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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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필사의 탈출4
“그렇지. 늙은 개미들이 전위병으로 나서서 침입자를 견제하거나, 적진에 뛰어드는 공수특전대 역할을 하기도 해. 젊은 후손과 군집을 지키려는 눈물겨운 투혼이지.”
“우리처럼 말이지.”
“맞아, 인간은 반대로 추한 늙은이들이 안전한 후방에서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밀어 넣거든. 달콤한 결과물은 자신의 손에 넣고, 명예로운 죽음이니 고귀한 희생이니 하면서 피 흘린 자들을 추켜세우지.”
“희생자에겐 쓸모도 없는 쇳조각과 돈 몇 푼을 던져주고 끝내겠지. 재수좋으면 좋은 무덤자리도 얻고말이야.”
“바로 그거야, 늙은이들을 위해 싸우지 말게. 자네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우게. 늙은 오케오필라 스마라그디나 개미가 되지 말게. 자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네.”
“샤트르 충분히 공감한다. 고맙다. 당신은 훌륭한 동료다. 존경한다.”
블랙맘바는 인텔리 늙은 용병의 손을 힘주어 꼭 잡았다. 장황한 이야기지만 가슴에 스며들었다. 어린 후배를 아끼는 진심어린 충고였다.
샤트르의 메마른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천하의 블랙맘바에게 존경을 받다니, 내 생애 최고의 날이군. 자넨 영리하고 사려 깊은데다 생명력이 충만한 젊은이야. 권력자의 허울 좋은 부추김에 속지 말게. 자네의 능력을 알게 되면 누구나 이용하려고 할 거야. 충성이니 애국이니 하는 추상적인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게.”
“잘 알고 있다. 나도 바보가 아니다. 샤트르 말을 많이 하면 지친다.”
“블랙, 내 말을 막지 말게. 죽기 전에 꼭 할 말은 해야지. 자넨 우리를 이 지경에 몰아넣은 놈들을 씹어 먹고 싶겠지?”
“당연하다. 배신자와 음모자는 편하게 죽이지 않겠다.”
블랙맘바의 눈에서 불이 번쩍 일어났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놈이 뒤통수치는 놈이다.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야. 프롤리나트는 적이지만 그들은 적이 아니네. 그들도 나름대로 국익을 위해 일하는 인간들일세. 자네도 그 늙은이들을 이용하게. 죽이면 살인자가 되고 자네도 피해를 입네. 두고두고 빚을 받아내게.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해. 어머니를 찾아서 행복해야 되네. 동료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이 되는 신세라니, 빌어먹을! 크륵 크륵!”
말을 많이 한 탓인지 샤트르의 호흡이 급박해졌다.
“충고 고맙다. 샤트르는 최고의 동료다. 헬기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해.”
샤트르가 힘없이 눈을 감았다. 공진파에 간섭되는 샤트르의 생기가 급격히 떨어졌다.
용병은 전장이 있기에 존재하고, 전투력이 있기에 존재를 인정받는다. 샤트르는 부상 자체보다 전투력 상실을 두려워했다. 전투력을 잃었다고 판단되는 순간 생존 의지가 약해져 버렸다.
‘유언을 남겼군!’
블랙맘바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샤트르는 가족이 없다. 피부색깔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지만 자신을 동생처럼 아껴준 사람이다.
꺼멓게 죽어가는 안색이 가슴을 후볐다. 되지엠 랩에 배치된 그에게 첫 번째로 말을 걸어준 사람이 샤트르였다. 같은 분대원인 그는 형님처럼 세상살이와 지식을 가르쳐 주었다. 샤트르는 현학적인 면이 있지만 훌륭한 선배이자 편한 동료였다.
어린 후배 걱정에 잠시 정신을 차렸나 보다. 모포를 덮어주고 막사를 나섰다. 마음이 쇠뭉치처럼 무거워졌다. 샤트르의 부상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다. 자책감에 속이 썩어 문드러졌다.
자신도 죽음을 친구로 달고 다니는 용병이다. 총알이 사람 가려서 날아다니지 않는다. 삶은 천차만별이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어린 시절 폭발사고로 죽은 친구들이 묻힌 이름 모를 돌무덤들이 생각났다. 이곳에서 죽으면 어느 누구도 무덤을 찾아오지 못하리라.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블랙맘바의 한숨이 깊어졌다.
래쿤 작전 22일째, 치차 북쪽 60km지점.
본부에서 귀환 명령이 떨어졌다. 문제는 카넴주의 샤랄(Salal)까지 자력 탈출하라는 주문이었다. 지대공 미사일 때문에 탈출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전언이 첨부되었다. 깨비텐은 이빨을 갈았다.
“빌어먹을 새끼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과묵한 부리머와 모리스도 화를 삭이지 못하고 식식거렸다.
“놈들에게 밀려서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방어선을 뚫고 내려오라니, 이거 미친놈들 아냐!”
“젠장, 대장이 미쳤어.”
지도를 확인한 팀원들의 얼굴에 암담한 그늘이 졌다. 파야 길목에 있는 치차(chicha)는 보델레 저지 북서쪽 끝에 있다. 샤랄 까지 600km가 넘는다. 프롤리나트의 압박에 밀려 카넴 경계선을 뚫지 못하고 북서쪽으로 밀려왔다. 샤랄 까지 자력으로 오라는 말은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말이다.
블랙맘바가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지치고 힘든 얼굴이다. 이들을 데리고 600km를 돌파해야 한다. 거동 할 수 없는 샤트르도 있다.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남을까.
“빌어먹을 로스께 새끼들, 망할 놈의 그레일!”
스트렐라2의 나토 코드명이 SA-7 Grail이다. 스트렐라2는 지연신관도 없는 1인 견착식 대공 미사일로 사거리가 4km에 불과하지만 헬기를 위협하기엔 충분했다.
제세페 팀의 탈출로는 코로타로-네델리-문도-은자메나로 이어진다. 라텔팀에게 주어진 경로는 제세페팀 탈출로의 북쪽 경로다. 제세페팀의 몸빵 역할을 하도록 탈출로가 디자인 된 셈이다. 깨비텐은 자신의 팀이 마쿰보의 안전한 귀환을 보증하는 소모품으로 던져졌음을 알지 못했다.
프롤리나트의 차단막이 갑자기 두터워졌다.
샤랄로 뚫고 나가려 했지만 갈수록 그물이 촘촘해졌다. 하루 동안에 정찰대와 서너 번 맞닥뜨릴 정도였다. 미리 알아차린 블랙맘바가 계속 차량을 우회 기동토록 했다.
쿠보롱가(Kouba Olanga)까지 100km를 남하했던 라텔 팀은 다시 치차까지 되밀렸다. 소규모 프롤리나트 정찰대를 피하려다 보니 계속 북쪽으로 밀린 것이다.
블랙맘바가 강행 돌파를 주장했지만 깨비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극적이 된 깨비텐이 못마땅했지만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일시에 부하 셋을 잃은 깨비텐이다. 그는 전투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부하의 죽음을 다시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샤트르의 상태가 급속히 나빠졌다.
근육경련과 고열이 그를 녹다운시켰다. 성대가 굳어지자 대화가 불가능해졌다. 블랙맘바에게 늙은이의 이용물이 되지 말라고 당부한 말이 마지막 말이 되었다. 중환자가 생기자 라텔 팀의 행보는 더욱 무거워졌다.
“옴부티, 곧 모래바람이 몰려온다.”
공진파는 새로운 감각이 되었다. 공기 중의 습도 변화와 대기의 흐름이 절로 잡혔다.
“모래바람까지 느끼다니, 와킬은 투아레그족이 되셨습니다. 곧바로 휴식처를 찾겠습니다.”
옴부티가 감탄했다. 와킬은 보면 볼수록 신기한 사람이다.
“여기는 어디지?”
“두조랍 에르그(Erg Djourab)입니다. 사만 평방키로쯤 될 겁니다. 메마른 사헬에서도 가장 쓸모없는 땅이죠. 에르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구만 중첩된 지형이 나타납니다.”
“이곳은 모래라기보다는 진흙에 가까운 느낌이다.”
“옛날에 큰 강이 흘렀다고 합니다. 강물이 모래와 진흙을 퇴적시킨 거죠.”
블랙맘바는 잠시 멈추어 서서 공진파를 발산했다.
땅 아래 깊숙이 거대한 수맥이 느껴졌다. 유사까지는 아니지만 앞쪽에서 빨려 들어가는 뻘과 모래가 기감에 잡혔다.
차량 무게가 올라서면 그대로 삼켜버릴 것이다.
“옴부티, 우측으로 300미터 우회해서 이동하라.”
“알겠습니다.”
-와킬의 결정이다. 지금 위치에서 300미터 우회 기동한다. 각 차량은 바짝 밀착하라.
-롸저
옴부티는 블랙맘바의 말이면 반문이나 질문을 하지 않았다.
“45도 좌회전”
“30도 우회전”
블랙맘바는 계속 방향을 지시했다.
“옴부티, 두조랍에서는 실종 사고가 많이 발생하겠군.”
“그렇습니다. 유사지대가 많습니다. 만월이 뜰 때면 모래폭풍에 묻히기도 합니다.”
“놀랍다.”
“유사지대나 숨겨진 돌리네를 피해가는 와킬이 더 놀랍습니다.”
“투아레그 전사를 하인으로 두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블랙맘바가 빙긋이 웃었다.
백미러로 주인의 표정을 살피던 옴부티의 얼굴에 주름이 물결쳤다.
“주인의 위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지 않는 늙은 하인의 대답에 블랙맘바는 뒷목을 움켜쥐었다.
“놈들이 장갑차와 바이크를 끌고 오기는 쉽지 않겠군.”
“통로를 모르면 어렵지만 놈들도 지형에 익숙한 만큼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블랙맘바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깨비텐까지 컨디션이 나빠졌다. 정상적인 사람은 옴부티가 유일했다. 사헬에 던져진 오소리들은 모두 이빨이 빠져 버렸다. 병든 오소리를 몰고 다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옴부티는 유사를 피해 에르그 내부로 선도차를 절묘하게 이끌었다.
차츰 이질적인 풍경이 나타났다. 풍경이 달라진다는 옴부티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사막이 펼쳐졌다.
“세상에 이런 곳이!”
여태까지 보아온 풍경도 황량했지만 두조랍 에르그는 상상을 절했다. 거인이 흙덩이를 뭉쳐서 툭툭 던져 놓은 듯 한 낮은 구릉이 지평선까지 규칙적으로 퍼져 있었다. 반대쪽엔 바람이 만들어 놓은 사구가 물결처럼 중첩되어 거대한 톱날 형상을 만들었다.
푸른색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사헬 어디에나 흔하게 보이는 아카시아 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검붉은 사암과 바퀴가 푹푹 빠지는 다갈색 모래밭만 끝없이 펼쳐졌다.
거대한 절벽 아래에서 옴부티가 픽업을 멈추었다.
비교적 컨디션이 좋은 부리머, 마이크, 장쒼, 에밀이 숙영 준비에 들어갔다.
“어휴! 이게 도대체 높이가 얼마야?”
블랙맘바는 점토질 대지에 뿌리를 박고 치솟은 거대한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절벽이 아니라 모래바람에 풍화된 거대한 바위 군락이다.
병풍처럼 직각으로 솟은 바위는 백 미터도 넘을 것 같았다. 짚은다리 독수리 바위는 명함도 내밀기 힘들었다.
‘퇴적암인데, 위쪽은 편마암이고 아래쪽은 석회암이 섞였네. 이래서야 세월이 흐르면 꽈당 하겠어.’
블랙맘바는 바닥의 흙을 들여다보고, 바위를 두드려보고, 코를 박고 냄새를 맡기까지 했다.
아프리카는 지겹지만 신기한 대지다.
야만과 야생의 대지, 인간이든 동물이든 힘센 놈이 살아남는 땅이다.
북쪽으로 미국 넓이와 맞먹는 사막이 끝없이 펼쳐진다. 서쪽으로 인도 크기의 방대한 열대우림이 펼쳐진다. 남쪽에는 끝없는 초원이 수천 킬로 뻗어있다.
뺑이 치는 이곳은 메마른 대지 사하라의 변경이다. 그 변경에도 이처럼 메마른 땅이 있을 줄은 몰랐다. 블랙맘바는 호기심이 많다. 새로운 사물에 열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부리머, 블랙은 역시 다르군. 쉬라고 해도 자진해서 지형을 파악하고 몸을 풀고 있군 그래.”
“용병의 교과서죠.”
“다들 본받아야 해.”
‘뭐? 용병의 교과서? 저 양반들이 일사병에 걸렸나.’
깨비텐과 부리머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쒼은 기가 막혔다. 블랙맘바의 행동은 단지 호기심의 발로다. 그의 행동은 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아이의 행동일 뿐이다. 감탄하는 팀장과 부팀장의 정신 상태가 걱정되었다.
“젠장, 잘난 놈은 싸지른 똥도 예쁘다는 건가!”
괜스레 성질이 난 장쒼이 거칠게 모래를 파냈다. 빨리 방어 진형을 짜야 뱃속을 채울 수 있다.
모래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저 시계가 흐려지는 정도인 보델레의 모래바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천지 사방이 모래로 가득차고 시계는 제로에 가까웠다. 바람소리가 위이잉이 아니라 콰우웅하고 울렸다. 모래가 지면을 긁는 소리다.
“으으, 지겨워, 정말 지겨워!”
마이크가 진절머리를 치며 잽싸게 고글을 걸쳤다.
“낙타 눈썹이 길고 촘촘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어.” 장쒼도 진저리를 치며 고글로 눈을 가렸다.
사헬에 익숙해진 용병들도 두조랍의 모래 폭풍에는 식겁을 했다. 리탐을 단단히 감고 고글을 꾹 눌러 썼다. 미세한 모래와 먼지는 컨디션 유지의 제 일적이다. 안질환, 기관지염, 후두염, 폐렴의 원인이 된다.
용병은 몸뚱이가 재산이다. 자기 재산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
주1) DjourabErg : 챠드 북부 주도인 파야 남쪽에 위치한 거대한 모래 사막. 폭20km 길이200km로 사하 라와 연결되지 않은 사구다.
Erg : 사막지대의 분지에 충적된 대규모 모래집적지역. 종래의 하천이 충적층을 만든다. 모래 밀도가 낮아 차량 운행이 어렵다. 풍화된 사구, 사암층과 어울려 특이한 풍경을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