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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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장 종두득두19
사달이 벌어진 단초는 박무쌍을 이틀만 잡아두라는 안기부의 협조 요청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경찰이 미쳤다고 최루탄까지 쏘아대며 무리하게 피의자 연행에 나섰겠는가! 말이 요청이지 명령에 다름 아니다. 안기부 지부장에게 불려간 지방경찰청장이 따귀를 맞는 세상이다.
‘산적 새끼인들 지금 상황에선 용빼는 재주 있겠어!’
박인용은 끈적하니 달라붙는 산적 이대덕의 험악한 면상을 애써 지웠다. 안기부도 안기부지만, 시퍼런 눈을 부릅뜨고 있는 양코배기가 열 배는 위협적이다. 안기부도 프랑스 외교관들이 이토록 빨리 들이닥칠 줄은 예상 못 했을 것이다.
박인용은 이미 계산을 마쳤다. 안기부는 외교적인 말썽이 발생하면 입을 싹 닦을 놈들이다. 오히려 나라 체면을 구긴 놈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광천 새우젓 토굴에 처넣지 않으면 다행이다.
밥벌이보다 준엄한 현실은 없다. 꿀 빠는 자리를 보전하려면 박무쌍의 비위를 맞춰서 양코배기들의 개입을 막아야 한다. 남들이 보기엔 서장 자리가 그럴듯 해 보이지만 훅 불면 가랑잎처럼 날아가는 가벼운 자리다.
“서장의 용단에 경의를 표하는 바요. 억류된 백골대 얼라들은 오늘 중으로 풀어주겠소. 억류한 학생들에게도 책임을 묻지 마시오.”
“고맙소. 없었던 일로 하겠소.”
서장은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충분히 명분 있는 대응이다.
“김 반장과 형사들은 직분에 충실했소. 동원된 기동대 애들도 명령에 충실히 따른 모범 전경이었소.”
“무슨 뜻인지 알겠소.”
서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박무쌍이란 자가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살았다!’
듣고 있던 김양수는 울컥했다. 직속상관이란 새끼가 벼랑으로 밀어버린 인생을 피해 당사자가 구원해주었다. 대전차 지뢰가 아니라 김양수의 인생을 밝혀주는 폭죽이었다. 이래서 세상은 요지경이다.
“본 건이 서장의 손에서 끝나기를 바란다면 나에 대해 일절 관심을 두지 마시오. 새옹지마가 될지 설상가상이 될지는 서장의 손에 달렸소.”
무쌍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무슨 뜻인지 알겠소.”
서장은 앵무새처럼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역병 같은 인간이 얼른 떠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어거지가 통할 상대가 아니다. 시비에 눌리고, 권력에 눌리고, 기에 눌린 그로선 처분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무쌍이 경찰서를 나서자 대사관 직원들이 우르르 따라나섰다. 서장과 간부들이 경찰서 정문까지 따라 나와서 배웅했다. 무쌍은 13년 전 터진 머리에 피딱지가 앉은채 칠곡경찰서 정문을 나설 때 받은 대로 돌려주리라 했다. 바람은 이루어졌다.
‘빌어먹을 안기부!’
박인용은 멀어지는 승용차 꽁무니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이튿날, 구금되었던 시위 학생들이 모두 풀려나고, 수배 중인 학생 55명의 수배를 해제한다는 공문이 학생처로 전달되었다. 기동대 전경들은 2박 3일 포상 휴가를 받고 환호성을 질렀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동부경찰서는 경찰직무집행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준법 경찰서가 되었다.
사흘 후, 장치수 경사의 파면 건의서가 제출되었다. 독직, 직권남용, 총기수칙 위반, 폭행 등에 관한 징계조치였다. 물론 공상 처리도 받지 못했다. 기동 중대장과 형사과장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개인 물품을 정리했다. 서장의 지시에 따른 그들로선 통분할 노릇이지만, 조직 생리상 조용히 보따리를 쌀 수밖에 없었다.
무쌍은 본인의 말에 책임을 지는 인간이다. 강력계 계장 김양수와 형사 셋에게 기물 파손과 심신이 허약한 여자들을 놀라게 한 책임을 물었다.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연봉에 해당하는 위자료를 물고 합의했다. 김양수 반장은 퇴직금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내며 울부짖었다.
“심신이 허약한 가시나들이 어떻게 형사에게 눈 부릅뜨고 악악댈 수 있나? 최루탄이 날아다니는 마당에서 깔깔댈 수 있나? 바퀴벌레 한 마리만 등장해도 놀라자빠지는 내 마누라는 머꼬? 천하의 갑부 새끼가 해도 해도 너무하네!”
일주일 후, 여자 넷이 불안한 얼굴로 응심제를 방문했다. 불려 온 김양수의 부인과 부하 형사들의 부인, 미혼인 박 형사의 모친이었다. 남편과 아들로부터 단단히 주의를 받은 여자들은 극도로 조심스러웠다.
“모친께서 아들을 잘 키웠습니다. 부인들께서도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아, 네!”
여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눈앞의 잘생긴 청년이 남편과 아들의 생살여탈권을 쥔 저승사자다. 무쌍이 봉투를 나누어주었다.
“제가 받은 위자료입니다.”
“네에?”
여자들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경찰은 서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첨병이자 의지처입니다. 상관의 지시에 따랐다고 하지만, 경찰이 불의한 행사를 하면 힘없는 서민은 누구를 믿겠습니까. 그들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소중한 아들입니다. 내가 돈을 돌려주는 이유는 그들이 훌륭한 경찰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봉투를 받은 여자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무쌍은 재물에 연연하는 인간이 아니다. 푼돈밖에 안 되는 위자료를 악착같이 긁어내는 좀팽이 짓을 한 이유는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 시키는 대로 따르고 박봉에 시달린다고 해서 잘못이 상쇄될 수는 없었다.
“김 반장과 하 형사는 아직 셋집에 살지요?”
“네!”
무쌍이 서랍에서 열쇠가 줄줄이 달린 플라스틱 막대를 꺼냈다.
“신천동 청구아파트 402동 506호와 703호입니다. 비어 있으니 바로 이사하십시오.”
“네에?”
김양수의 부인과 하 형사 부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전세 기간은 두 분이 집을 살 때까지입니다. 공짜 아닙니다. 안지랑이에 인애원이라는 고아원이 있습니다. 두 분은 일주일에 두 번 인애원에 가셔서 무료 봉사하셔야 합니다. 전세계약서에 서명하시지요.”
무쌍이 계약서를 내놓았다.
“으흐흐흑!”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여자 셋이 눈물을 쏟고 박 형사의 모친이 눈을 감고 불호를 외웠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은덕을 잊지 않겠어요.”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지요!”
“인지상정입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먹을 것을 나누어 먹는다는 점이지요. 남편과 아들에겐 함구하셔야 합니다.”
“그럼요. 그이는 혼이 나야 해요. 호호호!”
김양수 부인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깔깔거렸다. 잔뜩 긴장해서 대저택에 들어섰던 여자 넷은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대문을 나섰다.
여자들이 철석같이 함구를 약속했지만, 여자의 입은 손에서 벗어난 헬륨 풍선보다 가볍다. 동부경찰서 형사들은 응심제 식구들을 은연중에 보호했고, 인애원은 때아닌 자원봉사자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김 사장의 푸드 트럭은 경찰들이 몰려들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죽음의 천사 블랙맘바는 가차없는 존재지만, 뚜바이부르파는 온유로운 존재다. 언제나 그렇듯 힘없고 불쌍한 사람은 행복했지만, 단 한 사람, 장치수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회복실로 옮겨졌다고? 그럼 병문안을 가봐야지.”
김양수 반장의 연락을 받은 무쌍이 장치수가 입원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가는 길에 꽃집에 들러서 화분도 장만했다.
무쌍이 병실에 들어서자 침대에 누워있던 장치수가 꿈틀했다. 온몸을 붕대로 친친 휘감은 꼴이 누에고치가 따로 없었다. 장치수의 상태는 심각했다. 장 파열과 부러진 이빨 6개를 제외하고도 왼다리 정강이뼈, 오른손 손가락뼈와 손뼈 8개 골절, 갈비뼈 5개 골절, 하악골 골절 등 골절된 뼈만 15개였다. 가볍게 몇 대 맞은 것치곤 견적이 만만치 않았다.
뒤끝 작렬하는 쪼잔한 인간을 건드린 대가는 혹독했다. 장치수가 무쌍을 유치장에 불법 구금한 날짜가 15일이다. 무쌍은 의도적으로 뼈를 15개 부러뜨렸다. 털어버린 이빨 6개는 미운 놈에게 지급한 이자였다.
“으 으그그~”
장치수가 눈을 부릅떴다.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손끝도 까딱할 수 없고, 하악골을 고정한 철심 때문에 입을 열 수도 없는 형편이다. 원독어린 눈빛만 쏟아냈다.
“사모님, 걱정 마이 되시지요?”
무쌍이 천연덕스럽게 인사했다.
“찾아주셔서 고맙심더. 그런데 누군교?”
장치수의 아내가 얼결에 인사를 받고 물었다.
“아, 예, 장 경사님의 넘치는 후의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덕분에 저도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무쌍이 들고온 난 화분을 장치수의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리본에는 ‘쾌유를 빕니다’와 ‘연화천 뚝방길’이라고 쓰여 있었다. 연화천 뚝방길은 상호가 아니라 무쌍이 강간 누명을 뒤집어쓴 현장이다. 뒤끝이 강해도 엄청 강한 놈이 무쌍이다.
“고맙심더. 이 양반 천성이 정도 많고 헤퍼서 남을 잘 도와줍니더. 불쌍한 사람 도와준다꼬 집에 못 들어올 때도 많은 기라요. 나랏일을 죽을둥 살둥 하더니만, 이 꼴을 당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꺼. 하늘도 무심하시지!”
무쌍이 사설을 널어놓는 부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편 병수발하는 여자가 진한 화장에 값비싼 명품으로 휘감았다. 손가락에 낀 다이아 반지, 손목에서 번쩍이는 카르티에 시계, 버스 손잡이처럼 흔들리는 천연진주 귀걸이……. 목에 두른 스카프와 브라우스는 국내에 수입도 안되는 버버리 제품이다. 말단 경찰의 봉급으로 턱도 없는 사치다.
‘망할 년, 장치수가 뒷구멍으로 엔간히 해 처먹었구먼.’
부창부수라더니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서에서 병문안은 다녀갔습니까?”
“웬걸요. 나라를 망우려는(망치는) 나쁜 놈을 잡을라 카다가 이 꼴을 당했는데 보름이 지나도록 한 명도 안 왔심더. 세상에 이런 경우가 오데 있심니꺼? 사람을 이 꼴로 만든 미친놈을 퍼뜩 잡아죽이야 나라가 바로 설낀데~”
부인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은 듯 몸서리를 쳤다. 무쌍은 속으로 웃었다. 장치수의 평이 좋지 않기도 했지만, 파면된 장치수를 병문안하고 찍힐 바보는 없다. 세상인심이 그렇다.
“싸이코가 아니고서야 사람을 이 꼴로 만들 수는 없지요. 장 경사님이 원한 산 일은 없습니까? 싸이코는 집요해요.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 병실에 찾아올지도 모르는데…….”
무쌍은 얼빠진 여편네의 넋두리를 계속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슬쩍 겁을 주었다. 부인의 표정이 분노에서 공포로 바뀌었다.
“아이고, 우짜노! 우리 애 아빠는 원한 살 사람이 아닌데, 그 시러베자식이 여기까지 찾아오마 우야지예!”
“하하하! 설마요. 제가 괜한 소리를 했심더. 장 경사님이 남을 해코지 하거나 누명을 씌워서 감옥에 처넣을 사람도 아니잖아요.”
그 시러베자식 놈이 웃으며 말도 안 되는 말을 위로랍시고 던졌다.
“에고, 가심(가슴)이야!”
부인이 가슴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무쌍이 장치수를 돌아보며 비시시 웃었다. 눈에 핏발이 곤두섰다. 복장이 터져 죽기 일보 직전이다.
“사모님, 공무상 전할 이야기가 있는데…….”
“예, 말씸 나누시소.”
부인이 병실을 나갔다. 비리 경찰의 마누라는 눈치도 빨랐다. 무쌍이 보조 의자를 끌어서 바투 다가앉았다.
“장치수, 13년 전 짚은다리 소니 라디오 절도 사건 기억나나?”
생각을 더듬던 장치수의 눈이 커졌다. 바락바락 대들던 어린놈의 얼굴이 희미하게 기억났다.
‘박무쌍?’
“칠 년 전 강영숙 강간치상 사건도 기억나제?”
“끄으~”
철심을 박아서 석고로 고정한 턱에서 가는 신음이 새나왔다. 6년 전, 구치소에 처넣은 얼굴이 흐릿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에 겹쳐졌다.
‘이놈이 그놈이었구나!’
놈과 승강이를 벌였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장치수의 눈이 암담해졌다.
“다행히 기억하고 있구마. 워낙 많은 사람의 인생을 망친 놈이라 기억 못 할 줄 알았거든. 니놈이 장필녀 돈을 얼마나 받아 처묵었는지는 알바 아니야. 니놈은 의협심을 발휘한 학생을 사람 백정으로 만들고, 멀쩡한 여고생이 차가운 낙화담에 몸을 던지도록 만들었어. 그 죄를 어떻게 갚을래?”
무쌍이 손가락으로 갈비뼈를 쿡 찔렀다.
“크흡!”
장치수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본인은 작은 통증도 못 참는군. 니놈 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눈물을 흘렸는지 안 봐도 훤하다. 내가 반드시 되갚아 주겠다고 했던 말 기억나나?”
“끄으~”
“그려, 기억 날끼다. 이제 빚을 갚아야지. 네놈은 삼 일 전에 파면되었다. 니 같은 놈이 경찰에 있으마 억울한 사람이 계속 생긴다 아이가. 힘없는 사람이라고 죄를 막 덮어씌우마 안 되는 기라. 공상 처리도 안된데이. 치료비는 니 돈으로 내라. 넉 달쯤 지나면 운신에 지장은 없을끼다. 그때 다시 찾아오마. 종신 노역이라고 들어봤나? 우리나라에 그런 형벌은 없다고? 당연하지. 우리나라가 아니거든. 몸조리 잘해라. 다시 보자.”
무쌍이 볼을 톡톡 두들기고 나갔다.
‘저 새끼를 죽여야 해!’
장치수가 애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시선이 닿는 곳에 놈이 들고온 화분이 놓여 있었다. 분홍색 리본에 검은 글씨로 쓰인 쾌유가 근조로 읽혔다.
“컥 컥!”
내상이 터져 목구멍으로 피가 쏟아졌다.
무쌍은 휘파람을 불며 병원을 나섰다. 앓던 이가 쑥 빠진 기분이었다. 한국은 좁아도 너무 좁았다. 언젠가 복수하려고 마음먹었지만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 남자라면 자신이 뱉은 말을 지켜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은 언제나 옳았다.
대덕상회 이대덕의 사무실,
“정대리, 신의 한 수라고 큰소리치더니만 빈집 털기 작전이 물먹은 모양이제?”
흰 창 많은 눈이 정필수를 쏘아보았다.
“그게 말임다. 쩝!”
할 말이 없어진 정필수는 입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