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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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장 어머니 내 어머니9
“꺄하하!”
짤랑이는 웃음소리가 통영 앞바다에 울려 퍼졌다. 무쌍이 빙그레 웃으며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우중충하던 얼굴이 가을 하늘처럼 공활했다. 눈이 커지고 콧구멍이 벌어지고 얼굴이 잔뜩 상기되었다.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이 마구 방출된 현상이다.
“어무이, 기분 좋죠?”
“좋다마다! 내가 고래 등을 타고 달리는 기 맞나? 시방 꿈을 꾸는 기가?”
김말순의 목소리가 잔뜩 들떴다. 놀이기구에 정신이 팔린 소녀에 다름없다.
“고래 등뿐입니까.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서 살 낀대요. 아들이 17년 동안 잃어버린 행복을 이자까지 붙여서 돌려드리지요.”
“내사마 꿈이 깰까 봐 겁이 덜컥 나는 거라.”
김말순이 머리를 저었다. 아들이 행복을 폭풍처럼 몰고 왔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갑작스러운 행복이 겁났다. 아들이 학을 불러서 훌쩍 날아가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자아, 이제 나도 너도 갈 곳으로 가야지!”
무쌍이 쿵쿵 발을 굴렀지만, 혹등고래 모자는 해안을 떠나지 않고 끽끽거렸다.
“오빠, 또 그물에 걸리면 어떡해요?”
혹돌이와 놀던 영아가 걱정했다.
“음! 어떡한다?”
무쌍은 해안을 떠나지 않는 고래 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미물이지만,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혹등고래의 유일한 천적은 범고래와 인간이다. 심령이 연결된 동물이 죽으면 테이머 에스퍼도 영적 충격을 받게 된다. 영아가 슬퍼하다니 그건 안될 말이다. 인간이라면 환혼구타술로 혈을 근골을 강화하고 공진파로 벌모세수할 수 있지만, 고래는 언감생심이다.
‘제대로 되려나?’
에피듐의 원천이자 최강의 면역체계를 형성하는 듀테로니온을 떠올렸다. 중수소 화합물인 듀테로니온을 인간의 신체에 투입하면 즉사한다. 코끼리가 암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거대한 체구가 인간의 면역체계보다 수십 배 강한 면역체계를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되겠지. 아니면 말고!”
무쌍의 주특기인 ‘아니면 말고’가 발동되었다. 덩치가 코끼리 열 배인 혹순이라면 견딜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가부좌를 틀고 공진파를 휘돌렸다. 솨아아- 뇌에서 박하향 나는 알갱이, 듀테로니온이 와르르 쏟아져나왔다. 두 손바닥을 혹순이 머리에 붙였다. 쏴아아- 두테로니온을 함유한 공진파가 혹순이 뇌로 스며들었다.
‘이거 두 번 못할 짓이구마.’
기력이 쭉 빠졌다. 끼우우- 혹순이가 거체를 뒤틀었다. 무쌍이 훌쩍 해변으로 뛰어내렸다. 콰우우- 혹순이가 발광했다. 40톤 거체가 연신 물보라를 일으켰다. 무쌍은 공간지각력으로 혹순이 내부를 더듬었다. 생각했던 이상으로 조직이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 열열상기로 보면 불타는 고래로 보일 것이다.
“오빠, 혹순이가 이상해졌어.”
영아가 소리쳤다.
“헐!”
생난리를 피우던 놈이 잠잠해졌다. 시커먼 동체가 불그스름해졌다. 두터운 동체가 날씬해지고 체장이 10m 이상 늘어났다. 지느러미에 칼날 같은 발톱까지 돋았다. 쥐라기에 번성한 모사사우르스 비슷한, 체장 30m, 40톤에 육박하는 새로운 생물 종이 등장했다.
혹순이가 상체를 번쩍 들고 입을 쩍 벌렸다. 크릴을 걸러 먹는 빗 같은 이빨이 송곳처럼 뾰족하게 변했다. 슬퍼 보이도록 순했던 눈동자도 포악한 포식자의 눈으로 바뀌었다. 무쌍이 잽싸게 공기막을 쳐서 어머니와 영아의 귀를 막았다.
쿠아앙- 거창한 하울링이 터졌다. 수면이 폭풍을 맞은 듯 우르르 흔들렸다. 광기의 에피듐 진수인 듀테로니온을 받아먹은 놈답게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퍼플 치킨, 가루라에 이어 센 놈이 등장했다.
“임마, 눈깔 깔아!”
무쌍이 버럭 했다. 끼이이- 혹순이 머리를 숙였다. 번들거리던 눈빛이 순한 눈빛으로 돌아갔다. 혹돌이 개조는 포기했다. 듀테로니온 충격을 버텨낼 것 같지 않았다. 혹돌이가 수유를 통해서 어미의 듀테로니온을 이어받으면 좋겠지만, 이미 수유 기간이 끝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두 번째 새끼는 혹순이를 닮게 된다. 자연계에서 동물이 면역 체계나 백신을 어미로부터 받는 사례는 흔히 발견된다. 꿀벌의 경우 꿀과 화분을 모으는 과정에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로열젤리에 섞여들어 간다.
여왕벌이 로열젤리를 먹으면 소화된 세균이 비텔로제닌이란 단백질에 붙어 저장된다. 비텔로제닌은 혈액을 타고 수정란에 섞여든다. 새끼는 태어나기도 전에 어미로부터 강력한 백신을 이어받는 셈이다. 비텔로제닌은 대다수 포유류에 존재한다. 혹순이 새끼를 기대할 만했다.
“이제 가거라!”
콰우우- 알아들었다는 듯이 혹순이 몸을 돌렸다. 대양으로 향하던 혹순이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물 위로 튀어 올랐다.
“우와!”
“에구머니!”
김말순과 영아가 비명을 질렀다. 무려 100m를 솟아오른 혹순이 배를 뒤집고 착수했다. 쏴아아- 대 잠수함 폭뢰가 터진 듯 거창한 물보라가 튀었다. 혹순이 사상 최대의 브리칭 쇼를 십여 번 반복하고 유유히 큰 바다로 헤엄쳐갔다. 영아 앞에서 알짱대던 혹돌이가 허둥지둥 어미를 따라갔다.
“저만하면 범고래떼에 당하지는 않겠구마.”
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착한 혹등고래를 광포한 괴물로 만들어놓고도 태연한 인간, 죽음의 천사 블랙맘바다.
시트로앵이 고분 마을 진입로에 들어설 즈음 눈송이가 날렸다. 서설이다. 김말순이 함빡 미소를 짓고 손을 내밀어 눈을 받았다. 눈이 오면 강아지처럼 좋아하던 옛 버릇 그대로였다.“와, 오빠 눈, 눈!”
영아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무쌍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기가 죽었던 아이가 혹돌이를 타고 바다를 질주한 뒤로는 수다쟁이가 되었다. 좋은 현상이다.
“우와! 크다.”
영아가 소리 질렀다. 커다란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오메야!”
김말순은 딸의 수다를 제지할 정신이 없었다. 구웅- 거대한 대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승용차가 진입하는 순간 정신이 외출했다. 염전만큼 넓은 잔디밭이 펼쳐지고 대웅전 몇 개를 이어붙인 웅장한 기와집이 눈앞을 턱 막았다. 아들이 말한 고래 등 정도가 아니다.
“어무이가 살아갈 집입니다.”
무쌍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씩 웃었다. 차에서 내린 김말순은 눈을 끔벅였다. 왼쪽으로 이 층 한옥이 줄줄이 서 있고, 오른쪽으로 대나무 숲과 물이 출렁이는 커다란 연못이 보였다.
집이 아니라 잘 꾸며진 공원에 다름 아니었다. 아들이 들려준 꿈같은 이야기는 오히려 모자랐다. 하긴 고래를 불러서 타고 다니는 아들이 무엇을 못하랴. 연못가에서 한 떼의 인부를 데리고 작업하던 김극도가 날듯이 달려왔다.
“와킬, 다녀오셨습니까?”
“음, 넙치 연락받았나?”
“별다른 연락은 없었습니다.”
“그 녀석, 얼이 빠졌군. 하하하!”
무쌍이 껄껄 웃었다. 넙치가 본가에 연락할 정신이 없을 만도 했다.
“내 어머님과 여동생이다.”
“스고이!”
김극도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슬그머니 사라졌던 주인이 오매불망 찾아 헤매던 어머니를 모셔왔다. 게다가 부록으로 깜직한 공주까지 데려왔다. 놀라자빠질 일이다.
“와킬, 축하드립니다.”
“당연히 축하해야지. 어무이, 집사 김극돕니다.”
“마님, 김극돕니다. 얼마나 기쁘십니까?”
김극도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고맙심더!”
김말순은 말을 잇지 못했다. 놀란 가슴을 달래기도 바빴다.
“식구들은?”
“아, 짚은다리 사모님이 오셔서 후원에서 메주 쑤고 시래기를 엮고 있습니다. 불러올까요?”
“아니다. 내가 가지.”
그렇지 않아도 콩 삶는 구수한 냄새가 등천했다.
후원에 걸린 커다란 가마솥 두 개가 김을 푹푹 뿜고, 진순이 오 자매는 한창 무청을 짚으로 엮고 있었다. 일을 모르는 영희와 영지는 콩을 퍼 나르고 무청을 한 줌씩 쥐여주고, 미나와 영숙이 쪼그리고 앉아서 구경했다. 평화로운 광경이다.
“오빠!”
막내 우순이 무쌍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아궁이에 장작을 밀어 넣던 하동댁이 허리를 펴고 돌아섰다.
“아지메!”
“오이야, 출장 다녀왔구마. 억!”
하동댁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자잘한 갈치 가시를 발라내듯이 김말순의 얼굴을 한 점씩 뜯어 보았다. 하동댁의 콧구멍이 넓어지고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공진파로 벌모세수한 김말순의 신체는 찌든 때를 벗고 젊은 시절의 미모가 살아났다. 세월이 흘렀다고 하동댁이 몰라볼 수 없었다.
“아!”
진순의 턱이 툭 떨어졌다. 진순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연순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계순, 말순, 우순은 눈알만 굴렸다. 진순의 나이 여덟 살에 김말순이 실종되었다. 연순은 긴가민가했지만, 아래 동생들이 기억하기엔 너무 어렸고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참나무 장작이 탁탁거리는 소리와 가마솥이 쉭쉭대는 소리만 들렸다. 영아가 슬그머니 오빠 다리 뒤로 몸을 숨겼다.
“성님!”
찢어지는 비명이 울렸다. 하동댁이 우르르 달려와서 김말순을 왈칵 껴안았다.
“성님, 성님 맞지요? 으흑흑!”
하동댁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김말순도 눈물을 흘렸다. 상대가 누군지 모르지만, 절절한 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언제 이런 정을 받아보았던가! 짐승의 세상에서 인간의 세상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오빠!”
진순이 무쌍을 쳐다보았다.
“그래, 어머니다.”
“오빠아! 흑흑흑!”
진순이 무쌍을 껴안고 울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졌다. 미어지는 가슴을 안고 달 밝은 밤에 홀로 대숲을 거닐고, 연못가에 멍하니 앉아있는 오빠를 보지 않아도 된다. 세상에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으랴.
공감능력은 여자가 압도적이다. 오 자매와 영희 자매, 미나와 영숙이 따라 울었다. 김극도가 눈물을 글썽였다. 응심제 후원은 졸지에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83년도에 있었던 이산가족찾기 재회 장면이 무색했다.
하동댁은 곧 이상을 알아차렸다.
“쌍아, 성님이?”
“기억을 잃으셨습니다.”
무쌍의 대답이 그리 어둡지 않았지만, 하동댁은 하늘이 무너졌다.
“머시라? 아이고 성님! 우짠지. 으흐흐흑!”
대성통곡이 터졌다. 김말순이 하동댁을 꼭 껴안고 등을 쓸었다. 친자매처럼 지냈다는 하동댁이다. 정 많고 눈물 많다더니 끈끈한 정이 가슴을 적셨다.
“동상, 그만 울게나.”
“야, 우짠지 오늘은 미역국을 끓이고 싶었능 기라요.”
하동댁이 훌쩍거리며 웃었다.
진순은 한눈에 영아를 알아보았다. 어딘가 오빠를 닮은 계집아이, 세상은 고모처럼 얼굴 반반한 여자를 내버려둘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오빠가 하룻밤 만에 애를 만들고 뻥튀기하는 재주가 없는 바에야 늦둥이 동생일 게 뻔했다.
남루한 입성이 눈에 들어왔다. 나일론 독고리에 색바랜 싸구려 파카, 올이 풀린 타이츠와 끝단이 나들거리는 프릴 치마, 비닐로 만든 싸구려 빨간 단화가 가슴 아팠다.
“이름이 뭐니?”
진순이 쪼그리고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물었다.
“영아요!”
아이의 눈이 샛별처럼 반짝였다. 진순은 그 눈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반쪽이라도 오빠 동생은 뭔가 달랐다.
“착하구나. 성은?”
진순이 소곤거렸다.
“그냥 영아요.”
찬바람이 가슴을 휑 지나갔다. 오빠가 중요한 부분을 놓쳤다.
“영아야, 너는 박영아다. 아버지는 박진보, 오빠는 박무쌍, 너는 오빠 동생이니까 박영아다. 누가 물으면 꼭 박영아라고 해야 된데이.”
영아가 말끄러미 진순을 쳐다보았다. 테이머의 눈이 작동했다. 이 언니만큼 마음이 하얀 사람은 보지 못했다. 식당 아줌마의 마음은 까맣다. 사람 대부분은 마음이 회색이거나 까맣다. 마음이 하얀 사람은 믿어도 된다.
“네. 그런데 언니는 누구라예?”
진순이 멈칫했다.
“영아 언니다.”
“네, 언니! 저는 박영아라예.”
영아가 배시시 웃었다. 고난은 어린 계집애도 조숙하게 만들었다.
“착하구나. 가자! 언니가 예쁜 옷을 줄게.”
진순이 영아를 답삭안고 안채로 향했다. 마침 영숙이 주려고 백화점에서 사온 옷이 있다. 나이도 비슷했다. 김말순의 눈이 진순의 등을 쫓았다.
“아지메, 배고파 죽겠심다.”
무쌍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아사직전이다. 이틀 동안 먹은 것이라곤 오뎅 한 그릇, 보름빵 절반, 닭고기 몇 점이 전부다. 천하의 대식가인 무쌍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랴, 퍼뜩 준비하꾸마. 연순아, 니가 애들 델꼬 마무리 해라이.”
하동댁이 뒷일을 맡기고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아!”
김말순이 감탄했다. 옷이 날개라 했던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영아는 전혀 다른 아이가 되었다. 진순을 쳐다보는 김말순의 눈이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주방이 바빠졌다. 하동댁이 밥을 안치고 나물을 무치는 동안 진순이 찬물에 불려놓은 미역을 숭덩숭덩 썰었다. 미역 담근 물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미역과 쇠고기를 프라이팬에 넣고 들기름으로 들들 볶았다.
마늘을 칼등으로 탕탕 두드려 넣고 들기름에 볶은 미역과 쇠고기를 투입했다.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들깻가루를 살짝 뿌렸다. 미역국을 끓이는 사이 사이에 갈치를 조리고 파전을 붙이고 두루치기를 만들어냈다. 물 흐르듯 막힘없고 번갯불처럼 빠른 손놀림이었다.
“아가야, 제대로 배웠구나!”
김말순이 칭찬했다. 마음 씀씀이가 어질고 지혜로운 아이가 몸매 좋고 예쁘고 요리 솜씨까지 훌륭했다. 군계일학, 세상에 다시 없을 며느릿감이다. 김말순의 얼굴이 흐뭇함으로 가득 찼다.
상을 차리던 하동댁의 손이 멈칫하고, 무쌍이 흠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