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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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장 어머니 내 어머니5
몸이 기억하고 가슴이 벌렁대는데 머리는 텅 비어있다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기구한 인생, 눈가가 짓무르고 목이 쉬도록 꺽꺽 울다 지쳐 쓰러진 적이 몇 번이던가! 어미가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참담함에 쌓이고 쌓인 설움이 겹쳤다.
“무쌍아, 내 아들아! 으흑흑~”
흐느낌이 통곡으로 변했다.
“어무이! 어허헝!”
무쌍이 어머니를 왈칵 껴안았다. 이울어진 들국화 한 송이에 눈물짓고 날개 찢어진 잠자리가 안타까워 발을 구르던 어머니, 여리고 착하면 당하는 더러운 세상이다. 누가 어머니를 이 꼴로 만들었단 말인가? 분노가 어머니를 찾았다는 기쁨을 덮고 영혼을 잠식했다.
“아앙!”
엄마가 울자 영아도 엄마에게 달라붙어 울었다. 17년 만에 충무 방파제 끄트머리에서 어이없이 만난 모자와 어린 계집아이의 울음이 세찬 바닷바람에 섞였다.
무쌍은 영아가 우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기억은 그 사람 자체다. 천하를 얻은들 기억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빨리 사부 영감의 손을 빌려야 한다. 부드러운 기운이 김말순과 영아를 감쌌다. 감정 동조의 폭이 클수록 간섭장은 위력을 발휘한다. 김말순이 격정에서 깨어났다.
“쌍아, 에미가 미안하다.”
목소리가 물에 빠진 솜처럼 무거웠다. 자신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린 아들이 겪었을 고난에 애간장이 녹았다. 세상의 어머니 마음은 다르지 않다. 당신은 재강(막걸리를 거르고 남은 술지게미)으로 배를 채워도 자식은 쌀밥을 먹이고, 이십 리 장터를 발이 부르터도록 걸어서 아낀 버스 요금으로 자식이 좋아하는 빵 한봉지를 사다주는 존재가 어머니다.
“아닙니다. 어무이를 지키지 못한 아들 잘못입니다. 아부지 유언을 따르기엔 너무 어렸어요. 시간이 힘입니다. 들개에 쫓기던 새끼 사자는 갈기 달린 수사자가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어무이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어무이를 괴롭힌 못된 놈들은 백배로 대가를 치를 겁니다.”
무쌍이 빙긋이 웃었다. 미안하다는 어머니 말에 포함된 수많은 의미가 가슴 아팠다.
“잘 자랐구나. 몇 살이냐?”
눈물 젖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든든한 말에 지난날의 고난과 응어리진 가슴이 눈 녹듯이 녹았다. 어른도 팔아먹는 더러운 세상, 인간말종이 득실거리는 세상을 헤치고 잘도 자랐다.
“스물여섯이요. 어무이가 열아홉에 결혼해서 스물셋에 저를 낳았어요. 장필녀 포달에 몸이 상해서 뒤늦게 제가 들어섰다고 들었어요.”
“장필녀?”
김말순이 흠칫했다. 길을 걷다가 뱀을 밟은 듯 서늘하고 끔찍한 기분이었다.
“어무이 윗동서입니다. 천하의 망종인 년이지요. 표독한 장필녀 밑에서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는 바람에 첫 아이를 유산했답니다. 뿔따구 난 아부지가 대판 싸우고 분가했답니다.”
“아! 장필녀는 우예 됐노?”
“업보를 받는 중입니다. 어무이 속이 시원하도록 해 드리지요. 흐흐흐!”
“그랴! 사람을 상우마(상하게 하면) 안 된데이.”
무쌍이 씩 웃었다. 수없이 부지깽이를 들어도 아들을 한 대도 때리지 못했던 어머니다. 긴 세월 고난을 겪으면 독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마음이 여렸다.
“알아서 할게요. 영아는?”
훌쩍이는 영아를 돌아보았다.
“후유!”
김말순이 대답 없이 긴 한숨을 쉬었다. 무쌍은 한숨 속에서 대답을 찾았다. 긴 속눈썹에 가려진 젖은듯한 두 눈망울, 길고 갸름한 목선이 어머니를 빼닮은 아이다. 어머니를 닮은 아이, 순수하고 착한 마음도 어머니를 닮았다. 괜히 물었다는 후회가 분노로 변했다.
‘언놈인지 갈아버리겠어!’
서릿발 같은 살기가 떠올랐다.
“아저씨!”
영아가 바지를 잡고 흔들었다.
“이 녀석 보게, 오빠라고 불러라!”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오빠?”
영아는 어리둥절했다. 아저씨가 오빠라니? 엄마를 울린 나쁜 아저씨인데.
“니캉 내캉 닮았제?”
무쌍이 쪼그리고 앉아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요모조모 뜯어보던 영아가 손뼉을 쳤다.
“눈썹이 닮았어. 코도 닮고 입술도 닮았어.”
“그것 봐! 닮았잖아. 오빠라니깐.”
“웅, 그래두.”
꼬마 숙녀는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흐흐, 그 녀석 차암!”
무쌍은 웃음이 나왔다. 졸지에 스무 살이나 차이나는 여동생이 생겼다. 그것도 깨물어주고 싶도록 귀여운 녀석이다. 녀석을 구워삶을 방법이야 백 가지도 넘는다.
“엄마, 아저씨 좋아?”
영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저씨를 싫어하는 엄마가 아저씨에게 안겨서 울고불고 좋아한다. 어린 눈에도 엄마가 이상했다.
“응!”
겸연쩍어진 김말순이 아들의 품을 벗어났다.
“쌍아, 내 몸이 우예 된기고?”
김말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깨에 쌀가마를 얹은 듯 늘 무지근하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두통도 사라지고 팔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힘겹던 육수 들통도 번쩍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라져도 너무 달라져서 겁이 덜컥 났다.
“지가 힘이 좀 셉니다. 어무이에게 달라붙은 못된 귀신을 쫓았어요.”
설명이 궁해진 무쌍이 간단히 매조지했다.
“귀신?”
김말순이 물끄러미 아들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신기를 타고난 무무(巫舞)다. 아들에게서 거대한 영의 기운을 느꼈다.
“그랬구나!”
그녀는 간단히 인정했다. 의학적인 설명보다는 귀신이 즉물적으로 이해되는 개념이다. 아들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잃었던 기억도 곧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아들만 믿으시소.”
무쌍이 장담했다. 자신의 능력은 천박하지만, 좀비였던 쌈디를 인간으로 되돌린 사부가 계시고, 뇌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봉인 로렌 기즈가 있다. 기억 회복은 시간문제다. 기억회복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사부께 여쭈어봐야 할 일이지만…….
“아~”
김말순의 얼굴이 환해졌다. 가슴이 뛰었다. 자신은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외톨이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고, 행복한 가정이 있었다. 그 행복을 되새기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솟았다. 무엇보다 이처럼 잘난 아들을 배속에 담고, 낳고, 키웠던 그 세월을 간절히 알고 싶었다. 죽지 못해 살았던 세상이 아니다. 삶의 욕구가 맹렬히 타올랐다.
“어무이, 바닷바람이 찹니다. 따뜻한 국물이라도 먹으러 갑시다.”
“식당에 일하는 중인데…….”
김말순이 미적거렸다. 무쌍은 기가 막혔다. 지상 최강자, 세계적 수준의 부자, 노바토피아 국왕의 어머니가 할 말이 아니다. 어머니 행색이 온전히 눈에 들어왔다. 펄렁한 몸뻬, 시장표 나일론 남방, 허름한 누비 잠바, 양념이 묻은 행주치마, 고단한 삶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은 흔적이다. 욱하고 뜨거움이 치밀었다.
“어무이, 씰데없는 걱정하덜 말고 아들에게 맡겨두이소.”
“그렇구나!”
김말순은 그 한마디에 모든 시름이 날아갔다. 새삼 훤칠하고 바위처럼 단단한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방파제보다 더 든든한 아들이다.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행여나 놓칠세라 손등에 파란 정맥이 돋도록 움켜잡았다. 성질 사나운 주인 여자가 겁나지 않았다.
“갑시다.”
무쌍이 영아를 번쩍 들어서 목말 태우고 나섰다.
“와아!”
영아가 환성을 질렀다. 김말순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더러운 세상으로부터 자신과 영아를 지켜줄 반석처럼 넓은 등이다.
김말순은 무쌍을 데리고 터미널 뒤쪽에 위치한 추레한 식당에 들어섰다. 탁자가 10개 남짓한 작은 식당이었다. 간판은 선창 설렁탕인데 메뉴는 스무 가지가 넘었다.
“휴, 이런 곳에 계셨으니!”
한숨이 나왔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고 손님이 많지 않은 후미진 식당에 처박혀 계셨으니 넙치가 허탕 칠 만했다.
“영아댁, 뚝배기만 던져놓고 사라지마 우야노?”
뚝배기에 얼굴을 박고 있던 중년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무쌍은 가슴이 시렸다. 엄마는 이곳에서 그냥 영아댁이라 불리는 모양이다. 택호는 고향따라 붙는다. 고향도 기억 못 하니 그렇게 불린 모양이다.
“와예? 필요한 거 있어예?”
김말순이 바짝 긴장했다. 툭하면 시비를 걸어서 가까이 가면 손을 잡고 엉덩이를 만지는 남자다.
“편육 한 점 없는 설렁탕이 무슨 설렁탕이고?”
“아까 차려드릴 때 많이 넣었는데…….”
“머라꼬? 와서 확인해 봐라. 국물도 우유를 탔구마. 이걸 묵으라고 주는 기가?”
남자가 목청을 높이며 젓가락으로 뚝배기를 땅땅 두드렸다. 김말순과 영아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무쌍의 표정이 삼엄해졌다. 어머니가 방파제에 나온 지 20분이 지났다. 저놈은 밥을 먹지 않고 어머니가 올때까지 기다렸다. 질낮은 수작을 거는 속내가 빤히 보였다. 핏- 순간이동한 무쌍이 중년 남자의 목을 움켜잡았다.
“새꺄, 밥 처먹으러 왔으면 곱게 처먹고 꺼져라.”
살기가 와르르 쏟아졌다.
“끄윽!”
남자의 눈이 허옇게 뒤집혔다.
‘아차!’
목을 풀어주고 명문혈을 두드려서 숨을 틔워주었다.
“후유~ 다 당신 누구여?”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알 거 없고, 평생 피똥 싸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밥 묵고 가라.”
“이~ 헉!”
흘끔 무쌍을 쳐다보던 남자가 귀신을 본 듯 고개를 후딱 돌렸다. 호랑이 눈보다 더 무서운 눈이다. 가슴이 후득흐득 떨렸다.
“맛있게 드시오.”
무쌍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견정혈을 통해서 살(煞)이 스며들었다. 지금은 멀쩡하지만, 일주일은 피똥 싸는 고생을 겪어야 한다. 남자가 말뚝처럼 굳었다. 오줌을 살짝 지렸다. 사타구니에 힘을 잔뜩 주고 추가적인 누수를 방어했다.
“어허, 얼릉 드시라니깐!”
“예 예!”
울상이 된 남자가 숟가락을 들었다. 사타구니가 척척해졌다. 식당을 얼른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일어섰다간 젊은 놈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무쌍이 어머니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숨도 못 쉬고 있던 김말순의 얼굴이 스르르 풀어졌다. 휘둘리고 쫓기며 살아온 그녀로선 상상도 못 했던 장면이다. 아들이다. 내 아들이 왔다. 목에 힘이 들어갔다.
“영아댁, 영아 찾으러 갔띠나?”
푸짐한 육덕을 자랑하는 아줌마가 밀창을 드르륵 열고 들어섰다.
“야, 바빴심니꺼?”
“아이다. 손님도 없었능 기라.”
“그랬구마이!”
김말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 여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쩔쩔매던 영아댁이 아니다. 평소라면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부터 나와야 했다. 뭔지 모르게 사람이 달라졌다.
“영아야, 또 방파제 나갔제? 배라먹을 년이 발랑 까져 가꼬 도통 말을 듣지 않능 기라.”
주인 여자가 애꿎은 영아에게 눈을 부라렸다. 영아가 혀를 날름하고 무쌍의 뒤로 숨었다. 무쌍의 눈꼬리가 꿈틀 올라갔다. 똑같이 힘든 삶을 사는 주제에 갑질하는 태도가 눈에 거슬렸다.
“이 총각은 누군디? 훤칠하이 억수로 잘 생겼데이.”
주인 여자가 무쌍의 아래위를 훑었다.
“오메야, 진짜 잘 생겼데이. 혹시?”
아줌마가 코 평수를 늘리며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말조심하시오. 내 어머니요.”
무쌍의 눈이 삼엄해졌다. 어머니는 천박한 상상에 오를 분이 아니다. 이미 겪은 고난으로 충분했다.
“옴마나!”
주인 여자가 화들짝 해서 소리를 질렀다. 설렁탕을 깨작이던 남자의 얼굴이 꺼멓게 죽었다.
“어무이, 점심은?”
“영아 불러서 막 묵을라 카던 참이다. 내가 퍼뜩 챙기오꾸마.”
“나가서 먹읍시다.”
무쌍이 주방으로 향하는 어머니 손을 잡았다. 이런 곳에 한시도 머무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 밥은 내 손으로 해야제.”
김말순이 고집을 부렸다. 얼마나 귀한 아들인가! 얼른 따뜻한 밥을 해서 먹이고 싶었다. 무쌍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무이, 오십 년은 아들 밥을 해주셔야 합니다. 새털같이 많은 날이 남았심더.”
“그랴!”
김말순의 얼굴이 오월의 장미꽃처럼 환하게 피어났다. 무쌍이 주인 여자를 슬쩍 노려보고 카운터 전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진사장, 어머니를 찾았소……. 그렇소……. 충무 여객선터미널 뒤쪽 선창 설렁탕이오……. 넙치가 이쪽에 있다고? 알았소. 나머지 애들은 모두 철수시키시오.”
전화기를 꽝 내려놓자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주인 여자가 움찔했다.
“어무이, 나갑시다.”
무쌍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최대한 자제했다. 과도한 액션과 감정 폭주는 불안정한 어머니를 자극하게 된다.
“성님, 내 잠깐 나갔다가 와도 되겠능교?”
“그 그랴!”
주인 여자가 혼이 나간 듯 대답했다. 무쌍이 어머니와 영아의 손을 잡고 식당을 나섰다. 주인 여자가 후다닥 식당 문을 나서서 멀어지는 등을 노려보았다.
“흥, 나이가 몇인데 저런 걸망한 아들이 있노. 본배(근본, 출신)는 없어도 얼굴이 빤빤하이끼네 새파란 것도 건지는 구마. 그나저나 팔봉이를 우얄라꼬 저카제?”
주인 여자의 눈이 질투로 번득였다. 어디나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이 있다. 김말순의 나이는 본인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최강 동안과 날씬한 몸매는 서른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주인 여자의 상상이 턱도 없지는 않았다.
여객선터미널 주차장, 무쌍이 시트로앵 문을 철컥 열자 영아가 환성을 질렀다.
“와! 아저씨 차다.”
“영아야, 아저씨가 아니고 오빠거든.”
“그래두”
영아가 말꼬리를 빼자 무쌍이 웃었다.
“오빠라고 부르면 이쁜 옷하고 신발을 사줄 텐데.”
조금 비겁하지만, 뇌물 공세를 폈다. 핏줄의 당김일까. 밤톨만 한 계집아이의 앙탈이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