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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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장 아수라22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목 프로텍터에 부착된 시계를 흘낏 보았다. 공격은 53초 만에 끝났다. 갓 급 스나이퍼 아니라 신이라도 표적이 특정되어야 스나이핑이 가능하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신으로 떠받들지만, 와킬은 레종 에뜨랑제 특급 스나이퍼 출신이다. 같은 인간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와킬, 몽땅 죽였시오?”
얼이 빠진 선우현이 하나 마나 한 질문을 던졌다.
“쫄따구, 전폭기와 미사일이 아무리 발전해도 전쟁 마무리는 땅개 몫이듯이 전투 종결은 본인의 근접전투력에 달려있다. 너는 인간으로서 정점에 이른 피지컬 능력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당할뻔했다. 몽달귀로 정글을 떠돌고 싶나?”
“놈들의 은신 능력과 이동 속도를 과소평가했시오. 전장 분석을 잘못했시오.”
코가 쑥 빠진 선우현이 고개를 숙였다.
“절반만 깨달았군. 너는 상대도 모르고 자신도 모르는 깜깜이 전투를 벌였다. 근본적인 잘못은 현실에 안주한 게으름이다. 얻고 잃음을 따지는 셈법에 빠져서 일희일비하지 마라. 남들은 없는 것도 새로 만드는 판에 있는 것을 제대로 써먹지 못한대서야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나?”
장난기를 버린 블랙맘바의 질책은 준엄했다.
“고조 부끄럽시다.”
선우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스스로도 한심했다. 사헬에서는 블랙맘바의 조공으로 펄펄 날았는데 도움은커녕 짐만 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탈탈 털어. 망할 놈들이 잠도 없나? 예의는 더 없고 말이야. 뚜바이부르파님의 새벽잠을 망친 대가를 치러야지.”
흑인과 피그미가 선우현의 발밑에 툭 떨어졌다. 두 사람 다 멀쩡했지만,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눈만 굴렸다. 선우현이 움찔했다. 탕가 바위 언덕에서 턱을 한 대 맞고 개구리처럼 뻗어 버린 자신의 모습이 데자뷰되었다.
“에이그, 하인이 허약하니 주인이 고달프구나. 아함! 잠이 부족해.”
블랙맘바가 마을로 돌아가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이 맞긴 하디?’
선우현은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전투를 잠을 깨운 트러블로 치부하는 무신경함에 기가 질렸다. 능력치를 떠나서 그릇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현아 우현아, 비교할 걸 비교해라. 올챙이 주제에 용 꼬리도 오감 타 해라!”
선우현이 한탄했다. 자괴감은 잔인함으로 표출되었다.
“이 자식을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나지?”
선우현의 머리에 고문법 108가지가 주르륵 스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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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미 안내인은 뺨 두 대를 맞고 마을로 돌아갔지만, 음벰베 정찰 소대장은 세 번째 부인 이름까지 뱉어내고 목불인견의 혈구로 남았다. 주술로 강화된 생명력도 뼈가 으스러지고 장기가 토막 나고서야 버틸 재간이 없었다.
“흐아함! 좀 건졌나?”
안개가 햇빛에 녹아 없어질 때쯤 나타난 블랙맘바가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을 손가락으로 찍어냈다.
“간나새끼래 마이마이 민병대 음벰베 특전대 제삼 정찰소대 소대장입네다. 로스께와 손잡은 은타간타가 소련 스파이를 도우려고 투입한 특수전 대대 중에 일부입네다. 미군 캠프를 탈출한 문제의 여자를 보호하는 로스께는 루뱐카 제7부 소속 우빅사 팀으로 추정됩네다.
“우빅사?”
“우빅사는 전원이 특수 능력자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습네다. 탈탈 털었지만, 쓸만한 정보가 벨로 없습네다.”
선우현이 진중한 태도로 보고했다. 말투도 달라지고 자신의 공적을 부풀리는 설레발도 사라졌다.
‘이 양반이 쇼크 받았나?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데…….’
블랙맘바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긴 이투리 정글을 경험하고도 달라지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
“허접한 놈들이지만 숫자가 힘이다. 머리가 아프겠어. 금발 여자는?”
“음벰베도 해종일 종적을 쫓는 중이라고 합네다. 이틀 전에 우빅사 요원이 은두두란 흑인 마을에서 옥수숫가루를 얻어 갔다고 합네다.”
“오케이, 식량을 유실했군. 놈들은 아직 맘바사를 벗어나지 못했어.”
블랙맘바가 반색했다.
“우빅사는 보통 놈들이 아닙네다. 사하라 사막에 던져놓아도 너끈히 현지 보급합네다.”
“하하하! 이투리가 왜 검은 숲이라 불리는지 곧 알게 될 거야. 양키가 놈들을 잡지 못하는 이유도 이투리 자체의 문제 때문이다. 가자!”
“단서도 없이 추적할 수 있겠습네까? 풀이 억세서 밟아도 금방 일어서니끼니 꼬리를 잡아도 추적하기 어렵겠습네다.”
“명색이 노바토피아 여단장인데 우는소리를 하면 쓰나. 정찰여단 대좌는 고스톱 쳐서 땄나?”
블랙맘바가 이죽거렸다.
“시정하겠습네다.”
‘얼래? 이 인간이 진짜 이상해졌네.’
블랙맘바는 은근히 걱정되었다. 선우현은 깐죽대고 물색없이 나대야 선우현이다. 달라진 모습이 영 어색했다.
“이투리는 피그미 안마당이여. 올롱게, 은두두로 간다.”
블랙맘바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베이스 정보 없이 아파돔베에 은신한 카무게 일당도 찾아냈는데 꼬리를 드러낸 로스께를 찾지 못하면 블랙맘바 면허를 반납해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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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남짓한 마을은 죽은 듯이 조용했다. 블랙맘바는 진한 피 냄새를 맡았다. 은두두 마을도 이투리를 휩쓸고 있는 미친 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올롱게, 마을 사람과 친하나?”
“느다카는 피그미 친구다.”
“선우현, 올롱게만 들여보내라.”
잔뜩 겁에 질려있을 마을 사람들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콩고 동부의 원주민은 대부분이 반투족이다. 반투(Bantu)족은 반투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동부 종족을 통칭하는 분류로 반투어 족(Bantu language family)이 정확한 표현이다. 호전적인 레세(Lese), 맘부(Mamvu), 부두(Budu)족은 피그미를 잡아먹지만 온순한 비라(Bira)족과 느다카(Ndaka)족은 피그미족과 우호적인 관계다.
선우현이 마을에서 돌아온 올롱게와 지겹게 대화를 나누었다. 보는 사람이 답답해서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와킬, 우빅사가 열흘 전에 시타퉁가를 옥수숫가루와 교환하고, 이틀 전에 멧돼지를 카사바 가루와 교환했습네다.”
“양이 얼마나 되나?”
묻는 의도를 알아챈 선우현이 올롱게와 대화를 나누었다.
“곡물은 고기 무게 두 배와 교환됩네다.”
“알만하군!”
블랙맘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타퉁가 성체는 80kg 남짓하다. 적어도 100kg 이상의 곡물을 가져갔다는 소리는 로스께의 숫자도 많고 장기간 은신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뛰어봐야 벼룩이지.”
블랙맘바는 은두두 마을 외곽을 수색했다. 이틀 전이면 폭우가 쏟아졌던 날이다. 특수전 요원이 야전에서 소나기를 맞는 정신 나간 짓을 할 리 없었다. 기온이 낮으면 저체온증, 높으면 근육이 굳는다. 이투리에서는 작은 파탄도 큰 대가로 돌아온다. 어디선가 비를 피했고, 놈들의 은신 비트가 그리 멀지 않다는 뜻이다.
블랙맘바는 동심원을 그리며 수색 범위를 넓혔다. 개 코와 버금가는 후각이 끈질기게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 분자를 분석했다. 이투리 정글은 동네 야산이 아니다. 탐지 범위가 넓어지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선우현은 기대 반 회의 반이었다. 쇠꼬챙이로 땅을 쑤시는 것도 아니고, 낙엽이나 나뭇가지를 유심히 살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뛰듯이 휙휙 지나갔다. 무엇을 찾는지 알 수 없었다.
‘어휴, 괴물이 달리 괴물이디.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 괴물이디.’
추적자의 덕목은 인내심이다. 포기한 선우현은 꼬르륵 소리 나는 배를 움켜쥐고 발에 땀 나도록 쫓아다녔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 무렵 블랙맘바가 롬비(Lombi tree) 고목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추적을 시작한 지 여섯 시간, 갓 급 스나이퍼의 인내심도 바닥나기 직전이었다.
개 코는 눅눅한 숲 속에 떠도는 온갖 종류의 냄새 속에서 한 줄기 흐린 피 냄새를 잡아냈다. 비릿하면서도 썩은 냄새가 가미된 냄새, 신선한 피가 아니라 월경혈 냄새였다. 두웅- 안법이 지면을 훑었다. 아무리 단단한 땅이라도 밟으면 다져진다.
“쫄따구, 여자 한 명, 남자 넷이다. 다섯 명이 이곳에서 비를 피했다.”
“어케 알았시오?”
축 처져 있던 선우현의 눈이 번쩍했다.
“그냥 안다.”
“어휴! 묻는 놈이 쪼다지.”
선우현이 다시 축 처졌다.
“올롱게, 추적할 수 있겠나?”
블랙맘바가 방향을 잡아주었다.
“하쿠나 타티조!(문제없다!)”
올롱게가 앞장섰다. 사냥감 추적은 피그미족의 특기자 일상생활이다. 올롱게는 누운 풀을 더듬고,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를 맡고, 흙을 집어서 맛을 보며 거침없이 전진했다.
‘으이그! 또 딴전이네.’
블랙맘바가 흰개미 집 앞에서 서성이는 올롱게의 엉덩이를 슬쩍 걷어찼다. 올롱게가 꺼먼 이를 드러내고 멋쩍게 웃었다. 흰개미를 먹으려다 들켰다.
추적을 재개하려던 올롱게가 납작 엎드렸다. 쉭- 블랙맘바가 사라졌다. 선우현이 백 팩에서 MP5를 뽑아들고 블랙맘바를 따라서 숲으로 뛰어들었다.
-쫄따구, 은신!
선우현은 잽싸게 무성한 떨기나무 사이를 파고들었다. 거짓말처럼 눈앞에 한 떼의 무리가 나타났다. 리탐처럼 긴 천으로 눈만 내놓고 얼굴을 싸맨 놈들, 마이마이 음벰베다. 30명이나 되는 인원이 정글도로 초목을 쳐내며 전진하는데도 일체의 소음이 발생하지 않았다.
선우현은 배후를 기습하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눌렀다. 소리도 없이 이동하는 놈들이 만만치도 않거니와 된통 당한 후론 신중해졌다.
휭- 시커먼 물체가 포탄처럼 날아왔다. 물체는 낮게 드리운 아비시니아 가지를 후두둑 두드리고 떨어졌다. 솨아아- 음벰베 머리 위에서 검은 폭우가 쏟아졌다.
‘헉, 거머리!’
선우현은 머리가 삐쭉 곤두섰다. 키에엑- 비명이 울렸다. 불쌍한 원숭이 한 마리가 거머리에 뒤덮였다. 피이이- 연기가 물씬 피어오르며 털가죽이 타는 노린내가 풍겼다. 난폭한 거머리 카르닉티스(Carnictis)는 산성 독액을 뿜는다. 날뛰던 원숭이는 거머리를 깨운 죄로 순식간에 미라가 되었다.
‘저럴 수가!’
원숭이 때문이 아니었다. 음벰베는 새까맣게 달라붙는 거머리를 무시했다. 손으로 거머리를 툭툭 털어내며 태연히 전진했다. 거머리가 놈들의 피부에 이빨을 박지 못한다는 소리다.
-봤나?
-어케된 일입네까?
-주술로 피부를 강화했다. 땀 흘려 얻지 않은 신외 지물이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주지.
두웅- 공진파가 음벰베 정찰팀을 감쌌다. 피부가 공진파와 공명했다. 피칭- 피부를 한 겹 덮은 주술 막이 유리창이 깨지듯 허무하게 무너졌다. 간단한 한 수가 파멸적 효과로 나타났다. 카르닉티스가 산성 독액으로 옷을 태우고 연약한 살에 이빨을 박았다.
“아악!”
“으아악!”
비명이 터졌다. 얄미울 만큼 태연히 거머리 소나기를 지나가던 음멤베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진동을 감지한 거머리떼가 공중에서 연속 쏟아졌다. 거머리를 떼려는 몸부림은 부질없었다. 한 마리를 떼면 두 마리가 달라붙고, 동체가 끊어져도 주둥이는 달라붙어서 살을 뜯고 피를 빨았다.
“흐으으~”
한 마리는 별것 아니지만, 숫자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선우현도 비명을 삼키고 떨었다. 수만 마리 거머리에 뒤덮인 인간들이 발광하는 장면은 꿈에 볼까 두려운 아비지옥이었다.
비명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만찬을 끝낸 거머리가 꾸물꾸물 사라졌다. 땅에는 서른두 구의 미라만 널브러져 있었다.
“봤나?”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헉!”
잔뜩 긴장했던 선우현이 후다닥 물러났다.
“와킬! 식겁했습네다.”
“이것이 이투리다.”
“무슨 거머리가 저렇게 무섭습니까?”
“모양만 거머리다.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듣도보도 못한 생명체가 출현한다.”
“생물학자가 눈에 불을 키고 달려오겠습네다.”
“자살하고 싶으면 깔끔한 수단도 많아. 어쨌든 유쾌하진 않구마.”
블랙맘바가 목불인견의 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거머리가 물러난 자리를 개미와 송장벌레를 비롯한 청소부 벌레가 차지했다. 품위있는 죽음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다.
마이마이는 부두교 광신도가 주축이다. 카무게가 이끌던 담발라와 마찬가지로 살인, 방화, 강간, 납치, 식인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이다. 가차 없이 지우기로 마음먹었지만, 미물의 먹이가 되는 장면이 보기 좋을 리는 없었다.
“가자! 장례는 정글이 치러준다.”
블랙맘바가 발걸음을 돌렸다. 추적은 땅거미가 몰려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블랙맘바와 선우현은 무장 집단과 만나면 가차 없이 총탄을 뿌렸다. 동선이 겹친 음벰베 정찰대 두 개조가 지워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도 셋이나 지워졌다. 어차피 수색에 방해될 놈들이고, 살아있어 봐야 도움이 안 될 인간들이었다.
이튿날, 맘바사 북쪽을 흐르는 에플루강 지류가 앞을 막았다. GPS에 없는 강이다. 이투리 정글을 흐르는 지류가 몇 개인지 아무도 모른다. 강변에 무성한 홍수림과 캐노피에 가려진 폭이 좁은 지류는 공중에서 보이지도 않는다.
“와킬, 보트를 준비하겠습네다.”
선우현이 백팩 상부에 고박한 고무보트를 풀었다.
“아직도 적응 못 했군.”
블랙맘바가 죽은 듯 느릿느릿 흘러가는 검은 강물을 가리켰다. 선우현이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헐!”
손가락보다 긴 가시가 빽빽이 돋은 수중 식물이 잔뜩 보였다. 고무보트를 띄웠다간 억센 가시에 바로 찢기고 독충이 우글대는 강물에 빠질 게 뻔했다.
거머리도 이 정도 크기면…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