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35
x 635
제56장 내 그럴 줄 알았다5
“천한 것이 깔치 하나는 잘 물었구마.”
심사가 한껏 뒤틀린 장 씨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이 어디서 돈 많은 여자라도 후렸나 보다. 아비를 닮아서 체격좋고 에미년을 닮아서 반반한 얼굴값을 했다.
‘저런 빌어먹을 것이 있나?’
김말순이 울컥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눈물부터 나왔겠지만, 든든한 아들이 있다. 무쌍이 나서려는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인간은 인간을 상대하고 악귀는 악귀가 상대해야 한다.
“말조심하시오. 험한 말 들을 분이 아니오.”
장 씨가 휘청했다. 귀싸대기를 오부지게 맞은 듯 귀가 윙 울리며 무릎이 풀렸다. 안쪽 허벅지에 힘을 바짝 주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장 씨의 독기와 결기는 천하의 박인보도 학을 뗄 만큼 독보적이다. 째진 눈을 홉떴다.
‘윽!’
비수처럼 예리한 눈빛이 날아왔다. 장 씨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비켰다. 사람이 아니라 호랑이와 마주 선 느낌이었다. 저놈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던 그놈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머리 검은 짐승은 은혜를 모른다꼬요? 당신은 식은 밥 한 덩이 차려준 적 없고 옷 한 벌 사 준 적 없잖아요. 살모사 새끼라고 하지 마요. 당신이 낳은 새끼도 아니고, 내가 당신을 뜯어먹지도 않았는데 무신 살모사 새낍니까. 빌어먹을 새끼는 맞심더. 뼛골 빠지게 일하고 빌어먹다 갑니데이.]가방을 챙겨서 떠나던 날 씨부렁거린 악다구니가 귀에 쟁쟁했다. 여뀌처럼 밟아도 뿌리를 뽑아도 죽지 않는 징글징글한 놈이 무쌍이다. 울컥 분노의 불길이 가슴을 태웠다. 우르르 달려가서 귀싸대기를 후려치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저년은 도대체 누구지?’
재수 없는 아가씨(?)를 찬찬히 살폈다. 그녀도 보는 눈이 있다. 명품으로 도배한 늘씬한 몸매와 기품이 우러나는 단아한 자태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게 기가 꺾였다.
“흥, 번드레한 상판으로 물주를 물었구마.”
깔치가 물주로 바뀌었다.
“나이 들어서 시력이 나빠진 거요? 아니면 가죽이 모자라서 남은 흔적이요?”
“킥!”
김말순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예전에는 단춧구멍에서 쏟아지는 독한 눈빛에 무자치 만난 개구리처럼 움츠러들었다.
“빌어먹을 놈! 말 본새 보소. 니깟 놈이 여기는 만다꼬 왔노?”
“볼일이 있으니 왔지요. 얼굴이 마이 안 좋네요. 건강에 신경 좀 쓰야겠심다.”
무쌍은 유들유들했다.
“내 얼굴을 니가 와 걱정하노. 천한 것이라 어른에게 인사 할 줄도 모르는구나.”
장 씨가 발칵 했다.
“훗, 어른 타령하는 버릇은 여전하네요. 어른이면 어른답게 처신하시오. 어른은 심장에 입이 달려있고, 천한 것은 입에 심장이 달려있다고 했소. 내가 보기에 당신은 입에 심장이 달린 것 같소.”
무쌍이 피식 웃었다.
“배라묵을(빌어먹을) 새끼가 뭔 요설을 씨부렁거리노?”
장 씨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마마 자국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예전부터 저놈 얼굴을 보면 두통이 일고, 말을 나누면 복장이 뒤집어졌다. 이젠 복장 정도가 아니라 피가 거꾸로 솟았다.
김말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토록 미워하던 상대를 청맹과니인 듯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재미있고 팔색조처럼 변하는 표정도 재미있었다.
“누님, 보는 눈이 많심더. 상것과 대거리해봐야 누님 체면만 상합니더.”
장상수가 급히 장 씨를 끌었다. 누나는 말빨과 기세에서 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자리를 피하는 게 상수다.
“너희 둘, 당장 옷 벗어!”
장 씨가 애꿎은 경비원을 갈구었다. 무쌍에게 거수경례했던 경비원 두 사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고래 싸움에 말려들어서 졸지에 밥줄이 떨어지게 생겼다.
“사 사모님, 한 번만 용서해 주이소.”
경비원 둘이 털썩 무릎을 꿇고 빌었다.
“닥쳐, 불상노무 새끼들!”
얼음 냉골같은 반응에 경비원의 눈이 암담해졌다.
“아저씨들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어요. 당장 일어나요.”
김말순이 자신도 모르게 버럭 했다. 경비원 둘은 꿈쩍도 않았다. 목줄을 쥔 권력자는 사모님이다.
“일어나시오.”
묵직한 음성이 둥 울렸다.
“예, 예!”
경비원이 홀린 듯이 일어났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근무나 잘하시오.”
무쌍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무쌍의 신분을 아는 경비가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사모님과 조카 사이에 끼인 힘없는 을의 서러움이다.
“저 저런 배라묵을~”
“누님, 시간 없어요.”
장상수가 폭발하려는 장 씨를 말렸다. 만만치 않아 보이는 무쌍과 지체 높은 영애와 다투어봐야 좋을 게 없다.
“망할 놈 새끼!”
장 씨는 끌려가면서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장씨가 고개를 홱 돌렸다. 단춧구멍에서 불똥이 튀었다.
“오늘 일만 끝나면 두고 보자.”
뽀드득 이가는 소리가 들렸다.
“누님, 주총만 끝나면 저깟 놈은 얼마든지 손볼 수 있어요. 어서 가요.”
장상수가 장 씨를 끌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호호호!”
청량한 웃음이 로비를 울렸다. 김말순이 목젖이 보이도록 시원하게 웃어젖혔다. 망가진 외모에 천박하고 악만 남은 불쌍한 여자, 저 여자가 스라소니처럼 사납고 여우처럼 교활했던 장필녀란 말인가? 안쓰러움이 증오를 앞섰다.
“쌍아, 저런 여자가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
“두려움이 아니라 혐오지요. 시궁쥐나 똥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징그럽고 더러워서 피하잖아요.”
“그랴, 오늘 봉께로 똥 덩어리구먼.”
“이제 아셨어요?”
무쌍이 빙긋이 웃었다. 첫 번째 의도는 생각 이상으로 잘 통했다. 수십 년간 어머니 가슴을 욱죈 장필녀 포비아가 깨졌다. 두려움의 실체는 무지다.
“사모님, 잘 참으셨습니다.”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보고만 있던 김기택이 비시시 웃었다. 속이 시원했다.
임시 주주총회장 현수막이 붙은 향심섬유 8층 대강당, 여느 주주총회장이 그렇듯 이해관계가 맞는 주주들끼리 모여서 갑론을박 떠드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정작 사람은 많지 않았다. 참석장을 확인하고 선물을 나누어 주는 총무과 직원이 하품할 정도로 한산했다. 향심섬유가 비상장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향심섬유의 주주구성은 단순했다. 주식이 분산되지 않고 우리사주도 결성되지 않은 탓에 오너 일가, 박인보의 지인과 회사 거래처 등 일반 주주 15명, 장 씨 일가붙이 20명이 전부였다.
오늘의 임시 주총은 오너들끼리 벌이는 경영권 다툼이다. 주주 구성이 단순한 만큼, 표 대결에서 장기수 전무 측이 유리하다는 소문이 이미 돌았다. 장 씨들은 한자리 얻을 욕심에 눈을 번들거리고, 일반주주들은 유능한 박인보 사장의 퇴진을 걱정했다.
경영권과 관련 없는 일반주주의 관심은 배당에 있다. 박인보가 이끄는 향심섬유는 설립 후 매년 50% 이상의 고성장을 이어갔다. 일반주주 입장에서 12%~20% 배당금을 쥐여주는 향심섬유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인간성 더러운 박인보를 미는 이유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병들까 두렵기 때문이었다.
“이보게, 조카님은 아직도 소식이 없는가?”
장경주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다.
“단단히 탈이 났는 갑소.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으니……. 휴우!”
긴 한숨을 쉬는 장경모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집안의 자랑인 큰아들이 실종된 지 한 달이 넘었다. 경찰 수사와는 별개로 가문의 인맥을 총동원했지만 작은 단서조차 찾지 못했다.
“큰일일세. 부장검사 영감과 조사장도 함께 사라져버렸으니 큰 착오가 생겼네.”
장경주가 더듬이 떨어진 개미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청새치파 동원도 물 건너가고, 치수도 그 모양이 되고 무신 우환이 끝이 없는지. 휴!”
장경모가 연신 한숨만 쉬었다.
“숙부님, 지분을 확보했는데 뭔 걱정을 하십니까?”
“그건 그렇지만…….”
장상수가 나섰지만, 늙은이 두 사람의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아버님, 걱정한다고 철수가 나타날 것도 아니잖아요. 표 이탈에나 신경쓰시소.”
장필녀가 불쑥 끼어들었다.
“박실아, 니는 무신 말을 그렇게 하노?”
장경주가 동생 눈치를 보았다.
“틀린 말도 아이지요. 가문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판에 다른 생각할 틈이 없지요.”
“그럼세. 박 서방은 손방으로 당할 인간이 아니야. 조용한 기 데부로(오히려) 불안해.”
장경주 형제는 곧 일반주주들과 어울렸다. 박빙 승부인 만큼 한 표가 아쉬웠다.
“주주님들 입장하이소. 곧 총회가 시작됩니다.”
담당 직원이 소리쳤다.
땀이 날 만큼 난방이 후끈하게 돌아갔지만, 주총 회의장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장 씨 일가붙이 20명의 표정이 득의양양한 반면에 일반주주들의 표정은 침울했다. 정면에 걸린 [이사 해임의 건] [이사 선임의 건] 배너 때문이다. 박인보 없는 향심섬유의 앞날은 결코 밝지 않았다.
단상에 앉은 장기수 전무와 앞좌석에 앉은 장경주 옹의 눈이 마주쳤다. 눈치를 읽은 장기수가 재차 계가했다. 전환주식 207,142주에 여만덕 사장의 20,000주와 희자 주식 16,000주를 매수했다. 위임받은 일반주주의 주식 15,000주를 더해서 51%를 확보했다.
우탁이 매형 손을 들어주고 일반주주들이 합세해도 게임은 끝났다. 어려운 상황에 불구하고 마지막 승부를 짓기 위해 남은 재산을 쓸어 박고 사채까지 끌어댔다. 오늘로서 마음고생은 끝이다.
장기수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장경주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늙은 쥐가 독 뚫는다는 말이 있다. 단상에 무표정하니 앉아있는 사위가 내내 신경 쓰였다.
‘매형, 미안하지만 그 자리는 이제 내 자리요.’
장기수가 박인보를 슬쩍 훔쳐보았다. 누렇게 뜬 얼굴이 불쌍했다. 매형이 일가붙이를 쳐내고 돈줄을 죄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는 않았다.
“당숙 두 분이 안 보인다. 어찌 된 기고?”
나란히 앉은 장 씨가 속삭였다. 장기수가 어마 뜨거라 하고 참석자를 둘러보았다. 장경택과 장경남 당숙이 보이지 않았다.
“온다고 했으니 곧 오시겠지요. 당숙 두 분은 원래 엉덩이가 무겁다 아인교.”
장기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개회 시각은 아직 10분 남았다.
“어머나, 작은 사장님!”
전전긍긍하던 정부장이 반색했다.
“내가 늦었소?”
“아이라예, 곧 시작합니다. 어머, 세상에!”
정부장의 시선이 김말순에게 휘딱 돌아갔다. 무쌍이 손을 휘휘 저었다.
“내 어머니요.”
“에엑, 이분이 김말순 씨!”
정부장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녀의 눈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김말순의 아래위를 오갔다. 믿어지지 않았다.
“어서 문이나 열어요.”
김기택이 재촉했다.
“아, 네네!”
무쌍과 김말순, 김기택이 입장하자 주총장 문이 쿵 닫혔다. 주주만 입장할 수 있지만, 얼이 빠진 정부장과 직원은 미처 제지할 생각도 못 했다. 하긴 알아도 무쌍을 누가 막겠는가. 정부장이 멍하니 닫힌 문을 노려보았다.
“저분이 작은 사장님 어머니락꼬? 그라마 나는 머꼬!”
정부장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탄력을 잃어가는 거친 피부가 서러웠다.
‘왔구나!’
박인보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입장하는 조카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박인보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조카 뒤를 김기택 사장이 젊은 아가씨를 에스코트해서 들어섰다. 아가씨를 대하는 김기택의 태도가 지나칠 정도로 공손했다.
‘마이 늙었구마!’
김말순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아들과 진순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하동댁과 연순이 입에 거품을 물고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쳤다. 동서야 원래 악독한 여자지만, 아지벰이 그럴 줄은 몰랐다. 화해했다지만, 어미 마음은 그게 아니다. 한편으로는 팍삭 늙은 얼굴이 짠하기도 했다. 잘난 아들을 둔 덕분에 자신만 세월을 비껴갔다.
“주주님들 바쁘신 중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회를 맡은 총무부장의 인사말에 박인보의 의문이 날아갔다.
“향심섬유 발행 총주식수 507,142주, 참석 및 위임 주식수 506,142주, 참석률 99.8%로 임시주주총회가 법률과 정관에 따라 합법적으로 성립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땅땅땅- 총무부장이 망치를 두드렸다.
“대표이사 인사말이 있겠습니다.”
박인보가 일어서서 의장석에 등단했다.
“본인의 건강 문제로 인해 주주 여러분께 번거로움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먼저 이사 해임의 건을 상정합니다.”
망치를 치기도 전에 일반주주가 손을 들었다.
“마카(모두) 바쁜데 머할라꼬 의안을 두 개로 나눕니까. 합치가꼬 얼릉 끝냅시다. 내도 바쁘요. 저녁답까지 하우스 모종을 못 내마 밥도 못 얻어묵는다 아인교.”
“하하하!”
“재청이오. 내도 바쁘요.”
주주들의 웃음에 딱딱한 분위기가 풀어졌다.
“재청을 받았습니다. 이사 해임의 건과 이사 선임의 건을 합쳐서 이사해임 및 선임의 건으로 올리겠습니다. 이의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주주님들의 동의를 받아서 이사 해임의 건과 이사 선임의 건을 상정하겠습니다.”
박인보가 망치를 두드렸다. 장 씨 육촌 조카인 장학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대표이사 박인보는 지병으로 인해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기 곤란한 상황입니다. 재무이사 김판술은 독단적인 자금운용으로 회사 경영에 손실을 끼친 바 있습니다. 본 주주는 대표이사 박인보와 재무이사 김판술은 해임하고, 이사 장필녀, 이사 장기수, 이사 장경주의 유임을 요청합니다. 아울러 장상수씨를 신임 임원으로 선임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장 씨들이 재청이요, 삼청이요 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