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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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장 어머니 내 어머니2->28권
“일격을 가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나라!”
이대덕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찬물을 뒤집어쓴 듯 섬뜩했다. 그렇다. 한국은 군사력과 정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지하고 있다. 대통령은 쿠데타 추인을 받으려고 핵과 미사일을 포기했다. 현 정권의 행태는 집무실을 미 대사관옆에 마련한 고종과 다를 게 없다.
한미 공조라는 미명하에 국내 정보를 CIA로 몽땅 넘기는 안기부도 마찬가지다. 미군이 민간인을 폭행하고 살해해도 재판권을 포기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얼굴이 화끈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참사관님의 의사에 반해서 귀찮게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본인이 도울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돕겠습니다.”
이대덕의 말투가 정중해졌다. 박무쌍이 프랑스 장관급이라서가 아니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절절한 심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요. 지금은 소와 닭처럼 지내는 게 편하오. 내가 무엇이 아쉬워서 양날의 칼인 안기부와 깨춤을 추겠소. 군인은 복무 중에 사고가 없어야 장군 진급을 할 수 있고, 공무원은 실수만 없으면 직급이 올라가고 정년이 보장되는 체제로는 이 나라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소. 한국이 내부갈등으로 하세월을 보내는 동안 중국이 흑묘백묘론을 내세워서 달리기 시작했소.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면 더 큰 반동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소? 위기는 국내에 있지 않고 나라 바깥에 있소. 큰물에서 놀아야지 언제까지 권력자의 하수인 노릇을 할거요?”
무쌍이 한숨 쉬듯 말하고 몸을 돌렸다.
“참사관님, 불편한 자리지만 좀 더 대화를 나눌 수 없겠습니까?”
이대덕은 다급해졌다. 박무쌍은 프랑스 안보 라인의 한 축이다. 안보에 관련된 한 마디 한 마디가 현실을 일깨워주는 금과옥조였다. 한마디라도 더 듣고 싶었다.
“내 앞가림도 못 하는 놈이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았소.”
무쌍이 인사도 없이 팔각정을 내려갔다. 이대덕은 잡을 엄두도 못 내고 넓은 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찬바람이 땀으로 푹 젖은 옷을 스쳐 가자 한기가 들었다. 호흡이 편안해졌다. 자리를 같이하는 내내 피부가 따끔거리고 숨이 답답했었다.
“일격을 가할 의지가 확인되면 전투기 항전 시스템을 넘겨주겠소. 미국에 간과 쓸개를 내주고 매달릴 생각이겠지만, 삽질이오. 소프트웨어 없이 껍데기를 얻어봐야 종속만 굳어질 뿐이오. 무기체계는 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소.”
사람은 멀어지는데 또렷한 음성이 고막을 울렸다.
“헉!”
이대덕은 기절할 듯이 놀랐다. 항전 시스템은 오늘 밤 남산회의에서 다루어질 주제다. 소름이 쭉 끼쳤다.
“시간이 해결할 수 있는 뾰루지만 건드리지 말고 부산 해운대에 자리 잡은 히가시혼간지 포교원과 서면의 대정 복지관이나 털어보시오. 온갖 기생충이 쏟아져 나올 거요.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더니 현 정권에도 우직한 관료가 있다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받았소.”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휘적휘적 사라졌다. 바아앙- 묵직한 바이크 엔진음이 멀어졌다.
“멋있다. 정말 멋있는 사나이다!”
이대덕이 중얼거렸다. 저런 인간을 회유해서 써먹을 생각을 한 자신이 한심했다. 꽃뱀이 멧돼지를 삼키자고 달려든 꼴이다. 벤치에 숭숭 뚫린 구멍, 기둥에 난 흉한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이대덕은 노원동 풍국 캐피탈과 대정 복지관이 박무쌍의 작품임을 깨달았다. 이해 불가능했던 몇 가지 흔적이 이해되었다. 악어 아가리에 머리를 처박아도 유분수지 자연재해 급인 인간앞에서 반말한다고 지랄을 떤 자신이 한심했다.
“일격을 가할 의지와 준비가 되면 부르라고? 당신은 도대체 누군교?”
이대덕은 찬바람 부는 팔각정에서 일어설 줄 몰랐다. 박무쌍이 프랑스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이라는 엄청난 정보를 얻었지만, 막상 그의 정체는 더욱 모호해졌다.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파격적인 자리를 내준 프랑스가 부러웠다.
“사장님, 출발해야 합니다. 시간이 빡빡합니다.”
기다리던 요원이 다가와서 재촉했다.
“임마, 그까짓 회의가 뭐 중요해. 당장 부산지부에 히가시혼간지 포교원과 대정 복지관을 내사하라고 연락해. 아니다. 직접 간다. 현장요원들 당장 집합시켜.”
이대덕이 버럭 했다.
“도련님! 웬일로 평일에 오셨데요?”
양 보살이 공양간에서 뛰쳐나와 환한 웃음으로 맞았다. 호칭 문제로 고민하더니 도련님으로 낙찰 본 모양이다.
“사부님이 보고 싶어서요.”
무쌍이 빙그레 웃으며 보따리를 내밀었다. 팔공산과 유학산을 뛰어다니며 산삼과 영지를 채집하고, 오는 길에 한우 사골과 안심을 사왔다.
“옴마나, 어쩜 이렇게 귀한 물건을!”
“뭘요. 산중에서 성질 고약한 노인네 모시는 누님이 고생이지요. 생활이 적적하지는 않습니까?”
“웬걸요. 큰스님이 계실 때 오히려 편안한걸요. 영화배우보다 더 잘생긴 외국인 청년도 자주 찾아오고요. 놀러 오는 산짐승과 어울리면 하루가 금방 가요.”
잘 생긴 외국인 청년은 깜둥이다. 오마샤리프와 알랭 드롱을 카피했으니 잘 생길 수밖에. 박새 한 무리가 포르르 날아와서 양 보살의 주위에 내려앉았다. 양 보살이 들고있던 됫박에서 좁쌀을 한줌 뿌려주었다. 평화로운 광경이다.
“하하하, 사부님은 어린애가 되고 누님은 보살이 되셨습니다.”
“이놈아, 왔으면 냉큼 들어올 것이지 뭔 사설이 고로코롬 길어!”
법당에서 카랑한 소리가 쩡 울렸다.
“에쿠!”
양 보살이 눈웃음치고 공양간으로 줄행랑쳤다.
“네, 갑니다. 가요!”
무쌍이 법당에 들어섰다.
“네놈은 요즘 별 영양가 없는 일에 휩쓸려 다닌다며?”
부처님께 인사드리기도 전에 성마른 질문이 날아왔다.
‘에잉, 깜둥이 녀석이 고자질했구마.’
“아코!”
무쌍이 비명을 질렀다. 불전에 올려져 있던 밤이 휭 날아와서 정수리를 때리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놈아, 냅두면 제 갈 길로 간다니까 왜 들쑤셔?”
“경찰과 안기부 녀석들이 껄떡대는 바람에~”
“이런 한심한 놈을 봤나. 네놈이 얼라들과 어울릴 군번이더냐. 한가하면 깜둥이처럼 법당 청소하고 마당이나 쓸어라.”
“그건 그렇습니다.”
무쌍은 순순히 인정했다. 일반인이라면 인생이 왔다 갔다 할 사건이지만, 자신에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소한 일들이다.
“웬일로 늦은 시간에 왔느냐? 마음에 저어되는 일이 있더냐?”
“백부가 시한부 중병에 걸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심란합니다.”
“예끼 놈, 이미 결론을 내고 노납에게 물으면 어쩌라고!”
“예에?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는데요?”
“니놈이 마음을 내지 않았으면 쉰내 나는 땡중을 찾아왔겠느냐? 니놈은 그저 위안을 얻어보려고 찾아온 거야.”
무쌍이 화들짝 놀랐다. 사부의 한 마디가 정곡을 찔렀다. 백부의 지병에 손을 쓰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지만, 핏줄의 당김인지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마음은 이미 가 있는데 한 줌 아집과 허상이 진체를 가렸나 봅니다,”
“헐헐, 제자 놈이 도통한 땡중 흉내를 내니 보기가 심히 징그럽구나. 네놈이 이리 헐렁하니 노납이 편히 눈을 감지도 못하고 애면글면하는 게야.”
“사부님!”
무쌍이 삭정이처럼 바싹 마른 몸을 덥석 안았다.
“헐렁한 제자 놈이 삽질하지 않도록 오래오래 사셔야지요.”
“이놈아, 징그럽다. 제자가 천하의 갑부인데 당연히 오래 살면서 즐겨야지. 우신에 텔레비부터 컬러로 바꾸거라. 양 보살이 흑백은 싫단다.”
“히히히, 누님 핑계 대지 마시소. 컬러로 쭉쭉빵빵이 보고 싶어서 카지예? 그럴 줄 알고 대짜로 주문했심더. 내일쯤 설치하러 올 낍니다.”
무쌍이 낄낄거렸다.
“험 험, 잘했다.”
대우선사가 헛기침으로 무안함을 때웠다.
“도련님이 오시니까 큰스님이 좋아 죽네요. 큰방에 공양차렸어예.”
양 보살이 법당문을 열고 공양 시간을 알렸다.
“어허, 내가 만다꼬 사부 흉이나 보는 놈을 좋아하노.”
대우선사가 도리질 쳤다.
“사부께서 미숙한 젊은 놈을 보면서 존재의 위안을 얻는 거죠. 하하하!”
무쌍이 낄낄 웃었다. 엄마를 찾으면 모를까. 의지하고 마음 둘 곳은 넓은 천하에 사부의 품밖에 없다.
“에고, 큰스님이나 도련님이나 알아듣기 힘든 말씀을 하시는 건 우째 그리 똑같은지. 어서 가입시다.”
양 보살이 재촉했다.
“무아야, 현실에 개입할 생각이더냐?”
“아닙니다. 제자가 보기에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꾸준히 바른 방향으로 가는 듯합니다. 제자가 끼어들어 분탕 칠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선재로다. 네놈이 철이 들었구나.”
“헤헤, 쇠붙이야 제자가 잘 다룹죠. 총도 잘 쏘고 칼도 잘 휘두르고!”
딱- 벽에 걸려있던 염주가 휘리릭 날아와서 머리를 두드리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코!”
무쌍은 까불다가 기어코 매를 벌었다.
“미혹의 사슬이로다. 무아야, 네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있느냐?”
대우선사가 불쑥 물었다.
“……”
무쌍은 즉답을 못 했다. 자신의 근거지는 짚은다리, 노바토피아, 응심제다. 세 곳은 사부가 말한 미혹의 사슬과는 대칭되지 않는다.
“네 마음이 부르는 곳으로 가거라. 나무아미타불!”
대우선사가 선문답 같은 말을 던지고 눈을 감았다. 무쌍은 절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마음이 부르는 곳으로 가라고?”
무쌍은 미혹의 사슬을 되새김질했다. 사부는 신통을 깨달은 분이다. 헛말을 하실 분이 아니다. 마음이 부르는 곳으로 가라면 마음이 부르는 곳을 찾아야 한다. 자신에게 남은 미혹의 사슬이라면 어머니와 혜영이다.
어머니는 넙치가 전력을 다해서 추적하고 있다. 남은 것은 혜영이다. 마음의 사슬을 끊었다고 하지만, 남녀의 정은 칼로 무 자르듯이 싹둑 자를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담배처럼 끊는 것이 아니라 참을 따름이다.
‘마음이 부르는 곳이 그곳인가?’
덕산댁이 건네준 편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련히 떠오르는 미혹의 사슬, 아버지와 어머니는 첫 만남을, 아들은 이별 여행을 떠났던 곳이다.
무쌍은 충무 여객선 터미널 간판을 멍하니 올려보았다. 아버지는 바로 이곳에서 엄마를 만났다. 풍어제 별신굿 판에서 연분홍 철릭을 입고 춤추는 열아홉 처녀에게 홀딱 반해서 일 년 반을 따라다녔다던가. 아버지는 사랑을 얻었지만, 아들은 바로 이곳에서 사랑과 이별했다. 비진도 민박집에서 보낸 뜨거운 이별의 정사가 머리를 어지럽혔다.
뿌우- 여객선 한 척이 뱃고동을 울리며 고물을 돌렸다. 6년 전 이맘때 혜영과 비진도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던 선착장이다. 자신은 또다시 이곳에 섰지만, 그녀는 너무나 먼 곳에 있다. 삐딱하니 서 있는 뱃길 안내판도 여전하고, 무심히 날아다니는 갈매기도 변함없는데 사람만 간 곳이 없었다.
노란 나트륨등이 켜진 빠세오 누에보 거리의 텅 빈 아파텔에서 외로움과 싸우고 있을 혜영이 눈앞에 선했다. 누군가와 말을 나누고 싶어 수첩을 뒤적여도 전화 걸 사람 한 명 없다는 말이 가슴을 쳤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다. 김달수 검사와 장치수 경사를 처절하게 망가뜨린 이유도 혜영과 이별토록 만든 장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바다가 육지라면 노랫가락을 들으며 빙충이처럼 눈물을 흘렸지만, 지금은 당장에라도 팰컨을 불러서 태평양을 가로지를 수 있다. 태평양을 건너가서 어쩔 것인가? 시간은 상대적이다. 청춘의 6년은 늙은이의 60년에 해당한다.
사랑하는 에델과 진순이 있다. 혜영인들 베게만 안고 살겠는가. 달콤하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했다. 떠나보낼 때는 대인인양 굴었지만, 말짱 헛소리였다. 사금파리(사기그릇이 깨진 조각)처럼 예리한 기억의 조각들이 가슴을 들쑤셔서 피를 줄줄 흘렸다.
환한 불빛에 눈이 부셨다.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고깃배들의 항해등 불빛이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여객터미널에서 비진도행 선표를 예매하고는 하릴없이 부둣가에서 두 시간이 넘도록 서성였다. 무쌍은 차마 부둣가를 떠나지 못하고 부근의 여관을 찾아들었다.
[이성장]정신을 차리고 보니 혜영과 함께 들었던 일성장이다. 6년이란 세월이 일성장의 ㄹ받침을 잃어버렸다. 받침이 떨어져 일성장이 이성장이 되었지만, 동방불패가 박무쌍이듯이 일성장임엔 변함이 없었다. 술 취한 김유신을 태운 애마가 천관녀의 집으로 향했다더니 미욱한 짐승도 아닌 천하의 동방불패가 생각 없이 찾아든 곳이 일성장이다.
무쌍은 흘러간 추억의 편린과 파도소리에 전전반측, 잠 못 이루고 아침이 되어서야 잠들었다. 파도 소리야 청각을 닫아버리면 차단되지만, 머릿속에서 아우성치는 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뜨르륵- 둔탁한 전화벨 소리가 잠을 깨웠다. 인터폰을 들자 가래 낀 늙은 여자의 탁성이 고막을 괴롭혔다.
-손님, 12시가 다 되었다 아인교. 방을 비아 줄랑교, 하루 더 있을랑교?
“크크크!”
웃음이 나왔다. 불친절한 주인 여자의 말투는 6년 전과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이 묘한 안도감을 불렀다.
“나가요!”
무쌍이 6년 전처럼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전화기를 쾅 내려놓았다.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래서 세상이 재미있다.
무쌍이야 한가롭지만, 글쟁이가 낚시하다 빠져죽을뻔한 공포의 테트라포트!
통영의 옛 지명이 충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