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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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장 아수라21
“쫄따구, 기껏 생각한 게 프레임에 갇힌 모란봉 극단 따위냐? 피그미족의 수호신인 쌈디를 부하로 둔 나는 당연히 ‘갓 오브 갓’이지. 50억 인간은 누구나 배우다. 얼마나 큰 무대에서 연기할지는 본인에게 달렸다. 세상이 내 무대고 내 연기는 지구 급이다. 총과 대포로 환대하든 신으로 경배하든 이놈의 인기는 어딜 가든지 식을 줄 모르거든. 크크크!”
블랙맘바가 낄낄 웃었다.
“위대한 뚜바이부르파님께서 어련하시겠슴둥. 자알 나셨슴메.”
선우현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광오한 말에 입을 쩍 벌렸다. 와킬이 아닌 다른 인간이 저따위 말을 했으면 강냉이를 털었겠지만, 사실이니 할 말이 없었다.
블랙맘바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인간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경험치에 의한 특정 편견과 해석, 즉 프레임에 따라 세상을 바라본다. 피그미족은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가 냇물처럼 흐르는 사건을 겪고도 총을 거부했다. 외지인은 맞서 싸울 상대가 아니라 피해야 할 존재로 유전자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피그미족이 총을 받아들이지 못하듯이 선우현도 감시와 밀고 사회에서 형성된 프레임을 버리지 못한다. 쌈디의 진실은 타인을 향해 열려있지만, 선우현의 진실은 자신에게만 설득력 있다. 그래서 대현(大賢)은 대우(大愚)라는 경구가 있다.
“올롱게, 지난번에 내가 엎드리지 말라고 했지 않나.”
블랙맘바가 오체투지를 한 올롱게를 일으켰다.
“선우현, 모두 일어나라고 해라.”
“쿠판테 쪼테!”
선우현이 통역했다.
“왁산 라 마하두라카 마하디요!(위대한 신을 찬양합니다.)”
올롱게가 소리쳤다. 둥둥둥- 푸파파파- 북과 반자가 요란하게 울렸다.
“히히 호호!”
피그미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고 양팔을 앞뒤로 흔드는 특유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으이그, 지랄도 지랄도!’
선우현이 몸서리를 쳤다.
“와킬, 지난번 작전 때 피그미족과 사괴었슴메?”
“응,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했었지.”
“아하! 내래 코끼리 두 마리를 잡아야겠슴메.”
선우현이 결기를 돋웠다.
‘헐!’
기가 막혔다. 코끼리를 잡아주면 피그미족의 신으로 대우받는다고 오해한 모양이다. 본인의 프레임에 갇힌 자는 편견에 따른 잘못된 해석을 할 수밖에 없지만, 인간이 얼마나 단순하면 저따위 생각을 한단 말인가!
“올롱게, 마을에 특별한 일이 없었나?”
선우현이 통역했다.
“있다. 마우니가 결혼했다.”
“그런 거 말고, 외지인 말이야.”
“흑인 마을에 줌바라는 멍청한 여자가 있다. 원숭이 한 마리에 옥수수를 두 자루나 주었다. 크히히히!”
올롱게가 시커먼 이를 드러내고 낄낄 웃었다.
“으이그!”
블랙맘바는 학을 뗐다. 문화와 의식의 공통분모가 없다 보니 의사소통 간극이 한국과 아프리카만큼이나 멀었다.
“하하하! 와킬, 미개인의 신 노릇 하다간 머리털이 다 빠지겠슴메.”
선우현이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주군의 난감한 얼굴을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블랙맘바가 올롱게와 선우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선우현은 은근히 불안했다.
“키도 얼굴도 친구 먹기 딱 좋구마. 신은 빠질 테니 친구끼리 편하게 대화해라.”
블랙맘바는 골치 아픈 커뮤니케이션을 선우현에게 팔 밀이 했다. 언어를 알아도 문화를 모르면 대화가 쉽지 않다. 옹고르라는 청년을 데려왔으면 의사소통이 쉬웠을 것이다.
“무시기 소리함메. 내래 아새끼들보다 한 뼘은 커다우.”
선우현이 버럭 했다. 공화국에서는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지만, 세상에 나와보니 자신보다 키 작은 사람이 없었다. 160cm를 간신히 넘기는 키와 옹조지한 면상은 선우현 최대의 트라우마다.
“마하두 카두타 아이미.(친구로 지내자.)”
올롱게가 보노보처럼 골반을 앞뒤로 흔들었다. 피그미족의 친밀감 표시다.
“아이구, 내가 미친다 미쳐!”
선우현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하늘 위의 신보다 친구가 당연히 편한 법이다. 선우현과 올롱게의 대화에 피그미들이 한 명 두 명 끼어들었다. 종내 수십 명이 몰려들어 목청을 높이고 요란한 손짓 발짓이 오갔다. 마을 공터는 도떼기시장이 되었다.
“쫄따구, 쓸만한 정보가 있나?”
선우현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휴, 차라리 침팬지와 대화하겠슴둥. 해석하자면 동쪽 정글에서 헬기와 미사일을 동원한 전투가 벌어지고, 사람이 무더기로 죽었슴메. 양키가 항공기를 동원해서 고엽제와 살충제를 무차별 뿌리는 바람에 숲이 죽고 동물이 사라졌슴메. 외지인이 총을 마구 쏘고, 나뭇가지 사이를 휙휙 날아다니는 검은 외지인도 봤다고 함메. 동족이 많이 죽고 잡혀가는 바람에 피그미들이 숲 깊숙이 들어갔슴메. 어젯밤에 군대개미만큼 많은 인간이 코끼리 소리가 들리는 곳까지 들어왔다고 함메. 나머지 이야기는 도통 알아듣지를 못하겠슴둥.”
“애썼다. 그만하면 많이 알아냈다. 곧 어두워진다. 내일부터 수색을 시작하자구. 일단 캠프에서 도주한 여자를 찾아야 작전 범위를 정할 수 있다.”
“이래서야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아이겠슴둥?”
“잘 되겠지!”
블랙맘바가 언제나 그렇듯이 무책임한 말을 던져놓고 훌쩍 뛰어올라 아비시니아 가지 사이로 사라졌다.
“와킬은 한가해서 좋겠수!”
선우현이 입을 삐죽이며 PP 깔개를 깔고 텐트를 쳤다.
“쫄따구, 텐트 안쪽에 모기장을 쳐라. 키싱버그(침노린재, 샤가스병 전염원) 주둥이는 텐트를 뚫는다.”
까마득한 나무 위에서 졸린 음성이 들렸다. 이투리 정글에 어둠이 찾아들었다. 선우현은 텐트를 뚫고 들어오는 수백 개의 날카로운 침과 텐트 주위를 돌아다니는 독충과 짐승 발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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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퍽- 촥촥- 마체테로 관목과 억센 풀을 쳐내는 이질적인 소음이 울렸다. 푸드득- 부채머리 수리가 훌쩍 날아오른 자리에 시퍼런 불빛 수십 개가 나타났다. 목에 밧줄이 걸린 피그미 남자가 선두에서 길을 안내하고, 소총을 든 흑인들이 정글도로 숲을 쳐내며 전진했다.
야생동물처럼 눈알이 파랗게 빛나는 흑인들은 은타간타가 자랑하는 음벰베 특전대의 일부로 전원이 부두교도였다. 주술로 피부를 강화한 이들은 독사와 독충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은타간타는 후원자인 KGB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여서 맘바사 일대에 병력 3,000명을 풀었다. 친구인 폼스키가 보물지도를 찾아주는 대가로 선물 보따리를 화끈하게 풀었기 때문이다. 스트렐라2 20기, 야포 10문, 기관총 50정, RPG7 70정, 소총 2,000정을 약속받았고 일부는 이미 손에 들어왔다. 무기만 확보되면 세력은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보물지도를 입수하려는 목적이 무기 확보였으니 보물지도는 친구에게 넘겨도 상관없었다.
은타간타는 대량의 인명 손실을 보고서야 이투리 숲을 탐색하려면 숲 사람에게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주민들은 이투리 내부의 사정에 깜깜했다. 그들은 숲 외곽에서 농사짓고, 피그미와 물물 교환을 할 뿐이었다. 음벰베 대원 300명이 엽견으로 부릴 피그미족 사냥에 나섰다.
“마켈렐레, 방향을 정확히 잡았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놈들은 거짓말을 할 줄 모릅니다.”
밧줄을 잡은 흑인이 대답했다.
“속도를 올려라. 날이 밝기 전에 마을 세 개를 접수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흑인이 피그미 엉덩이를 걷어찼다. 전진속도가 빨라졌다. 이투리 삼림에 피그미 마을이 몇 개나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마이마이에서 파악한 음부티계 피그미 마을만 서른 개였다. 음벰베는 곧 다가올 살인의 쾌감과 피그미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에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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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이군.”
블랙맘바가 눈을 번쩍 떴다. 눅눅한 공기가 정글을 덮었다. 지상은 여명을 재촉하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가 텐트를 마다하고 캐노피 상부를 잠자리로 고집하는 이유는 습기가 싫기 때문이었다. 뚜둑- 억수갑이 나무줄기를 스티로폼처럼 뜯어냈다.
“무시기?”
나무 조각이 떨어지는 소리에 선우현이 눈을 떴다.
“쫄따구, 손님이다. 마을 입구에서 5시 방향 400m 지점이다.”
“알았시오.”
선우현이 벌떡 일어나서 배낭을 메고 텐트를 빠져나갔다. 그는 의문을 갖지 않았다. 투덜대고 깐죽대지만, 그도 최고의 전사고 영혼의 주군을 모신 노바다. 와킬이 적이라면 적이고, 오백 미터라면 오백 미터다.
마을을 빠져나간 선우현은 헤드셋을 켜고 고목 둥치와 동화되었다. 눅눅한 안개가 그를 완벽히 숨겨 주었다. 검은 그림자가 밀려왔다. 동부 아프리카 특유의 난잡한 복장이 아니라 군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놈들이었다.
‘죽고 싶어서 악을 써는 49호 종간나 새끼들!’
선우현은 MP5sd3를 들어 올렸다. 야시경 스위치를 켜려던 손이 움찔했다. 인간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다. 인간은 짐승처럼 눈알이 파랗게 빛나지도 발걸음 소리를 없앨 수도 없다.
-와킬, 이상합네다.
-도바에서 지겹게 경험하지 않았나? 부두교도다.
-아하!
선우현이 땡중 도 터지는 감탄사를 뱉었다. 체면이 결정적으로 실추된 뼈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마약에 취하고 정령이 깃든 인간은 초능력을 발휘했다. 심장을 뚫거나 머리를 박살 내지 않으면 죽지도 않았다.
-쫄따구, 선두는 피그미다. 중간에 헬멧을 쓴 놈이 지휘자다.
-알겠시다. 내래 솜씨를 보여주디.
두 놈은 죽이지 말라는 소리다. 선우현은 자신만만했다. 근접격투는 이놈 저놈에게 밀렸지만, 저격만은 자신 있었다. 야시경에 푸른 공 같은 물체가 점점이 떠올랐다. 안갯속에 흐릿하게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장면은 그로테스크하기 이를 데 없었다.
퍽- 퍽- 퍽- 회초리로 이불을 터는 소음이 적막한 새벽 공터를 울렸다. 원샷원킬, 선우현은 정확히 이마와 관자놀이를 박살 냈다. 적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엎어졌다.
“델라뚠!”
여섯 명째 저격했을 때 외침이 터졌다. 안갯속에 떠 있던 머리가 일시에 사라졌다.
‘이러면 곤란하지비!’
사사삭- 선우현이 땅바닥에 몸을 딱 붙인 채로 도마뱀이 무색할 만큼 재빠르게 이탈했다. 탕탕탕- 투투투투- 반격탄이 쏟아졌다. 기민한 대응에 선우현이 높은 포복으로 속도를 높였다.
“쏴,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투투투투- 총탄이 빗발처럼 따라왔다.
“이크!”
식겁한 선우현이 재빨리 바위를 엄폐물 삼아 표적을 찾았다. 퍽- 짐승처럼 네 발로 뛰어오던 그림자가 털썩 엎어졌다. 투투투- 탕탕탕- 양쪽 사이드에서 총탄이 날아왔다. 어느새 포위되었다.
‘헉!’
놀란 선우현이 빈대떡처럼 바위에 눌어붙었다. 카카카카-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바위 조각이 튀고 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총구를 내밀 때마다 놈들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졸지에 돈좌된 그는 꼼짝도 못 했다.
‘종간나 새끼들이 훤하게 본다야!’
눈알이 시퍼렇다 했더니 야행성 동물처럼 자신의 움직임을 빤히 보고 총질이다. 이래서야 옴치고 뛸 재간이 없었다.
-와킬, 도와주시라요.
-정찰여단 대좌가 광신도 몇 놈도 처리 못 해?
-놈들이 보통 아니라요.
-임마, 피그미족 수호신이 쉬운 줄 알아? 쌈디는 파리 잡듯이 잡고 괴물도 다 때려잡았단 말이야. 그러니까 디노에게 깨지고 옴부티에게 똥별이란 소릴 듣지.
가차없는 지청구가 날아왔다.
‘으윽, 쪼잔한 인간!’
선우현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저녁에 자신이 했던 말을 꽁하니 넣어뒀다가 기어코 돌려주는 속 좁은 주군이 야속했다.
-조심햇! 9시 15분 35m
퍽- 선우현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격발했다.
“컥!”
처음으로 비명이 울렸다.
-10시 20분 42m
퍽- 선우현이 번개같이 총구를 이동했다.
-수류탄
“내미럴!”
선우현이 공처럼 굴러서 엄폐물을 이탈했다. 꽝- 섬광이 어둠을 밝혔다. 흙과 파쇄물이 후드득 쏟아졌다. 카카카카- 소련제 기관총 특유의 날카로운 연사음이 울렸다. 선우현은 정신없이 뛰고 굴렀다. 가열찬 공격에 혼이 쑥 빠질 지경이었다.
-와킬, 쫄따구 죽갔시오.
선우현이 비명을 질렀다. 우습게 봤다가 완전 코를 물렸다.
-임마, 그러게 오입질 작작하고 수련했어야지. 뒤!
놀란 선우현이 개머리판을 창처럼 겨드랑이 사이로 내질렀다.
“끄악!”
묵직한 충격음에 이어 비명이 터졌다. 머리가 박살 난 흑인이 풀썩 무너졌다. 죽은 놈의 손에 날이 번들거리는 마체테가 쥐어져 있었다. 와킬이 경고하지 않았으면 장가도 못 가보고 목이 달아날 뻔했다.
“흐으~”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수류탄 폭발음에 감각이 무뎌진 탓으로 돌리기엔 놈들의 전투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차 하면 아침 해를 못 보게 생겼다.
-와킬, 내래 잘못했시오. 다시는 깝죽거리지 않겠시오.
선우현은 체면 불고하고 사정했다.
퍼퍼퍽- 퍼퍼퍽- 모래주머니를 몽둥이로 후려치는 소리가 세 번씩 연속 울렸다. 핏핏- 투척무기가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도 몇 차례 울렸다. 총성은 채 일분이 지나지 않아 뚝 그쳤다.
스적 스적- 텅텅- 묘한 소음이 울렸다. 안갯속에서 블랙맘바가 불쑥 나타났다. 한쪽 옆구리에 어린아이(?)가 끼어있고 다른 손은 발목을 잡고 있었다. 텅텅대는 소리는 발목을 잡혀서 질질 끌려오는 흑인의 뒤통수가 땅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어이를 상실한 선우현이 멀거니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