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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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장 소크라테스 프로젝트1
“여보, 도련님과 노닥거리다 회사 늦겠어요.”
양미자가 속삭였다.
“아이쿠 이런!”
김기택이 벌떡 일어났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분위기에 젖었다.
“사장님, 다녀오겠심더.”
“너무 부지런 떨지 마요. 새벽같이 출근하는 사장을 좋아할 직원은 아무도 없소. 퇴근은 비산동으로 하시오. 혹을 들어내니 시원하구먼. 하하하!”
무쌍이 껄껄 웃었다.
“아이고 무슨 섭섭한 말씀을, 사모님과 사장님께 문안 인사는 드려야지요. 사모님, 편히 쉬십시오.”
김기택이 김말순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바쁜 걸음으로 나서자 양미자가 따라나서며 구겨진 양복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보기 좋구나.”
무쌍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김기택 부부가 자리를 비우자 영희가 냉큼 무쌍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오빠, 저는 이사 가고 싶지 않거던예. 아빠 엄마와 그대로 살고 싶어요.”
영희는 심란했다. 응심제는 천국이다. 잘 꾸며진 공원 같은 저택에 무엇이든 부족한 게 없다. 별채를 청소하고 받는 수당도 짭짤하고, 자매처럼 지내는 언니 동생도 많다. 무엇보다 킹카 중의 킹카인 오빠가 있다.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없을 때도 있는 법이다. 너는 아빠가 아들뻘인 나를 어려워하고 존댓말 쓰는 게 보기 좋디?”
“그게 어때서요? 오빠가 높잖아예.”
“풋! 인석아, 높고 낮은 기 어디 있노. 각자 역할이 다를 뿐인 기라.”
철없는 말에 풀썩 웃음이 나왔다.
“오빠와 함께 사는 게 좋은데.”
영희가 시무룩해졌다.
“사람은 때가 되면 본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단다. 미나 할머니께서 말씀한 소금은 인성이고 역할이다. 짠맛을 잃는다 함은 인간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말씀이다. 네 부모님은 주어진 환경에서 제 역할을 다했기에 기회를 잡았다. 네 아빠는 큰 책임을 맡았고, 네 엄마는 아빠를 챙기고 딸을 챙기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사 가지 말고 엄마만 부르면 되잖아요. 저도 오빠와 살고 싶어요.”
영지가 톡 끼어들었다.
“영지야, 어른의 세계는 그렇지 않단다. 네 엄마가 큰스님을 홀로 두고 이곳으로 올 것 같니? 오빠는 양 보살을 너희 곁으로 돌려보내려고 분가라는 명분을 준 것이란다. 염치 있는 사람은 명분이 있어야 마음이 편해진단다.”
김말순이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해가 안 돼요.”
“마음 가는 대로 두면 된다.”
“아까는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것도 마음 가는 대로다.”
“피이, 오빠는 지멋대로야. 오빠와 스님 할아부지는 똑같아요.”
“임마, 내가 제자인데 다르면 이상하지.”
“오빠, 정말 떠나기 싫어요. 오빠를 사랑하나 봐요.”
퍽- 연순이 영지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갈겼다.
“머리꼭지에 피도 안 마른 지집애가 어따 입을 대고 지랄이야.”
“어엉, 언니 무서버서 이사 갈래.”
영지가 서러운척 우는 시늉했다.
“대문은 언제나 열려있어.”
연순이 대문을 가리켰다. 영희와 영지의 고개가 쑥 들어갔다. 유복하게 자란 자매가 밥그릇 싸움을 하며 자란 연순의 내공을 감당하기엔 턱도 없었다. 무쌍이 빙긋이 웃었다. 영희와 영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가 대단하신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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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영아가 나비처럼 팔랑팔랑 달려왔다.
“아이고, 아가씨 넘어져요.”
김극도가 안절부절못하며 따라왔다. 개울에서 먹이를 찾던 박새떼가 후르르 날아올라서 영아를 빙빙 돌았다.
“아이쿠, 우리 귀염둥이 왔구나.”
무쌍이 나서자 박새가 새매를 만난 듯 허겁지겁 도망쳤다.
“박새야 이리 와!”
영아가 두 팔을 뻗었다. 박새 대여섯 마리가 영아의 손과 팔에 날아와 앉았다.
“유치원 재미있었어?”
무쌍이 영아를 번쩍 안아 들었다.
“네, 친구도 많고, 인형도 억수로 많아예.
“스님 할아버지보다 유치원이 좋아?”
“둘 다 좋아요. 스님 할아버지가 머리 아픈 것도 고쳐 주었어요. 힘도 세졌어요. 볼래요?”
영아가 팔을 올려서 힘을 불끈 주었다. 알통이 솟아오를 리 없다.
“아이고, 요 예쁜 것!”
무쌍이 볼을 비볐다.
“아이 따가워. 오빠는 좋은데 수염은 미워. 헤헤헤!”
영아가 무쌍의 가슴을 밀었다.
“나도 영아는 좋은데 달고나는 싫어.”
영아가 찐득찐득한 손을 얼른 등 뒤로 감추었다. 너무 맑아 푸른빛이 도는 눈동자가 무쌍의 앞섶에 머물렀다. 흰색 남방에 누런 포도당 찌꺼기가 묻었다.
“어? 오빠 옷이 더러워졌어. 어떡해!”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하하하, 이까짓 옷은 빨면 돼. 오빠는 영아가 나쁜 음식을 먹어서 그러는 거야. 초콜릿 줄까?”
“우와, 초콜릿 딥따 좋아요. 미나 언니가 어제 줬어요. 헤헤헤!”
눈물 글썽이던 녀석이 금방 생기가 팔팔 돌았다.
‘내 가족이구나!’
뜨거운 무엇이 가슴 밑바닥에서 치밀어 올랐다. 아픔과 슬픔 속에 새 생명이 태어나고, 절망 속에 희망이 삐져 나온다. 아이의 웃음이 없는 세상은 죽은 세상이다. 행복의 시작은 가정이고 가족이다. 에델의 소담한 가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
코스털 트레일 언덕에 위치한 골든 브리지는 붉은색 강철 프레임과 푸른색 전망창으로 금문교 분위기를 낸 평범한 카페다. 카페에 앉으면 원통형 전망창을 통해서 골든게이트 해협과 금문교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덩치 큰 검은색 세단이 도착하는 순간 골든 브리지는 평범하지 않은 카페가 되었다. 관광객 차림의 건장한 남자 이십 명이 땅에서 솟아난 듯 카페 접근로를 차단하고 카페 주인은 클로즈 팻말을 출입문에 걸고 코스털 트레일을 내려갔다.
파나마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회색 바바리코트를 걸친 백인이 링컨에서 내렸다. 방문자가 실내를 휙 둘러보고 모자를 벗었다. 깡마른 육십 대 초반의 백인 얼굴이 드러났다.
거친 공작으로 정평 난 CIA 특수공작부 부장 아담이 두려워하는 존재, 대통령 안보 보좌관으로 소크라테스 프로젝트 집행관인 헨리 데이비스다. 레이건 행정부의 실세인 그가 서부 시골구석에 나타났다.
데이비스가 발걸음을 멈춘 전면 벽에 고색창연한 족자가 걸려있었다. 족자는 피처럼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신비적인 시구가 쓰여있었다. 고대 신비를 간직한 프리메이슨이 왕도의 예술혼이라 부르는 두루마리다. 데이비스가 웅얼거리듯 읽어내려갔다.
[지옥의 문앞에제화공 세명이 와서
암흑의 주인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네.
주인은 화난 표정으로
그들에게 말했다네.
내가 보기에 지옥은
너희만을 위한 것이군
지옥의 문앞에
석공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지!
암흑의 주인이
백 년, 천 년을 기다려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지.
석공의 임무는 비밀이기에
그들이 죽으면
곧바로 천국으로 간다네]
표정없는 데이비스만큼이나 신비주의와 선택된 자의 오만이 느껴지는 시구였다.
“이런 굼벵이 친구들을 봤나.”
데이비스가 텅 빈 실내를 돌아보았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스코틀랜드식 꺼칠한 성조의 목소리가 웅 울렸다.
“고상한 여행자!”
데이비스가 동문서답했다. 샤아아- 실내 공기가 유동했다. 검은색 카톨릭 사제복을 입은 백발의 남자와 타이트한 가죽 바지와 조끼를 걸친 미모의 여성이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백발의 남자가 손바닥 크기의 장방형 선 긋는 판을 데이비스 눈앞에 내밀었다. 데이비스가 뾰족한 입방형 돌을 꺼내서 내밀었다. 프리메이슨 간부가 상대방을 확인하는 징표다. 징표를 회수당하면 목숨도 회수당한다.
“대직급장님이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데이비스가 동양식으로 허리를 숙였다.
“데이비스, 그냥 선배라고 부르게. 내가 자네를 장색이라 부르면 섭섭하지 않겠나?”
“그건 그렇지요. 선배님은 언제나 자비로우십니다.”
“자네는 늘 날카롭고 말이지. 허허허!”
사제복 노인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데이비스가 여자를 흘끗 쳐다보았다.
“마틸다, 실력이 늘었군. 얼마나 지속할 수 있나?”
“블라인드 스크린은 5분이 고작이에요.”
“고작은 아니지. 5분이면 일개 중대의 멱을 딸 수 있는 시간이지.”
“시간을 두 배 늘리는 대가로 주름살을 얻었죠. 쉬폰은 잘 있나요?”
마틸다가 데이비스 어깨너머를 슬쩍 훔쳐보았다. 공기가 출렁했다. 팟- 마틸다의 머리카락 한 줌이 가위로 자른 듯 흘러내렸다.
“눈속임이나 하는 주제에 한판 해보자는 거야?”
마틸다가 손을 뻗었다. 웅- 대기가 진저리쳤다.
“쉬폰은 워낙 수줍음이 많아서 말이야.”
데이비스가 손을 들었다. 마틸다는 손을 내렸지만, 양미간에 접힌 주름은 펴지지 않았다. 데이비스는 무서운 존재지만, 든든한 백이 있다.
“선배님, 앉으시죠.”
“그럼세, 이젠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저려.”
백발의 백인이 마틸다가 빼준 의자에 털썩 앉았다. 테이블 반대편의 의자가 저절로 스륵 밀려났다.
“쉬폰, 모습을 보여도 좋다.”
스스스- 눈이 어질 거리는 묘한 재질의 옷을 걸치고, 금속성 망토를 걸친 장신의 흑인이 나타났다. SF 영화 세트장에서나 볼 수 있는 옷차림이지만, 사제복 노인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마틸다가 정물처럼 서 있는 흑인을 노려보았다.
“간단히 설명해 주게. 늙으면 떨어지는 게 기력만은 아니라네.”
“최고위원회 대직급장 라마르틴께서 기력이 쇠했다고 하시면 심연의 고르곤도 웃습니다.”
“인간이 약간의 능력을 얻었다고 우주의 섭리를 비껴갈 수야 있나. 이 아이처럼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잃어야 하네.”
사제복 노인이 손을 저었다. 잡소리 말고 보고나 하라는 의미다.
“뱀부 프로젝트와 그린 해머 프로젝트는 별문제 없이 진행 중입니다. 일본을 지렛대 삼아 한국을~”
사제복 노인이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흠, 장기 프로젝트는 언급할 필요 없네. 한국은 어차피 체스판의 폰이고, 소비에트 연방은 해체될 운명이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에너지와 식량일세.”
데이비스가 움찔했다.
“MK 프로젝트는 사소한 문제에 불구하고 순조롭게 진행 중이지만, 뻐꾸기 둥지 프로젝트는 안타깝게도 실패했습니다.”
“상당히 공들인 작전인데 안타깝군. 우리 쪽 손실액은?”
“시리아의 카파루자 생화학 기지 손실과 하사카 유전, 이라크의 모술, 키르쿠크 유전을 상실한 직접 손실액이 20억 불, 시리아와 이라크의 송유관을 아부카말에서 하나로 묶어서 지중해의 베니야스 항까지 연결하는 송유관 공사 무산으로 인한 손실액이 50억 불로 추정됩니다.”
“만만치 않은 손실이군.”
“네, 중동 석유 확보에 큰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하타이를 터키에서 떼어내려는 시도도 물 건너갔군.”
주름살에 파묻힌 눈이 반짝했다.
“죄송합니다.”
데이비스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하타이는 교단이 양지로 나오기 위해서 꼭 필요한 땅이었다. 뻐꾸기 둥지 작전의 숨은 목적은 프리메이슨 통합 롯지 건설이었다.
“흠, 내가 교단에 너무 오래 칩거했군. 돌발 변수가 있었겠지?”
“멍청한 아담이 암호명 아바돈에게 당했습니다. 아바돈은 프랑스의 비밀 병기로 추정되는 인물입니다.”
“추정?”
마틸다가 움찔했다. 아바돈을 추적하느라 천문학적인 자원을 쏟아부은 결과는 삽질이었다. 놈의 암호명만 들어도 울화통이 터졌다.“놈은 레반트 지각판이 붕괴될 때 매몰되었습니다.”
“시체를 확인했나? DNA 조각이라도 찾았나? 교단이 박해에 불구하고 이천 년을 이어온 바탕이 정확성과 확인이었다. 프리메이슨에 추정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제복 노인의 어조가 딱딱해졌다. 접시에 놓인 찻잔이 딸각거렸다.
“알겠습니다. 재조사에 들어가겠습니다.”
“레이건 핸들링은 문제없는가?”
“뻣뻣합니다만,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만큼 프로젝트 진행은 순조롭습니다. 눈치를 챘는지 상임위원 셋을 모두 교체했습니다.”
“흠, 레이건은 인기가 높아서 포드처럼 처리하기도 곤란한데…….”
사제복 노인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딱딱 두드렸다. 단단한 마호가니 테이블이 두드릴 때마다 구멍이 송송 뚫렸다. 그가 말한 포드는 미국 38대 대통령 제랄드 포드다.
포드는 미 대통령 중에 유일하게 두 번 저격당하고도 살아남았다. 그가 저격당한 새크라멘토와 샌프란시스코는 프리메이슨 아메리카 대지부가 있는 캘리포니아 도시다. 포드가 저격당한 이유는 소크라테스 프로젝트에 미온적이었기 때문이다.
프리메이슨은 저격에 실패하자 미인계를 사용해서 포드를 시궁창에 밀어 넣었다. 제랄드 포드가 실각한 이유는 무능과 의회와의 갈등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1976년 9월에 있었던 성추행 때문이었다. 무소불위의 파워를 지닌 프리메이슨이지만 세상일은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포드를 끌어내리고 직급장인 땅콩 농장주를 대통령 자리에 밀어 올렸지만, 삽질이 되었다. 포드의 숙청에 겁먹은 카터가 도덕과 인권에 집착하다가 재선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카터에 진절머리난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외친 레이건을 선택했다. 프리메이슨은 죽 쒀서 개 준 셈이 되었다.
“레이건의 팍스 아메리카나는 우리에게 나쁠 것도 없습니다.”
“당분간 두고 보기로 하자?”
“그렇습니다. 상임위원들은 컨트롤하기 나름입니다.”
“그 문제는 자네가 알아서 판단하게. 내가 자네를 만난 이유는 이것 때문일세.”
라마르틴이 품속에서 주먹 크기의 금속 상자를 꺼내서 테이블에 올렸다. 딸각- 상자가 열렸다. 죽염 비슷한 회백색 가루가 들어있었다. 데이비스가 라마르틴을 쳐다보았다.
“카(Ka)의 흔적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