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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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장 어머니 내 어머니6
영아가 배시시 웃었다. 어른이나 아이나 뇌물에 약하긴 마찬가지였다.
“보름달도?”
“그러엄, 이따만큼 사줄게.”
무쌍이 팔을 한껏 벌렸다. 영아의 눈이 똥그래졌다.
“바나나 우유도?
“그러엄, 천 개 만개 사줄게.”
“오빠!”
영아가 냉큼 오빠라 불렀다.
“허이구, 요 이쁜 것!”
무쌍이 영아를 번쩍 들어서 빙빙 돌렸다.
“꺄하하!”
영아가 자지러졌다. 무쌍은 짤랑이는 웃음이 웃음으로 들리지 않았다. 옷과 신발에 예민할 나이에 군것질거리를 우선함은 그만큼 곤궁하게 살았다는 소리다.
‘망할 년!’
개기름 흐르는 식당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어머니께 노임이나 제대로 주었을지 의문이었다. 통통해야 할 나이에 비쩍 마르고 얼굴에 핀 마른버짐을 보면 알쪼다.
김말순은 눈물을 훔치고 하늘을 올려보았다. 영아가 저토록 즐거워한 적이 있었던가? 에미가 시원찮으니 아이도 천덕꾸러기 취급받았다.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동복 여동생을 살갑게 대하는 아들이 고맙고 고마웠다.
“임이여, 하늘에서 우리 아이를 보살피고, 못난 계집이 불쌍해서 아들을 보내주셨구려.”
어린 아들에게 아내를 지켜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임이 저 하늘 어디에 계신다. 동구 밖 느티나무가 굳건함은 그 뿌리가 받쳐주기 때문이다. 따뜻한 밥 한 그릇 해먹인 기억이 없는 아들, 그 아들이 따뜻한 심성을 가졌음은 임의 보살핌 덕분이다.
“오빠, 어디 가요?”
“밥 묵으러!”
“와, 신난다.”
영아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설렁탕 냄새가 너무 싫었지만, 가게서는 설렁탕만 먹어야 했다. 무쌍이 뒷문을 열고 영아를 좌석에 앉혔다. 김말순이 차 바닥을 더럽힐세라 경건한 마음으로 신발을 벗고 탔다. 무쌍은 속이 터졌지만 못 본 척했다.
시트로앵이 그럴듯한 백숙집 앞에 멈추었다. 일부러 백숙 식당을 찾았다. 과거의 기억을 건드리다 보면 어머니가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비쌀 텐데!”
김말순이 가게 앞에서 미적거렸다.
“어무이, 아들이 외제 차를 타는데 뭔 걱정입니까? 아들은 어무이 생각보다 천배 만배 부자라요.”
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장마 끝에 얼굴을 내민 태양만큼이나 환한 웃음이었다. 김말순은 눈이 부셨다. 한번 보면 잘생겼고 두 번 보면 멋있고 세 번 보면 천하의 호남이다. 온갖 간난신고가 꿈인 듯 했다.
“마당 왼쪽 끝에 철망으로 만든 닭장이 있었어요. 어무이가 옻닭을 만들면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고 아들은 침을 흘리며 부엌을 기웃거렸지요. 어무이는 별 재료가 없어도 음식을 맛있게 잘 만들었거든요.”
“옻닭?”
“야, 아부지도 저도 옻닭을 좋아했어요. 내가 배앓이를 하면 아부지가 월송산에서 옻나무를 쪄오고 어무이가 찹쌀과 마늘을 듬뿍 넣고 푹 고아냈지요. 아들이 숟가락을 들고 덤벼들면 어무이가 닭 다리 두 개를 얼른 아부지 앞으로 돌려놨지요. 아들보다 서방을 먼저 챙기는 나쁜 엄마였지요. 하하하!”
무쌍이 노래하듯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
김말순은 아들이 기억에 없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 소리만 뱉었다. 다정한 남편, 개구쟁이 아들에게 닭을 뜯어주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러고 보니 식당을 옮길 때마다 옻닭을 메뉴로 추가했다. 머리는 잊어도 몸이 잊지 않았던가!
“오빠, 영아는 짜장면이 좋은데.”
무쌍이 옻닭을 주문하자 영아가 태클을 걸었다.
“아이구, 이것아!”
김말순이 질색했다. 생전 음식 투정하지 않던 아이다. 싫어하는 설렁탕 국물도 말없이 먹던 아이가 웬 음식 타박이람!
“하하하, 내 생각만 했구마.”
무쌍이 주인의 양해를 얻어 짜장면을 배달시켰다.
“와, 오빠 최고!”
영아의 입에서 오빠라는 호칭이 술술 나왔다.
“희한하구먼. 쟤가 착해도 낯을 가리는데…….”
“핏줄의 당김이지요. 동생이니까요.”
김말순은 아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툭 던지는 말에 가슴이 울컥했다.
“고생 마이 했제? 내가 박복한 년이라 뜨신 밥 한 그릇 못 해줬는데 이래 잘 컸구마.”
김말순의 목소리가 젖었다. 그녀는 가만히 손을 뻗어 아들의 얼굴을 더듬었다. 사기그릇보다 더 매끄러운 피부, 수려한 이목구비, 어쩌면 이렇게도 잘 자랐을까!
무쌍은 억장이 무너졌다. 가슴이 콱 막히고 닭고기가 목구멍에 턱 걸렸다.
“어무이, 하늘이 큰 사람을 낼 때는 고난을 준다고 했심더. 땡감이 서리를 맞아야 홍시가 되고, 사과도 가물어야 맛이 좋은 기라요. 어무이도 악몽을 꾸었거니 하이소. 이제부터 어머니의 삶을 사셔야 합니다.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
“그랴. 새털같이 많은 날 바쁠 거 있나. 천천히 이바구를 듣자꾸나. 시방 내 나이가 사십 여덟이나 되었다고? 믿을 수 없구마. 사십도 안 된 줄 알았는데……”
김말순이 한숨을 쉬었다. 나이도 모르고 십칠 년을 보냈다. 아들이 스물여섯이라고 했으니 아홉 살에 버려진 셈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묻고 싶었지만, 아들이 쉬이 말해줄 것 같지 않았다.
“어무이는 동안이라서 동네 여자들이 마카 시샘을 했지요. 이때가 스물셋입니다.”
무쌍이 지갑 속에서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젊은 부부 사이에 고추를 내놓은 아기가 끼어 앉은 전형적인 돌 사진이다. 진순이 하동댁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찾았다. 하동댁도 잊고 있었다고 했던가.
“아!”
김말순은 말을 잇지 못했다. 쪽 찐 머리에 한복을 입은 앳된 여자는 어려도 너무 어렸다. 십대 중반쯤으로보였지만, 틀림없는 자신의 얼굴이다. 어쩌면 너무 어려보여서 동서가 괴롭혔을지도……
그녀의 눈이 사진 속의 아기 얼굴과 맞은 편에 앉은 아들 얼굴을 분주히 오갔다. 동그란 눈과 얇은 입매가 닮았다. 나란히 앉은 잘 생긴 남자가 내 남편이었던가! 그녀는 할 말을 잊고 빛바랜 사진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아들이 엄마를 알아보는데 무슨 조건이 있겠어요. 그냥 아는 기지요. 고추를 내놓은 놈이 접니다.”
“내 아들!”
김말순이 무쌍의 손을 꼭 잡았다.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어머니 고향이 충무입니다. 조금 전까지도 천 명이 넘는 인원이 전국을 뒤지고 있었어요.”
“오메야, 천명?”
김말순이 자지러졌다.
“어무이 아들이 부잡니다. 사부님께서 때가 되면 저절로 만난다고 하셨지만, 손 놓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결과적으로 난리법석만 떨고 사부님 말씀대로 된 거죠. 하하하!”
“사부?”
“아들을 인간으로 만들어 준 대단한 분입니다. 그만 가입시다. 세상에서 어무이를 치료할 분은 사부밖에 없어요. 한시바삐 찾아뵈야 합니다.”
“식당은 우야고? 사람 성의가 아인데. 우짜노?”
깜짝 놀란 김말순이 반문했다.
“제가 처리하지요. 필요한 것만 챙겨서 얼릉 가입시다. 어이쿠, 이 녀석은 잠들었네.”
짜장면을 끝장낸 영아는 식곤증을 이기지 못하고 무쌍의 무릎에 코를 박고 잠들었다. 무쌍이 어린 동생을 안아 들고 손수건으로 아이의 입과 코에 묻은 짜장을 닦아냈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고 능숙했다.
‘자가 얼라를 키우나?’
김말순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예야,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우야노!”
김말순이 식어버린 옻닭을 안타까워했다. 모자가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먹는 것도 잊어버렸다.
“어무이가 제대로 해 주셔야지요.”
무쌍이 씩 웃었다.
“암만 암만!”
김말순이 방아깨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치근덕대는 인간들에게 밥을 해다 바치지 않아도 된다. 사랑하는 아들의 밥은 하루에 백번을 해도 즐겁기만 하다. 그녀는 물밀 듯이 밀려드는 행복감에 가슴이 그득했다.
봉고가 급하게 달려와서 선창 설렁탕 앞에 멈추었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 셋이 내렸다. 삼식의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온 넙치다. 넙치가 간판을 쓰윽 올려다보고 가게로 들어섰다.
“어서 오이소!”
서호댁이 반색했다. 넙치가 홀을 휘 둘러보았다.
“아지메, 여기 김말순 씨 계십니까?”
“김말순이요? 그런 사람 없는디요.”
손님인 줄 알았더니 개털이다. 서호댁이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넙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김말순은 기억을 잃은 데다 최강의 동안이다. 본인의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는데 남이 어떻게 알겠는가. 나이와 대략적인 인상착의, 이름만 가지고 찾았으니 대면을 했어도 허당이다. 헛지랄이라는 대우선사의 말이 맞았다.
“이 분 말이오.”
넙치가 몽타주를 보여주었다.
“영아댁과 닮기는 했는데 나이가…….”
서호댁이 머리를 갸우뚱했다.
“혹시 키 크고 잘생긴 젊은 분이 오셨소?”
“야, 아까 영아댁과 점심 묵는다고 나갔어라. 근디 누구셔?”
“알 거 없고. 설렁탕이나 세 그릇 주쇼.”
넙치가 의자를 드르륵 빼서 앉았다. 쫄따구 둘이 조심스럽게 반대편에 앉았다. 신이 난 서호댁이 안반짝같은 엉덩이를 실룩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허, 이럴 수가 있나!”
넙치가 한숨을 쉬었다. 천명에 가까운 애들을 풀어서 남해를 들쑤셨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 면목이 없어서 접싯물에 코박을 판인데 큰형님이 직접 사모님을 덜컥 찾아냈다. 무슨 신통력인지 기가 막혔다.
“형산가? 형사는 잠바를 입는데!”
서호댁이 주방에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서호 항엔 예전부터 양아치가 많았다. 자잘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사진이나 몽타주를 들고 사람을 찾는 형사는 흔히 볼 수 있다. 짓거리는 형사인데 양복을 입고 범인을 쫓는 형사는 본 적이 없다.
“젊은 놈은 제비 새끼가 틀림없어.”
서호댁은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드르륵- 탕-
선창 설렁탕 출입문이 거칠게 열렸다. 몸뚱이는 바깥에 두고 넙데데한 얼굴만 쑥 들어왔다. 설렁탕에 밥을 말던 넙치가 고개를 들었다. 낮술을 걸쳐 불콰한 얼굴에 입에 물린 권련이 연기를 풀풀 뿜는 모양새가 척 보기에도 동네 양아치다.
“문 뽀사지겠구마. 남씨가 물어줄껴!”
서호댁이 눈을 부라렸다.
“아지메, 그 새끼 어디 갔어?”
“먼 소리고? 야밤에 도깨비 좇내미는 소리하마 먼 소린지 내가 우예 아노?”
거친 뱃사람을 상대로 장사하는 서호댁의 입담도 만만치 않았다. 스무 살이나 어린놈이 반말을 찍찍했지만, 개차반에게 따져봐야 소용없다.
“아 씨바, 영아댁 아들이라 카는 놈팡이 새끼 말이다.”
넙치의 손이 뚝 멈추었다.
“아항, 조 선장 만났구마. 아까점에 영아 댁과 붙어서 밥묵으러 나가두마.”
“오데로 갔는데?”
“발 달린 짐승이 오데를 못 가겄노? 어데서 밥 묵고 있겄제.”
“진짜 아들이가?”
“내가 우예 아노? 얼굴이 반반하이끼네 지대로 건졌는지도 모르제.”
“영아 댁이 튄 건 아이지러?”
“허이고 걱정도 지랄이구마. 세간이 고대로 있는데 튀긴 뭘 튀어.”
“조또, 어떤 핏덩어리 새끼가 남팔봉의 밥에 숟가락을 꽂고 지랄이가. 언놈인지 디졌어.”
깍지동(콩을 깍지가 달린 채 뽑아서 묶은 두툼한 단) 같은 몸이 가게로 들어섰다.
“가게서 또 쌈판 벌리마 경찰 부른데이.”
서호댁이 눈을 부라렸다.
“에이씨, 좇만한 가게도 가게라고 더럽게 유세하는구마. 손바닥만 한 서호 바닥에 지가 어딜 가겠어.”
남팔봉이 넙치 일행을 흘끔 보고는 가게를 나섰다. 양아치 감이 위험한 인간임을 경고했다.
“잡아와!”
“넵!”
어깨 둘이 벌떡 일어났다. 눈치 빠른 넙치는 몇 마디 들을 때 이미 놈이 말하는 언놈이 누구인지 감이 잡혔다. 큰형님이 절대 말썽을 피우지 말라고 했지만, 놈을 그냥 보내기엔 기분이 찜찜했다.
가게 밖에서 툭탁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팔봉이 질질 끌려왔다.
“와 이캅니까? 백주대낮에 사람을 쳐! 이기 무신 짓인교?”
눈텡이가 시퍼렇게 멍든 남팔봉이 악악거렸다.
“새꺄, 주디 닥쳐!
핏- 젓가락이 남팔봉의 귀를 살짝 찢고 바람벽에 팍 박혔다. 넙치의 주특기인 투척술이다.
“윽!”
남팔봉이 벽에 꽂힌 젓가락을 흘끔 보고는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어깨가 남팔봉을 질질 끌어다 홀 구석에 처박아놓았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서호댁도 입을 다물었다.
“오매야! 저건 또 머꼬?”
서호댁의 눈이 커졌다. 승합차 두 대가 가게 앞에 멈추더니 건장한 남자들이 우르르 내렸다.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거침없이 가게로 들어섰다. 기세에 밀린 서호댁이 카운터 뒤로 피했다. 이십여 명이 들어서자 좁은 홀이 꽉 찼다.
“형님!”
양복쟁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정신 사납다. 큰형님께서 곧 오신다. 바깥에서 대기해.”
“옙!”
양복쟁이들이 우르르 몰려나가서 가게 앞에 늘어섰다.
“씨바, 조때다!”
남팔봉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뭔지 모르지만, 조직의 일에 얽혔다. 자신 같은 피라미는 조직과 잘못 엮이면 충무 앞바다에 수장되기 십상이다.
시트로앵이 가게 앞 공터에 멈추었다. 무쌍이 뒷문을 열고 잠든 영아를 안았다. 남은 손으로 어머니 손을 잡고 가게로 향했다.
“엉! 니들은 머꼬?”
무쌍이 늘어서 있는 어깨들을 쳐다보았다. 가게 안에서 넙치가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큰형님, 축하드립니다.”
늘어서 있던 어깨들이 일제히 허리를 꺾었다.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허이고 이 자식들아, 누가 보마 내가 조폭 보스인 줄 알겄다.”
무쌍이 손을 홰홰 저었다.
“어무이, 고생 많으셨습니다.”
넉살 좋은 넙치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급 당황한 김말순이 아들을 쳐다보았다.
“어무이를 찾아다녔던 애들입니다.”
“그랴, 고상 많았심더.”
김말순이 고개를 숙였다.
“아이쿠, 어무이 이카마 안됩니더.”
넙치가 어찌할 줄을 모르고 허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