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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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장 내 그럴 줄 알았다2
“흐흐흐! 봇도랑 물이 마르면 가물치는 뻘을 파고들지만, 송사리는 죽을 둥 살 둥 물꼬를 타고 올라가는 벱이다. 씨비를 몽땅 전환하고, 일반주주들 포섭에 열을 올리더구나. 지난달에 임시 주총을 요구하더라.”
“안건이 뭡니까?”
“박인보 쫓아내기지 벨 거 있겄나. 일주일 남았다.”
“주총이라~ 나름대로 준비가 된 모양이지요.”
무쌍은 심드렁했다. 엉겁결에 회사를 물려받았지만, 모양 빠지게 경영권 다툼에 말려드는 상황이 마뜩잖았다. 그렇다고 손방으로 내버려두면 장 씨에게 넘어갈 판이라 위협적인 장철수와 김달수를 처리했다.
“성가신 일이 생겼어. 마누라야 원래 장가 편이지만, 희자와 대일방적 여사장이 배신할 줄은 몰랐능 기라. 그 양반이 사업 접는다 카디마는 막판에 내 뒤통수를 치네.”
“백부 전공이 뒤통수 때리긴데 맞을 때도 있네요.”
무쌍이 이죽거렸다. 백부가 김기택 사장의 공장을 들어먹은 수법을 보면 알쪼다. 여 사장이란 사람이 백부와 상의도 없이 주식을 넘겼을 때는 나름 섭섭함이 있었을 것이다. 장 씨 가문의 멱살을 틀어잡고 게임을 끝냈다 여긴 백부가 제법 아팠을 것이다.
“하긴 못할 짓을 마이 하긴 했지. 집안 꼬라지가 우야다 이 꼬라지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내가 판을 엎고 전을 벌렸으니 할 말이 없구마.”
박인보가 쿨하게 받아넘겼다.
“저를 부른 목적은 거기 아닐걸요. 세무서와 검찰에서 쑤시고, 구청 환경과도 폐수 조사하러 왔을 텐데요.”
무쌍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박인보를 쳐다보았다.
“억, 우예 알았노? 심상치 않아서 니를 보자고 했능 기라.”
박인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부지사 장철수와 부장검사 김달수가 향심섬유 사장 박인보를 때려잡을라꼬 손을 잡았죠. 별건 수사와 세무조사를 병행하고, 먼지가 별로 없으면 청새치 파를 동원해서 묻어버릴 계획까지 세웠걸랑요.”
“머라꼬? 이런 야비한 새끼를 봤나!”
박인보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자신이 삼식 캐피탈을 앞세워서 장 씨 가문의 뿌리를 흔든 일련의 비열한 암수는 까맣게 잊은 박인보다. 이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세무조사 받을 일도 없고 검찰에 불려갈 일도 없심다.”
무쌍이 비시시 웃었다. 장철수와 김달수는 물론이고 조사장의 스폰을 받는 세무서 과장과 장 씨가 관리하는 검찰 수사관까지 그라브 비죠 제복을 입고 엔네디 고원에서 성실히 근무하고 있다.
“가만, 이니셜만 나열한 공무원 다섯과 지역 건설업자가 실종되었다는 기사가 대구일보에 짤막하게 났었는데…….”
박인보가 눈을 부릅뜨고 벌떡 일어났다. 조카가 놈들의 음모를 알고 있다는 사실과 기사가 연결되었다.
“저는 제 밥그릇에 손대는 놈을 두고 볼 만큼 관대하지 않습니다. 당국에서 보도통제를 했을 텐데 철없는 기자가 단신을 낸 모양이네요. 쯧, 불쌍한 놈.”
무쌍이 혀를 찼다. 누군지 모를 기자의 앞날이 뻔했다.
“이런, 망할!”
박인보가 무너지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짤라꼬 그래 큰일을 저질렀노? 그까짓 놈들이야 죽든 살든 알 바 아니지만, 니는 내 조카다.”
박인보는 눈앞이 캄캄했다. 자신이 관리하는 인맥도 만만치 않다. 세금 몇 푼 추징당하고, 벌금 내고 집행유예 받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기업가는 교도소 담장에 한 발을 걸치고 살아간다. 조카가 사람 다섯을 쓱싹해버렸으니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무쌍이 냉정하게 잘랐다.
“휴, 니가 허투루 일할 놈이 아이지러. 우야뜬동 벨일 없어야 할낀데.”
목이 탄 박인보가 물컵을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회사도 중요하지만, 조카의 안위가 열 배는 중요했다. 조카가 없으면 회사의 미래도 박 씨 가문의 미래도 없다. 게다가 제수씨 얼굴은 어떻게 본단 말인가.
“별일은 당연히 없습니다. 날파리는 걷어내 드릴 테니 백부가 할 일만 하시면 됩니다.”
무쌍은 얄미울 만큼 태연했다. 박인보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쌍은 어릴 때부터 용의주도하고 담대했다. 대학병원에서도 어쩌지 못하는 지병을 고쳐주고, 밀폐된 고층 사무실에 흔적없이 편지를 남기는 특이한 능력도 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탔는데 조카를 믿지 않으면 어쩔건가!
“그려,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그놈들이 사라졌다니 묵은 숙변이 쑥 빠지는 기분이구마.”
평정을 찾은 박인보가 썩은 미소를 흘렸다.
“요즘 장가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받았으마 돌리조야제. 나도 장가 놈들 뒤통수를 오부지게(야무지게) 쎄맀다(때렸다). 처당숙인 장경택 형제의 주식 17,857주를 매수했거든. 장가들끼리 쎄(혀) 빼물고 한바탕 벌어질 끼다. 흐흐흐!”
“하아! 누대의 양반 가문도 돈에 무너지는구마요. 백부답게 큰 분란 거리를 던졌네요.”
“물러날 때 물러나더라도 퇴장은 뽀대나게 해야제. 배신은 사람이 아니라 돈이 하는 기라. 나도 좋은 사람은 못 되지만, 그 인간들은 평생을 힘없는 사람 뒤통수를 밟고 살았다 아이가. 남을 그만큼 쎄렸으면 지들도 맞아 봐야제. 클클클!”
박인보가 낄낄 웃었다. 요상하게도 조카만 만나면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졌다.
‘허, 변했는가 했더니 잔머리와 뒤끝 작렬은 여전하구마.’
무쌍은 상체를 흔들며 웃는 백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자에 쫓기는 얼룩말은 본능적으로 자기보다 약한 동료가 있는 쪽으로 도망간다. 사자는 당연히 발 빠른 놈보다 동작 느린 놈을 잡아먹는다. 그래서 얼룩말이 얼룩말을 죽인다는 말이 회자된다.
인간도 얼룩말과 다를 바 없다. 차이가 있다면 복수심과 응징 여부다. 장경택 형제는 다른 장가들의 비난과 응징을 각오해야 한다. 힘 있는 장경택 형제에게 붙는 장가도 속출한다. 크든 작든 집단은 외부의 위협보다 내부 분열로 붕괴한다.
“백부가 희자 누나를 충동질했지요? 손 놓고 당할 사람이 아니잖아요.”
“허, 니는 못 속이겠구먼. 장 씨들이 정신없을 때 여객을 우탁이 앞으로 확실히 해 놓으려고 희자를 이용했다. 장기수가 덥석 달려들어서 섬유 주식과 여객 주식을 맞교환 하두만. 자금이 달리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잔머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백부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장가들이 내놓은 토지를 걷어 들이느라 자금 사정이 빡빡하지요?”
“억! 니는 우예 모르는 기 없노?”
박인보가 눈을 홉떴다. 조카를 만날 때마다 간이 철렁철렁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장가들이 내놓은 큰 덩어리를 걷어 들이느라 대출이 턱밑에 찼다.
“한 길 사람 속은 모릅니다.”
“한 길 사람 속이라~ 그건 그래! 휴~”
박인보가 긴 한숨을 쉬었다. 마누라가 처가와 결탁해서 회사를 삼키려고 대들 줄도 몰랐고 신뢰를 쌓아온 거래처가 배신할 줄도 몰랐고, 무엇보다 조카 속을 알 수 없었다.
“유증이든 상속이든 어차피 세금 폭탄은 마찬가집니다. 향심섬유 주당 순자산가치가 32,000원쯤 되더라고요. 225,857주면 대략 72억 원이네요. 이참에 제가 매입하지요. 백부도 증여세 때문에 명의개서를 미루고 있는 참이지요?”
“허, 72억이 얼라 이름이가? 니가 그 큰돈을 우예 준비할라카노? 치아라!(그만 둬라!)”
무쌍이 대답 없이 인터폰을 눌러서 정부장을 불렀다.
“정부장, 주거래 은행이 어디요?”
“대구은행이라예.”
“내 구좌를 개설하고 전화를 주시오.”
무쌍이 인감증명서와 인감을 내밀었다. 정부장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갔다.
“여객 주식은 우탁 형에게 넘겼습니까?”
“명의변경을 끝내고 내 것도 넘겼다. 장가 놈들은 회사에 한 놈도 남겨두지 않을 끼다.”
박인보의 눈이 퍼렇게 빛났다. 무쌍은 섬뜩했다. 한 인간의 집념이 거대한 가문을 시궁창에 처박는 다큐를 보고 있다. 이래서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고,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생겼다.
“우탁이를 형이라 불러줘서 고맙구마. 마누라 밥은 편하게 먹지 못했지만, 조카 덕분에 제삿밥은 편히 먹을 수 있겠어.”
무쌍을 바라보는 박인보의 눈이 한없이 부드러웠다. 인물 좋고 살가운 제수씨를 둔 동생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돈이 썩어 자빠지게 많아도 정성이 깃든 따뜻한 밥상 한 번 받지 못했으니 헛살았다.
“백부가 돌아가시면 친인이라곤 우탁 형밖에 없으니까요.”
“제수씨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끙!”
냉정한 반응에 박인보의 목이 쑥 들어갔다.
“죽기 전에 찾아야 하는데.”
박인보가 중얼거렸지만, 무쌍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화가 끊어지자 넓은 사장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백부와 조카는 각자의 생각에 빠졌다.
따르릉- 전화벨이 침묵을 깼다.
-작은 사장님, 당좌와 보통 예금 개설했심더.
“알았소, 그곳에 잠시 기다리시오.”
무쌍은 파리바 은행 지점장을 호출해서 100억을 이체하고 정부장에게 연락해서 수표를 끊었다.
“작은 사장님, 진짜 부자네요.”
정부장이 상기된 얼굴로 액면 72억 원 수표를 내밀었다. 무쌍은 씩 웃고 백부에게 넘겼다.
“이기 머꼬? 진짜데이!”
액면을 확인한 박인보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설마 했더니 진짜 72억 원이다. 장난 칠 놈도 아니지만 72억이란 숫자는 현실적인 액수가 아니다.
“프랑스에서 은행이라도 털었나?”
“우짜다 보이끼네 돈이 쪼매 생겼심더.”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이라 그냥 눙쳤다.
“어허, 세상에!”
박인보는 감탄사만 뱉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놈이다. 물어봐야 대답해 줄 놈도 아니다. 조카가 아니라 낮도깨비다.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한데 백부 구좌에 입금하고 오소.”
“구좌 이체하면 되는데 만다꼬 찾아오라 켔심니꺼?”
정부장이 살짝 흘겼다.
“대금을 바로 이체하면 장가 측에서 가장 매매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소. 수표 양면 복사본을 첨부해서 양수도 계약서를 작성하소.”
“와! 작은 사장님은 모르는 기 뭐라예?”
“정부장 한 길 속은 모릅니다. 하하하!”
무쌍이 껄껄 웃었다. 도바 유전의 지분 정리는 이보다 백배는 복잡했다.
“다른 문제는 없나?”
“액면 거래가 아니니까 세금만 정산하면 됩니다.”
“허어, 진짜 부자는 내 조카구마. 아영아 양도 계약서 작성하고 바로 명의개서해서 넘기뿌라. 처당숙에게 잔금 보내고 나머지는 가수금으로 넣어라. 이번 달엔 기름이 잘잘 흐르겠구마.”
박인보는 신이 났다. 연유야 알 수 없지만, 조카는 향심섬유를 우습게 볼만한 걸물이다. 회사를 무쌍에게 넘긴 결정이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야, 그렇긴 한데 어지럽네요.”
정부장이 수표를 들고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아영아, 정신 차리거라. 사들인 토지는 우예 됐노?”
“논 2,300마지기, 밭 300마지기, 임야 12,000정보, 과수원 30,000평입니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 장 씨들 소유 논이 65프로쯤 넘어왔심더.”
“우화화화! 컥컥!”
박인보가 미친 듯이 웃다가 사레들렸다. 보료에 비스듬히 기대어 장죽을 빼물고 눈을 내리깔고 바라보던 장인이 눈앞을 스쳐 갔다. 그 눈길이 닿는 곳에 똥막대기 박인보가 댓돌 아래서 코가 땅에 닿도록 하례를 드리고 있었다.
“똥 막대기에 맞으면 똥칠갑이 되는 기라.”
박인보가 안경을 들치고 손가락으로 눈꼬리에 고인 눈물을 찍어냈다.
“나머지도 매입하까예?”
“얼마나 필요하노?”
“13억쯤 들어갈 낍니더.”
“총알을 아끼마 머하노. 진 사장에게 연락해라. 소유 변경 등기는 우탁이 삼분지 일, 쌍이 삼분지 이다. 알고 있제?”
“하모요. 바로 처리하겠심더.”
신이 난 정부장이 비서실로 향했다. 자금 책임자는 자금이 풍부할 때 행복하다. 자금이 마르면 뼈가 녹는다. 무엇보다 박무쌍은 남편 될 사람의 보스다. 그것도 단순한 이해관계가 아니라 가족보다 더 끈끈한 관계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아영아, 내가 후계자는 잘 세웠제?”
정부장이 문 손잡이를 잡고 돌아보았다.
“사장님이 일은 똑 부러지게 하시잖아요.”
“그래, 일만 잘했능기라. 클클클!”
박인보가 자조적인 투로 말을 뱉고 클클 웃었다. 정부장이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
“백부, 토지 소유등기는 무슨 소립니까?”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이끼네 니 애비에게 못할 짓을 너무 많이 했능 기라. 분가할 때 농토만 제대로 떼줬어도 진보가 고생스럽게 일하지는 않았을 끼다. 농약 중독도 내 탓인 거라. 여유가 있었으마 죽기 살기로 일하다 변을 당하지는 않았을거 아이가.”
박인보가 말을 멈추고 회한 어린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처럼 바람 부는 날 두껍게 부친 파전 놓고 동생과 마주앉아서 동동주 한 잔 걸치마 얼매나 좋겠노.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기라.”
박인보의 볼을 타고 굵은 눈물이 흘렀다. 무쌍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동생은 가고 없는데 우야겠노. 내 어리석음을 후대에 물려줄 수야 없지. 토지는 생명이고 정신인 기라. 우탁이를 챙겨주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뇌물이다. 허허허!”
“뇌물을 받지요. 형은 걱정 마시소.”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변한다더니 변해도 너무 변했다. 객관적인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정실에 얽히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백부는 운이 좋아서 성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고맙다.”
박인보가 슬그머니 조카 손을 잡았다. 무쌍은 파란 정맥이 도드라진 쭈글쭈글한 손이 안쓰러워 손을 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