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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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장 그린 플로우1
“아프리카 좋지!”
혜영의 눈이 양지쪽에 늘어진 고양이 눈처럼 가느스름해졌다. 아프리카라는 지명과 지질조사라는 작업이 공명했다. 아프리카는 늙은 대륙이다. 아시아나 아메리카처럼 험준한 산악과 고봉이 별로 없는 이유는 장구한 세월 동안 풍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지리학자의 성지는 예루살렘이나 메카가 아니라 아프리카라고 할 수 있다.
기명된 지식 통로가 활짝 열렸다. 아프리카는 다양하고 컬러풀하다. 끝없이 펼쳐진 검은 암석, 붉은 모래, 쏟아질 듯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의 군무, 끝없이 펼쳐진 녹색 양탄자, 그리고 말없이 태고의 비밀을 속삭이는 지구의 속살, 흥분한 뇌가 아드레날린을 쏟아냈다. 가슴이 뛰었다. 진폭이 커진 흥분이 위산 과다로 미쳐 날뛰던 위장마저 잠재웠다.
“으윽, 미치겠네! 냄새 좀 어떻게 안 될까?”
로버트가 코를 싸쥐고 몸서리쳤다.
“싫으면 나가. 문화적 차이로 다투고 싶지 않아. 나도 코카서스 노린내가 즐겁지만은 않아.”
혜영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이 자식은 달콤한 말이나 속삭일 줄 알았지 분위기 파악은 꽝인 놈이다.
“알았어, 알았다고.”
로버트가 두 팔을 들어 항복했다.
“말해봐.”
“6월에 발생한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대지진의 여파로 자이르 공화국과 르완다 서부 고원에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는데 말이야. 앨버트 호수 북동 쪽에 선캄브리아기 변성암 지층이 드러났거든.”
“선캄브리아기! 연대는?”
혜영의 눈이 반짝였다. 고생대 이전을 선캄브리아기라고 뭉뚱그려서 말하지만, 시생대 26억 년과 원생대 14억 년을 합쳐서 40억 년에 달하는 장구한 세월이다. 초기 지구의 생성과 화학적 진화과정의 비밀이 숨어있지만 안타깝게도 생생한 노둔(지표에 드러난 지층만)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운 좋게 화석이라도 건지면 박사 논문은 떼놓은 당상이다.
“시료의 칼륨-아르곤(K-Ar) 동위원소 스펙트럼 분포는 6억 년에서 12억 년까지로 나타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확실한 건 아니야. 그렇다고 탄소 측정을 할 수도 없잖아.”
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탄소 방사선 측정이 비교적 정확하지만, 반감기가 짧아서 선캄브리아기 지층 연대 측정에 적용하기 곤란했다.
“조사반 단장은 누구지?”
“당연히 사무엘 교수님이지. 교수님이 당신을 콕 집어서 지명하더라. 혹시~”
로버트가 말꼬리를 흐리며 혜영의 가슴을 곁눈질했다. 혜영은 못 본 척했다. 화낼 가치조차 없는 놈이다. 섹스밖에 모르는 발정 난 짐승과 대거리해봐야 피곤만 쌓인다.
“준비할 게 뭐지?”
“별로 없어. 이번 조사팀에는 강력한 지원팀이 따라붙거든. 개인 위생용품이나 준비하면 돼. 이를테면~”
“알았어. 이야기 끝났으면 나가.”
혜영이 말을 잘랐다.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할지 뻔했다. 천박한데다 비열하기까지 한 놈이다.
“허니,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될까?”
“망할 새끼, 죽엇!”
혜영이 벌건 김칫국물이 묻은 식도를 집어 들었다. 꾹 참고 있던 분노가 폭발했다.
“으앗! 피 피!”
도마에도 벌건 김칫국물이 남아있다. 혼비백산한 로버트가 현관을 열고 뛰쳐나갔다.
“간덩이라고는 쌍이 코딱지만도 못한 새끼!”
와장창- 혜영이 식식거리며 식도를 싱크대에 집어 던졌다. 흥분과 분노가 가라앉자 슬픔과 우울함이 찾아들었다. 그녀는 김치찌개라 부르기엔 낯뜨거운 음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느끼한 바이러스가 국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애써 만들었지만, 숟가락을 담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혜영은 식어버린 김치찌개를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쏟았다.
아프리카는 낯설지 않다. 지도교수인 사무엘은 아프리카 동부 대지구대 선캄브리아기 단층에 매료된 사람이다. 단층대에서 원생대 이전의 암석층을 발견한 교수는 반쯤 미쳐 버렸다. 교수는 탐사 경비만 준비되면 자이르로 떠났다. 지구 형성의 신비를 한 가닥 들여다보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번 탐사가 다섯 번째 원정이다.
차라리 잘 되었다. 쓰레기 같은 놈에게 배신당하고 옛 연인의 추억에 매달려서 징징대는 화냥년보다야 아프리카 땅의 흙투성이 땅강아지가 백배는 건전하다.
혜영은 댓바람에 연구실로 달려갔다. 지형도, 항공사진, 자, 분도기, 클리노미터, 망원경, 확대경, 카메라, 해머, 정, 손도끼, 표본 홀더, 전동 드릴…….챙겨야 할 지질조사 물품은 끝이 없었다.
“나쁜 새끼, 위생용품만 챙기면 된다고라!”
혜영은 생리대를 챙기며 로버트의 개인 사물함을 걷어차는 것으로 분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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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비 사막의 서쪽 끝 앤텔로프 계곡에 자리 잡은 에드워즈 공군기지는 군사용 항공기와 로켓을 비롯한 미사일 테스트로 유명해진 세계 최대의 공군 기지지만, 일반에 알려진 내용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천조국 다운 위용을 자랑하는 광활한 400㎢(인천 공항 56㎢) 부지를 미 공군과 나사가 공동으로 사용한다. 기지 서남쪽 사막에 면한 06R/24T 지역은 고공 정찰기 주기장이다. 1960년대에 외계인 사체 논란이 벌어진 지역이기도 했다.
06R/24T 주기장에 전략 수송기 C5 갤럭시가 거대한 동체를 끌고 들어섰다. 탐사단을 아프리카까지 논스톱으로 배달할 택시다. 기우웅- 노즈콘이 들렸다. 대기 중이던 험비 3대가 슬로프를 타고 올라갔다. 까랑- 까랑- M113 장갑차 2대가 뒤따라 올라갔다. 갤럭시는 전투 차량 5대를 삼키고도 거뜬했다.
뒤이어 터그카가 속속 머리를 들이밀고 시저스 플레이트 위에서 녹색 복장의 근무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탐사 장비와 실험 장비 적재가 마감될 즈음 리무진 세 대가 주기장에 들어섰다. 선두 리무진에서 개인용 배낭을 짊어진 민간인이 우르르 내렸다. 사무엘 교수가 이끄는 탐사팀 15명이다. 뒤따라온 리무진에서 검은 복장의 군인 33명이 내렸다. 군인들은 탐사팀을 쳐다보지도 소리 없이 갤럭시 동체로 빨려 들어갔다.
혜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검은 복장의 군인들에게서 감정이 결여된 싸늘한 느낌이 전해졌다. 한국행을 방해한 스펙터와 비슷한 인간들이다. 탐사팀 멤버 구성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질학자는 자신을 포함해서 사무엘 교수, 로버트, 케리, 4명뿐이었다.
나머지 11명은 물리학과 화학 분야의 인력이었다. 지질탐사단에 물리학자와 화학자가 동행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배꼽이 배보다 커도 너무 컸다. 게다가 통역원, 의료 인력, 통신사, 요리사 등의 보조 인력은 보이지도 않았다.
‘원주민이 맨손으로 주물럭거린 우갈리나 푸푸(카사바 반죽으로 만든 아프리카식 빈대떡)를 먹어야 하나? 설마 야코리(식용 애벌레) 퍼티가 나오지는 않겠지?’
혜영은 은근히 걱정되었다. 아프리카는 나쁘지 않지만, 음식과 물은 질색이었다. 탐사 예정 지역은 아레바사의 자원조사팀이 통째로 납치당한 곳과 가까운 곳이다. 중무장한 안전팀의 동행은 이해되지만, 보조 인력이 문제였다.
“설마 군용 시레이션으로 배를 채우는 건 아니겠죠?”
혜영이 지도교수 사무엘을 쳐다보았다. 비위생적인 음식도 싫지만, 중공막으로 거르고 소독제를 투입한 찝찝한 물은 혐오 그 자체였다. 눈물 젖은 밥을 먹어보지 않은 혜영의 한계였다.
“린, 아프리카의 검은 쌀과 흰쌀을 아나? 검은 쌀은 불개미를 그을린 음식이야.”
사무엘 교수가 비시시 웃었다.
“흰쌀은 설마 흰개미?”
혜영이 아미를 찡그렸다.
“엑셀런트! 역시 인간의 대뇌 신피질은 위대해. 연상 작용은 인간만이 가능하지. 우린 땅강아지임을 잊지 말라고. 불완전한 시각과 미각에 집착하면 땅강아지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법이야.”
사무엘 교수가 빙빙 돌려서 말했지만, 말인즉슨 아무거나 주는 대로 처먹으라는 소리다.
“통역은요?”
“제인 구달 여사가 아끼는 침팬지라도 모셔오지 뭐.”
사무엘 교수가 영혼 없는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혜영은 울컥했다. 자신은 핵심 인력이 아니라는 소리다.
“린, 걱정할 필요 없어. 선발대가 이미 길을 닦고 캠프 조성 중이거든.”
로버트가 은근슬쩍 어깨에 팔을 두르려 했다. 혜영이 쳐다보지도 않고 팔을 툭 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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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가 이중 목적을 가진 탐사팀을 파견할 무렵, 자이르 이투리주 맘바사 외곽 정글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수십 대의 중장비 엔진이 기동하는 굉음과 요란한 총성이 정글을 흔들고, 방역 중대가 뿜어낸 살충제가 작업장 일대를 하얗게 뒤덮었다.
위원회가 일 개월 전에 투입한 미 육군 공병대대가 브니아에서 응판와자까지 폭 6m, 길이 125km 도로를 뚫는 현장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는 위대했다. 공병대는 주당 30km의 속도로 밀림을 파고드는 괴력을 발휘했다.
엑스카베타 벌목 톱 머신 다섯 대가 거목을 단숨에 잘라내면 뒤따르는 추출 머신이 집어서 도로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포크레인이 나무 둥치를 뽑아내면 불도저가 지면을 밀어붙이고 진동 롤러가 땅을 눌러 다졌다.
밑동 지름이 3m도 넘는 거대한 아비시니카도 맥을 추지 못하고, 미찌 유르가 뒤덮은 살인 늪도 기계 군단의 진군을 막지 못했다. 강력한 유기인제 살충제를 덮어쓴 독충과 독사가 무더기로 죽어 나가고, 총성과 굉음에 맹수가 꼬리를 뺐다. 겁 없이 덤벼든 테러버드는 기총 사격에 벌집이 되었다.
돌관공사를 방해할 외부 요소는 전혀 없었다. 수용가격을 두고 줄다리기할 토지 소유자도 없고, 땅바닥에 드러눕는 환경 데모대도 없고, 도롱뇽을 지켜야 한다고 부르짖는 동물보호론자도 없었다. 훗날 이투리 27번 북로로 불리는 정글 도로는 완성 직전이었다.
공병대대와 함께 파견된 육군 지리 정보국 측량팀도 공병대 못지않은 괴력을 발휘했다. 측량팀은 단 삼 주 만에 응판와자를 중심으로 반경 10km 지역의 등고선 지형도, 단면도, 구조 등고선(주향선)을 그려 냈다.
등고선은 높이가 같은 곳을 연결한 선이므로 지질 경계는 등고선과 평행을 이룬다. 등고선 지도가 완성되면 개괄적인 지층 파악은 거의 끝난 셈이다. 사무엘 교수팀은 예비작업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어졌고, 혜영의 걱정도 기우였다.
부아앙- 험비가 붉은 속살을 드러낸 거친 땅을 거침없이 질주했다. 군복이 소금기로 하얗게 뒤덮인 중령이 험비에서 뛰어내렸다.
“사령관님, 개통했습니다.”
공병 대대장의 표정은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35일 만에 125km 도로를 뚫고, 섹터를 건설했다. 미 공병대 역사상 이토록 강력한 돌관 작업은 없었다. 부하를 40명이나 잃었지만,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수고했다. 예정보다 이틀을 단축했군.”
어깨에 별 한 개가 번쩍이는 단단한 체격의 군인이 지휘봉으로 손바닥을 탁탁 두드렸다. 프리메이슨 장색이자 위원회에서 파견한 그린 플로우 책임자, 섹터 사령관 맥킨리 준장이다.
“오늘도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블랙맘바에 당한 데이비스 병장은 항독소를 주사할 틈도 없었습니다. 악어에 다리를 내준 페터슨 병장은 후송 준비 중입니다.”
“흠, 안됐군.”
맥킨리가 영혼 없는 조의를 표했다. 위버 중령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사령관이 야속했다. 부하가 죽고 불구가 되었는데 안됐다는 한마디가 전부였다.
“대원들이 지쳤습니다. 휴식이 필요합니다.”
“좋아, 섹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야간에 외곽 철조망 작업을 속개하라.”
“불빛에 달려드는 독충이 너무 많습니다. 방역 중대도 죽어 나자빠지는 실정입니다.”
위버 중령이 살짝 불만을 비췄다.
“우리는 군인이다. 살충제 분사기를 보강해서 강행하라. 내일이면 연구팀이 도착한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건조한 지시가 떨어졌다.
“옛썰!”
위버 중령은 두 말 못하고 물러났다. 군인은 명령에 따를 뿐 이유가 없다.
“흐흐흐, 소장 승진이 눈앞인데 꾸물거릴 수 없지.”
맥킨리가 비시시 웃었다. 군대만큼 폐쇄적이고 불합리한 조직도 없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별 한 개가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장병의 한숨과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지뢰에 발목이 날아간 병사의 치료비는 없어도 고급 장교용 호텔을 짓고, 골프장을 건설한 돈은 넘쳐나는 나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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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DGSE 본부, 보니파스는 읽고 있던 두툼한 보고서를 밀어놓고 지도를 펼쳤다. 축척 1:5,000 자이르 동부 군사 지도다. 위성에 잡힌 맘바사 지역의 노출 지층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문제는 브니 서쪽 110km 지점에 있는 아레바사의 우라늄 광산이다. 대대적인 광산 시설이 들어서고 플랫폼 채굴이 시작되었는데 사달이 벌어지면 타격이 크다.
“청소는 마스터가 하셨는데 숟가락은 양키가 얹는구먼. 자베르가 마음에 안 든다고 국익을 외면할 수야 없지. 엔네디에 집결하는 양아치도 문젠데…….”
보니파스가 커터로 골루즈 끝을 잘랐다. 생각이 집중되지 않을 때는 담배가 최고다. 카무게가 이끄는 부두교 세력이 괴멸한 뒤로 맘바사 일대는 무주공산이 되었다. 피그미족의 입을 통해서 무시무시한 마하두라카(블랙맘바)와 보둔(쌈디)의 존재가 알려졌기 때문이다.
검은 숲은 사악한 주술사가 이끄는 담발라를 삼켜버린 대정령의 영역이다. 아프리카에서 대정령, 보둔, 호웅간, 악귀가 빙의된 좀비와 괴물은 동화 속 존재가 아니라 현실이다. 공포는 또 다른 공포를 불렀다. 마이마이 반군을 비롯한 어떤 무장 세력도 대정령이 지배하는 이투리 정글에 들어갈 엄두를 못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