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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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장 아프리카의 한국인4
“지렁이, 아니 정필수입니다.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어제 안기부 해외 파트에서 중요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발신자는 박 참사관, 발신지는 아프리카 자이르였습니다.”
“오빠는 잘 계신가요?”
진순은 자이르가 이웃 동네인양 무덤덤했다.
‘강적이다!’
귀납식 말을 던져놓고 눈치를 보던 정필수는 감탄했다. 보통 여자라면 질문을 열 개쯤 던졌을 것이다. 빈약한 설명과 아쉬운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몇 마디 못하고 전화가 끊어졌어요. 아프리카의 통신 시스템은 개판이거든요. 박 참사관의 소재지를 확인해서 우리 쪽에서 다시 연락하려고 합니다. 현재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헛걸음하셨네요. 오히려 내가 오빠 행방을 묻고 싶어요. 아시다시피 오빠는 에이전트입니다. 에이전트가 가족에게 행적을 줄줄 흘리고 다닐 거로 생각하셨다면 안기부가 걱정이네요.”
진순이 딱 잘랐다. 정필수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콱 막혔다. 예쁜 입에서 어떻게 저런 단호한 말이 튀어나오는지 불가사의했다.
“아가씨, 전화 한 통화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박 참사관께도 도움이 되면 되었지 절대로 해가 되지 않습니다. 억수로 높은 분 지시를 받고 왔는데 그냥 돌아가마 저는 묵사발 납니다. 결혼 날짜까지 받아놓았는데 직장을 잃으마 지는 우얍니꺼.”
정필수는 늑장거리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건지지 못하면 성질 나쁜 차장에게 정강이를 헌상해야 한다. 여자가 상대일 경우에 고전적인 동정심 유발 작전은 의외로 잘 먹히는 방법이다. 물론 역효과가 나타날 때도 있다.
“정부가 도움을 준다꼬요?”
진순이 못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이 반문했다. 오빠가 위험에 처하면 지하실에서 빈둥대는 깜둥이와 어디엔가 몸을 숨기고 있을 치킨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해외에 나간 국민에 관심도 없는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찔끔한 정필수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오빠는 정 때문에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어요. 도움받은 적도 없고 앞으로 도움받을 일도 없어요. 거액의 외화를 벌어오고 쓰레기 청소를 해주는 오빠가 나라에 도움을 주는 기지요. 젊은 분이 직장을 잃는다니 마음은 쓰이네요.”
보니파스 아저씨와 옴부티 아저씨께 연락하면 바로 알 수 있지만, 행적을 알려줄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안기부는 발목을 잡았으면 잡았지 손톱만큼도 도움될 여지가 없다.
“바로 그겁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저도 살려주고 애국심도 발휘해 주이소. 박 참사관이 위험에 빠진 것 같아요. 안기부는 요원을 파견해서 박 참사관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정필수가 불쌍한 표정으로 없는 말까지 지어냈다. 무소불위의 안기부를 개밥그릇 취급하는 아가씨가 괘씸했지만, 아쉬운 쪽이 통사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 정부가 해외에 나간 국민의 신변을 걱정하다니 별일이네요. 저도 알려드리고 싶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거지예. 대충하고 고마 돌아가시소. 때를 놓치면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갑니데이.”
진순은 인내심이 바닥났다. 영양가 없는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헉!”
정필수는 머리끝이 쭈뼛했다. 미모에 취하고 임무에 몰두하다가 문화원이 요괴 소굴임을 잊었다. 그는 어마 뜨거라 하고 엉덩이를 들었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모친께는 용서를 구한다고 전해주시소. 혹시라도 곤란한 일이 생기마 연락주이소.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오겠심더.”
정필수는 정중히 사과하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웃기고 있어. 오빠가 어떤 분인데 니들이 도움을 준다 카노. 내도 오빠를 이용해 묵을라 카는거 다 안다.”
듣고 있던 우순이 쫑알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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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고?”
이대덕이 혀를 찼다. 능구렁이 정필수가 학을 뗄 정도면 틀렸다.
“어쩐다?”
타들어 가는 담배만큼이나 심장도 타들어 갔다. 박통 사후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장기적인 국가안보를 포기하고, 단기적인 정권안보를 택했다. 후안무치한 자들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국가 미래를 팔아먹었다.
자주국방의 산실인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무력화하고, 미사일 개발팀을 해산했다. 핵과 미사일 개발 자료를 몽땅 CIA에 넘기고 미군 치장 무기와 불용 무기를 무차별 도입했다. 그 결과 국방 예산이 국가 예산의 25%까지 급상승했지만, 국방력은 오히려 퇴보했다.
“망할 새끼들, 개나 소나 건물 몇 채는 챙겼겠지.”
흔적없이 사라진 수천억 뭉칫돈의 종착역은 뻔했다. 88담배 갑에서 돛대를 빼서 피던 담배꽁초로 불붙였다. 돌아가는 꼬락서니와 앞날을 생각하면 잦은 한숨에 담배만 늘었다.
하늘이 불쌍히 여겨서 상온초전도체를 입수해도 문제다. 미국에 바치자는 놈이 수백 명이고 일본으로 빼돌릴 놈은 그보다 더 많다. 애써 개발한 핵 기폭장치를 CIA로 빼돌린 놈이 대통령 최측근이다. 믿을 놈은 아무도 없었다.
띠이- 인터폰이 울렸다.
“들어와!”
비서가 파일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대구 프랑스 문화원으로 배달된 세관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영국 대사관과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서 전달된 물품은 리스트에서 빠졌습니다.”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코르시카 깔비, 프랑스 오바뉴,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챠드 은자메나, 지부티 알모크, 싱가폴, 홍콩, 많기도 하구먼.”
“제일 빈번한 발송지는 차드 은자메나입니다. 민감한 품목은 없고 포도주, 담배, 견과류, 기타 식재료와 공예품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군. 여긴 어디야?”
이대덕이 차드 주소를 짚었다. 괴발개발 아랍어였다.
“저도 아랍어는…….”
비서가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야, 아랍어 아는 녀석 데려와.”
비서가 후다닥 튀어나갔다.
“추웅성! 대리 김명진 부르심 받고 왔습니다.”
졸지에 차장실로 끌려온 김명진은 잔뜩 긴장했다.
“인마, 귀청 떨어지겠다. 여기가 어디야?”
“옙, 차드 은자메나 일르끌레흐 3구역 와킬 상회입니다.”
“호오! 다른 외국어도 할 줄 알아?”
“제2 전공은 불어입니다.”
“굳뜨! 너 아프리카로 출장 가라.”
“예에?”
김명진이 입을 쩍 벌렸다. 밤중에 홍두깨도 이런 홍두깨가 없었다.
순전히 아랍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지옥행 열차를 탄 김명진은 자료실로 직행했다. 달리 검은 대륙이 아니었다. 정보가 캄캄했다. 외교부와 관광공사에 협조를 구했지만, 딸랑 팩스 한 장이 날아왔다.
[자료 없음]대사관을 순례한 끝에 카메룬 대사관에서 차드와 자이르의 기본 자료를 용케 입수한 김명진은 코마 상태가 되었다.
그날 저녁, 김명진은 포장마차에서 못 마시는 술을 진탕 마셨다. 듣도보도 못한 차드란 동네로 출장 가란다. 그곳에서 딸랑 소포 발신자인 마탕가란 인간을 만나서 자이르로 들어가란다.
차드와 자이르는 풍토병과 밝혀지지 않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지천이고, 정글에는 식인종이 돌아다니는 끔찍한 땅이다. 게다가 내전으로 날마다 수십 수백 명이 죽어 나가는 무법천지다.
김명진은 고삐리 시절에 농땡이 친 자신을 저주했다. 수험생을 학력고사 성적순으로 서울서 부산까지 일렬로 세우면 대전쯤에 위치했다. 어중간한 성적으로 들어갈 곳은 인기 없는 중국어과와 아랍어과밖에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선택한 아랍어가 대박을 쳤다.
세상은 변한다. 중동 붐을 타고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았다. 개털이 졸지에 밍크 털로 변했다. 대형 건설업체를 마다하고 안기부 특채에 응한 이유는 순전히 폼을 잡고 싶어서였다.
새옹지마, 호사다마라 했던가. 아랍어를 전공한 덕분에 무게 잡고 한세월 보냈는데 이번엔 아랍어 때문에 죽을 자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김명진은 한숨을 안주 삼아 두꺼비를 줄 세웠다.
김명진이 아랍어 때문에 똥을 밟았다면 정필수는 박무쌍과 구면(?)이란 이유로 똥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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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뜨기 시작한 강남 포세이돈, 정필수는 편치않는 양주를 홀짝였다. 비싼 술값이야 차장이 내겠지만, 룸살롱에 여자까지 안겨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술이 얼큰히 올랐을 때 이대덕이 여자를 내보냈다.
“정필수 요원,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뜨악한 정필수가 이대덕의 눈알에 시선을 맞추었다. 십수 년 만에 들어보는 입사 당시의 질문이다. 간만에 비싼 술 먹는다 했더니 지부장, 아니 차장이 돌았다. 다행히 눈알이 좌우로 분주히 움직이는 상태는 아니었다.
“차장님, 재미없는 농담을 참 재미없게 하십니다.”
“정필수, 장난 아니다.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칠 각오가 되어 있나?”
“넵, 당연합니다.”
정필수는 일단 장단을 맞추었다.
“확실하지?”
‘이 양반이 와 이카노?’
정필수는 은근히 뒤통수가 당겼다. 이대덕과 1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근무하는 동안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넵, 이미 국가에 바친 몸입니다.”
말하고도 몸이 오글거렸다.
‘바치긴 개뿔을 바쳐! 전세금과 딸년 우윳값이 사나이 정필수를 죽이는구마.’
이대덕이 맥주컵에 양주를 가득 따라 내밀었다.
“고맙다, 내일 아프리카로 출발해라.”
“머라꼬예? 아프리카요?”
정필수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래, 갈 사람이 니밖에 없다. 김명진이 데리고 자이르에 갔다 온나.”
“진짭니까?”
정필수는 찬물을 뒤집어쓴 듯 오한이 들었다. 알딸딸하던 정신이 홱 돌아왔다.
“이 자식아, 내가 니하고 농담할 군번이가!”
이대덕이 눈을 부라렸다.
‘쓰파, 비싼 술 멕일때 알아본기라. 도야지도 잡기 전에 잘 멕인다 카디마는…….’
정필수가 찔끔했다.
“아프리카 어딘데요?”
“모른다.”
“컥, 만날 사람은 누굽니까?”
“블랙맘바!”
“헉, 블랙맘바!”
간단명료한 대답에 들고 있던 맥주잔에서 비싼 양주가 쏟아졌다. 정필수의 얼굴이 노래졌다. CIA 한국지부가 안기부와 자료를 공유하면서 알려진 세계 최고의 에이전트, 사막과 정글을 넘나들며 모가지 수천 개를 잘랐다는 죽음의 천사가 블랙맘바다. 아프리카 출장도 놀라자빠질 노릇인데 레전드 살인마를 면담하라니! 기가 막히다 못해 억장이 무너졌다.
“얼굴도 모르는 블랙맘바를 어떻게 만납니까?”
“얼굴을 왜 몰라.”
이대덕이 사악한 미소를 떠올렸다.
“……?”
“니는 속도 좋다. 디지게 처맞고도 벌씨로 이자뿟나?”
푸악- 우당탕- 어리둥절하던 정필수가 마시던 술을 뿜어내고 벌떡 일어났다. 그 서슬에 육중한 테이블이 엎어졌다.
“그 그 그 새끼가 블랙맘바!”
“짜슥아, 짬밥이 얼만데 호들갑이고?”
“진짭니까?”
“진짜다. 죽을 때까지 발설하지 않는다고 약속했지만, 어차피 만나야 하니까 할 수 없지. 나는 이제 죽은 몸이다.”
“진짜구마요!”
이대덕이 죽든 말든 상관없지만, 박무쌍과 블랙맘바가 동일인이라면 세상이 뒤집힐 사건이다.
“그래 임마, 나는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능 기라.”
“어이가 없네요. 어쩐지……. 내가 악어 아가리에 머리를 처넣고 실실거렸구마요.”
“비밀은 지켜야 한다. 김명진에게도 말하지 마라.”
이대덕이 목을 쓰윽 긋는 시늉을 했다.
“어차피 디질낀데요. 저 같은 서민이 지옥에서 하루라도 버틸 수 있겠어요?”
“안 죽고 살아오면 과장 진급이다. 구면인데 블랙맘바가 목을 댕강 자르기야 하겠나.”
“전혀 위로가 안 되거든요.”
정필수가 침울한 얼굴로 황금빛 액체를 노려보았다.
“인마, 죽을 놈은 안방에서도 죽고, 살 놈은 사자 우리에서도 살아. 인생은 짧고 굵게 살아야 해.”
이대덕이 두툼한 손으로 정필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지기미, 막잔 이구마!’
손에 든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누라와 새끼는 어쩌란 말인가? 죽은 다음에 국립묘지에 묻히고, 진급하면 무슨 소용인가. 그냥 가늘고 길게 살고 싶었다.
“주소 한 줄 들고 그 인간을 찾아가라고요?”
정필수의 목소리에 힘이 쭉 빠졌다.
“임마, 우리가 언제 매트리스 깔고 꽃놀이했냐?”
“떠그럴!”
정필수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와킬 상회라는 주소 한 장 달랑 들고 블랙맘바를 찾아가란다. 상사맨은 팸플릿과 안내서만 들고 세계를 누빈다지만, 그들은 적어도 사하라 사막과 식인종이 설치는 정글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
“으 질린다 질려.”
한국인의 독기도 바닥을 보였다. 두 사람의 얼굴은 식초를 한 숟가락 퍼먹은 듯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게이트를 빠져나온 김명진이 다리를 휘청거렸다. 비행기를 네 번이나 환승하고, 일주일이 걸려서야 은자메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씨발, 망부석도 아니고……. 대기 시간이 어떻게 비행시간의 열 배나 되느냐고!”
저질 체력이 방전된 김명진이 힘없이 투덜거렸다.
“아구구, 나도 온몸이 쑤신다.”
정필수가 두 팔을 쳐들고 진저리를 쳤다. 공항 벤치에서 쪽잠을 자다 보니 컨디션이 바닥인데다 입성도 말이 아니었다. 택시 승강장에서 두 한국인은 또다시 좌절했다.
“허이구, 저걸 우예 타노!”
정필수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택시 승강장인지 폐차장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백미러가 없거나 전조등이 깨진 택시는 애교 수준이었다.
바퀴 트레드가 닳아서 타이어 코드지가 드러난 택시가 대부분이었다. 펑크나지 않고 굴러가는 게 신기했다. 압권은 문짝이었다. 문짝이 제대로 달린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고르고 골라서 문짝 세 개가 남아있는 택시를 탔다.
“농 뿌라브럼!”
택시 기사가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었다. 유창한 프랑스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