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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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필사의 탈출2
권력을 쥔 늙은이들이 에어컨이 빵빵한 오바뉴의 회의실에서 비싼 와인으로 축배를 들 때, 젊은 용병들은 불타는 사헬에서 이들의 경력을 채워주기 위해 피를 뒤집어썼다.
샤트르의 말은 한 치의 틀림이 없었다.
개미는 늙은이가 앞장서서 몸을 던져 조직과 젊은이를 보호한다. 인간은 늙은이들이 안전한 후방에서 조직을 이용하고, 젊은이의 피를 뿌려서 제 뱃속을 채웠다. 돈 몇 푼과 양철쪼가리로 피를 덮는다는 말도 틀림이 없었다.
국방부와 DGSE는 동양식으로 말하면 혼수모어(混水摸漁), 성동격서(聲東擊西), 포전인옥(抛塼引玉), 세 가지 계략의 제물로 용병 특공대를 제단에 올렸다. 늙은이들은 만족했지만 라텔 팀은 그 이틀의 시간 때문에 수렁에 빠져 들게 되었다.
회의실을 뛰쳐나온 필립 대령은 곧바로 대기 중인 허큘리스로 향했다. 자신의 무능으로 인해 부하들이 함정에 빠졌다. 용병은 프랑스 국민이 아니라는 말과 돈값을 해야 한다는 늙은이들의 말이 귀를 쟁쟁 울렸다.
“퉷, 더러운 것들!”
필립 대령은 오바뉴를 향해 가래침을 탁 뱉고 트랩을 올랐다.
“아르망, 어서가세.”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부관 아르망 중위가 가방을 받았다.
“좋을 턱이 있나. 늙은이들의 몸 비듬이 몸에 묻은 것 같아. 온 몸이 근질거려서 미치겠어.”
“결과가 좋지 않았군요. 이미 예상했지 않습니까?”
“젠장, 내 손발까지 묶였어. 계속 구출팀 투입을 고집하면 구금하겠다는군.”
“일단 쉬십시오. 머리가 맑을 때 결정을 내려야 후회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아르망이 필립을 달래며 목 베개를 받쳐 주었다.
기이잉- 활주로를 내달린 거체가 사뿐히 몸을 들어 올렸다. 필립 대령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장군 진급이란 말이 계속 귓가에 뱅뱅 돌았다. 아니, 머리는 흘렸지만 심장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직업군인의 로망은 별을 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 어디를 가나 다르지 않다.
‘장성의 별은 수많은 부하들이 흘린 피눈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양심이 버석거렸다. 평화시든 전시든 장군이 되려면 부하를 희생시켜야 한다.
“대장님, 이걸 좀 들어 보시죠.”
아르망이 네모반듯한 상자를 내밀었다.
“응, 이건 회라는 요리 아닌가. 언제 준비했나?”
아르망이 포장지에 동봉된 젓가락을 버리고 포크를 내밀었다. 포장지에 天皇陛下万歳 征壽司라는 붉은 글씨가 선명했다. 블랙맘바가 보았으면 눈에서 불을 뿜을 글귀와 상호다. 프랑스인 둘은 묘한 문양으로만 여겼다.
“식사를 못 하실 듯해서 준비해 두었습니다. 마르세유의 일본 음식점에서 사온 벤또라는 휴대용 요리입니다.”
“고맙네. 일본 음식점에서 왜 한국 요리를 팔지? 블랙맘바가 이런 식의 요리는 한국식 요리라고 했거던.”
“일본인은 워낙 모방을 잘하니 베꼈겠죠. 부르뎅 거리의 일본 술집엔 소피 마르소를 베낀 여자들이 시중을 듭니다.”
“나도 예전에 그 업소에 가 본적이 있어. 소피 마르소 분장을 한 여종업원들이 가슴을 내놓고 노팬티로 시중을 들더군. 눈요기엔 그만이었지.”
필립은 오늘 회의에 참석한 후안무치한 인간들을 헐벗은 여자의 몸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쉽지 않았다. 오히려 번들거리는 보니파스의 눈빛만 더 강해졌다.
필립이 회 한 점을 포크로 찍어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물고기를 날로 먹으니 새삼 부리머가 생각나는군. 그 친구 사헬에서 심심 할 텐데 말이야.”
“글게요. 사막엔 물고기가 없으니 말입니다.”
낚시광 부리머의 소문은 연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샤리강에서 낚아 올린 거대한 물고기들을 장교 식당과 사병 식당에 날마다 제공했기 때문이다.
“맛은 어떻습니까?”“블랙맘바 솜씨보다 훨씬 떨어져. 그 친구가 발라낸 회는 입안에서 살아 움직였거던.”
“놀라운 친구였죠.”
아르망은 블랙맘바라는 꼬레앙을 장교식당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의 기억이 새로웠다. 연대장 부관인 아르망조차 블랙맘바가 콜네임 용병임을 몰랐다.
그 날은 부리머가 샤리강에서 대형 나일 퍼치와 골리앗 타이거피쉬를 올린 날이었다. 아르망은 일 미터를 넘어가는 물고기의 덩치에 놀랐다. 그리고 블랙맘바의 칼솜씨에 더욱 놀랐었다.
“대장님, 블랙맘바의 묘기가 생각나십니까?”
“평생 잊지 못할 묘기였지.”
필립은 블랙맘바가 장교 식당에서 보여주었던 묘기를 잊지 못했다.
도마 위에 거대한 농어가 올려졌다.
놈이 몸부림치자 요리사들도 감당을 못하고 쩔쩔맸다. 부리머가 블랙맘바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몇 번 고개를 흔들던 블랙맘바가 나섰다.
필립도 블랙맘바가 농어를 어떻게 처리할지 호기심이 동했다.
블랙맘바가 묵직한 쿠크리를 뽑아들었다. 칼등으로 물고기 대가리를 톡 쳤다. 날뛰던 농어가 축 늘어져서 입만 뻐끔거렸다.
스윽 칼날이 물 흐르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비늘이 추르르 떨어져 나갔다. 누구도 칼날이 몸통을 지나갈 때 수십 번의 각도 변화가 주어짐을 알지 못했다.
칼을 몇 번 움직이지 않아 비늘이 제거되었다.
스악- 단번에 농어의 뼈가 심장 뒤쪽에서 꼬리까지 드러났다. 필립은 숨도 쉬지 못했다. 무서운 칼질이었다. 그야말로 양면테이프 덧방을 벗겨내듯이 깔끔하게 포를 떠냈다. 뒤집어서 또 한 번 쿠크리가 지나갔다.
“와우!” 구경꾼들이 일제히 탄성을 발했다.
단 두 번의 칼질에 거대한 농어는 대가리와 뼈만 남았다.
물고기 심장은 아가미 바로 뒤쪽에 있다. 본래 회를 뜰 때는 아가미를 벌리고 심장을 찔러 피를 먼저 빼내야 한다. 큰 고기는 꼬리 쪽도 칼을 넣어 피를 빼야 한다. 피가 근육 속에 배이면 신선도와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블랙맘바는 순간적으로 살을 발라내기 때문에 피 빼기 과정이 생략되었다.
커다란 살코기가 도마에 얹혔다.
바바바바- 쿠크리 날이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움직였다. 도마 위에 잘게 썰린 회가 수북이 쌓였다. 블랙맘바가 작업을 끝내고 물러났다. 그때까지도 살을 몽땅 털린 농어가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필립의 입에 미소가 떠올랐다.
블랙맘바의 훈련을 핑계로 취미를 즐기는 부리머, 경인할 칼솜씨를 요리용으로 사용하는 블랙맘바, 입안에서 살아서 튀는 듯 한 농어회, 맵고 달고 시큼한 한국산 초고추장, 즐거운 기억이다. 그 즐거운 기억을 늙은이들이 뺏으려 한다.
“블랙맘바가 돌아와서 늙은 쉐이들 입술을 회처버리면 좋을 텐데 말이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간장에 와사비를 풀던 아르망이 고개를 들었다.
“아, 아니야. 그냥 하는 말이야. 아르망 그만 치워주게.”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소리를 해서 입맛이 떨어졌군요.”
“아닐세. 블랙맘바는 유난히 일본을 싫어했지. 후안무치한 족속이라고 말이야. 나도 일본은 싫어. 베낀 제품으로 프랑스의 격조 높은 제품을 모독하거던.”
“아시아 근대사를 보면 나치보다 더 더러운 놈들이죠.”
“약한 놈이 죄인거지. 사헬에 투입할 특공대 명단을 준비하게. 백 명쯤 투입해야겠어. 제세페가 아프리카까지 나를 체포하러 오는지 봐야겠어. 도착하면 즉각 투입토록 준비하게.”
필립은 헬기를 띄울 수 없다면 차량을 동원해서라도 라텔 팀을 마중 나갈 작정이었다. 그는 적어도 비겁한 인물은 아니었다.
“이곳이다. 파라”
“확실해?”
“물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장쒼과 에밀이 의심스러운 태도로 반문했다.
옴부티가 파라는 장소는 먼지가 풀풀 나는 땅이다.
“물 나온다.”
옴부티는 팔짱을 끼고 고개만 까닥했다.
와킬에게 먹일 신선한 물이 필요했다.
부정한 핏물을 덮어쓴 몸도 씻어내야 했다. 옴부티의 성화에 짬밥 낮은 두 사람이 노가다에 동원되었다.
“2미터만 파라!”
지나가던 블랙맘바가 한 마디 던지고 갔다.
망설이던 장쒼과 에밀이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두 사람은 픽업에 매달린 공병삽을 뽑아들고 계곡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짜식들이 꼭 와킬이 말해야 움직이네.”
옴부티가 흐뭇한 얼굴로 블랙맘바의 등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지치자 미구엘과 모리스가 삽을 넘겨받았다. 두 명씩 번갈아 가며 파기 시작한지 삼십분이 지났다. 갑자기 환성이 터졌다.
“와아!”
어깨 깊이에서 젖은 모래가 나왔다.
역시 물을 찾아내는 옴부티의 감각은 탁월했다.
“어떻게 물을 찾나?”
“그냥 안다.”
깨비텐의 물음에 옴부티는 간단히 대답했다. 옴부티는 사막이 고향이다. 사막에서 태어나서 수 십 년 동안 사막을 돌아다녔다.
물이 고이는 지형, 지하수가 흘러갈만한 수맥을 보는 눈이 절로 길러졌다. 물이 나올 장소를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은 펠레에게 헤딩할 줄 아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기운이 난 팀원들이 일 미터쯤 더 파내려 갔다. 바닥에서 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지름 삼 미터의 샘이 만들어졌다.
“와우!” 깨비텐도 환성을 질렀다.
트라이던트 록을 떠난 후 일주일간 물을 구경도 못했다.
식수조차 아껴서 마시던 차였다.
“잠깐!”
옴부티가 물속에 뛰어들려는 마이크의 뒷덜미를 잡았다.
“와킬이 먼저요.”
“인정하지.”
마이크가 순순히 물러났다.
옴부티가 4갤런짜리 플라스틱 물통에 물을 채워 막사로 달려갔다.
장쒼과 에밀이 식수통을 채우는 동안 뗏국물이 줄줄 흐르는 용병들이 연신 몸을 긁었다.
낮 동안 끈적하게 흘러내린 땀은 밤이면 냉기로 말라붙었다. 간단없이 불어대는 사하라풍이 몰고 온 모래와 황토먼지가 땀과 뒤섞여 몸에 눌어붙었다.
시큼한 악취가 본인도 괴롭지만 파리와 모기를 불러 들였다. 현대 문명에 익숙한 용병들로서는 생각지 못한 또 다른 복병을 만난 셈이었다.
용병들은 너나없이 물웅덩이에 뛰어들었다. 일주일만의 목욕이다. 그들은 몸을 씻는다는 행위 자체가 인간이 되는 제일 조건임을 새삼 깨달았다.
블랙맘바는 하릴없이 야전 침상에서 뒹굴 거렸다.
자잘한 타박상, 창상은 물론 종아리 상처도 별것 아니었다. 물론 블랙맘바의 입장에서다.
최도식은 목을 꿰뚫리고도 도주했다. 방태산 동굴에서 표범이 할퀸 옆구리가 찢어져 창자가 흘러나왔다. 이 정도 상처는 긁힌 정도에 불과했다. 급격한 기동은 어렵지만 활동에 별 지장이 없다. 별것 아닌 상처임에도 벨맨과 깨비텐의 성화에 환자가 되었다.
당신이 빨리 회복되어야 동료들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소리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하긴 자신이 완벽한 컨디션을 유지해야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팀이 벗어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옴부티는 블랙맘바의 옷을 홀딱 벗겼다. 그는 면포에 물을 적셔서 땀과 피로 젖은 몸을 꼼꼼히 닦아냈다.
갑자기 코가 시큰해졌다. 비진도 민박집 부엌에서 혜영을 닦아주던 기억이 오롯이 살아났다.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살결, 눈을 뗄 수 없던 짙은 숲과 소담스런 가슴, 젖은 듯 한 음영 짙은 눈망울.
잘 있겠지. 잘 있어야 해. 엄마를 찾고, 당신과 함께 하기 위해 내가 피를 뒤집어쓰는 거라고. 명인은 뇌가 했지만 반응은 코를 거쳐 눈에 나타났다. 블랙맘바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와킬, 불편합니까?”
옴부티의 손길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고통이 심한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애무하는 손길에 다름 아니다. 블랙맘바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속으로 가슴만 쳤다. 옴부티의 삽질에 추억의 한 자락이 휭 날아갔다.
“옴부티, 내가 한다. 제발 그만둬.”
천하의 블랙맘바가 비명을 질렀다.
“와킬, 제 기쁨을 빼앗지 말아 주십시오.”
그는 고집 센 투아레그 전사를 제지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옴부티는 40리터짜리 물통을 두 번이나 갈고 나서야 막사를 나갔다. 샤트르를 돌보던 벨맨이 킬킬 웃었다.
벨맨은 옴부티처럼 젖은 면포로 샤트르를 닦아주고 있었다. 샤트르는 수시로 고열에 시달렸다. 벨맨이 자리를 뜨지 못했다.
“여어, 인기 만점이네, 늙은 투아레그 전사의 애정을 듬뿍 받는 비결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