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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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장 어머니 내 어머니10
‘어머니? 허이고, 조런 여시(여우) 같은 것!’
무쌍의 입이 벌어졌다. 어릴 때 졸졸 따라다니며 고모라 부르던 입은 낙동강 홍수에 흘려보냈나 보다. 부뚜막에 올라간 얌전한 고양이가 아니라 구미호, 아니 입이 두 개 달린 여우다.
“오빠가 비린내를 싫어해서 미역국을 끓일 때 멸치 육수를 쓰지 않고, 홍합과 조개도 넣지 않아요. 김치 담글 때도 새우 젓갈만 넣어요. 제가 모르는 건 어머니가 가르쳐 주시소예.”
진순이 김말순을 돌아보며 생긋 웃었다.
“그랬구나. 입맛에 맞도록 챙겨 맥이야 주장(가장)이 힘을 제대로 쓰는 법이지. 마음도 몸도 이쁜데 말도 이쁘게 하는구나. 니가 쌍이를 챙기느라 고상이 많았구나.”
김말순은 진순이 그저 예뻤다. 죽지 못해 살아온 모진 삶이다. 깊은 물만 보면 뛰어들고 싶고 높은 곳에만 오르면 뛰어내리고 싶은 나날이었다. 경황없이 살다 보니 출생신고도 못 했다. 아비를 모르니 성을 붙이지 못했다. 진순이 아니었으면 근본없는 딸을 만들뻔했다.
“어머니, 진순이 고생을 알아주는 분은 어머니밖에 없어예. 어머니 사랑합니데이!”
진순이 우르르 달려와서 김말순을 껴안고 볼에 입을 쪽 맞추었다. 진순이 무쌍을 돌아보며 눈을 찡긋했다.
‘좋고 좋고!’
하동댁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후딱 짝짓고 싶어서 몸이 다는데 무쌍은 미적대기만 했다. 밤이 길면 탈도 많다. 딸이 성님만 꽉 잡으면 만사형통이다.
‘흐미, 내가 앓느니 죽는다. 죽어!’
무쌍이 가슴을 쳤다. 에델이라면 몰라도 진순이 보일 액션이 아니다. 사랑에 눈뜬 여자의 변신은 깜둥이, 쌈디, 디노, 가루라, 혹순이도 따르지 못한다. 400길 물속을 들여다보는 무쌍이지만, 한 길 여자의 속은 몰랐다.
무쌍이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고 양쪽에 어머니와 하동댁이 자리 잡았다. 어머니 옆에 영아가 앉고 하동댁 옆에 진순이 앉았다. 늘 무쌍의 옆에 앉았던 미나는 자리를 뺏겼다. 미나는 눈치가 빨랐다. 투정 않고 진순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눈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김말순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집안에 웬 여자가 이렇게 많단 말인가! 16인석 식탁에 앉은 13명 중에 남자는 무쌍이 유일했다. 눈치 빠른 김극도는 백화점으로 달려간 지 오래다. 늙고 젊고 어린 여자 12명이 모인 식탁은 도떼기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스님 할부지께서 오빠는 화기가 승해서 여자가 많아야 한댔어요.”
진순의 해명이 기폭제가 되었다.
“큰어머니, 저는 둘째 연순이라예. 올해 스물셋이고 졸업반이라예.”
“큰어머니, 저는 셋째 계순이라예. 올해 스물하나고 학교 다니고 있어예.”
“큰어머니, 저는…….”
오 자매와 영희 자매의 소개가 이어졌다. 김말순은 어질어질했다. 누가 누군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영숙이 혀짧은 소리로 배꼽 인사를 마치자 음식이 줄줄이 나왔다. 기름을 바른 듯 밥알이 반짝이는 밥이 구수한 냄새를 피우고, 노릇하니 구워진 생선이 입맛을 당겼다.
푸짐한 갈비찜, 윤기 도는 두루치기, 송이버섯구이, 신선로에서 끓는 불고기, 정갈한 나물 반찬, 참치회, 옥돔탕, 장어구이가 나오고 하몽, 비어슁켄, 파스트리미같은 스페인 햄 요리까지 나왔다. 커다란 식탁이 동서양의 요리로 가득 채워졌다.
“우와!”
영아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김말순의 입이 쩍 벌어졌다. 염전에서 먹은 것이라곤 납작보리를 절반 섞은 냄새나는 정부미 밥과 무 짠지, 배추김치, 오뎅 무침이 전부였다. 염전에서 빠져나와 식당을 전전할 때도 별 다를 게 없었다.
허리가 빠지도록 손님을 치르고, 짬 날 때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횟집에서는 회 뜨고 남은 자투리를 집어넣은 지리탕으로 밥 먹고, 뼈 해장국 집에서는 손님이 남긴 국물에 밥 말아 먹고, 설렁탕 집에서는 설렁탕 국물에 밥 말아먹었다.
밥과 반찬은 당연히 손님이 남긴 잔반이었다. 생선을 굽고, 갈비를 찌고, 더덕을 구워도 주인이나 손님상에 올랐지 자신과 영아 몫이 아니었다. 식탁 가득히 차려진 요리는 감격 그 자체였다.
10년 동안 주인 영감 식구와 인부들에게 밥을 해댔다. 7년은 식당 손님을 챙겼다. 누군가 차려주는 밥상은 처음이다.
‘이제사 사람이 되었구나!’
처음 받아보는 인간 대우에 가슴이 우르르 떨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은은한 붉은빛이 도는 방짜 유기에 담긴 쌀밥이 하얗게 빛났다. 수저를 대기가 겁났다.
따신 밥 한 그릇 못 해준 못난 에미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될까? 감격에 이어서 죄책감이 몰려왔다. 김말순은 아들의 손을 꼭 쥐었다.
“어머니, 차린 건 별로 없지만, 맛있게 드시소예.”
진순이 재촉했다.
“아가야, 수고했다.”
김말순이 수저를 들었다. 밥술을 뜨는 손놀림이 애처롭도록 경건했다. 무쌍이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백부댁에서 쉰밥 덩이를 몰래 훔쳐먹다가 뒈지도록 얻어맞곤 했다. 하동댁이 차려준 하얀 쌀밥은 평생 잊지 못할 감격이었다. 어머니 심정을 알고도 남았다.
“아!”
김말순이 탄식했다. 차지고 달다. 탱글탱글한 밥알 한 개 한 개가 입안에서 춤을 췄다. 17년간 밥순이로 살았다. 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 밥이 맛있으려면 쌀과 물이 좋아야 한다. 부서진 쌀알은 전분이 흘러나와 질척해지고, 푸른빛이 도는 쌀은 덜 여물었고, 검은빛이 돌면 묵은 쌀이거나 벌레 먹은 쌀이다. 쌀을 씻을 때도 전분이 녹아 나오지 않도록 찬물로 두세번 휘딱 씻어내야 한다. 불 조절도 중요하다. 센 불에 끓여서 약한 불로 뜸들여야 한다. 약한 불로 밥을 지으면 질척해진다.
밥을 제대로 지을 줄 아는 사람이 최고의 쌀과 최고의 물로 정성 들여 지어낸 최고의 밥이다. 반찬도 필요없는 밥이다. 반찬은 밥맛이 없을 때 필요하다. 김말순의 눈에 콩깍지가 한 풀 더 씌워졌다.
미나는 슬펐다. 아빠가 발라주는 생선을 제비 새끼처럼 받아먹는 조그만 계집애가 미웠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를 뺏겼다는 서러움이 가득 찼다.
‘쳇, 오빠라고? 아빠가 왜 오빠야?’
밥도 맛없고, 국도 맛없고, 고기도 맛없었다. 좋아하던 햄도 짜기만 했다. 무쌍이 깨작이는 미나를 슬쩍 훔쳐보았다. 질투가 고스란히 얼굴에 묻어나왔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섣불리 위로하거나 설명할 일이 아니다. 아이들의 일은 아이들끼리 해결해야 한다.
“미나야, 영아는 너보다 어리지만, 고모라고 불러야 한데이.”
오히려 불을 질렀다.“네!”
표정이 샐쭉해진 미나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무쌍은 빙긋이 웃기만 했다. 유대인은 40년간 광야를 헤매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가나안이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을까? 유대인은 행복했을까?
아니다. 인간 살이 자체가 고난이다. 상처 없는 삶은 어디에도 없다. 가나안이라고 해서 고난이 없을 수 없다. 싸우고 미워하며 상처 나고, 화해하고 사랑하며 딱지 앉는 것이 인생살이다. 인생은 그렇게 배워가는 것이다.
미나는 무호형 댁에서 차별을 경험한 아이다. 영아는 어린 나이에 세상의 구박을 받으면 자란 아이다. 열 살 조카와 여섯 살 고모가 꼬인 항렬을 어떻게 풀어갈지 은근히 기대되었다.
“고모가 엄마 언니 맞아예?”
계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는 사십 여섯이다. 삼십 중반으로 보이는 고모가 언니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두 살 많응께 언니 맞지러.”
“에엑, 말도 안 돼요.”
“와! 초절정 동안이시다.”
“꺄아!”
김말순의 나이가 사십 여덟이란 사실에 처녀들이 자지러졌다. 그때부터 식사는 물 건너가고 피부 미용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남아나지 않는다 했다. 무쌍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무이, 아부지께 인사드려야지요.”
식사를 마치자 무쌍이 서둘렀다.
“그랴, 나도 그이를 얼른 보고 싶구나. 제수는?”
“어머니, 걱정마시소예.”
진순이 실팍한 아이스박스를 가리켰다.
“벌씨로 준비했띠나?”
김말순이 흐뭇한 눈으로 진순을 바라보았다.
“벨로 힘들 것도 없었어예. 아버님께서 백숙과 동동주를 좋아하셨다는 말씀 들었어예. 백숙은 식사 준비할 때 끓이기 시작했고, 동동주는 담가둔 게 있었걸랑요. 과일도 선물 들어온 게 있었어예. 지는 전 몇 가지만 부쳤심더.”
“오냐, 장하구나.”
김말순은 감탄했다. 입안의 혀가 따로 없는 아이다. 아들 둔 여자치고 진순을 욕심내지 않을 여자가 있으랴. 이런 참한 며느릿감을 놓치면 남편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서 호통치고 남을 일이다.
“쌍아, 식은 언제 올릴라 카노?”
“예에?”
무쌍의 눈이 얼음판에 자빠진 황소 눈처럼 커졌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결혼 타령이신가? 아니 17년간 헤어진 아들을 만난 날 결혼 운운이라니 기가 막혔다. 진순을 살짝 째려보았다.
“헹!”
진순이 김말순 몰래 혀를 날름했다. 무쌍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력한 원군을 얻은 진순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영곡마을 뒷산, 눈송이가 점점이 떨어졌다. 영아를 안은 진순이 앞장서서 오르고, 김말순과 하동댁이 뒤따랐다. 후미에 무쌍이 커다란 아이스박스와 삿자리를 메고 따라갔다.
“동상, 딸을 우예 저래 참하게 키웠노?”
“성님이 잘 봐주셔서 그렇지 마이 부족합니더. 바깥양반이 일찍 돌아가는 바람에 고상만 실컷 하며 컸심더.”
“동상도?”
“야, 큰애가 열 살도 되기 전에 교통사고로 가뿟다 아인교.”
“그랬구마!”
과부 두 사람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어려운 행핀에 우짜마 저렇게 음전시럽노. 한 가지를 보마 열 가지를 아능 기라. 여중봉황이 따로 없구마.”
“아이구 성님, 무슨 그런 과한 말씀을 하십니꺼. 인중용은 쌍이지예. 자가 어려서부터 우리 집 가장 노릇을 했다 아인교. 쌍이 덕분에 지집애들이 지대로 컸는기라요. 쌍이 공은 내가 머리 풀어서 신발을 삼아도 부족합니더.”
“그랴, 우리 아들이 잘나긴 잘났제. 동상, 고맙구마.”
어머니와 하동댁의 대화가 스테레오로 들렸다. 자식 자랑이야 부모의 본능이지만, 봉황은 아니다.
“하이고, 어무이가 진순이와 살아봤십니꺼? 봉황은커녕 닭이라요 닭. 그것도 성질 사납고 고집 센 오골계라요.”
무쌍이 들릴세라 작은 소리도 투덜거렸다. 천하의 무쌍도 어머니 앞에서는 부지깽이에 맞을까 겁내는 아들이었다.
무쌍이 거대한 돌무덤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 무덤을 파헤친 칠성파 일당을 수자골에 묻고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적석총을 만들어버렸다. 13년 전 가출하기 전날 무덤을 찾았을 때도 오늘처럼 눈이 흩뿌렸다.
오늘은 제수를 준비했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드릴 게 없었다. 개울을 뒤져서 가제 세 마리를 잡아서 굽고, 개울물을 고무신에 담아 올렸다. 맨발이 얼어붙은 땅과 돌조각에 긁혀 피가 줄줄 흘렀지만 아픔을 느끼지도 못했다.
학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아들, 고린내 나는 검정 고무신에 담긴 물과 가제 세 마리를 제수로 받았던 아버지. 아버지 앞에서 맹세했다. 세상에 머리 숙이지 않겠노라고, 어머니를 꼭 찾아오겠노라고.
“아부지, 저는 약속을 지켰습니데이. 마이 힘들었심더! 쿡쿡쿡!”
웃음이 툴툴 새나왔다. 약속을 지키는데 꼬박 13년이 걸렸다.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짧다고 했지만, 너무 긴 세월이었다.
중국집 철가방, 우시장과 돼지막, 상한이네 양계장, 탄가루 날리는 막장, 눈 덮인 아침가리골, 푸른 지중해에 떠 있는 깔비항, 하르마탄 윙윙대는 사하라 사막, 총탄에 우수수 쓰러지는 반군, 피가 냇물처럼 흐르는 아비지옥에 우뚝 선 자신의 모습…….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오빠!’
진순이 눈물을 훔쳤다. 겉은 금강석처럼 단단하지만 속은 순두부처럼 여린 오빠다. 국사무쌍이 무색한 최강의 사나이, 박무쌍의 여린 속살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다. 기어이 약속을 지킨 오빠가 자랑스럽고, 고달픈 여정에 가슴 저렸다.
“쌍아, 아부지 묘소는?”
김말순이 두리번거렸다. 봉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응?”
김말순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장정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꼼짝도 않을 거대한 바위가 첩첩이 쌓여있고, 두 길 높이의 자연석이 우뚝 서 있을 뿐 봉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바위 무더기가 아부지 무덤입니더.”
“아! 우째 이런 일이…….”
김말순이 땡중 도 터지는 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거대한 바위 무더기 앞에 상석과 향을 피울 수 있는 돌 향로가 보였다. 바위 무더기가 압도적으로 크다 보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야기하자면 긴데……. 장필녀가 방자를 하려고 아부지 무덤을 파헤쳤거든요. 또 못된 짓을 할까 봐 바위로 덮어버렸심더.”
“시상에!”
김말순이 입을 쩍 벌렸다. 산중에서 거암을 어떻게 옮겼단 말인가? 아니다. 고래를 불러서 타고 다니는 아들이 못할 것도 없다.
“못된 년은 우예 지내노?”
무무(巫舞)인 김말순이 방자를 모를 리 없다. 송아지처럼 순한 눈이 사나워졌다. 첫째를 유산한 것도 동서 때문이라더니 지아비 묘까지 파헤쳤단다. 김말순은 순둥이지만 아들과 남편을 해꼬지한 여자까지 용서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