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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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장 내 그럴 줄 알았다1
[가능하겠습니까?] [노납은 정신 영역을 컨트롤할 수 있지만, 뇌 구조와 기억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지식이 부족하구나. 기즈 박사와 의논해보면 방법이 있을 듯하구나.]무쌍은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한 줄기 햇살을 보았다. 그가 알기로 인간의 기억 메커니즘은 퀼트 보자기처럼 개개의 독립적인 기억 뉴런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특정 부분의 기억을 지우고 생성하려면 수 조개에 달하는 기억 맵을 통째로 읽어 들여서 뉴런의 상관관계를 분석해야 한다. 전 세계의 컴퓨터를 모두 동원해도 불가능한 작업이다.
[기억을 도치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시냅스 수용체 감도가 증강되는 부분만 특정되면 기억 도치는 어렵지 않다. 증강 현실로 뉴런 네트워크 접속을 바꾸면 된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머리를 다쳤다는 식의 스토리면 적당하겠구나. 뒤통수에 적당한 상처도 만들어 두마.]‘역시 사부님!’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사부는 오염된 퀼트 보자기 한 조각만 다른 색상으로 덧방 치겠다는 말씀이다. 사부가 아니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최도식이 시도하는 세혼술은 퀼트 보자기를 갈기갈기 잡아 뜯는 무식한 기억 도치법이다. 밥그릇에 앉은 파리를 잡자고 도끼를 내리치는 격이다. 밥그릇이 박살 나고 밥상이 날아간다. 오감이 무너지고 정신붕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마음의 상처도 치유하고 말이지요.] [그렇지. 물에 젖은 닥종이는 툭 쳐도 찢어지지만, 물이 마르면 더 질겨지지 않더냐.] [사부니임~] [이놈아, 갑자기 웬 코맹맹이 소리야. 전음으로 들으니 소름 끼치는구나.]스승이 오만상을 찡그리고 제자는 비시시 웃었다. 사부가 돌려서 말씀했지만, 백부의 생명을 억지로 연장하지 말라는 의미다. 본인도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시주님, 양 보살을 친구삼아 절간에 며칠 머무르구려. 노납이 다른 재주는 없어도 무거운 마음, 상처 난 마음, 깨진 마음을 꿰매고, 붙이는 재주는 제법 있소이다. 밥값과 치료비는 제자 놈에게 받으리다. 헐헐헐!”
대우선사가 파안대소했다. 의발 제자를 얻는 날 덤으로 제자 놈의 원도 풀어줄 수 있게 되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큰스님, 감사합니다.”
김말순이 벌떡 일어나서 세 번 큰절을 올렸다. 부처님은 멀리 있지 않았다.
“무아야, 영아도 남겨두고 가거라.”
“사부님 뜻대로 하십시오.”
“헐헐, 선재 선재로다.”
대우선사가 포단을 침대 삼아 새끼노루를 껴안고 잠든 영아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절로 미소가 번졌다. 이놈을 보려고 응심제에 들렀다가 미나의 마음만 어루만져주고 돌아왔다.
의발 전수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설픈 제자놈 바래기가 된 지 6년이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제자 놈은 좌도방문으로 기울어버렸다. 긴가민가했던 또 다른 인연의 끈이 제자놈의 동생이라니, 이 어찌 하늘의 조화가 아니랴!
[사부님, 영아를 비구니로 만들 생각은 아니죠?] [헉, 이놈이 뭔 소리를 하는겨?]불쑥 들려온 전음에 화들짝 했다.
[시침 떼지 마시소. 사부님 두 눈에 욕심이 주렁주렁 매달렸심더.] [에잉, 그랬다간 네놈이 사부 수염 뽑자고 달려들 것 아니냐?] [설마요!] [걱정하지 마라. 영아 정신 능력은 주먹질이나 잘하는 네놈과는 격이 다르다. 수련과 세속 생활을 병행해도 15년이면 진전을 수습할 게다.]“사부님, 아구스타 사드릴게요.”
무쌍이 빙긋이 웃었다.
“헐헐헐, 뇌물이냐? 이왕이면 스트라달레로 부탁한다.”
“열흘 내로 키를 쥐여 드리지요.”
무쌍은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아구스타 스트라달레는 산악 전문 바이크다. 주문 생산품 한 대가 포니 스무 대값에 상당하지만, 사부의 은혜에 비하면 껌값이다. 돈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점보제트기를 못 사드리랴. 무쌍은 어머니와 영아를 맡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암자를 떠났다.
“큰형님, 다녀왔습니다.”
넙치가 무쌍을 맞았다. 김극도가 마뜩잖은 눈으로 넙치를 노려보았다. 난데없이 양아치 수백 명을 끌고 오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허접한 한 떼거리의 친삐라(양아치)는 왜 데려왔단 말인가. 뒤통수를 한 대 때리고 싶었다.
“보고해!”
무쌍이 늘어서 있는 깍두기 60명을 흘끔 들러보고 재촉했다.
“충무와 통영 일대 양아치 280명을 잡아들였습니다. 안기부와 경찰이 파격적으로 협조해 주었습니다. 해외취업계약서 작성은 끝났고, 배편도 주선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협조는 개뿔이, 원래 그놈들이 할 일이야. 흔적없는 걸 보니 디망쉬가 끌고 갔나 보군.”
“넵, 잠을 깨웠다고 화가 나셨습니다.”
김극도가 대답했다.
“그럴만하지.”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깜둥이는 수면이 곧 에너지 충전이다. 소음이 싫을 수밖에 없다. 잡혀 온 양아치들은 지하실 바닥을 미싱 하우스하고 있을 게 뻔했다.
“남팔봉은?”
“저어 그게~ 돛대가 심하게 다루는 바람에 많이 망가졌습니다. 놈이 어무이를~”
“됐다. 애들 별채로 보내고 돛대 불러와!”
무쌍이 넙치 입을 막았다. 영아가 동복동생임을 알았을 때 이미 각오했던 상황이다.
“옙, 죄송합니다.”
넙치는 눈치 없는 자신의 입을 쥐어박고 싶었다.
“회장님!”
허겁지겁 달려온 돛대가 넙죽 엎드렸다.
“말해 봐!”
딱딱한 말투에 돛대 얼굴이 꺼멓게 죽었다. 열심히 일한 죄로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었다. 악몽, 아니 회장님의 불편한 심기에 가슴이 쿵 떨어졌다.
“너 외에 남팔봉의 말을 들은 놈이 있나?”
“어 없습니다. 넙치 형님과 제가 남팔봉을 취조했습니다요.”
돛대는 연탄불에 올려진 오징어처럼 바짝 오그라들었다.
“그럼 됐어. 말해 봐.”
“사모님은 인신매매단에 납치되었습니다. 비금도로 팔려가서 그곳에서 꼬박 10년을 염전목대로 지내셨습니다.”
“염전목대?”
“외딴섬 염전에서 품삯도 못 받고 혹사당하는 일꾼을 그렇게 부릅니다. 한마디로 노예입니다. 머리가 모자란 사람, 연고가 없는 사람을 잡아다 부려 먹는데 사모님처럼 멀쩡한 분이 잡혀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외부와 차단되고, 감시가 심해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보통 18시간씩 일합니다.
“18시간! 음, 그래서?”
신음이 절로 나왔다. 몸이 허약한 어머니가 살아남은 게 용했다.
“염전 주인 문기식이 사모님께 반해서 염전에는 투입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모님을 겁탈하려고 앗 죄송합니다. 어떻게 해보려고 수없이 괴롭혔던 모양입니다……. 남팔봉은 문기식의 외조카입니다……. 사모님의 미모에 혹한 놈이 감언이설로 꼬여서 섬을 빠져나왔습니다……. 사모님께서 살림을 차리자는 놈의 요구를 끝내 들어주지 않자 놈은 사모님을 포프라마치에 팔아버렸습니다……. 포프라마치 화재를 틈타서 탈출한 사모님은 식당을 전전했던 모양입니다……. 일 년 전 시장에서 남팔봉의 눈에 띄는 바람에…….”돛대의 입에서 김말순의 기구한 삶이 줄줄이 나왔다.
‘그랬던가! 얼마나 매를 많이 맞았으면 뼈에 잔금이 가고 장기에 울혈이 맺혔을까!’
분노가 가슴을 치받았다.
“……그동안 모아둔 돈을 뺏기고, 소위 목대 관리에 들어갔습니다……. 사모님 존체에 놈이 새긴 문신이 있습니다.”
긴 이야기가 끝났다.
“납치범은 어떤 놈들인가?”
무쌍이 눈을 꾹 감은 채 물었다.
“아직은……. 애들을 비금도로 보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기생충은 숙주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기식을 닦달하면 꼬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넙치가 장담했다. 가물치는 가물치끼리 잡아먹는다. 경찰은 못 찾아도 같은 가물치는 찾을 수 있다.
“돛대, 네가 직접 비금도로 내려가라. 문기식과 관련자들을 누구든 몽땅 잡아와.”
“넵!”
“넙치, 너는 쓸만한 놈들을 150명 뽑아서 별동대를 조직하라. 서해와 남해의 염전을 샅샅이 뒤져서 제2 제3의 문기식과 인신매매 조직을 잡아오고, 갈 곳 없는 염전노예들도 데려오도록 하라. 악덕업주와 결탁한 지역 유지와 공무원은 인적 사항을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넵!”
“비용은 얼마든지 써도 좋다. 문제가 생기면 내 이름을 대고 협조를 받아라.”
무쌍이 통장과 김양수 반장, 이대덕 지부장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세상의 부조리를 다 간섭할 수야 없지만, 눈앞의 부조리를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넙치와 돛대는 신 났다. 경찰은 물론이고 안기부 요원들도 설설 기었다. 이래서 일을 하려면 백이 있어야 한다.
“오야붕! 앗, 죄송합니다. 주인님, 번거롭게 처리할 필요 있습니까? 제가 내려가서 흔적없이 지우겠습니다.”
김극도가 시퍼런 살기를 뿜었다. 와킬이란 호칭이 입에 붙지 않는지 다시 주인님으로 돌아갔다.
“관둬. 얼룩말을 죽이는 것은 사자가 아니라 같은 얼룩말이다. 쓰레기 수거는 넙치가 적임자다.”
“소인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김극도는 바로 알아들었다. 일시적으로 쓰레기를 수거해도 다른 쓰레기가 그 자리를 채운다. 일본 경시청이 야쿠자를 처리하지 못하고 관리만 하는 이유다.
“놈은 어디에 있나?”
“별채에 처박아두었습니다. 진순님이 응급치료를 하셨습니다.”
“가자!”
무쌍은 혼수 상태에 빠진 남팔봉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안면은 이목구비가 구분되지 않고, 신체 70%에 피하 출혈이 발생했다. 공진파로 내상을 확인했다. 소장이 뒤엉켜서 장폐색증이 발생했다. 돛대가 딱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겼다.
무쌍의 눈이 서늘해졌다. 어머니 같은 보통 사람은 모리배나 조폭보다 이런 동네 양아치가 훨씬 두려운 존재고, 실제적인 해악도 크다. 이투리 정글에서도 표범, 블랙맘바, 미지의 맹수보다 이투리 말벌, 미찌 유르, 육상 거머리 등의 독충과 기생충이 훨씬 성가시고 두려운 존재다.
이투리 정글에서 육상 거머리를 처음 보았다. 볼일을 보려고 엉덩이를 깠을 때 갑자기 시야가 까맣게 변했다. 관목과 풀섶에 붙은 이쑤시개 크기의 시커먼 거머리 수천 마리가 일제히 움직였다.
거머리는 지진계보다 열 배는 진동에 예민했다. 살짝 움직여도 꼬리 쪽 빨판을 가지나 잎에 붙이고 몸통을 진동 방향으로 쭈욱 뻗었다. 인간은 흡혈귀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혐오한다.
드라큘라, 흡혈박쥐, 거머리, 빈대, 벼룩 등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두가 겁낸다. 거머리 수천 마리가 일제히 피를 빨려고 몸통을 뻗어서 꿈틀거리는 장면은 꿈에 볼까 무서울 정도였다.
육상 거머리의 탐욕은 끝이 없다. 피를 빨기 시작하면 이쑤시개가 손가락으로 변한다. 심지어 지나치게 피를 빨아먹은 나머지 동체가 터지는 놈도 있다. 피를 양껏 빤 거머리는 몸집이 열 배는 커지고 동작이 느려진다. 이때부터 또 다른 사냥이 시작된다.
어디선가 박쥐떼가 날아들어 꾸물대는 육상 거머리를 포식한다. 긴 꼬리를 가진 붉은 말벌은 통통한 거머리의 몸에 산란관을 박고 알을 깐다. 남팔봉은 자신의 몸이 터지는 줄도 모르고 피를 빨다가 박쥐에게 잡힌 육상 거머리다.
“이런 놈은 죽음도 사치다. 그라브 비죠(무거운 통나무)가 딱이다. 의사를 불러서 정상적인 치료를 해주어라.”
무쌍은 공진파로 장폐색을 풀어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갔다. 할 일이 많았다. 어머니를 만나는 바람에 백부와 만남이 늦어졌다.
“쯧쯧, 차라리 죽는 게 나을 텐데.”
김극도가 혀를 찼다. 주인님은 무서운 분이다. 무치시바리아게는 약과다. 우범석과 무라이처럼 당할 바에야 얼른 죽는 게 낫다.
“어머, 작은 사장님!”
백부의 문고리 정부장이 반색했다.
“좋아 보이네요.”
무쌍이 비시시 웃었다. 통통한 몸이 몰라보게 홀쭉해졌다. 역시 사랑은 위대했다.
“정말요? 그이가 매일 전화로 닦달하는 통에……. 국제 전화비도 장난이 아닐 텐데.”
정부장이 몸을 비비 꼬았다. 에밀과 깨를 달달 볶는 모양이다.
“걱정하지 말아요. 에밀은 정부장 생각 이상으로 부잡니다.”
“언제 결혼하실 계획이라예?”
“으잉, 그건 내가 물을 말이 아니요?”
무쌍이 모른척하고 반문했다.
“노처녀 말라죽는 꼴 볼라 카지요?”
심드렁한 반응에 정부장이 눈을 흘겼다. 허니가 보스 결혼이 먼저라고 딱 자르는 바람에 속이 타 죽을 지경이다.
“때가 되면 하겠지요. 사장님은?”
“기다리고 계셔요.”
“많이 좋아지셨네요.”
“어서 와라. 니 덕분에 몸띠도 좋아지고 마음도 편해졌구마.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이라 카더만, 딱 십 년만 더 살고 싶은 욕심이 칵 치받는데이.”
박인보가 썩은 미소를 지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이기도 했다.
“고통 속에 삶을 연장할 바에야 죽는 게 낫지요.”
무쌍은 어머니를 찾았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백부를 받아들였을 뿐 잊지는 않았다. 용서는 단념의 다른 말이다. 힘없는 자의 마지막 탈출구가 용서다. 힘 있는 자만이 잊지 않고 용서해 줄 수 있다. 자신은 백부를 용서해줄 만큼 충분한 힘이 있다.
“클클, 너다운 말이구나.”
박인보가 냉정한 대답에 불구하고 웃었다.
“니가 섬유 주식을 쪼매 사야겄다. 돈은 내가 융통해 주꾸마.”
박인보는 거두절미하고 용건을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본인이 돈을 내겠다는 의미다.
“주식을요? 장가들이 마지막 힘을 쓰는 갑지요.”
무쌍은 바로 알아들었다. 와각지쟁(蝸角之爭)이 절정에 달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