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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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장 내 그럴 줄 알았다3(수정)
“창업자는 회사가 자식보다 소중하다 카던데 섭섭하지 않습니까?”
무쌍은 백부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내 몸띠와 바꾼 회산데 섭섭하지 않다 카마 빈말이것지. 향심이 대기업은 아니지만, 직원이 천명이고, 하청업체가 열 개다. 내가 삐끗하면 딸린 가족까지 사오천 명이 길바닥에 나앉는다. 중압감이 장난이 아인기라. 뜯어묵을라꼬 달려드는 놈들은 와 그래 많은지. 말이 좋아서 사장이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더라. 섭섭하지만 홀가분하다.
박인보는 말을 끊고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거리는 사람과 차가 넘쳤다. 성공해보겠다고 고물 버스 몇 대로 시작한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이 양반아, 내 어깨에는 백이십만 명이 얹혀있거든.’
무쌍이 속으로 웃었다. 조카가 돈을 훔쳐갔다고 가죽 허리끈을 휘두르던 인간이 수천 명의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백부는 짚은다리 잡화점에서 푼돈을 깨작거리던 난쟁이 똥자루가 아니라 나름 거인이 되었다.
“울주에 함 갔다 오니라. 민무식씨라꼬 수협 임원인데 그 양반이 2.5%(15,214주)를 가지고 있다. 저번에 배를 산다꼬 인수를 부탁하더라. 어차피 내 사람이지만 민무식이 주식을 확보하마 47%다. 나머지 일반주주들 위임장은 이미 받아놓았다. 장가들이 발버둥 쳐봐야 게임은 끝난 기라.”
무쌍은 지분을 암산했다. 발행주식 507,142주 중 225,857주, 44.5%에 2.5%를 더하면 47%가 맞다.
“야, 그리하지요.”
“흐흐흐, 더러운 것들! 감히 나를 밀어내겠다고? 내가 어떻게 키운 회사인데 감히 더러운 발을 들이밀어.”
박인보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무쌍이 딱한 눈으로 백부를 쳐다보았다. 백부는 내려놓는다면서 자신만의 아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백부나 장 씨나 도찐개찐이다.
“백부, 세상을 얻은들 가족과 친구, 이웃을 잃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재물을 산처럼 쌓은들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백부는 이 세상에 온 흔적을 남겼습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그만하면 할 일을 했습니다. 인제 그만 내려놓고 본인의 삶을 사시소. 홀아비 아파트에 화분 한 개 없지요? 밥솥은 거미줄이 쳐지고, 변기는 물때가 누렇게 끼었지요? 인제 그만 자신에게 돌아가시소.”
“아!”
박인보가 깊은 잠에서 깬 듯 신음했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 괜찮다고 위로해 준 적이 있었던가? 곧 죽을 목숨인데 미움과 분노가 무슨 소용이랴!
“나는 여기까지다. 이제부터 니가 오천 명을 먹이 살린다꼬 골치 아파봐라. 클클클!”
허탈한 웃음이 사무실을 울렸다. 무쌍은 끝내 어머니 이야기를 하지 않고 돌아섰다. 박인보는 조카가 돌아간 다음에도 오래도록 생각에 잠겨있었다.
응심제로 돌아온 무쌍은 곧바로 김기택을 서재로 불렀다.
“아저씨, 장사는 잘 됩니까?”
“예, 푸드 트럭을 두 대 추가했심더. 사장님 말씀대로 닭강정과 꼬꼬칩스를 추가하고 어묵 비율이 70% 이상인 오뎅을 썼두만 손님으로 미어터집디더. 장사를 방해하는 놈도 없고, 경찰이 단골이란 소문이 퍼져서 계집애들도 밤늦게 찾아옵니더. 사장님께서 빌려주신 돈도 진순 아가씨께 갚았습니더.”
“그래요? 장사 수완이 대단하십니다.”
“아임더. 처음부터 끝까지 사장님 덕분입니더.”
김기택이 울먹였다. 빛 한점 보이지 않는 지옥, 암울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은인을 만나지 못했으면 장기를 뜯기고 금호강에 수장됐을 몸이다.
“하하, 아저씨가 열심히 뛴 덕분이지요. 될 사람은 신발만 줘도 잘 뛰지만, 안 될 사람은 업고 뛰어도 안 됩니다. 그런데 어쩌지요. 장사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겠어요.”
“예에?”
김기택의 눈이 얼음판에 자빠진 황소 눈처럼 굴러다녔다.
“향심섬유를 맡아 주이소.”
“사장님, 갑자기 무신 소립니까?”
김기택이 펄쩍 뛰었다. 오밤중에 홍두깨 들이미는 소리도 유분수지 향심섬유를 맡아달라니…….
“흠, 설명이 필요하네요.”
무쌍은 자신이 박인보의 조카이자 향심섬유 대주주라는 사실을 밝히고 백부가 시한부 인생임을 알려주었다.
“박인보가 죽을 병에 걸렸다고요? 내 그럴 줄 알았심더. 그런 인간이 잘 묵고 잘살면 신이 없다는 증거지요.”
김기택이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다른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허, 원한이 골수에 맺혔구마.’
김기택의 반응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멀쩡하게 잘 돌아가던 회사를 말아먹은 장본인이 백부다. 회사를 뺏기고 집도 날리고 사채업자에게 쫓겨 다녔다. 박인보는 철천지원수일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백부의 건강 문제, 장 씨 가문과의 알력, 임박한 주주총회를 간략히 설명했다. 간략은 개뿔, 김기택이 알아듣도록 설명하자니 제법 이야기가 길어졌다. 김기택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백부도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어요. 이번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직도 내놓을 겁니다. 인수인계가 끝나면 서로 마주칠 일도 없어요.”
“사장님께서 직접 경영하시지요. 저만큼 사장님 능력을 잘 아는 놈은 없을낍니더, 사장님이 총대를 잡으시면 회사는 한국 제일, 아니 세계적인 회사가 될낍니더.”
김기택이 열을 냈다.
“훗, 어린놈이 뭘 알겠어요. 저는 방적기와 직조기를 본 적도 없고, 물감 풀어놓고 원단을 풍덩 담그면 염색되는 줄 아는 문외한입니다. 그리고 아저씨가 알다시피 나는 회사에 매여있을 입장도 못됩니다.”
무쌍이 피식 웃었다.
“쪼맨한 공장이나 운영하던 놈이 큰 회사를 경영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없심더.”
“자기 욕심만 차리는 사람보다야 낫지요.”
“저는 사업에 실패한 사람입니더.”
“실패를 해봐야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알게 되지요.”“허, 이거참! 도깨비에 홀린것도 아이고……”
김기택이 우물쭈물했다.
“아저씨, 남자가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요.”
“하모요. 네 식구 목숨 빚은 평생 갚아도 못 갚지요.”
“이번에 갚으시소. 현장 기술과 경영 경험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찾지 못했심더. 평생 원단을 만지던 분이 언제까지 오뎅 삶고 닭강정 튀길라 캅니까?”
“……”
쿵- 김기택은 가슴이 툭 떨어졌다. 그렇다. 수염도 희끗희끗해지는데 마냥 트럭을 끌고 다닐 수도 없고, 무엇보다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뼛골 빠지도록 일해야 될 겁니다. 아저씨 뒤에 내가 있습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운영하이소.”
향심섬유의 재무제표와 경영현황, 거래처 일람까지 한 뭉텅이 자료가 디밀어졌다. 묵묵히 방바닥에 시선을 처박고 있던 김기택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놈이지만,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일하겠심더.”
김기택은 이빨을 꽉 물었다. 두 눈이 결연한 의지로 번들거렸다. 기회를 주려는 은인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분수에 넘쳐서 망설였을 뿐이다. 무소불위의 능력자가 뒤를 받쳐주겠다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무쌍이 미소를 지었다. 노바토피아에 원단과 의류는 태부족이다. 향심섬유는 120만 명의 충성 고객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고, 지금은 아프리카 시장의 구매력이 낮지만,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
“주총이 일주일 남았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저녁에 백부를 만나서 경영 상태를 점검하시소. 장가 쪽에서 장기수 전무를 사장으로 밀 겁니다. 지분은 내가 확보할 테니 아저씨는 대표이사 취임 준비를 하시소.”
“알겠심더. 사장님이 구해주지 않았으면 시체도 온전히 못 남겼을 몸, 저도 다른 사람을 구하는 심정으로 일하겠심더.”
김기택이 결연한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무쌍이 빙그레 웃으며 산더미 같은 경영 자료를 쓰윽 밀었다.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김기택 사장님!”
“아이구, 사장님 그러지 마시소.”
김기택이 질색했다. 기억도 희미한, 은혜랄 것도 없는 작은 베풂을 잊지 않고 백배 천배로 돌려준 분이다. 마땅한 호칭이 없을 뿐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서 섬겨야 할 주인이다.
두둥 두두둥- 하레이 특유의 말발굽 배기음이 고분로를 울렸다. 하레이가 대문 앞에서 멈추었다. 뒷좌석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삼십 대 중반의 여성이 내렸다. 아니 몸가짐과 분위기만 30대 중반이지 주름 한 올 보이지 않는 뽀얀 얼굴은 20대 처녀 못지않았다. 주총 전날, 거짓말처럼 김말순이 돌아왔다.
“시주님, 노납은 그만 돌아가리다.”
대우선사가 빙글 바이크를 돌렸다.
“큰스님, 그냥 가시면 우짭니까. 쌍이와 진순이가 섭섭해 할낀데요.”
김말순이 소매를 잡았다.
“짝퉁 제자 놈이야 언제든지 볼 수 있지요. 오늘은 가족이 만나는 날입니다. 냄새나는 늙은 중은 영아나 보러 갈랍니다. 시주님의 무한한 복락이 내세까지 이어지리다. 나무아미타불!”
바우웅- 하레이가 앞바퀴를 번쩍 치켜들었다. 대우선사는 대답도 듣지 않고 까맣게 사라져버렸다. 어리벙벙해 있던 김말순이 합장했다.
“큰스님, 새 생명을 주신 은혜는 또 다른 힘든 사람에게 베풀어 갚겠심더.”
한없는 은혜를 베풀고도 보답은커녕 당신이 은혜를 베풀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분이다. 이 땅에 부처가 있다면 큰스님이 바로 생불이다. 김말순은 숙인 허리를 오래도록 펴지 못했다.
김말순은 완강히 버티고 있는 거창한 대문을 망연히 쳐다보았다. 궁궐보다 큰 저택이 아들의 집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일주일 전에 다녀갔지만, 기억을 되찾고보니 새삼스럽고 믿어지지 않았다.
“내 아들, 이리도 훌륭하게 컸구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자신의 부주의가 아들을 고아 아닌 고아로 만들었다. 독수리 바위에서 와송을 따려다 미끄러져 떨어졌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에 선뜻 초인종을 누르지 못했다.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잉- 육중한 대문이 활짝 열렸다. 김말순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대문을 들어섰다. 펑펑펑- 폭죽이 연신 터졌다.
“어무이, 축하합니다.”
늘어서 있던 응심제 가족들이 소리높여 외친 소리에 차가운 겨울 대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어머나!”
놀란 김말순이 고개를 들었다. 형형색색의 풍선과 국화꽃 터널이 길게 이어졌다. 양 보살의 연락을 받은 진순이 이벤트 업체 세 개를 동원해서 급조한 환영 세레모니다.
“아!”
김말순이 휘청했다. 국화꽃 터널 아래 훤칠한 미남이 활짝 웃고 있었다. 아들이다. 어릴 적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는 아들이 웃는 듯 웃는 듯 얼굴을 실룩였다.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쌍아!”
“어무이!”
무쌍이 쓰러지는 김말순을 격하게 끌어안았다. 김말순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줄줄 흘렸다. 똘똘하고 개구진 어린 아들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쌍아, 죄 많은 어미가 어린 너를 두고……. 흑흑흑!”
김말순이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무쌍의 앞섶이 눈물로 흠뻑 젖었다. 김말순이 아들의 얼굴을 더듬었다. 손길에 왼쪽 볼에 난 흉터가 걸렸다. 표범에 할퀴고 총탄이 살을 뜯어간 흔적은 희미했지만, 어머니 손은 작은 미세한 파탄을 놓치지 않았다.
“마이 아팠제?”
어린 것이 얼마나 험하게 컸을꼬! 가슴이 저렸다.
“어무이, 울지 마이소. 암것도 아입니더!”
무쌍이 손바닥으로 김말순의 젖은 볼을 훔쳤다.
“성님! 접니다.”
하동댁이 목메어 불렀다.
“하동댁!”
김말순이 하동댁을 얼싸안고 울었다.
“어머니!”
“고모!”
하동댁 식구들이 달려들었다. 한바탕 눈물바다가 만들어졌다. 폭풍 같은 격정이 지나가자 김말순이 계면쩍은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 기억을 찾으셨네요.”
“오냐, 네가 진순이구나. 참하게도 컸구나.”
김말순이 진순을 끌어안았다.
“사부님과 기즈 박사는?”
무쌍이 물었다.
“큰스님은 영아를 챙긴다고 돌아가셨고 박사님은 저녁답에 오신다 카더라.”
“저런!”
사부다운 처사다. 모자간에 마음껏 회포를 풀라는 배려다.
“영아는 잘 지냅니까?”
“암만, 큰스님이 오죽 잘 챙기셔야지. 말씀은 제자인데 손녀딸이 따로 없더라. 연신연골인가 머시기를 하는 중이라 델꼬오지 못했다.”
김말순이 안타까워할때 눈이 번쩍 뜨일 미남자가 스윽 나타났다.
“어무이, 디망쉬입니다. 날이 차갑습니다. 그만 들어가시지요.”
턱시도를 입은 깜둥이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이분은?”
놀란 김말순이 아들을 쳐다보았다.
“친구이자 형제입니다.”
[임마, 순간 이동 하지말어.]무쌍이 깜둥이에게 눈을 부라렸다. 땅에서 솟아나듯이 등장하면 어쩌란 말인가.
“어머나, 우리 아들보다 더 잘생긴 젊은이네. 친구보다 좋은 기 없데이.”
김말순이 깜둥이 손을 덥석 잡았다.
“하모요. 친구는 목숨을 주고받는 관계지요. 어무이, 얼른 들어가시죠.”
깜둥이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하고 김말순의 손을 잡고 안채로 향했다.
‘점마 저거 설레발치는 거 보게!’
무쌍은 울지도 울지도 못했다. 제 놈이 언제 어머니를 봤다고 손을 잡고 어무이란 말인가.
응심제가 떠들썩했다. 일주일 전과는 분위기가 판이했다. 그때는 다소 서먹한 감이 있었지만, 기억을 찾은 김말순은 예전의 다정한 성품도 찾았다. 여자들의 수다는 끝을 몰랐다. 무쌍과 깜둥이는 대화에 끼어들 엄두도 못 냈다.
김말순은 좋다, 참하다, 착하다, 예쁘다는 말 외에는 할 줄 모르는듯했다. 본래 선한 성품에 대우선사를 만나고 아들을 만나 가슴에 쌓인 원이 모두 풀렸다. 세상이 아름답고 좋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