌍이 샤워할 때 연순이 욕실 문을 두드렸다.
“오빠, 똥파리가 떼로 몰려 왔어요.”
머리를 말리던 무쌍이 헤어드라이어를 끄고 머리를 내밀었다.
“머라꼬?”
“오빠, 또 사고 쳤죠? 대문밖에 똥파리들이 떼거리로 몰리 와가꼬 난리법석이라예.”
“이 자슥아, 또 라니! 오빠가 사고만 치는 사람이가.”
무쌍이 연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경찰이다. 문 열어라.”
고함과 대문을 둔기로 치는 소리가 꽝꽝 울렸다.
“점마들은 아침도 안 묵나. 디기 바지런시럽네.”
번잡스러움이 예상보다 빨리 닥쳤다. 어제 오후에 사달이 벌어졌는데 짭새가 새벽같이 달려왔다. 어지간히 사태를 빨리 파악한 셈이다. 아니면 교무과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줬거나. 학교 당국은 중립을 지킨다지만 학생 편이 아니었다. 어느 사회나 기득권 세력은 혼란이나 변화를 원치 않는다.
“오빠, 대문 뽀사지겠어예.”
“까딱없다. 8인치 티크 목을 티타늄으로 보강한 최강 대문이다. 도끼로 찍어도 삼박사일은 찍어야 빠개질 거다.”
“에구, 지금 대문 타령할 때가 아니라요. 도대체 뭔 사고를 쳤어예?”
“대문을 빠개면 지들만 손해지. 저게 얼만 줄 아나? 점마들 십 년 치 봉급을 탈탈 털어야 할걸.”
무쌍은 느긋했다. 경찰이 안기부에 전화 한 통화만 했어도 몰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응심제는 프랑스 문화원이니 말이다. 물론 자신의 신분을 내세울 생각은 없다.
“그 말이 아니잖아요. 우짜마 좋노.”
연순은 동문서답하는 오빠가 답답했다. 사태 수습을 해야 할 사람이 대문값을 물릴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노답이다. 오빠가 아무리 대단해도 상대는 조폭 따위가 아니라 사법 기관이다. 오빠 혼자서 정부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
“니는 마늘 까다 말고 여서 뭐하노? 니가 걱정할 일은 대문이 아니고 마늘인 기라.”
짝- 진순이 연순의 등짝을 때렸다.
“언니는 뭘 믿고 태평이고?”
연순이 친구 맞으러 가듯이 덜렁덜렁 대문을 향해가는 무쌍의 뒷모습에 시선을 주고 물었다.
“니는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모린다. 오빠는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백배는 힘이 센 사람이다. 오빠 걱정하지 말고 마늘이나 퍼뜩 까라. 오빠 배고프다.”
“힘만 세면 뭐하노. 권력도 있어야제.”
연순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전두환의 한 마디에 재벌이 공중분해 되고, 군인이 출동해서 시민을 쏘아죽이는 세상이다. 걱정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부장님, 별일 없을까요?”
가죽 잠바를 걸친 하 형사가 바바리코트를 돌아보았다. 시키는 대로 대문이 부서지라 두드렸지만, 뒤통수가 걸쩍지근했다. 한국에서 뒷배없이 이런 엄청난 저택을 소유할 수는 없다. 대문 재질도 특수했다.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의 신형 경찰봉으로 사정없이 두드렸지만, 손톱만 한 흠집도 생기지 않았다. 반탄력에 팔꿈치만 저릿했다.
김양수가 좌우로 고개를 돌려서 탱크가 드나들고 남을 장엄한 대문 양쪽으로 끝없이 이어진 담장을 둘러보았다. 살다 살다 이렇게 큰 저택은 처음이다. 그것도 자신의 담당 구역인 불로동에 말이다.
담장 안쪽에서 된장찌개 냄새, 생선 굽는 냄새, 고기 굽는 냄새가 풍겼다. 회를 동하게 하는 냄새에 꼬릿한 악취가 섞였다. 킁킁- 꼬질꼬질한 바바리코트 소매를 들어 냄새를 맡았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다.
데모가 격화되는 바람에 삼 일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사무실 소파에 엎어져 자다가 과장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뛰쳐나왔다. 갑자기 원인 모를 분노가 치밀었다. 언놈은 햄버거와 김밥을 씹으며 불철주야 뛰어다니는데 언놈의 집구석에선 온갖 향기로운 음식냄새가 솔솔 풍겼다. 언놈은 사십 후반에 셋방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언놈은 궁궐보다 넓은 집에 산다. 언놈은 마누라와 새끼 얼굴도 가물가물한데 언놈은 젊은 여자 일곱을 데리고 산단다. 대충 배 속에 쑤셔 넣고 나온 딱딱한 만두가 고추섰다.
“새꺄, 계장님이라 부르든지 반장이라고 불러. 언제까지 부장이라 부를래.”
“부장님이 정겹고 좋잖아요. 부장이 계장이나 반장보다 훨씬 높다 아임니꺼.”
하 형사가 비시시 웃었다. 동부경찰서 강력계 계장 김양수, 부장이라 불리지만 계급은 경위다. 경찰에서 호봉 높은 경사를 부르는 호칭이 부장이다. 부장으로 오래 있다 보니 경위로 진급해도 부장이다. 형사 반장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정식 명칭은 아니다.
“임마, 우린 빨갱이 새끼를 잡으러 온 거여. 청와대든 청남대든 상관없어. 안 나오면 때려 부숴.”
“허이고, 수류탄을 까 넣어도 까딱없을 것 같은디요. 바주카포로 한 방 때릴까요?”
대답은 안쪽에서 들렸다.
“이봐, 요즘 경찰은 선량한 국민의 집에 수류탄을 까 넣고 바주카포를 발사하나? 자알하는 짓이다. 민중의 몽둥이가 민중의 폭탄으로 획기적인 진화를 했구마.”
“새꺄, 흰소리하지 말고 문 열어. 공무집행이다.”
김양수가 버럭 했다.
“공무집행? 뭔지 모르지만, 아침이나 먹고 하자고.”
느물느물한 대답이 돌아왔다.
“허! 점마 머꼬?”
“강적이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여.”
출동한 형사 넷은 어이를 상실했다. 지금이 어떤 시절인가? 삼청교육대는 표면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살벌한 공안 정국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입바른 소리 한마디에도 유언비어 유포죄로 끌려간다.
죄가 없어도 병신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 하소연 할 곳도 없는 세상이다. 감히 강제 연행하러 온 형사에게 밥부터 먹고 하자는 놈이 있을 줄이야. 미친놈이거나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는 놈이다.
“어이, 박무쌍! 서로 쉽게 가자고. 내가 뽀라지 나면 당신도 피곤할 텐데.”
김양수가 좋게(?) 말했다.
“그건 그래. 파리가 앵앵거리면 짜증 나거든.”
“알았으면 문 열어.”
“그려. 공무 집행해라.”
딸각- 샛문이 열렸다. 형사 셋이 문을 왈칵 밀치고 들어섰다.
“박무쌍 맞제?”
“맞다.”
“공무집행 방해죄와 특수 폭행죄로 연행한다.”
한 명이 수갑을 꺼내고 두 명이 양쪽에서 팔을 잡으려고 대들었다. 무쌍이 양쪽에서 달려드는 형사 둘을 손바닥으로 툭 쳐서 떼 놓았다.
“이봐, 경찰 신분증과 영장부터 제시해야지!”
형사 넷이 못들을 말을 들은 듯 눈을 크게 떴다. 가죽 잠바가 눈을 부라렸다.
“이 새끼가 머라카노.”
“새끼라 카지 마라. 새끼야! 주거침입죄로 고소하기 전에 영장부터 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