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68
x 668
제63장 아수라3
“몰(두더지)이라니, 몰이라니!”
미셀 중령은 혼이 나간 듯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손에는 케리가 버린 커프스단추와 새카맣게 탄 장식이 들려있었다. 정보계통 짬밥만 이십 년이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타버렸지만, 용도를 모를 리 없었다.
도청과 감청 정보 수집은 한계가 있다. 고급 정보 원천은 휴먼이고, 휴먼 정보의 최고봉은 적의 심장부에 심어진 몰이다. 해외조직이나 외곽 협력 조직이라면 몰라도 본부 몰은 헬렌이 첫 번째다. 심장을 찔린 미셀은 주먹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CIA도 아닌 DIA, 그것도 스파이를 색출하는 방첩부 요원이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된다. 처음부터 의도한 침투인지, 중간에 포섭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헬렌이 스파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문제는 헬렌이 어떻게 DIA에 스며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DIA 검증 시스템은 빡빡하기로 유명하다. 세 차례 검증을 통해서 신분이 불확실한 인물을 걸러낸다. 검증은 삼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6촌 이내의 친척들까지 조사한다. 매년 주변 인물을 체크하고 2년마다 적성검사를 빙자해서 사상 점검을 받아야 한다.
헬렌은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의 자녀로 해병대와 그린베레를 거친 엘리트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국무부에 근무하며 어머니는 고등학교 교사다. 몰이 될 이유가 없었다.
“빌어먹을 류반카!”
스파이가 될 수 없는 인물을 스파이로 만드는 어둠의 주재자, KGB가 머릿속을 휘저었다. 당장 라인과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 눈앞이 캄캄했다.
띠딕- 무전기 인디케이터가 반짝거렸다.
-팀장님, 헬렌이 캠프를 빠져나갔습니다.
“퍽큐! 잡아, 무조건 잡아! 정글을 잿더미로 만들어도 좋아.”
미셀의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졌다.
“팀장님, 헬렌이 무엇을 노렸는지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얼음처럼 냉정한 그년이 사건을 벌였을 때는…….”
부관이 주의를 환기했다.
“아차!”
미셀이 이마를 쳤다. 칠면조처럼 붉으락푸르락하던 안색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당장, 린 연구원을 끌고 와!”
“넵!”
쉐도우가 득달같이 숙소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 새끼는 왜 여기 죽어있는 거야?”
미셀이 케리를 툭툭 찼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아니 헬렌이 범인이라는 한마디를 남겼다. DGSE 슬리퍼 짐 케리는 순전히 운이 나빴다. 헬렌과 엮이지만 않았어도 영웅이 되고, 혜영의 운명도 달라졌을 것이다. 세상사가 그렇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어지면 이것도 없어진다.
“팀장님, 세척제 트레이에 들어있던 사진입니다.”
부관이 반쯤 녹아버린 아크릴 수지 액자를 들고왔다. 황산 복합용액에 녹은 수지가 사진에 들러붙어 형체를 구분할 수 없었다.
“망할 년이 증거인멸을 시도했나?”
“알 수 없습니다.”
“본부로 보내서 복구하라.”
미셀의 오해로 인해 졸지에 무쌍의 신분이 드러날 상황이 되었다.
“뭐예욧!”
잠을 청하던 혜영은 날벼락을 만났다. 어리바리한 눈으로 침실에 들이닥친 보안팀원을 쳐다보았다. 쉐도우는 대꾸도 설명도 없이 혜영의 머리채를 잡아서 침대에 찍어 누르고 수갑을 채웠다.
“당신들 뭐야?”
짝-
힐난에 돌아온 대답은 곰 발바닥 같은 손바닥이었다.
“아악!”
인정사정없었다. 뺨을 맞은 혜영이 짚단처럼 날아가서 벽에 머리를 찧었다. 입이 터지고 코피가 줄줄 흘렀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혜영은 난생처음 당하는 압도적인 폭력에 얼이 빠졌다. 속수무책으로 제압된 혜영은 개처럼 질질 끌려갔다.
‘여긴 누구지? 난 어디지? 무쌍아, 나 좀 어떻게 해줘!’
현실 부정에 빠진 그녀는 주체와 객체를 구분 못 하고 어이없게도 늘 사천왕처럼 지켜주던 무쌍을 찾았다. 쉐도우는 혜영을 미셀 중령 앞에 팽개쳤다.
“에반스!”
미셀의 부름에 거구의 흑인 중사가 나섰다. 미셀은 말없이 팔짱을 꼈다. 맘대로 하라는 의미다. 에반스 중사가 다짜고짜 솥뚜껑 같은 시커먼 손으로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아악!”
혜영은 수치와 고통에 몸부림쳤다.
“린 연구원, 연구실에 무엇이 있었지?”
혜영은 유방이 떨어져 나갈듯한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흑인의 핏발선 눈이 검은 얼굴에서 튀어나와 얼굴을 때릴 것 같았다. 공포에 질린 그녀는 항의할 기력도 잃었다.
“무 무엇 말인가요?”
에반스가 보조 팩을 툭 던졌다.
“이 속에 무엇이 들어 있었지? 헬렌이 훔쳐간 물건이 뭐지?”
“컥컥, 아파 아파!”
에반스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혜영은 숨도 못 쉬고 몸부림쳤다. 에반스가 손아귀 힘을 풀었다.
“케리 연구원이 죽고, 헬렌이 사라졌다.”
“케리가 죽었다고?”
혜영은 텅 빈 보조 팩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신이 아득히 멀어졌다. 그녀는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차가운 금속, 오파츠!”
보고만 있던 미셀이 입을 열었다.
“린 연구원, 당신은 반역을 저질렀다. 당신은 헬렌과 공모해서 케리 연구원을 죽이고 중요한 국가 자산을 반출했다. 학회와 계약한 당신은 감마 1호 적용 대상이다.”
미셀은 의도적으로 말을 멈추고 새파랗게 질린 여자를 노려보았다.
“난 헬렌을 잘 알지도 못해요. 나를 감시하는 요원인데 무슨 공모를 해요.”
미셀은 애당초 혜영의 반론 따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책을 읽듯이 선언했다.
“이곳에서 발굴되는 모든 자원은 미합중국의 재산이다. 당신은 고의적으로 중요한 미합중국의 재산을 은닉하고 반출했다. 반역죄는 최소 20년 형이다. 솔직히 자백하면 정상을 참작하겠다. 진술이 성실치 못하면~”
미셀이 에반스를 슬쩍 돌아보았다. 간단한 제스처가 의미하는 바는 뻔했다. 혜영은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두억시니같은 흑인의 무자비한 손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그럴 수가!”
공부만 하던 평범한 아가씨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흑인의 우악스러운 손과 최소 20년형이라는 말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혜영은 정신없이 상온 초전도체로 추정되는 오파츠에 대해서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감옥도 무섭지만, 흑인의 무자비한 손이 너무 무서웠다.
“빌어먹을 년!”
미셀이 이를 갈았다. 정신없이 주절거리는 여자의 머리에 총알을 박고 싶었다. 사라진 물건은 회의 석상에서 논의된 핵융합로와 관련된 중요 부품이다. 손에 들어온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얼빠진 여자 때문에 KGB 손으로 넘어갔다.
“이래서 코리안 원숭이는 안된다니까요. 잽보다도 못한 열등 민족!”
에반스가 씹어뱉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백인보다 더 심한 인종적 편견을 가진 유색인종이 많다. 이는 우르바흐-비테 증후군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닮는 경우다.
“썬 오브 비치!”
미셀이 홀드에서 글록을 뽑아 혜영의 미간을 겨냥했다. 감마 규정에 의한 처분 권한은 보안팀장인 자신에게 있다. 캠프 사령관의 사인은 형식적인 절차로 사후에 받아두면 된다.
혜영은 자신을 향한 총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검은 동굴이 점점 커졌다. 그녀는 몸이 빨려 들어가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입이 헤 벌어지고 눈동자가 풀어졌다. 미셀은 아름다운 여인의 처연한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다. 권총을 집어넣고 씹어 뱉듯이 말했다.
“레이디, 현 시각부터 국가 반역죄를 적용, 자유를 박탈한다. 변호사 접견은 허락되지 않는다. 당신은 이곳에서 처형되거나 콴타나모에서 남은 생을 보내야 한다.”
“말도 안 돼! 오파츠는 내가 찾았는데 당신들이 왜 이래? 훔치려다 죽은 케리도 있고, 도망친 헬렌도 있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
정신이 든 혜영이 바락했다. 장교가 말한 반역죄, 처형, 콴타나모같은 익숙지 않은 단어가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대우를 받는단 말인가? 혜영은 너무 억울했다.
“에반스, 끌고 가서 처넣어.”
미셀이 냉정하게 지시했다. 혜영이 발버둥 쳤지만, 억센 손이 어깨를 잡고 사정없이 끌고 갔다.
스파이로 추정되는 케리의 죽음, KGB 몰로 확실시되는 헬렌의 배신과 도주, 혜영이 자백한 오파츠의 존재, 캠프 수뇌부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맥킨리 준장이 길길이 날뛰고, 암호통신문이 즉각 위원회로 발신되었다.
******
그린 캠프가 위치한 응판와자에서 마부쿠르 방향으로 3km 떨어진 에도스, 맨홀 뚜껑 크기의 땅바닥이 들썩거렸다. 소리 없이 뚜껑이 밀려나고 두더지 아닌 녹색 헬멧이 불쑥 나왔다.
녹색 헬멧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고 상체를 뽑아냈다. 퍽퍽퍽- 에도스 외곽 아비시니아 가지에 숨어있던 표범이 툭 떨어졌다. 감각이 초인적인 인간이었다. 남자는 손목시계 용두를 살짝 당겨서 뽑고, 강화유리 뚜껑을 톡톡 두드렸다. 길게 세 번 짧게 세 번.
땅속에서 중무장을 갖춘 건장한 남자들이 속속 튀어나왔다. 비트 세 곳에서 빠져나온 30명은 녹색 바탕에 회색 줄무늬가 있는 군복을 입고 강화유리 고글과 녹색 풀 페이스 헬멧을 썼다. 미군 해병대와 동일한 복장이다. 미니건, MP5, PAW-20 7연발 반자동 유탄발사기도 미 해병대 무기였다.
“동지들, 헬렌 동지가 해냈다.”
MP5를 든 남자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남자들이 일제히 허연 이를 드러내고 무기를 흔들었다.
“가자, 헬렌 동지가 쫓기고 있다.”
KGB 제1 총국 7부 팀장 밀로비치 중령이 녹색 무리를 이끌고 표범처럼 정글을 달렸다.
******
헬렌은 걸리적거리는 가운을 쭉 찢어서 가슴에 묶고 2차림이 우거진 정글을 날렵하게 빠져나갔다. 상체를 가운으로 둘둘 말고 하체는 팬티만 걸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볼 사람도 없고 본다고 눈깜짝할 헬렌도 아니었다. 억센 풀줄기와 가시에 긁혀서 피가 줄줄 흐르는 하체를 돌아볼 틈도 없었다.
그녀는 아그리피나 실드가 설치된 부니 방향을 피해서 이투리 중심부를 향해 뛰었다. 보안팀에 근무한 덕분에 경계 시스템은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다. 청음기와 적외선 카메라가 깔렸지만, 충분히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다. 이투리 정글의 동물은 유별났다. 하루가 멀다하고 청음기와 카메라가 파손되고 지주가 뽑혔다. 인간은 기계를 믿지만, 기계는 그리 효율적이지 못했다.
“젠장! 들켰군.”
헬렌은 주춤하고 몸을 숨겼다. 해병대가 외부가 아닌 내부 경계 포진을 펼쳤다. 놀랄 만큼 빠른 대응이었다. 그녀는 케리가 몽니를 부렸음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쾅- 쾅- 두두두두-
헬렌이 방호선 돌파를 고민할 때 총성과 포성이 터졌다.
“아악!”
“적이다!”
기습은 전격적이고 강력했다. 태고의 숲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고목이 터지고, 쏟아지는 파쇄물과 흙덩이가 앞을 가렸다. 배후 기습을 받은 해병대원이 무더기로 피를 뿜었다.
“바깥쪽이다. 응사하라.”
해병대가 무기와 수적 우세를 앞세워서 맹렬히 저항했다. 총성과 포성이 천지를 울리고 분노의 외침과 애처로운 비명이 섞였다. 경계 라인이 무너졌다.
“빌어먹을 년, 껍질을 벗겨주마!”
쉐도우 3팀장 존슨 소령은 이빨을 갈았다. 헬렌을 에스코트했던 요원 둘이 싸늘한 시체로 변했다. 무어 상사는 목젖이 잘리고, 로빈 중사는 심장을 찔렸다. 방심한 가운데 꼼짝없이 당한 흔적이다.
“이봐, 청음초는 연락 없나?”
두두두- 꽝- 꽝- 대답을 듣기도 전에 외곽에서 묵직한 중기관총 발사음과 수류탄 파열음이 들렸다.
“가자!”
바이크와 험비에 탑승한 쉐도우 열게 팀이 전투가 벌어진 외곽 초소로 튀어 나갔다.
‘댕큐, 밀로비치!’
헬렌이 득의의 미소를 흘렸다. 일회용 발신기가 제대로 작동했다. 배달을 도와줄 제1총국 7부 요원들의 어시스트가 시작되었다. 미꾸라지처럼 경계망을 빠져나가던 헬렌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언뜻언뜻 보이는 습격팀의 복장이 달랐다. 밀로비치 팀은 미 해병대로 분장했다. 습격조는 녹색 아웃도어 복장이었다.
“어쨌든 나야 댕큐지.”
헬렌은 미 해병대와 프랑스 대 테러팀이 치고받는 틈서리를 비집고 경계망을 빠져나갔다.
“저건 뭐야?”
루웁 뎅 팀장 파비우스가 방호 라인을 빠져나오는 헬렌을 목격했다. 뱀처럼 은밀하게 경계망을 빠져나가는 인물은 케리가 아니라 여자였다. 그는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컷 아웃의 긴급 통신을 받고 달려온 늑대 이빨이 남의 다리만 실컷 긁은 셈이다.
“쀠텡! 사격중지, 아홉 시 방향, 여자를 추적한다.”
파비우스는 이를 갈았다. 엉뚱한 인물을 도와주느라 부하들만 희생되었다. 헤드셋을 통해 명령을 전달받은 루웁 뎅이 순식간에 전장을 이탈했다. 그들이 벌려 놓은 그물코를 비집고 현지 고용인 둘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뒤늦게 도착한 밀로비치 팀이 영문도 모르고 늑대 이빨을 추적하는 쉐도우팀과 맹렬히 타격전을 벌였지만, 뒤늦게 헬렌의 탈출을 눈치챈 밀로비치 팀도 순식간에 퇴각했다. 독이 바짝 오른 쉐도우가 이들을 추적했다. 격전의 현장에 백여 구 넘는 시체만 남았다.
미국, 소련, 프랑스의 첩보원들이 뒤엉켜서 유혈이 낭자한 숨바꼭질을 시작했다. 캠프를 탈출한 현지 정보원에게 정보를 얻은 르완다계 해방민주군도 난장판에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