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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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장 그린 플로우3
혜영은 쳐졌던 기분이 살짝 올라갔다. 어디를 가나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오해받기 일쑤인데 아프리카 촌구석에서 한국인을 알아보는 외국인을 만나다니 별일이었다.
“네, 린입니다. 어떻게 아셨죠?”
반가운 마음에 손을 내밀었다. 용병 장교가 거칠고 탁한 음색으로 t가 발음되고 r이 묵음 되는 영국식 영어를 구사했지만 알아듣기에 무리는 없었다.
“반갑습니다. 나는 한국을 잘 모르지만, 좋아하는 한국인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 덕분에 한국에 두 번이나 다녀왔지요.”
폴이 혜영의 손을 터치하듯이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아, 그러셨군요. 어떤 사람인가요?”
외국에서 살다 보면 저절로 애국자가 된다. 예의 바른 태도와 한국인 친구가 있다는 말만으로 급 호감이 생겼다. 삭막한 얼굴이 친근하게 다가섰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친구고 정신적 지주입니다. 영혼의 주인이라고나 할까요. 그 친구도 이곳에서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지요.”
“훌륭한 분인가 보네요. 그분도 용병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자유를 얻은 용병이죠. 프리랜서 용병이라 해야 하나.”
폴이 빙긋이 웃었다. 지난달에 와킬이 실종된 어머니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옴부티 총독은 12월 23일을 ‘만남의 날’로 이름 짓고 공휴일로 지정했다. 친구의 행복은 자신의 행복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젊은 분인가요?”
혜영은 호기심이 일었다. 해외로 나가는 한국인은 극히 제한적이다. 건설붐을 타고 중동으로 건너간 근로자와 미국과 유럽 유학생, 세계를 떠도는 상사맨이 전부다. 한국인 용병이라니! 신선하고 멋있는 사람이다.
“나보다 훨씬 젊은 분입니다. 조국을 싫어하면서 사랑하고, 사랑했던 여자를 증오하면서 그리워하던 복잡한 분이지요. 하하하!”
폴은 대화가 즐거웠다. 군인은 싸우기 위해 존재한다. 전투가 없으면 할 일이 없다. 좀이 쑤시던 참에 미녀와의 대화가 즐겁지 않을 리 없다.
“사랑했던 여자? 과거형인가요?”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했던가. 혜영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본인도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는 자신이 한심했지만,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라고 애써 합리화했다.
“떠난 여인의 환상에 매달려서 징징대던 구닥다리 친구였어요. 한창 아드레날린이 폭출하는 시기엔 몸 파는 여자도 천사로 보이는 법이죠. 로미오와 햄릿의 20세기 콜라보레이션 작품이라고나 할까. 크크크!”
폴이 낄낄 웃었다. 마스터를 까는 재미가 쏠쏠했다.
“몸 파는 여자도 천사로 보인다고!”
혜영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가슴이 무너졌다.
“마드무아젤, 목적지가 부카브라고 들었습니다. 루웬조리 산맥도 위험하지만, 이투리 정글은 지옥입니다. 경호원 없이 활동하지 마세요. 수송기 정비가 끝나려면 최소 48시간이 걸립니다. 용병의 침상은 딱딱하지만, 음식은 먹을만합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혜영이 고개를 숙였다.
“담에 보자, 문디야.”
폴은 블랙맘바에게 배운 한국식 인사말을 던지고 돌아섰다. 아름다운 한국인 아가씨를 위한 애프터 서비스다.
“헉!”
혜영은 가슴이 쿵 떨어졌다. 어설픈 버터 발음이지만 경상도 사투리다. 기억 저편에 저릿하게 남은 말이다.
“저기요. 잠깐만요.”
혜영의 음성이 떨려 나왔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폴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방금 인사말도 한국인 친구에게 배운 건가요?”
“그렇습니다.”
“한 번 더 말해 줄 수 있나요?”
폴은 의아했지만 한 번 더 말했다.
“담에 보자. 문디야!”
최대한 블랙맘바의 억양을 흉내 내서 문디에 엑센트를 주었다.
‘설마?’
혜영은 정신이 아찔했다. 무쌍이 헤어질 때면 장난스럽게 했던 말, 문디에 악센트를 넣는 발음조차 비슷했다.
“친구분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목소리가 떨렸다.
“죄송합니다. 보안 사항입니다.”
폴은 단호히 거절했다. 블랙맘바의 정체는 특급 보안 사항이다. 한편으론 마음이 불편했다. 아름다운 아가씨의 표정이 너무나 간절했다.
“용병의 신상은 원래 비밀인가요?”
“네, 신분을 감추고 별명을 쓰는 용병이 많습니다. 프랑스는 프라이버시를 존중합니다.”
“그분의 별명이라도 알려주세요.”
“죄송합니다. 보안 사항입니다.”
폴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그분과 친한가요?”
“물론입니다. 열 번도 넘게 목숨 빚을 졌습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아! 혹시 그 사람이 혜영이란 이름을 말하지 않던가요?” 혜영은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하고 간절한 얼굴로 폴을 응시했다. 아니라도 좋았다. 그냥 그이와 관련된 흔적을 더듬고 싶었다.
‘혜영?’
폴은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히 귀에 익은 한국식 이름이다. 번쩍 기억이 떠올랐다. 차드 작전 때 블랙맘바가 첫 홀로코스트를 벌이고 언덕에 올라 울부짖었던 이름이다.
‘이럴 수가!’
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블랙맘바는 연인이 학위를 따려고 아메리카로 떠났다고 했다. 눈앞의 여자는 아메리카에서 갤럭시를 타고 왔다.
“다시 한 번 당신 이름을 발음해 보시오.”
“혜영, 인-혜-영!”
혜영이 또박또박 한자씩 발음했다. 폴은 긴 속눈썹으로 음영진 여자의 눈을 응시했다. 마스터는 툭하면 그녀의 향기와 젖은 눈을 언급했다. 보호 본능을 부르는 젖은 눈, 볼 것 없이 마스터를 떠났다는 여자다.
‘죽여버릴까?’
폴은 순간적으로 살심이 치밀었다. 마스터의 곁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여자가 있다. 에델은 눈부신 미모와 고귀한 품성을 가진 아가씨다. 자신은 물론이고 오현자와 일곱 망치도 에델 아가씨라면 꺼벅 죽는다. 쌈디와 디노도 에델 아가씨를 끔찍이 아낀다.
진순은 에델 아가씨보다 뛰어난 신붓감은 없다고 장담했던 오현자와 일곱 망치가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게 해준 아가씨다. 타고난 위엄과 고귀한 품성은 왕후로 손색없었다.
이 여자는 평온한 마스터의 가정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존재다. 고귀한 천사가 마음고생 하는 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인간은 그렇다 치고 진순 아가씨를 지키는 디망쉬(깜둥이)가 이 여자를 용납할까? 에델 아가씨를 지키는 쌈디와 디노가 인정할까? 턱도 없다. 디노가 꿀꺽 삼키지 않으면 다행이다.
‘내 손으로 죽일 수야 없지.’
폴은 고개를 흔들었다. 용병의 삶은 살인이 일상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목숨을 너무 쉽게 여기는 인간 백정이 되었다. 전장의 블랙맘바는 죽음의 천사지만, 영혼의 주인인 뚜바이부르파는 생명을 중히 여기고, 인간의 길을 찾는 구도자다. 하인장 옴부티라면 몰라도 자신이 멋대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아니요. 들어본 적 없습니다.”
폴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
혜영은 다리가 풀렸다. 혹시나 했더니 아닌 모양이다. 용병 장교의 태도가 다소 석연찮았지만, 그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다.
“마드무아젤, 괜찮습니까?”
깊은 물 속에 들어간 듯 용병 장교의 말이 웅웅 울렸다. 혜영은 이를 악물고 가라앉는 정신을 수면으로 끌어 올렸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공연히 마음만 썼다.
‘마스터를 찬 아가씨라니! 어이가 없구먼. 역시 여자는 알 수 없는 존재란 말이야.’
폴은 짠했다. 위로의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이미 충분히 말을 많이 했다. 눈부신 미모에 순수해 보이는 아가씨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을 만큼 순진한 인생을 살지도 않았다.
“폴, 자신의 생명을 내던질 만큼 뜨거운 사랑을 해 본 적 있나요?”
혜영의 목소리가 젖었다. 위로받고 싶었다. 따뜻한 말이라도 한마디 듣고 싶었다.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사랑도 시효가 있더군요. 십 년쯤 지나니까 화장실 문을 벌컥 열어도 놀라지 않고 방귀를 뀌어도 태연하더군요. 이십 년이 지나니까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일까? 아내에게 쥐여준 것이 무엇일까? 돌이켜보게 되더군요.”
“무엇이 남던가요?”
“아무것도! 함께한 세월만 남았습니다. 마드무아젤, 맛집보다 맛집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추억으로 남을 때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요? 사랑이 끝났으면 사진으로만 간직하세요. 딱지를 떼면 피가 철철 흐르는 고통이 찾아옵니다.”
폴은 인생 선배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충고했다. 설사 이 여자가 돌아와도 설 자리가 없다.
“사랑을 잘 아시네요. 당신은 거친 용병이 아니라 철학자군요.”
은근히 심통 난 혜영이 쏘아붙였다. 사진으로만 간직하라는 말이 가시로 푹푹 찌르듯이 아팠다.
“당신은 전우의 찢어진 신체를 이어붙이며 울어보았습니까? 전우를 살리려고 총탄을 몸으로 막아 보았습니까? 고귀한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고귀한 사랑을 할 자격이 있습니다. 나 자신을 먼저 챙기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럼 좋은 성과를 얻기 바랍니다.”
폴이 다소 거친 말을 던지고 성큼성큼 사라졌다.
“헉!”
혜영은 숨을 들이켰다. 마치 자신을 빗대서 하는 말 같았다. 그녀는 인사도 못 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고귀한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고귀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이 귀를 쟁쟁 울렸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슈트는 처음부터 다시 단추를 끼울 수 있지만, 흘러간 인생은 돌이킬 수 없다.
******
1987년 1월 10일, 정비를 마친 허큘리스가 탐사팀을 부카브로 실어날랐다. 비행장에 대기 중이던 치누크가 탐사팀을 싣고 브니아로 날았다. 둔중한 로터 소리가 고막을 흔들고 엉덩이가 들썩일 만큼 진동이 심했지만, 혜영은 오불관언 무릎에 코를 박고 잠들었다. 발아래 끝없이 펼쳐진 녹색 융단의 위용도 잠귀 신을 쫓지 못했다. 시차탓도 있지만 용병장교 폴이 던진 말 때문에 이틀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린, 도착했나 봐!”
케리가 혜영의 어깨를 툭 쳤다. 깜짝 깨어난 혜영이 멍하니 방풍 창을 내려다보았다. 녹색 융단에 점을 찍은 듯 하얀 담뱃불 자국이 보였다. 투투투투- 치누크가 하강했다. 담뱃불 자국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세상에!”
혜영은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수많은 중장비와 인간이 개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우와!”
다른 팀원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풋볼 경기장 수십 개 넓이의 정글이 사라졌다. 그 자리를 건물과 시설이 차지했다. 얼핏 보기에도 베이스캠프 따위가 아니라 대규모 연구소였다.
‘단순한 지질탐사가 아니었어.’
찬바람이 가슴을 스쳐 갔다. 스펙터라는 남자가 5년간 근무해야 한다고 했다. 뭔지 모르지만, 점심값을 오부지게 치러야 할 것 같은 부담이 가슴을 짓눌렀다.
검은 복장의 군인이 헬기에서 내린 일행을 코르셋 연구동으로 안내했다. 섹터 사령관 맥킨리 준장이 환영사를 겸한 브리핑을 끝내자 사무엘 교수는 짐 정리할 시간도 주지 않고 서둘렀다.
“맥, 자네 아이들을 데리고 3호 챔버를 세팅하게.”
“알았네!”
초로의 백인이 연구원 열 명을 데리고 사라졌다. 그들은 지질팀이 아니란 소리다. 곧이어 녹색 작업복을 입고 빨간 안전모를 쓴 땅강아지 일곱 명이 회의실에 들어섰다.
지이잉- 회의실 벽면에서 스크린이 내려왔다. 팟- 스크린에 허리가 끊어진 산 사면이 투영되었다. 등고선과 주향, 노두(암석이나 지층이 직접 지표에 노출된 곳) 길이와 지층 두께를 표시하는 기호와 숫자가 어지러웠다.
“일차 조사는 선발팀이 끝냈다. 여러분이 할 일은 시료 채취다. 산사태로 드러난 노두의 두께는 70m에서 180m, 길이는 1,850m다. 우리가 조사할 부분은 회백색 광상이 드러난 여기서 여기까지다. 몸은 피곤하겠지만, 스트레스는 크지 않을 것이다.”
사무엘이 레이저 포인트로 지점을 표시했다. 빨간 마크가 찍히고 700m 거리가 자동으로 표시되었다.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허리가 뭉텅 잘려서 내려앉는 바람에 지층이 주향에 직교방향으로 잘려나갔다. 시료 채취에는 최상의 조건이다.
“지금부터 시료 채집에 들어간다. 각자 A 포인트에서 J 포인트까지 맡아서 시료를 채집한다. 흰색 광상을 따라서 십 피트 간격으로 노출된 광상의 시료를 채집한다. 노두 상부에서 십 피트 아래, 바닥에서 십 피트 위쪽, 흰색 광상 중심에서 일 피트 위쪽, 일 피트 아래쪽, 중심 일 피트 안쪽의 시료를 채집한다. 즉 한 포인트에서 다섯 개 지점의 시료를 채집한다. 1차 시료 채집만 대충 350포인트쯤 되겠군.”
‘흰색 광상의 상하 1피트 이내의 시료를 채집하라고?’
혜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무엘 교수는 선행 작업인 암상 분리, 지층 두께, 포함된 화석, 절리, 주향등 필수 작업은 언급조차 않았다. 스크린에 비친 회백색 광상의 두께는 넓은 곳이 10피트, 얇은 곳도 5피트가 넘었다. 지층 시료는 지층의 연관성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다. 지층 연관성이나 연대기에 관심이 없다는 소리다. 상리에 맞지 않는 지시였다.
‘지질조사가 아니라 금맥을 찾는 건가?’
본래 지질조사는 장님 코끼리 더듬기다. 이건 마치 부장품을 확인한 도굴범이 발굴 단계에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금맥은 지질적으로 수정 광상에 틈입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나 다를까 의심을 뒷받침하는 지시가 이어졌다.
“시료 채집과 동시에 알지 못하는 물체(Unknown object)가 발견되면 중량, 형태, 재질을 불문하고 반드시 수집하라.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