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37
x 637
제56장 내 그럴 줄 알았다7
“우탁이가, 내 아들 우탁이가 에미를 배신해!”
장 씨가 주먹을 움켜쥐고 중얼거렸다. 아들이 난쟁이 똥자루에게 붙지만 않았어도 회사가 손에 들어왔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솟았지만 아픔을 느끼지도 못했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 많던 토지와 재산이 날아갔다. 손안에 들어온 회사가 날아가 버렸다. 경영권을 차지할 수 없는 쓸모없는 주식과 막대한 부채만 남았다. 청면귀, 백면귀가 눈앞을 휙휙 날아다녔다.
“이놈! 이 더러운 놈! 사추리가 썩어 뒈질 놈!”
장 씨가 아들을 저주했다. 가문이 파산했다. 자기 때문이 아니라 아들 때문이다. 손이 덜덜 떨리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남 탓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특징이다. 장씨에겐 아들도 남일 뿐이었다.
“경택이 경남이 이놈들 어디 있어? 이 죽일 노옴!”
장경주가 노호성을 질렀다. 사촌 아우 두 놈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불안감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다. 두 놈이 빠지는 바람에 표결에서 졌다.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참석주식 수 506,142주 중 506,142주가 표결에 참여했습니다. 장기수 주주님의 안이 245,785주로 참석주식 수의 48.56%, 박무쌍 주주님의 안이 260,357주로 참석주식 수의 51.44%를 얻었습니다.”
얼이 빠진 장 씨의 귀에 결과를 발표하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말뚝 박듯이 틀어박혔다.
“아 안 돼!”
장 씨가 무엇을 잡으려는 듯 두 손을 휘저었다.
“이로써 임원해임 및 선임의 건은 박무쌍 주주님의 안이 통과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땅·땅·땅- 박인보가 망치를 힘차게 내려쳤다. 장 씨 일가의 가슴에 대못을 때려 박는 소리, 누대를 이어온 장 씨 가문의 기둥뿌리가 뽑히고 대들보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장기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 우탁이 소유 주식은 사실상 포기했었다. 결정타는 당숙 두 분의 주식이었다. 억지를 부려서라도 파멸적인 결과를 막아야 했다.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의사 진행 발언이요. 김기택이라는 주주는 없었소. 김기택 주주의 주식 이동 상황을 해명하시오.”
“회사가 주식이동 상황을 소명할 의무는 없습니다만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사회자 알려 주시오.”
박인보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사회자가 준비된 원고를 읽었다.
“김기택 주주는 장경택, 장경남 두 분의 주식을 위임받았습니다. 두 분은 주식을 박인보 주주님께 매도하고 의결권은 김기택 씨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이럴 수가!”
장경주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사회자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촌 아우 두 놈이 불참만 했어도 이길 수 있었는데 박무쌍 쪽에 붙었단다.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었다. 대들보가 무너지고 서까래가 우르르 쏟아지는 환상에 맥을 놓고 늘어졌다.
“당숙이, 당숙이~”
얼이 빠진 장기수가 중얼거렸다. 나쁜 예감은 너무 잘 들어맞아 지랄이다. 눈앞에 까만 어둠이 몰려왔다. 맥을 놓고 늘어진 아버지를 챙길 정신도 없었다.
“헉!”
“머시라! 당숙이 주식을 넘겨?”
“작은할아버지가 이럴 수 있나!”
집안 어른이 가문을 배신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장 씨 일가붙이들이 뒤늦게 악마구리처럼 떠들었다.
“경택이와 경남이가 주식을 팔았다꼬? 오, 조상님!”
장경모가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은 듯 늘어져 있던 장경주가 벌떡 일어났다. 아우의 한탄이 들끓는 배신감에 기름을 끼얹었다.
“경택이 경남이 이노옴~ 이 죽일노옴~ 커억!”
고성을 지르던 장경주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눈동자가 허옇게 돌아갔다.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이 급히 장경주를 들것에 싣고 나갔다. 누대를 이어 온 대지주 장 씨 일가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였다. 수십 년 이빨을 갈아온 박인보의 한풀이는 끝났지만, 무쌍의 뒤풀이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주주님들 질서를 지켜주십시오. 제발 착석해 주십시오.”
사회자가 안간힘을 썼지만, 아우성은 높아만 갔다. 장 씨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사회자의 목소리와 일가붙이의 아우성이 뒤섞여서 물속처럼 웅웅 울렸다.
“누님, 정신 차리시소.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인교.”
장상수가 장 씨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으응!”
유체이탈에서 깨어난 장씨가 핸드백에서 우황청심환 두 알을 꺼내서 물도 없이 씹어 먹었다. 둥둥 떠다니는 뿌연 실루엣 가운데 기생오라비처럼 미끈한 얼굴이 선명히 떠올랐다. 저놈이다. 저놈이 이 모든 사단의 주범이다. 분노가 폭발했다.
“배라먹을 첩 년의 새끼, 네놈이지? 네놈이 난쟁이 똥자루와 짜고 벌인 수작인지 내 모를 줄 알았나?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따위 패륜을 저지른단 말이냐? 이노옴, 내가 팔한지옥에 처박히는 한이 있어도 네놈만은 용서 못 한다. 조상이시여, 하늘이시여, 저 더러운 패륜아를 번개로 내려치소서. 오, 주여~”
“닥쳐랏!”
“아악!”
장씨가 귀를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 마른하늘의 번개는 장 씨에게 떨어졌다. 날벼락 같은 호통에 소란이 뚝 그쳤다. 악다구니를 쏟아내던 장 씨도 멍하니 무쌍을 쳐다보았다. 번갯불 같은 시선이 장내를 훑었다.
“퇴장할 사람은 조용히 사라지고, 남을 사람은 착석하시오. 지금부터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오. 질서유지 요원은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분을 모시고 나가기 바란다. 착석!”
만부막적, 동방불패의 신위가 대기압을 몇 배로 높였다. 맹수도 주춤거리는 공진파 압력을 일반인이 감당할 수 없다. 장 씨들이 눈치를 보며 어물어물 자리에 앉았다. 부들거리던 장 씨도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무쌍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들이 퇴장 않는 이유는 뜯어먹을 고기가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장 씨 일가붙이가 썩은 고기 주위를 서성이는 대머리 독수리로 보였다.
‘허, 사람이 어찌 저럴 수 있나!’
박인보가 안쓰러운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것도 정도 문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패악과 패륜을 저지른 여자가 하늘과 조상을 입에 담다니! 무쌍은 일방적인 피해자일 뿐이다. 아내의 악다구니는 무쌍이 했어야 할 말이다.
“의장님!”
사회자가 작은 소리로 박인보의 주의를 환기했다.
“어, 그래! 계속하게.”
박인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임 인원들의 인사가 있겠습니다. 신임 임원분들은 단상에 오르시기 바랍니다.”
무쌍이 어머니 손을 잡고 일어섰다. 김기택이 그 뒤를 따랐다. 담당 직원이 잔뜩 상기된 정아영을 데리고 들어와다. 정아영은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주총장의 난리는 예상했지만, 작은 사장님이 나이도 어린 자신을 임원으로 추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년이 왜 나오지?”
장 씨가 흐릿한 눈을 비볐다. 김말순은 장 씨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조신한 걸음으로 스쳐 갔다. 장 씨는 멘탈이 강한 여자다. 스스로 뺨을 쳐서 정신을 다잡았다.
“그래, 내 손에 아직 주식이 있고, 여객이 남았다구. 이순신 장군님도 열두 척 남은 배로 재기하셨어. 네놈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똑똑히 봐주마.”
명색이 장 씨 가문 종손의 장녀다. 천한 것에게 볼썽사나운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장 씨가 허리를 곧추세웠다.
“프랑스 외교부 참사관이자 향심섬유 최대주주이신 박무쌍 이삽니다.”
무쌍이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컥!”
장씨가 신음했다. 참사관이 얼마나 고위직인지 모르지만, 프랑스 외교부라니! 저놈이 외국에 나갔다더니 프랑스 고관이 되었단 말인가? 근근이 눌러둔 백면귀, 청면귀가 눈앞을 오갔다.
“대구 섬유업계의 산증인 김기택 이삽니다.”
“향심섬유 창업멤버인 정아영 이삽니다.”
“재무 전문가 김판술 이삽니다.”
장 씨는 재차 우황청심환 두 알을 씹고, 신경안정제를 항 움큼 입에 털어 넣었다. 사회자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참사관이란 말과 하동댁의 자랑질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안 돼, 저 자리는 내 자리야.”
장 씨가 웅얼거렸다.
“김말순 이사님은 최대주주이신 박무쌍 이사님의 모친이십니다.”
“김말순!”
화들짝 놀란 장씨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환청이 아니라면 분명히 박무쌍의 모친 김말순이라고 했다. 김말순이 까플린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었다.
“주주님들, 우리 직원들 월급 올려주게 마이 도와주이소. 없는 사람도 함께 먹고살아야지요.”
“와아!”
환성이 터졌다. 주주들은 김말순의 미모에 놀라 소리 지르고 주총장 밖에서는 직원들이 환성을 질렀다. 월급을 올려주겠다는 말보다 더 달콤한 말은 없다.
“아아악! 저년, 저어년!”
장 씨가 찢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수천 번 칼로 난도질 치고 싶었던 김말순의 얼굴이다. 옷차림만 다를 뿐 몸매도 얼굴도 17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장 씨의 비명은 환호성에 묻혔다.
“어무이, 손을 흔들어 주시소.”
무쌍이 속삭였다.
김말순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와아, 최고!”
“미스 코리아다.”
“김말순 이사님 만세!”
주총장 안팎에서 함성이 터졌다. 나이가 들면 삶의 여정이 얼굴에 묻어난다. 김말순은 욕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순둥이다. 원판이 뛰어난데다 무쌍과 대우선사의 손길을 거쳤다. 젊음을 되찾고 액세서리 한 개까지 명품으로 도배한 미모와 기품은 환호성을 들을 만했다.
“이상으로 향심섬유 임시 주주총회를 마치겠습니다.”
사회자가 신임 임원의 인사를 끝으로 종결을 선언했지만, 주주들은 쉬이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들의 눈은 김말순에게 달라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주주총회의 스타는 김말순이었다.
“저년, 저년이!”
장 씨의 입에서 거품이 부걱거렸다. 저 자리에서 환호성을 들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근본도 없는 천한 년이 있을 자리가 아니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장 씨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저 표정이 김말순의 얼굴을 쥐어뜯고 싶게 만들었다.
‘저년은 강시가 분명해!’
장 씨는 확신했다. 강시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17년 전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날 저녁, 남편은 이노린(돼지 발정제)에 소량의 광대버섯즙을 섞은 숭늉을 분명히 마셨고, 발정을 이기지 못하고 몰래 빠져나가는 모습도 확인했다. 저년은 자살해야만 했다. 죽은 년이 강시가 되어 돌아왔다. 현실 부정이 망상을 불렀다. 장 씨의 망상은 끝없이 이어졌다.
“아주버니, 오랜만이지요?”
김말순이 온화한 얼굴로 인사했다.
“제 제수씨!”
박인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초점 잃은 눈동자가 김말순의 시선을 비켜갔다.
“아주버니, 세월이 마이 흘렀어요. 기쁨도 슬픔도 세월따라 아이스크림처럼 녹더이다. 용서할 수 없는 미움도 가슴을 불태우는 증오도 지나고 보니 잠시 스쳐 가는 활동사진이더이다.”
“크흐흑! 제수씨, 내가 나쁜 놈입니다.”
박인보가 털썩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았다. 지난날의 부끄러운 행적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괜찮습니다. 백 년도 못사는 인생, 사랑하고 아끼며 살기에도 부족한 인생을 미움과 증오로 허비해서야 되겠심니꺼. 그만 일어나시소. 남들이 봅니다.”
“고 고맙심더!”
박인보가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누군가에게 조건없는 용서를 받은 적이 있던가? 누군가에게 괜찮다는 따뜻한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평생 흘려보지 않은 눈물이 둑 터진 듯 쏟아졌다.
장필녀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바로 저것, 언제나 착한척하고 고고한척하는 가증스러운 연기에 시부모가 넘어가고, 남편이 넘어가고, 자식까지 넘어갔다.
“네년은 강시제? 껍데기를 확 베끼(벗겨)주꾸마.”
장씨가 우르르 달려들었다.
“이런 망할 년이 있나!”
박인보가 버럭 했다. 무쌍이 손을 흔들어 백부를 말렸다. 결자해지라 했다. 어머니는 예전의 어머니가 아니다. 고난에 피폐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난을 지렛대 삼아 더 강해지는 사람이 있다. 어머니는 후자다.
“성님, 말하는 강시도 있소? 많이 늙었구랴.”
청아한 음성에 안쓰러움이 담겼다.
“머시라!”
달려들던 장씨가 주춤했다. 여자는 늙어도 여자다. 자신은 쭈구렁 할망구가 되었는데 김말순은 나이를 거꾸로 처먹었다. 명품은 차치하고 주름살 한 개 보이지 않는 화사한 얼굴과 싱싱한 목소리에 억장이 무너졌다. 이건 사기다. 아니 저년 자체가 사기꾼이다.
“성님, 왜 그렇게 삽니까?”
“내가 우예 살던 네년이 무신 상관이고? 아들이 돈푼이나 벌었다고 눈까리에 비는 게(보이는 게) 없나?”
장 씨가 발칵 했다.
“아직도 모르는교? 재산이 산처럼 쌓여있고 남이 황후처럼 떠받들어주니까 세상이 동전으로 보였던 갑지요. 그거 다 껍데기라요. 재산은 광풍에 가랑잎처럼 날아가고, 인심도 재산따라 사라진다 아인교. 회사도 잃고, 그 많은 재산도 몽땅 날리고, 자랑하던 친정도 망하고, 남편은 떠나고, 마약쟁이가 된 자식은 간 곳도 모른다 아인교. 남은 게 뭡니까? 한평생 남을 해코지하고 포악을 떤 결과가 이겁니까?”
“이 이~”
곰보 자국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장 씨는 대거리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울화가 머리로 치솟았다. 관자놀이가 둥둥 울렸다.
“친정을 말아묵고 가문을 말아묵고도 욕심을 버리지 못했능교? 문중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우예 감당하고 들이닥칠 빚쟁이의 포달은 우예 견딜 낍니까? 이제라도 정신 차리소.”
“흥, 그까짓 것!”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얼굴이 시커멓게 죽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남의 손가락질과 빚 독촉이 문제 아니다. 김말순은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것을 다 가졌다. 김말순 모자가 행복하게 사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대들보에 목을 매달고 만다.
“불쌍하네요. 반겨줄 이 없는 냉골 같은 집, 함께 울고 웃어줄 가족 한 명 없고,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삶을 살아서 무엇합니까? 당신이 저지른 패악을 생각하면 욕이라도 한마디 하고 싶지만, 당신은 욕을 들을 가치도 없습니다. 내 아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시간도 부족하거든요. 인생 그렇게 살지 마요.”
김말순이 몸을 돌렸다. 트렌치코트 자락이 휙 날리며 향긋한 향기가 장 씨의 코에 스며들었다. 장 씨에겐 향기가 아니라 극악한 질투 바이러스다.
“이 이년, 이 더러운 년!”
장 씨가 학질에 걸린 듯 부들부들 떨었다. 백면귀 흑면귀 수십 마리가 낄낄거리며 눈앞을 빙빙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