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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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장 노바토피아 풍운8
바다 건너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나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다수의 인간 틈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보면 동일 문화, 비슷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내 나라가 편안하고 소중함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전에만 해당하는 용어가 아니었다. 비교적 인종 차별 의식이 약하다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차별과 멸시는 일상사였다. 거리에서 ‘엘로우’, ‘멍키’를 외치며 골반을 앞뒤고 흔들고, 음흉한 눈초리로 국부를 노려보는 놈은 양반이다.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붓고, 깡통이나 케첩 병을 던지는 놈도 흔했다.
웨스트우드, 산타모니카, 말리부, 패서디나 등의 고급 레스토랑 가에 가면 입구에 [흑인과 개는 출입할 수 없음]이란 팻말을 흔히 볼 수 있다. [노란 원숭이와 개는 출입할 수 없음]이란 팻말도 더러 있다. 몬태나 주에서 [노란 원숭이와 니그로는 출입할 수 없음, 단 일본인 제외]란 팻말을 보고 일주일 내내 기분이 나빴던 적도 있었다. 이방인 등급은 모국의 국력과 동급이었다.
‘오파츠를 한국에 넘겨줄까?’
한국은 상온초전도체를 역 설계할 기술은커녕 개념조차 없는 후진국이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가능성조차 없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매국노 아버지에 대한 반동이라도 좋고 치기라 해도 좋았다. 허약한 조국에 힘을 보태주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연락해볼까 하던 혜영은 얼른 머리를 털었다. 한국에 넘기더라도 아버지는 아니다. 아버지는 군사정권에서 단물을 빨아 먹고 세 불리하자 미국으로 튄 기회주의자다.
평생 사이가 나빴던 엄마와 합세해서 고명딸을 여당 대표 며느리로 들여보내려고 발버둥 쳤던 아버지, LA로 도피해서는 민중 운동가인 양 정권을 매도하고 조국의 고통을 정치적 발판으로 이용하는 협잡꾼의 손에 넘어간 오파츠가 어디로 흘러갈지 뻔했다.
한쪽에서 또 다른 욕구가 불쑥 솟았다. ABC, NBC, CBS, 한국 방송기자들까지 모아놓고 화려하게 등장하는 인혜영의 모습이 그려졌다. 환호하는 군중 속에 무쌍이 있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군중을 밀치고 돌진한다. 으스러질 듯 안아준다.
‘아니야, 아니라고!’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았다. 무쌍은 그럴 남자가 아니다. 기자회견을 내버려둘 학회도 아니다. 학회는 이중 트릭을 써서 민간인 과학자와 어시스턴터를 속였다. 지질조사를 빙자해서 리튬을 조사했지만, 최종 목적은 오파츠였다. 기자회견은커녕 소리 없이 제거되기 십상이다.
온갖 종류의 집을 짓고 부수기를 수십 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오파츠는 신의 선물이 아니라 악마가 던진 번뇌의 씨앗이었다.
“린, 밤을 꼴딱 새웠군.”
“헉! 놀래라.”
케리가 실험실에 들어온 것도 몰랐다. 화들짝 놀란 혜영이 테이블에 놓인 수건을 밀어서 오파츠를 슬쩍 가렸다.
“린, 대충하라고.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 거야?”
“케리, 원숭이와 놀더니 노크도 잊은 거야?”
혜영이 벌컥 했다.
“아, 미안! 미치더라도 밥은 먹고 미쳐야지.”
케리가 암막 커튼을 주르륵 걷었다. 일출 전의 푸른 빛이 쏟아졌다.
“밥? 어, 날이 밝았네.”
혜영이 퀭한 눈으로 창밖을 보았다. 캠프 외곽은 녹색 바다에서 메주콩 삶는 가마솥 뚜껑을 연 듯 짙은 수증기가 회오리치듯 상공으로 빨려 올라가고 있었다. 늘 보아도 놀랍고 장엄한 풍경이었다. 혜영은 홀린 듯이 눈을 떼지 못했다.
“맛이 갔군. 갔어. 하긴 지랄 맞은 정글에서 석 달이나 뻘짓했으니 맛이 갈 만도 하지.”
“지랄, 아침은 먹었어?”
“아니, 함께 먹으려고 온 거야.”
케리가 코를 킁킁거렸다.
“이런, 세상에! 아직 샤워도 하지 않았군. 미인도 샤워를 하지 않으면 땀 냄새가 나네.”
“닥쳐, 들이대고 싶으면 정글에서 루시(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최고 원인 여성체)를 찾아봐. 너와 제법 어울릴 거야.”
얼굴이 붉어진 혜영이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농담이라도 쉰내 난다는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여자는 없다.
“가자고. 사피엔스든 아파렌시스든 먹어야 살지.”
케리가 자세를 낮추고 양팔을 들어 올렸다. 안짱다리 걸음으로 팔을 들어 올려 흔들며 걷는 모습이 영판 침팬지였다.
“쪼다 같은 자식!”
혜영이 한국어로 투덜거렸다. 어쩜 이렇게 덜떨어진 남자만 보일까? 무쌍이 머리에 들이찬 순간부터 남자는 무조건 찌질해 보일 수밖에 없음을 혜영은 인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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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캠프 사령부 독립 콜셋 건물, 널찍한 사령관실은 창문에 결로가 생길 만큼 서늘했다. 벽에 걸린 호루스의 전시안 이 내려다보는 회의 테이블에 녹색 바탕에 회색 점무늬가 들어간 군복을 입은 장교와 상·하의 일체형 황색 작업복을 입은 연구원이 자리했다.
보안 대장 미셀 중령, 경비대장 함모 중령, 사무엘 교수, 맥 교수는 그린 캠프의 핵심 수뇌로 프리메이슨 조직원이다. 해병대 연대장, 공병 대대장 등 조직원이 아닌 지휘관은 모두 빠졌다.
문이 덜컥 열렸다. 참석자들이 기립했다.
“아아, 앉으시오. 늦어서 미안하오.”
강퍅한 인상의 군인이 전혀 미안하지 않은 기색으로 상석에 앉았다. 론 맥킨리 준장, 숨겨진 신분이 서너 개 있지만, 현 직책은 그린캠프 사령관이자 프로젝트 책임자다. 맥킨리가 탁한 회백색 눈으로 군 지휘관과 책임 과학자를 둘러보았다.
“사무엘 교수님, 신규 탐사지역 로드맵은 완성되었소?”
“여진으로 중복 산사태가 계속 일어나고 있소. 노출된 소금 광상이 묻히고 새로 드러난 섹터만 세 곳이오. 물론 리튬 함량 조사가 끝난 지점은 GPS에 기록되어 있소. 묻혀도 별 문제없소.”
“사무엘 교수, 설명해 보시오.”
“맘바사 응판와자 지역은 더 놀랍소. 최저 3%에서 최고 8%까지 분포되어 있소. 평균은 5.2%요. 참고로 우유니 소금사막의 최고 함량은 1.3%요. 소금층 평균 두께를 3.5m로 잡으면 현 국제 시세로 1,000억 불을 추출할 수 있소.”
“그것만으로도 본전은 뽑고 남은 셈이군.”
맥킨리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본전은 뽑았고 이제부터 쇼가 시작될 거요.”
맥 교수가 불쑥 끼어들었다.
“단서를 찾았소?”
맥킨리가 엉덩이를 반쯤 들었다.
“아아, 사령관의 상상과는 거리가 있소. 위원회에서 실시한 1차 탐사의 결과가 확인된 수준이오.”
맥 교수가 앞에 놓인 코코넛을 들고 꿀꺽꿀꺽 마셨다. 지금부터 자신이 말하는 내용은 충격을 줄 수 있다. 물론 이해 가능한 사람에 한해서다. 빌어먹을 이투리에서 유일한 위안은 신선한 과일을 무한정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음! 설명해 보시오.”
살짝 실망한 맥킨리가 뽑아 올렸던 상체를 의자에 묻었다.
“자연상태에서 존재하는 리튬은 질량7 리튬이 92.6%, 질량6 리튬이 6.4%입니다.”
맥 교수가 백보드에 매직으로 [천연동위원소 ⁷LI=92.6%, ⁶LI=6.4%]를 필기했다.
“나는 군인이오. 화학이나 물리학은 알지도 못하고 새삼스럽게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없소.”
맥킨리 준장이 탐탁지 않다는 듯 딱딱거렸다. 맥 교수는 들은 둥 만 둥 설명을 이어갔다.
“동위원소란 원자번호는 같지만, 질량이 다른 원소를 말합니다. 두 가지 원소의 화학적 성질은 동일합니다. 리튬의 원자량 즉 양성자 수는 세 개입니다. 그러니 ⁷LI은 중성자 네 개, ⁶LI은 중성자가 세 개지요. 중성자 수의 차이가 질량 차이를 만듭니다.”
“질량7 리튬이 질량6 리튬보다 더 무겁다는 뜻이오?”
맥교수는 매킨리의 질문에 곤란한 듯 머리를 득득 긁었다. 질량과 무게도 구분 못 하는 군바리를 잡고 설명하자니 여간 답답하지 않았다.
“지구라면 그렇겠죠. 질량은 원소의 양성자 수와 중성자수를 합한 숫자를 말합니다. 무게란 질량에 작용하는 중력치입니다. 그러니 질량은 핵분열이나 핵융합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불변이고, 무게는 상대적이 됩니다. 중력이 없는 곳에서는 무게란 개념도 없겠죠.”
“이해했소. 말을 끊어 미안합니다.”
맥 교수가 말 잘 듣는 학생을 보는 눈으로 맥킨리 준장을 일별하고 스크린에 루트 맵을 올렸다.
“화면의 루트 맵은 어시스턴터 연구원 미스 린과 케리가 작성한 맘바사 응판와자 지역의 H, G섹터 지도요. 이곳과 이곳은 중생대 말기 지층이요.”
맥 교수가 레이저 포인터로 두 지점을 찍었다. 혜영이 오파츠를 획득한 장소 근처였다.
“이곳에서 리튬 함량이 상식 밖으로 변했소.”
맥 교수가 매직으로 화살표를 그리고 [⁷LI=75.5%, ⁶LI=24.5%⁷LI]를 표기했다.
“이렇게 비율이 바뀌었습니다.”
잠자코 있던 사무엘 교수가 벌떡 일어났다.
“맥!”
사무엘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맥은 분석된 중요한 결과를 감추고 있다가 상급 장색에게 직접 보고했다. 학술연구팀 책임자인 자신을 건너뛰고 말이다. 아무리 장색 자리를 놓고 다투는 사이지만 비열한 행위였다.
“자네와 의논하려는 순간에 회의가 소집되었네. 책임자들이 모여 있을 때 발표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나쁠 것도 없잖아.”
맥이 사무엘을 흘낏 쳐다보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욕심만 많은 돼지 같은 놈!’
사무엘은 속으로 이를 갈며 털썩 앉았다.
‘뒤통수나 치는 좀팽이 새끼, 내가 닭대가리냐!’
맥 교수는 사무엘을 비웃었다. 사무엘은 툭하면 남의 업적을 가로채기로 이름난 인간이다. 오죽하면 학계에서 후투티라 부르겠는가! 꼬박 100일을 분석해서 얻은 중요한 결과를 놈의 입에 툭 털어 넣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동위원소 비율 변화가 중요한 일이오?”
맥킨리가 다시 물었다.
“중요합니다.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 거죠. 아니면 인위적으로 리튬을 정제했거나.”
“헉, 핵융합!”
맥킨리가 벌떡 일어났다. 사무엘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지고 미셀 중령과 함머 중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신이 말한 핵융합 반응이 내가 생각하는 핵융합 반응이오?”
“수소폭탄은 아니니 놀라지 마시오. 수소폭탄보다 더 놀랄 일이긴 합니다만…….”
“그건 무슨 소리요?”
맥 교수가 대답 없이 보드 판에 식을 써 내려갔다.
⁷LI+n→⁴He+T+n-2.5MeV
⁶LI+n→⁴He+T+4.8MeV
“간단하게 말하면 리튬을 중성자와 충돌시켜 트리튬을 만들었소. 트리튬을 만들고 남은 헬륨 찌꺼기는 대기 중으로 사라지고 말이요. 플라스마 제어를 통해 ⁷LI 반응을 높였을 거요. 그거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소. 한마디로 고대 핵융합로의 흔적이오. 무슨 뜻인지 알겠소?”
맥 교수가 도전자를 쫓아낸 말코손바닥사슴처럼 턱을 치켜들었다.
“으음, SF 영화도 아니고……. 집행관께서 놀랄 일이 있을 거라더니 이거였나!”
맥킨리 준장이 침음했다. 중생대 지층에서 나타난 고대 핵융합로라니 어이가 없었다.
“쥐라기에 공룡 인류가 존재했던 거요?”
미셀 중령이 물었다.
“그거야 모르지요. 참고로 스위스의 쥐라 산맥에는 암모나이트와 완족류 같은 무척추동물의 화석밖에 없었소.”
“그럼 도대체 뭐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질 시대의 지식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의미요. 어쩌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초고대 인류의 퇴화형일 수 있소. 하하하!”
맥 교수가 시니컬하게 웃었다. 자신도 얼마나 놀랐던가!
“허허, 이것 참! 찰튼 헤스톤 주연의 혹성탈출인가! 오클로 우라늄 광산에서 자연상태 핵분열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듣고 놀랐더니 백만 배는 더 놀랄 이야기군. 이걸 믿어야 하나!”
맥킨리가 탄식했다.
“핵융합은 원자량이 작은 원소로 원자량이 큰 원소를 만들어 내는 반응이오. 당연히 핵분열보다 백만 배는 어렵소. 핵융합은 지구상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소. 지구 중심부 내핵의 압력과 고온으로는 턱도 없소.”
맥 교수가 학자답게 수사적인 백만 배를 과학적인 백만 배로 진지하게 각색했다.
“그러니까 몇천만 년인지 몇억 년인지 모르지만, 이곳에 고대 핵융합로 또는 삼중수소 생성 장치가 존재했고, 지진으로 그 흔적이 드러났다는 말이군. 온갖 잡동사니를 다 수집한 이유가 오파츠 수색이었군요. 처음부터 사실을 알려주었으면 뻘짓도 하지 않고, 작업 진척이 빨랐을 것 아니오?”
미셀 중령이 볼멘소리를 뱉었다. 사무엘 교수가 나섰다.
“나도 맥 교수가 이토록 빨리 확증을 잡을지는 몰랐소. 내가 처음부터 핵융합로의 흔적을 찾는다고 했으면 미친놈 취급했겠지요. 우리는 미합중국이 백 년은 쓰고 남을 리튬을 확보했소. 물론 조직은 화수분을 얻었고 말이오. 본전을 뽑은 만큼 오파츠는 덤이라 생각해도 좋소. 또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소. 지층 루트맵 작성 중에 우라늄 광체(鑛體)를 발견했소. 함량은 6%요. 한 달 정도 작업이 진행되면 매장량이 확인될 거요.”
“허! 우라늄까지……. 이거야말로 일 타 삼피로군!”
맥킨리 준장의 입이 찢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베트남전 당시에 한국군에게 배운 말이 튀어나왔다. 핵융합로 흔적보다는 리튬이, 리튬보다는 우라늄이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우리는 진정한 팍스 아메리카나 실현의 실마리를 잡았소. 맥킨리 장군과 함께 프로젝트를 맡은 내가 자랑스럽소.”
사무엘이 전시안을 힐끔 돌아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미국의 영웅이자 20세기 끝을 장식하는 영웅이 되었소.”
“영예로운 행위를 위해서!”
맥킨리가 앞에 놓인 콜라 캔을 들었다.
“거룩한 영혼을 위하여!”
사무엘과 맥, 미셀과 함머가 코코넛을 들고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