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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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장 종두득두26
‘건방진 놈, 무치시바리아게로 두들겨 버릴까? 힘줄을 차근차근 뽑아버릴까?’
무쌍은 정보기관과 첩보원의 속성을 훤히 꿰고 있는 특급 컨설턴트다. 정필수의 자만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정보기관은 태생적으로 도덕성과 거리가 먼 악의 영역에 속할 수밖에 없다. 에이전트는 돈, 이념, 자의식 고양 등의 회유와 협박, 고문, 암살 등의 강압적인 수단을 무시로 자행한다.
남의 것을 훔쳐오는 자는 내 것도 뺏길 각오를 해야 한다. 각국 정보기관이 실시하는 고문대응훈련은 자백을 통한 정보 유출을 통제하고자 하는 시도다. KGB와 모사드는 에이전트의 신체에 자살용 폭약을 삽입하고, 펜토탈을 장기 투여해서 통각 자체를 무디게 만들기까지 한다. 안기부는 휴민트 의존도가 높은 만큼 고문대응훈련도 극악한 편이다.
“실험체로 쓰기에 딱 좋네.”
무쌍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스킬 한가지가 생각났다. 압축된 공진파를 침처럼 밀어 넣어 신경을 건드리는 학훼점타(鶴喙點打)다. 강도를 높이면 드릴처럼 회전하는 경기(驚氣)에 휩쓸린 조직이 탄화한다.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내가중수법은 무식하게 내부를 으스러뜨리지만, 학훼점타는 조직의 수분을 원자단위로 분해한다. 그야말로 세포단위의 죽음을 선사하는 완벽한 암살술이다.
물론 죽일 생각은 없었다. 강도를 조절해서 특정 부위의 신경 세포를 태우면 상상하지 못할 고통과 환각에 시달리게 된다. 괘씸죄에 걸린 정필수는 졸지에 마루타 신세가 되었다.
“실험체라니?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소리 말고 어서 풀어!”
정필수가 으르릉거렸다.
“아나 이 자식아, 니 같으마 안방에 들어와서 휘젓고 나간 도둑놈 새끼를 그냥 두겠어?”
학 부리처럼 뾰족한 구수가 견정혈을 툭 찍었다.
“윽!”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정필수는 이를 악물었다. 놈이 자백제를 주사할 줄은 몰랐다. 곧 닥쳐올 극악한 고통에 대비했다. 자백제는 나트륨 아미탈, 메스칼린, 스코폴라민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안기부는 스코폴라민에 희석한 테트로도톡신을 섞어서 사용한다. 테트로도톡신(TTX)은 복어나 푸른점문어에서 추출한 신경독이다. 말초신경과 중추신경에 작용해서 호흡근과 운동근을 마비시키며 치사량은 0.1mg이다. 중화제로 펜토탈을 사용한다.
“펜토탈은 준비했나?”
정필수가 여유를 부렸다. 호흡이 가빠지고 개미 수천 마리가 물어뜯는 통증이 느껴졌다. 전형적인 TTX 중독 증상이다. 고문대응 훈련을 다섯 차례나 버틴 몸인데 이까짓 것 못 버티랴.
“네놈이 일곱 번을 견디면 내가 성을 갈지.”
무쌍이 싱긋 웃고는 카운터를 시작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카운터를 마치고 첫 번째 타격 지점을 다시 툭 찍었다.
“끄아악!”
새된 비명이 적막한 밤 공기를 흔들었다. 첫 번째와는 달리 신경이 마디마디 끊어지는 통증이 휘몰아쳤다. 정필수는 이빨을 악물었다. 눈알이 툭 튀어나오고 이마에 푸른 핏줄이 도드라졌다. 자신이 착각했다. 놈은 TTX 주사가 아니라 무협소설에 나오듯이 혈도를 찍었다. 그런데 소설에 나오는 사혈이니 훈혈이니 하는 말이 진짜란 말인가?
“다섯, 넷, 셋, 둘, 하나”
무쌍이 카운터를 마치고 세 번째 동일한 지점을 다시 찍었다.
“크아악!”
비명이 높아졌다. 정필수가 거품을 물고 사지를 비틀었다. 얼굴 푸른 귀신이 생선포 뜨듯이 살을 저며내고 있다. 산소 공급이 부족해진 뇌가 만들어낸 환각이다. 정신이 흐릿해지면 신경을 잡아뽑는 통증이 몰려들었다. 강약 리듬을 타는 고통이 기절도 못 하게 만들었다.
신경이 오그라들고 근육이 풀렸다. 바지 앞섶이 척척해졌다. 정필수는 결사적으로 괄약근을 오므렸다. 교실에서 똥을 싸는 바람에 똥싸개라는 별명이 6년 동안 따라다녔다. 트라우마가 괄약근을 지켜냈다.
‘이 새끼는 왜 숫자를 세고, 때린 데를 또 때리는 거야?’
그 와중에도 의문이 들었다. 호기심은 훌륭한 첩보원의 자질이다. 공간지각력으로 상태를 살피던 무쌍은 살짝 놀랐다. 세 번째 타격까지 견딜 줄 몰랐다. 제대로 훈련받은 놈이다. 한심하게만 여겼던 안기부를 다시 보았다. 네 번째도 견딜 수 있을까?
“다섯, 넷, 셋, 둘, 하나”
여지없이 카운터가 시작되고 구수가 견정혈을 찍었다.
“그르륵!”
비명 대신 목 울림이 새나왔다. 횡격막이 늘어지면서 수축력을 잃은 폐에서 공기가 새는 소리다. 정필수는 가물거리는 정신을 악착같이 부여잡았다. 장난치듯이 톡톡 건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멍석말이를 당한 듯 뼈가 덜거덕거렸다.
“망할 새끼야, 차라리 죽여라. 내가 누군지 몰라? 이러고 네놈이 무사할 것 같아!”
정필수가 웅얼거렸다. 세상에 이런 미친놈이 있을 줄이야! 고통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오기가 뻗쳤다.
“허, 오지랖 넓게 내 걱정을 하는 걸 보니 아직 여유네. 네놈도 나를 모르잖아. 이렇게 스킨십으로 서로 알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사 아니겠어. 다섯, 넷, 셋~ ”
다시 카운터가 시작되었다. 정필수는 간이 졸았다. 카운터의 끝은 극악한 고통이다. 숫자가 줄어드는 만큼 간이 떨어져 나갔다. 실제로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고문대응훈련 따위는 개나 줘야 할 만큼 끔찍한 고문술이다. 쿡- 카운터 제로에 여지없이 때린 곳을 또 때렸다. 다섯 번째다.
“끄으윽!”
내장이 흔들렸다. 항문에서 시작해서 내장이 거꾸로 말려들었다. 크륵- 크륵- 창자를 뽑아낼 듯 구토가 시작되었다. 구토 끝에 핏물이 입과 코로 쏟아져 나왔다. 정필수는 가물거리는 초점을 간신히 모았다.
놈의 얼굴이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쇼크사 직전의 상태다. 악귀 얼굴이 모닥불 빛에 출렁거렸다. 자신은 죽어가는데 놈은 웃고 있다. 이놈은 사이코패스 초능력자다.
“내가 왜 숫자를 세는지 가르쳐 줄까?”
그딴 거 알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려 했는데 쇼크에 빠진 신체가 가느다란 숨소리만 뱉었다. 차라리 이마에 총알을 박아 주었으면! 정필수는 간절히 바랬다.
“때린 곳을 오 초 후에 또 때리면 가장 효율적으로 고통을 줄 수 있다고 어떤 놈이 가르쳐 주었어. 나는 그 말을 믿어. 가르쳐 준 놈이 미친놈이긴 해도 고문의 지존이었거든. 그래서 실험해 보는 거야.”
‘개새끼, 실험체가 그런 뜻이었어? 미친놈은 바로 네놈이라고!’
정필수의 의식이 스르르 꺼졌다.
“어! 다섯 대는 무린가!”
뇌파가 불규칙해졌다. 이대로 두면 십 분 이내에 요단강을 건너간다. 명문혈에 손바닥을 붙였다. 두웅- 쏟아져 들어간 공진파가 세포를 활성화하고 불순물을 분해했다. 공진파가 막힌 곳을 뚫고, 불순물을 분해하고, 세포 활력을 살리지만, 망가진 세포를 살리지는 못한다. 생기촉발로 숨을 돌렸지만, 정필수의 수명은 십 년쯤 줄었다.
“으으!”
정필수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저승 세계로 한발을 들여놓았다가 강제로 끌려 나온 셈이다.
“내가 시간 감각이 정확지 못해서 숫자를 세는 거야.”
‘존만아, 내가 물어 봤냐고?’
정필수는 몽롱한 가운데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쓸데없이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는 놈이 보고서 문법 지적하는 지부장만큼이나 혐오스러웠다.
“에이씨, 시간 지났네. 다시 처음부터 하자구.”
“헉!”
몽롱한 의식이 번쩍 깨어났다. 이건 아니다. 박무쌍이 어떤 수단을 썼는지 모르지만, 죽어가는 자신을 순식간에 살려냈다. 게다가 처절한 통증이 꿈인 듯 고통이 사라졌다.
‘이놈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다. 아니 인간이 아니다.’
이놈은 죽도록 괴롭히고 죽음이 임박하면 살려서 다시 괴롭힐 작정이다. 인두겁을 쓰고 이렇게 악독할 수는 없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지만, 끝없이 이어질 고통이 너무 두려웠다. 생존 본능이 깨어난 정필수는 남은 힘을 쥐어짜서 소리쳤다.
“항복! 무조건 항복이다.”
“항복? 난 이제 시작인데. 항복하는 놈이 혓바닥도 반 토막이네.”
무쌍이 반대쪽 견정혈을 찍었다.
“끄아악!”
정필수의 신체가 연탄불에 올려놓은 오징어처럼 말렸다. 얼굴이 체액으로 범벅되고 코와 입에서 피가 줄줄 새나왔다.
“한 대는 에누리 해주지. 다음엔 내 여동생들 정조를 위협한 벌을 받아야지. 추가로 여섯 대.”
무쌍이 공진파를 불어넣어서 숨넘어가는 정필수를 치료해 주었다.
“끄윽!”
정필수는 거품을 물었다. 예상대로 죽였다가 살리기를 반복할 작정이다.
“항복입니다. 무조건 항복입니다.”
절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오기고 자존심이고 없었다.
“에이, 내가 손핸데.”
무쌍이 느물거렸다. 정필수는 네놈이 도대체 무슨 손해를 입었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이름과 직장?”
무쌍은 그제야 본격적인 심문을 시작했다. 정필수는 이를 갈았다. 놈의 목적은 심문이 아니라 고문 그 자체였다.
“정필수. 대덕상회 대립니다.”
“안기부 대구지부구마. 본명을 묻지는 않겠어.”
정필수가 흠칫했다. 내부 사정을 훤히 아는 놈이다.
“내 신분은 알고 있제?”
“레종 에뜨랑제 복무, 현재 프랑스 대사관 문화참사관!”
“알면서 도청기를 심었어? 요즘 안기부 식당은 용가리 통뼈를 메뉴로 내놓나 보지? 이유는?”
무쌍이 실실 웃었다.
“……”
“잔대가리 굴리지 마라. 남은 인생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되면 슬플 텐데.”
꽝- 폭음이 울렸다. 베레타가 정필수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무둥치에 박혔다.
“으헉!”
정필수는 어마 뜨거라 했다. 실제로 정수리에서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인간에게 개갤 수는 있어도 괴물에게 개개봐야 의미가 없다.
“불로동에 뜬금없이 프랑스문화원이 들어설 때부터 주시했습니다. 오버트(overt, 공식적인 스파이)활동이 전혀 없기에 이중 스파이로 의심했습니다.”
“이중 스파이?”
“양키의 오공 작계(50, 한반도를 관할하는 미태평양사령부 고유번호)를 의심하던 차였습니다. 한미관계는 속으로 곪았습니다. CIA가 김영삼을 미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었습니다. 외부 활동을 하지 않으니 도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으이그 지랄도! 의심한 이유는 머꼬?”
“초능력자를 에이전트로 활용하는 조직은 CIA, KGB, 모사드밖에 없습니다. 국내서 활동할 에이전트는 CIA밖에 없지요.”
정필수는 순순히 대답했다.
“아하, 볼펜!”
결국, 도청을 실행한 발단이 백골단 허벅지에 꽂은 볼펜이라는 소리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이 꼬투리가 되었다. 확실히 조심성이 느슨해졌다.
“계속 관심을 가질 건가? 몽달귀가 될 텐데.”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죠. 휴!”
정필수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이대덕도 인정하는 강골 정필수의 근성이다.
“훗, 나는 현 정권에 관심도 없고 양키 따위와 친하지도 않아. 조용히 살고 싶다. 관심을 끊을래 그냥 묻힐래? 쓸데없는 짓을 그만두면 일억을 주지.”
학훼점타에 당하고도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녀석이 밉지 않았다. 슬쩍 떠보았다.
“직업인데 어쩌겠어요. 안기부가 욕먹을 짓을 많이 하지만, 사명감으로 뛰는 요원도 많습니다. 돈도 좋지만 비겁하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무쌍은 정필수가 마음에 들었다. 김달수나 장철수처럼 뇌물이나 처먹고 뻘짓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제정신이 박힌 놈이다. 이런 고집불통이 한국을 유지 발전토록 하는 바탕이다.
소행은 괘씸하지만,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가상했다. 한국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조선 시대부터 상층부는 오케오필라 스마라그디나가 득시글대고 하층부가 나라를 걱정하고 사랑한다.
쉭- 지풍이 밧줄을 끊었다. 정필수는 속절없이 땅바닥에 뒹굴었다. 투두둑- 손목을 묶은 밧줄이 절로 풀렸다. 정필수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상대는 항거불능의 존재다. 죽음을 각오했을 때는 담담했는데 막상 풀려나니까 더럭 겁이 났다.
“정필수, 네놈의 마음가짐이 목숨을 살렸다. 나도 한국인이다. 내 나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랑한다.”
정필수는 한 대 맞은 듯 멍청해졌다. 괴물의 말에서 진심과 안타까움이 물씬 풍겼다. 하긴 박무쌍이 뭐가 아쉬워서 험악한 이중간첩 질이나 하겠는가!
“죄송합니다.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본 것 같습니다.”
정필수가 간신히 일어나서 허리를 숙였다.
“돌아앉아라. 그대로 돌아가면 열흘쯤 피똥 싸다가 칠성판(시체를 고정하는 얇은 널빤지)에 눕게 된다.”
“헉!”
놀란 정필수가 돌아앉았다. 박무쌍은 빈말할 인간이 아니다. 무쌍은 공진파로 손상된 신경 세포와 조직을 활성화하고 손바닥으로 등을 탁 쳤다.
“으웩!”
정필수가 시커먼 피를 한 바가지 토해냈다. 뒤집힐 듯 들끓던 속이 시원해지고, 통증이 가라앉았다.
“정필수, 괜한 고집부려봐야 목숨만 헛되이 잃는다. 네 목숨과 조직을 보전하려면 자중해라.”
‘살벌하네!’
묵직한 경고에 가슴이 쿵 떨어졌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맞습니까?”
“너가 인간이라면 나도 인간이지. 그건 왜 물어?”
“당신은 무예가나 초능력자 이상의 존재입니다. 인간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뚜바이부르파는 뭡니까?”
“함부로 나대지 마라. 내일 자정에 중앙공원에서 지부장을 기다리겠다.”
무쌍은 할 일도 많은데 쫄따구를 상대로 심기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안기부와 엮이지 않으려면 대가리를 눌러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