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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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장 종두득두20
응심제는 프랑스문화원이자 참사관이 거주하는 공관이다. 무소불위의 안기부도 치외법권에는 손댈 수 없다. 박무쌍은 벌건 숯불 속의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빈집털이는 경찰을 이용해서 박무쌍을 끌어내고 가택 수색을 감행하려던 계획이었다. 정필수는 기동대와 학생 데모대의 충돌이라는 천금 같은 기회를 활용했다. 성공할 듯하던 계획이 뜻하지 않은 변수의 등장으로 인해 작전은 깨끗이 실패했다.
‘하긴, 코쟁이가 그렇게 빨리 들이닥칠 줄 누가 알았겠어.’
박무쌍을 촌각도 잡아두지 못하고 풀어준 동부서 박 서장을 탓하기도 어려웠다. 변명거리야 백 가지도 넘지만, 오피서가 모양 빠지게 주절대기도 뭣하고 들어 줄 지부장도 아니다.
“그놈이 왜 경찰에 신분을 밝히지 않았을까요?”
“임마, 그것을 알아내는 게 니 일인 기라. 장팔수 건은 접고 순수하게 표적 3호에 집중해라. 그 나이에 참사관이라는 자체가 이미 비정상 케이스다.”
“사장님, 장팔수는……”
정필수가 말꼬리를 늘였다. 에이전트의 별칭이 카이트다. 끈 떨어진 연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조직의 생리상 버릴 패는 버려야 하지만, 장팔수는 자신의 지시를 이행하는 중에 실종되었다. 일말의 책임감이 양심을 건드렸다. 그렇다고 빈집털이가 실패한 마당에 프랑스문화원을 수색할 수단도 없었다.
“됐어. 호수에 빠진 조약돌이라고 생각해. 대정 복지관 사건을 쫓기에도 골머리가 아프다.”
이대덕이 잘랐다. 무장 공비의 소행으로 알려진 안지랑이 폭발사건은 헤프닝으로 끝났다. 피해는 컸지만 단순한 싱크홀 현상으로 결론지어졌다. 50여 구의 시체가 발굴된 풍국 캐피탈 붕괴 사고도 별것 아니었다. 조폭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결론지어졌다.
문제는 대정 복지관이었다. 허름한 외관과 달리 첨단 의료 장비로 꽉 들어찬 내부 시설, 지하에서 발굴된 수십 구의 유골, 채집된 각종 마약류가 안기부를 긴장시켰다. 문제는 사람이 증발되었다는 점이다.
티브이가 켜져 있고 냉장고도 가동되고 있었다. 심지어 물이 졸아붙긴 했지만 커피포트도 켜져있었다. 백명 가까운 인원이 거주했을 거라는 추정에 불구하고 사나운 경비견 열 마리만 남아있었다. 지하실에서 발견된 중년 여자는 헛소리만 지껄이는 바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대덕은 대정 복지관을 일본의 비밀 생체 실험실로 간주하고 모든 역량을 투입하는 중이었다.
“도대체 그놈의 정체가 뭘까요? 참사관은 껍질이고 본업은 스파이겠죠?”
“이 자슥아, 그걸 알마 내가 니를 와 부르노. 외교관은 공인된 스파인데 스파이 타령은 만다꼬 하노? 글마는 스파이라도 보통 스파이가 아인기라.”
이대덕이 손에 든 모나미 볼펜으로 정필수의 배를 쿡쿡 찔렀다.
“그렇겠죠. 기동대 출동과 동시에 프랑스 대사관이 움직였어요. 세 시간이 채 지나서 않아서 동부서에 코쟁이들이 나타났으니까요. 박무쌍이 그만큼 중요 인물이라는 소리지요.”
“임마, 다 아는 이바구는 집어치워. 문제는 놈의 배경이 아니라 그놈 자체야.”
이대덕이 볼펜으로 책상을 쾅 찍었다. 볼펜 대롱이 깨지고 심이 튕겨 나갔다. 정필수가 움찔했다.
“이것 봐라. 내구성이 형편없단 말이야.”
“볼펜이 뭐 그렇지요.”
“정필수, 너 단검 투척 쪼매 하제. 볼펜을 던져서 청바지 천을 뚫고 근육에 푹 박을 수 있나?”
“사장님, 전 사람인데요.”
백골단 특유의 복장인 청재킷과 청바지 천은 유난히 두껍다. 젓가락이나 대나무 송곳이라면 몰라도 가볍고 둔탁한 볼펜으로는 옷을 뚫지도 못한다.
“그렇지. 넌 사람이제. 쪼매 부족하지만, 사람은 맞아.”
이대덕이 웃지도 않고 말했다.
‘지랄, 말을 해도 꼭 자기 같은 말만 해!’
정필수가 입을 삐죽거렸다. 이대덕은 안기부 고위 간부답지 않게 사적인 용도로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인간이다. 까마득한 졸병인 자신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만 봐도 업무지향적인 소탈한 인간이다. 병아리 눈물만큼 존경심을 품고 있지만, 말만 하면 당최 정이 가지 않았다.
“볼펜을 던져가꼬 청바지를 뚫고 손가락 두 마디쯤 근육에 박을라카마 속력이 얼매나 빨라야 되겠노?”
정필수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볼펜 중량을 9mm 파라블럼탄 절반쯤으로 가정하고 부피에 따른 공기마찰을 감안하면 최소 500J은 필요할걸요. 그 정도로 파워를 실으려면 아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해야 하는데……. 볼펜을 쏘는 장비가 개발되었습니까?”
“됐어, 부족한 인간아.”
이대덕이 꽥 소리 질렀다. 똑똑한 놈인데 툭하면 앞서 가는 버릇이 문제다.
“아, 왜요? CIA는 플라스틱 권총도 사용하잖아요. 볼펜을 발사하는 도구가 없으란 법이 있습니까?”
“이 자식아, 어떤 미친놈이 그딴 쓸데없는 물건을 만들겠노. 대머리 각하가 포기한 미사일 대용품으로 만들려나. 크크크!”
이대덕이 킬킬 웃었다.
“사장님!”
정필수가 창 너머로 직원들을 슬쩍 보았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말을 조심해야 한다.
“임마, 건방지게 내 입을 니가 와 단속하노. 볼펜을 권총 쏘듯이 던진 놈이 있으니 하는 말인 기라.”
“설마요! 박무쌍?”
정필수가 눈을 부릅떴다.
“그래 바로 그놈의 솜씨다. 볼펜이 여대생을 패던 해골단 녀석의 다리에 푹 박혔어. 그것도 혈관과 힘줄을 피해서 절묘하게 근육에 박아넣었어. 담당 의사도 혀를 내두르더구먼.”
“여대생을 패요? 그 자슥 똥구멍에 볼펜을 박아야 하는데.”
정필수가 박무쌍은 잊어버리고 자기 애인이 맞은 것처럼 오버했다. 노총각다운 반응이었다.
“띨띨한 새끼, 노총각 표시 내는 기가? 볼펜을 손에 쥐고 내리찍어도 그렇게 박히지 않아. 글마가 외인부대 용병 출신이라 켔제? 어쩌면 놈은~ 새꺄, 니 똥구멍에 볼펜을 박기 전에 그노마 뒤를 털어와.”
이대덕이 말을 하다말고 빽 했다.
“3호 대상 유지입니까?”
“멍청한 새끼, 그라마 아무 증거도 없는데 2호로 올리고 가택 수색할래? 당장 꺼져! 장팔수 짝 나지 말고.”
“넵!”
정필수가 잽싸게 거리를 벌렸다. 어물쩍거리다간 정강이가 걸레로 변한다.
“씨바, 대덕은 개뿔, 소덕도 없는 산적 주제에.”
정필수가 계단을 내려오며 입을 삐죽거렸다. 쫄병을 확실히 챙겨주긴 하지만, 굴리고 갈구는 걸 사명으로 아는 인간이다. 정필수는 자신의 앞날에 걸레가 된 정강이보다 훨씬 험악한 먹구름이 몰려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머라꼬? 미나 담임이 직접 그렇게 말하더나?”
무쌍의 눈썹이 휙 치켜 올라갔다.
“응, 오늘 학부형 면담차 불러서 갔더니 내를 잡고 통사정을 하더라. 미나를 전학 보내면 안 되겠냐고.”
진순의 목소리에 분기가 어렸다.
“어허, 이놈 시키가 자식새끼 똑바로 가르칠 생각은 안 하고 남의 귀한 딸을 치워달라?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별꼴을 다 보네.”
무쌍이 혀를 찼다. 어차피 손봐 줄 놈인데 처처에 돌부리다.
“그렇다고 선생이란 사람이 그따구로 말해? 그년 주둥이를 콱 찢어뿔라.”
연순이 발칵 했다.
“서른도 안된 젊은 여선생이 무슨 힘이 있겠노. 검사 남편을 뒀다고 알량한 권력을 주체 못 하고 진상떠는 년이 나쁜 년이지.”
진순이 공기놀이에 푹 빠진 미나의 눈치를 보며 역성들었다.
“하긴, 우리 지도교수도 미칠라 카더라. 아파트 위층에 검사 새끼가 사는데 툭하면 술 취해서 밤새도록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대. 주민들이 암말도 못하고 속만 끓인대. 검사가 그래 힘이 있나?”
계순이 투덜거렸다.
“검사 따위가 머라꼬! 오빠가 훅 불면 날아갈낀데. 이번에도 참을 끼라예?”
연순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나락(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이고 권력을 쥐면 자중할 줄 알아야 하는데……. 쩝!”
“오빠, 공자 말씀만 할 끼라예. 고름이 익으면 짜내고, 나락이 익으마 낫으로 싹둑 베야 하는 기라요.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아는 것들은 눈물을 흘려봐야 철이 든다니까요.”
연순이 계속 들이댔다.
“알았다. 알았어. 니도 성질 쪼매 죽이라. 뭔 가시나가 그래 사납노? 극도야!”
“예, 큰형님!”
전실에서 미나와 영숙의 공기놀이 상대를 해주던 극도가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바닥에 흩어져있던 공깃돌이 헝클어졌다.
“잉, 안 돼!”
영숙이 울먹울먹했다. 조그만 손으로 쓸어 쥐기엔 범위가 넓어졌다.
“아이고, 이걸 어째!”
김극도가 난처한 얼굴로 쩔쩔맸다. 와카자시 한 자루를 들고 경호원 20명이 지키는 오야붕을 습격했던 김극도가 여섯 살짜리 계집애를 감당하지 못하고 울상을 지었다. 무쌍이 싱긋이 웃고는 손을 들었다. 스스스- 흩어졌던 공깃돌 다섯 개가 한 덩어리로 몰렸다.
“와, 우리 아빠 최고!”
미나와 영숙이 만세를 불렀다. 응심제 최고 실세는 미나와 영숙이었다.
“알아봤나?”
“넵, 성내동에 있는 오가미 요정입니다. 한 달에 두 번 스폰서와 회동하는데 오늘 저녁에 예약이 잡혀있습니다.”
“면면은 확인했나?”
“오가미 직원이 말을 아꼈습니다. 김 반장 말로는 장철수와 자주 어울린답니다. 스폰서 모임에 나올 때는 부하 검사를 대동한다니까 다섯쯤 될 듯합니다.”
“흐흥, 검사 놈들이 질펀하게 잘 논다는데 구경 가볼까? 이리저리 재는 건 역시 내 과가 아니야.”
무쌍이 비시시 웃었다. 본래 계획은 자료를 수집해서 사회적으로 매장할 작정이었다.
“큰형님, 피라미는 과도가 제격입니다. 그까짓 얼빠진 잡어는 제가 잡아오겠습니다.”
김극도가 나섰다. 위대한 분이 그까짓 얼빠진 놈 처리에 나서면 체면이 아니다. 지저분한 일은 자신의 몫이다.
“잡아오는 게 문제가 아니고 흔적이 없어야 한다. 네 능력으로는 아직 주변의 이목을 피하지 못한다. 너는 승합차를 구해서 길 건너 우체국 골목에 대기하다가 삐삐로 연락하면 바로 출발하도록.”
“넵, 알겠습니다.”
김극도는 김달수란 놈의 명복을 빌었다. 미나 아가씨를 건드린 놈은 자신이 용서 못 한다. 아울러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을 재수 없는 인간들에게도 조의를 표했다.
대한민국에서 검사란 존재는 무엇일까?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검사는 딱 두 종류다. 가난한 수재가 불철주야 공부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개천출용형과 권력이든 재력이든 있는 집안에서 전략적으로 키워지는 금시구접(金匙口接)형이다.
개천출용이든 금시구접이든 사회악과 맞서는 정의의 사도로 그려지거나 출세에 미쳐서 배신을 일삼고 정치인, 재벌과 손잡고 사회악을 생산하는 야비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개천출용형에는 순애보가 부록으로 따라붙고, 금시구접에는 돈 많고 개념 없는 여자가 붙지만 대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만큼 검사라는 직업의 이미지가 강하다.
드라마는 드라마고 영화는 영화다. 검사는 1,800명 내외의 검찰 조직에 속해있는 고급 셀러리맨이다. 검사 중에 시국 사건을 수사하고 언론에 오르내리는 소위 성골 검사는 한 줌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권력과 무관한 업무에 매달려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직장인이다.
문제는 고급 셀러리맨이 양손에 쥔 수사권과 기소독점권이라는 칼날이 너무 날카롭다는 점이다. 사건을 수사하든 덮어버리든, 기소하든 불기소 처분을 하든 전적으로 담당 검사의 판단에 달려있다 보니 힘없는 사람이 더 깊이 베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양손에 쥔 칼날이 본래의 목적과 달리 휘둘러지는 배경에 검찰청법 제11조에 규정된 검사동일체 원칙이 있다.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서 검찰 조직은 상명하복이 강제되고, 상관은 부하 검사의 사건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다. 좋게 말하면 군대조직이고 현실적으로 말하면 조폭 조직에 가깝다.
개천에서 태어났던 금 숟가락을 물고 태어났던 모든 검사는 권력 지향적이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검찰청(지청)에 근무하는 검사 숫자는 대략 1,800명 내외다. 이들은 검찰총장을 꼭짓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조직을 이룬다.
피라미드 조직은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가 급격히 줄어든다. 검사로서의 자질이나 능력보다 정치 상황, 학연, 지연이 절대적이다. 검사가 권력자에게 줄을 대려고 발버둥 치는 이유다. 여기서 광어(경북고 TK 출신), 도다리(경북고외의 TK출신), 잡어(기타 지역 출신)등의 별칭이 나왔다.
이러한 검찰의 특성상 최고 권력자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 총장 자리에 자기 사람을 심으면 모든 사건을 조작할 수 있다. 소위 빅포(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중수부장, 공안부장, 서울중앙지검장)자리는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결정되고 정치 검찰이 줄줄이 등장한다. 그로 인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 내부적으로도 온갖 부당한 압력과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성골 검사의 이야기다.
성골 검사는 평판 좋고 능력 좋은 검사를 발탁해서 자신의 호위무사와 측근으로 임명한다. 이들이 소위 육두품 검사로 법무부, 대검, 중앙지검 등에서 기획통, 특수통, 공안통으로 성장한다.
여기서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다. 검찰 본연의 임무가 무엇이든가? 경찰수사 지휘와 공판 유지다. 평판 나쁘고 능력이 처지는 오두품과 사두품 검사가 일반 시민을 상대로 검찰 임무를 수행한다는 소리다. 진급이 막힌 패배자가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예리한 칼을 쥐고 휘두른다? 바로 스폰서 검사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