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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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장 종두득두17
“김 반장, 얼라들은 코밑에 최루 분말을 바르면 깨어날 거다. 극도야, 얼라들 내보내라.”
“넵, 큰형님!”
김극도가 구십 도로 허리를 숙였다. 무쌍은 김양수가 거품을 물든 말든 안채로 들어가버렸다. 운동장보다 넓은 잔디밭에 덩그러니 남은 김양수는 더듬이 떨어진 개미처럼 서성거렸다.
‘극도야, 점마가 최루 분말을 바르면 기문혈을 고권으로 올려쳐라.’
김극도가 모기 앵앵대듯이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쌍은 끝까지 쪼잔했다. 그냥 숨통을 터주면 될 것을 너희들도 CS 맛을 봐라는 속내다.
“진짜 경찰을 개 패듯이 팼어예? 내는 오빠가 제대로 사고 칠 줄 알았능 기라. 에구구 찌개가 졸았네.”
연순이 된장찌개를 식탁에 올리며 쫑알거렸다.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지. 백골단 녀석들이 도서관까지 따라와서 여학생을 다구리 놓더라. 얼굴이 망가지고 젖가슴이 튀어나오는 꼴을 우예 보고 있노. 성질나서 몇 대 쥐어박았더니 떼거리로 몰려와서 악악거리네.”
무쌍이 느긋하니 수저를 놀렸다. 목마른 놈이 우물판다고 했다. 서두를 것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잘했어예. 여자를 패는 야만인 새끼는 손모가지를 싹둑 잘라야 해.”
연순이 폭행당한 당사자가 본인인 듯 결기를 냈다.
“거기 전부는 아닐걸. 전경 몇 놈 쥐어박았다고 닭장 차까지 출동하겠어? 오빠, 이실직고 해라. 인생 불쌍해진 놈 있제?”
진순은 역시 예리했다.
“백골대 얼라들을 끌고 들이닥친 놈이 장치수였어.”
“엄마야, 장치수!”
영숙에게 생선을 발라주던 진순이 화들짝 놀랐다. 왜 모르겠는가? 오빠가 13살 때부터 이빨을 갈던 놈이다. 무쌍의 인생에 재를 두 번이나 뿌린 놈이다. 수사 기록을 조작해서 도둑놈으로 몰고, 강간범으로 만든 놈이 장치수다.
“그 인간도 엔간히 재수없구마이. 쪼매 뽀사졌겠네.”
무쌍 본인보다 무쌍을 더 잘 아는 진순이다. 뒤끝 작렬하는 오빠에게 딱 걸렸으니 안 봐도 비디오다.
“인간 구실 하기는 쪼매 어려울 끼다. 글마가 총을 쏘지만 않았어도 그냥 노바토피아로 보내고 말았지.”
“오빠께 총을 쏴? 죽을라고 약을 썼네. 썼어.”
진순이 혀를 끌끌 찼다. 묵은 원한에 더해서 총까지 쐈으면 장치수 인생은 쫑났다.
“속은 시원한데……. 말썽나지 않을까요?”
계순이 걱정했다.
“니들은 아무 걱정할 거 없다. 법적으로도 문제없고, 권력으로도 문제없고, 주먹으로도 문제없능 기라.”
“언니야, 도대체 무신 소리고? 내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영지야, 니는 오빠 커피나 끓여. 애들은 몰라도 돼.”
연순이 끼어들려는 영지를 쫓아냈다.
“오빠, 대사관에 전화 한 통화면 끝날 일인데 와 번거롭게 일을 만들어예?”
“맞아, 경찰은 외국인이라 카마 절절매더라.”
연순의 의문에 계순이 맞장구쳤다.
“니들 말도 맞다만, 내가 명색이 대사관 참사관이다. 참사관은 고위 외교관이다. 경찰이 치외법권인 참사관 공관을 침탈한 셈이지. 해외 언론이 떠들어대면 나라 꼴이 뭐가 되겠노. 나는 조용히 살고 싶은 기라. 그라고 점마들 피똥 싸게 만들어서 무소불위로 날뛰는 경찰 조직에 경종을 울려줄라 칸다.”
“그렇게 깊은 뜻이!”
“오빠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연순이 감탄하고 진순은 심드렁했다. 경찰 기동대 아니라 군대가 몰려와도 걱정할 일이 없다. 오빠가 손을 쓰지 않더라도 지하실에 주야장천 낮잠만 자는 무서운 존재가 있다.
“오빠, 가루라는 언제쯤 돌아올까?”
진순이 소곤거렸다. 깜둥이 아저씨는 늘 지하실에 처박혀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지만 퍼플 치킨은 오빠를 졸졸 따라다니는 귀여운(?) 녀석이다. 힘 있는 존재는 많을수록 좋다.
“곧 돌아올 것 같다. 녀석의 파장이 강해졌어. 충전이 끝나가는 모양이다.”
깜둥이는 정신을 집중해야 파장이 연결되지만, 가루라는 평상적인 상태에서도 파장이 느껴졌다. 친구와 종속의 차이다. 근래 퍼플 치킨의 존재감이 부쩍 강해졌다. 깜둥이가 말한 각성이 끝나면 어떤 형태로 변신할지 자못 궁금했다.
“와, 나왔다!”
“잡아 잡아!”
무쌍이 대문밖에 나서자 대기 중이던 전경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무쌍은 손을 쓰려다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전경 대여섯이 달라붙어서 밀고 당겼다. 평소 해온 대로 닭장 차에 우겨넣으려는 심산이지만, 한 발짝도 이동하지 못했다. 천근추를 시전한 무쌍을 움직이려면 삼십명은 달려들어야 한다.
‘이것들 봐라!’
무쌍이 김양수를 흘끔 쳐다보았다. 김양수는 외면하고 중대장과 소대장들의 입가에 썩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쪼잔하게 애들을 시켜서 욕보이려는 의도가 빤히 보였다. 무쌍이 달라붙어 있던 전경들을 툭 털어내고 닭장 차 문을 걷어차서 쾅 닫았다.
“김 반장, 신사협정을 맺어놓고 이럴 거야? 내가 현행범이여, 피의자여, 피고인이여? 아무것도 아이제? 선량한 시민을 죄인처럼 끌고 가겠다고?”
김양수는 쏟아지는 물음표에 대답이 궁해졌다. 박무쌍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장경사와 백골단 열두 명을 박살 낸 장본인이 박무쌍이라는 첩보가 들어왔지만, 따지고 보면 거동수상자일뿐 피의자가 아니다. 똥집을 건드려서 좋을게 없다.
“저 새끼 머꼬? 쏴 죽이고 내가 개값을 물어주지.”
기동 중대장이 권총 홀스터에 손을 댔다. 살다 살다 수배범이 출두용 차량을 타박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아는 놈이다.
“정말?”
무쌍이 눈을 반짝였다. 너 잘 걸렸다는 표정이다.
“아 쫌, 그 정도만 해요.”
김양수가 기동 중대장을 돌아보며 버럭 했다. 병신같은 놈이 도서관에서 권총을 난사한 사실이 알려지면 직계 라인은 몽땅 징계를 먹는다. 개털이면 덮어씌우기라도 할 텐데 상대는 경찰을 개똥으로 아는 놈이다. 오히려 덮어쓰지 않으면 다행이다.
‘때려치우고 주점이나 차릴까?’
형사가 거동수상자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니……. 자신의 직업에 심각한 회의가 몰려들었다. 살다 살다 이놈처럼 까다로운 진상은 처음이다. 김양수가 한숨을 푹 쉬고 무전기로 순찰차를 불렀다.
김양수는 동부경찰서로 복귀하자마자 과장에게 불려가서 배 터지도록 욕을 먹었다. 불순분자 한 놈 연행하는데 전경 중대까지 부르고 세 시간이나 결렸기 때문이다. 영장 보류 때문에 늦었다고 변명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중범죄자는 사후 영장 청구를 할 수도 있다는 조항 때문에 귀싸대기만 맞을 뻔 했다. 하긴 영장이 발부되어야 강제 연행을 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은 진급 시험 문제로도 출제되지 않는다. 부옇게 닦인 김양수는 직접 취조에 나섰다.
“니가 장경사를 박살 낸 거는 맞제?”
김양수가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일단 혐의 사실을 잡아야 이바구를 풀어나갈 수 있다.
“앞뒤 자르고 말하면 지렁이가 뱀이 되고, 고양이가 호랑이 되기에 십상이지. 너 같으면 느닷없이 총쏘는 놈에게 죽여줍쇼하고 대가리를 들이밀겠나? 무조건 정당방위라는 사실을 니도 알제? 그리고 열람실에 학생 82명이 있었어. 애들이 총에 맞았으면 어쩔거여? 니들은 나한테 고마워 해야 혀.”
“장치수가 도서관에서 총을 발사했다는 증거 있나?”
김양수가 어깃장을 놓았다. 무쌍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불쌍하다는 눈빛이다.
“김 반장, 당신 어깨 위에 얹힌 물건은 붕어 대가리가? 닭대가리가? 억지는 통하지 않아. 장치수가 사용한 권총과 총탄은 고이 모셔놨어. 다른 증거는 필요도 없어. 탄자 스크레치, 탄흔, 탄도를 조사하면 빼도 박도 못해.”
김양수가 입을 쩍 벌리고 무쌍을 쳐다보았다.
“니 정체가 머꼬?”
“선량한 시민!”
“끄응!”
김양수의 표정이 썩어 문드러졌다. 백번 물어봐야 똑같은 대답을 할 놈이다.
“총기는 일단 돌려줘.”
김양수가 손을 내밀었다.
“증거 인멸할라꼬? 강제로 탈취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귀신같은 놈!’
속내를 들킨 김양수가 움찔했다. 코끼리 힘을 가진 여우 같은 놈을 취조하려니 십 년은 늙는 기분이다.
“공무집행 방해는 인정하제?”
“저언혀 못하지. 경찰이 시위현장이 아닌 도서관에서 여학생을 개 패듯이 구타한 행위가 공무집행에 상당하는지 내 변호사에게 먼저 물어볼게. 그것도 단체로 폭행하고 여학생을 올라타서 옷을 찢었어. 특수폭행과 강간 미수를 걸어도 될 것 같아. 반장 생각은 어때?”
질문엔 늘 반문이 돌아왔다. 김양수는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당장 때려치우고 주점이나 차리고 싶었다.
“글마들은 삐라를 뿌리고 데모를 선동한 시국 사범이야. 시국사범은 사후 영장이 발부되는 당연 체포 대상이거든. 그리고 경찰이 때렸다는 증거가 어디 있나?”
“어허, 쓸데없는 소리로 힘 빼지마. 제 식구를 감싸려는 정성은 갸륵하다만, 증거와 증인이 한 트럭도 넘어. 당신까지 도매금으로 다치면 우짤라고 그래? 나이를 보니 자식새끼 등록금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끄응!”
김양수가 된 신음을 뱉었다. 으르고 달래는 말솜씨가 잘 나가는 목사 이상이다. 이래서야 누가 누구를 취조하는지 아리송할 지경이다. 무쌍이 학생증 한 보따리를 꺼냈다.
“출두해서 증언하겠다는 학생이 열 다스도 넘어. 김 반장 당신이 나를 엮으려고 아무리 용써봐야 소용없어. 포기하고 사과해. 물론 위자료도 물어야겠지.”
“끄응!”
김양수는 자신이 몇 번째 신음하는지 몰랐다. 실탄을 발사한 장경사 놈 때문에 물증도 정황도 모두 불리했다. 과장이 탈탈 털라고 했지만, 용가리 통뼈를 삶아 먹은 놈을 무슨 재주로 턴단 말인가! 오히려 경찰서 전체가 털리게 생겼다.
멍청한 장경사를 패 죽이고 싶었다. 평소대로 주동자나 얼른 끌고 나올 것이지 과잉 진압을 하는 바람에 사달이 났다. 시끄러워지면 대가리들은 잠수타고 자기 같은 잔챙이들만 독박을 쓰게 된다.
‘외사과 새끼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노?’
김양수는 몸이 달았다. 어떻게든 박무쌍을 코너로 몰아야 여러 사람이 다치지 않는다. 개털이라는 정보만 들어오면 족쳐보겠는데 추가 정보가 들어오지 않으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김양수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엉, 저 양반은 왜 저래?’
과장이 의자를 밀치며 허겁지겁 강력계로 달려왔다.
“김 경위, 그분 수갑 풀어!”
“채우지도 않았는뎁쇼.”
김양수가 멀뚱멀뚱 대답했다. 갑자기 그 새끼가 그분으로 신분이 급상승한 이유가 궁금했다. 이유는 실시간으로 해소되었다.
“엑스뀌제 므와!”
“실례하겠습니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일행이 여경의 안내를 받아 들어섰다. 외국인 셋과 한국인 한 명이다. 뜻하지 않은 방문객의 등장에 소란하던 강력계가 조용해졌다.
“안녕하십니까? 형사과장 박상은입니다.”
형사과장이 깍듯이 인사했다. 좀 전에 방문 통보를 받은 주인공이다. 단정한 양복 차림의 중년 백인이 말없이 목례하고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스바르드 굴베이그님이십니까?”
한국어가 유창했다.
“그렇소!”
무쌍이 남자를 쳐다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주한 프랑스 대사관 1등 서기관 조엘 앙쿨입니다.”
남자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흡, 조때따!’
김양수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대형사고다. 박무쌍은 똥이 아니라 지뢰였다. 눈이 휘둥그레진 직원들이 숨을 죽였다.
무쌍은 단번에 앞뒤 상황을 파악했다. 외사과에서 프랑스 대사관에 스바르드 굴베이그의 신원을 조회하자 곧바로 자신에게 암호 통신을 보냈을 것이다. 암호 통신기는 서재 구석에 처박혀있다. 대사관은 통신이 연결되지 않자 곧바로 상황파악에 나섰다. 대사관 업무의 절반이 스파이 행위니 놀랄 일도 아니다.
“프랑스 대사관 고문 변호사 강용목입니다. 이쪽은 이등 무관 앙리 존 씨, 이쪽은 대사관 법무실 조사관 보통 콩코르 씨입니다.”
한국인이 나머지 인물을 소개했다. 우당탕- 서장실 문이 열렸다. 서장이 바쁜 걸음으로 걸어왔다.
“연락받았습니다. 동부경찰서 서장 박인용입니다.”
서장이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일선 경찰서장은 총경급이 맡는다. 경찰은 별정직이지만 굳이 직급을 매기자면 4급에 해당한다. 외교관 신분을 떠나서 직급으로도 상대가 안 된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앙쿨이요.”
앙쿨이 인사를 받고 서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국 경찰이 중요한 우리 시민을 강제 구금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책임 있는 해명을 기대합니다.”
서장의 얼굴이 노래졌다. 어제부터 이슈가 된 사건 때문이다. 현 정권은 태생적인 부도덕성으로 인해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고, 외국 언론의 눈치를 보느라 사팔뜨기가 될 지경이다.
유 무죄를 떠나서 프랑스 대사관이 문제를 제기하고 외국 통신사가 떠들면 젓 된다. 안기부 서빙고 팀이 말썽을 일으킨 당사자들을 가만 둘리 없고 서장은 첫 번째 타킷이다. 수사적인 젓이 아니라 실제로 새우젓 드럼통에 처넣어서 광천 토굴 깊숙이 밀어 넣을지도 몰랐다.
“자 자, 먼 길을 내려오셨는데 일단 차나 한잔 하시지요.”
서장이 설레발쳤지만, 앙쿨은 무쌍의 입만 쳐다보았다. 서장이 무쌍을 향해 간절한 눈빛을 던졌다. 멍청한 부하들이 범 털 아니 지뢰를 밟았다. 젊은 친구가 몽니를 부리면 광천 토굴행이다.
‘씨바, 산 넘어 산이구마! 죽어라. 죽으라 하네.’
김양수는 가슴이 쿵 떨어졌다. 내내 찜찜하더니 기어코 사달이 벌어졌다. 저놈이 누구기에 프랑스 대사관에서 떼로 몰려온단 말인가. 이건 서장 선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오십이 가깝도록 셋방살이를 면하지 못한 마누라의 얼굴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