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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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장 아프리카의 한국인5
‘택시기사가 불어를 하네.’
김명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교통 표지판도 대부분이 프랑스 도시나 정치인 이름에서 따온 불어표기였다. 쌩 마틴, 보르도, 마르세유, 아방가르, 나폴레옹 등등.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한국 거리에 야스쿠니로, 이토 히로부미 사거리, 히로히토 고속도로 따위의 이름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 표지판은 박살 나고 책임자는 매국노로 난타당할 것이다.
“정 선배, 도로 표지판이 불어네요.”
“그게 뭐 이상해?”
정필수가 영혼 없이 반문했다. 머릿속에 블랙맘바만 가득했다.
“이상하지요. 우리는 36년이지만, 차드는 76년 동안 프랑스 식민지였거든요. 강산이 여덟 번 변하도록 피눈물을 쪽쪽 빨렸으면 이빨을 갈아야죠. 우리는 일본 잔재를 지운다고 난리잖아요.”
“우리가 별종이라서 그래. 대만과 동남아시아는 우리처럼 당하고도 일본놈 똥구멍을 빨잖아. 그라고 남 말 할 것 없어야. 우리나라에도 쪽바리 똥구멍 빠는 새끼들이 천지삐까리거든.”
정필수는 심드렁했다. 머릿속에 임무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차드가 불어를 쓰든 외계어를 쓰든 알 바 아니었다.
“씨발 조또, 아랍어는 개뿔이! 불어 전공한 에이전트가 널렸는데 홍보 담당을 끌고 와서 어쩌자는 거야. 대덕인지 악덕인지 엿 먹어!”
시내로 진입하자 창밖을 보던 김명진이 발광했다. 눈에 보이는 간판은 대부분이 불어였다. 아랍어를 몰라도 아무 문제 없었다.
“인마, 나는 존나 얻어터진 것도 구면이라고 대덕이가 궁디를 걷어차서 보냈어.”
정필수가 눈을 흘겼다. 그도 억울하고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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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끌레흐 지역에 위치한 와킬 상회는 공항과 지척이었다. 문짝 없는 택시는 마르세유로를 15분 남짓 달려서 와킬 상회 정문에 도착했다.
“어디서 왔나?”
소총을 든 경비원이 후줄근한 차림으로 얼쩡대는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우리는 꾸리아에서 왔다.”
“꾸리아? 동방의 나라!”
경비원이 인상을 풀고 넙죽 허리를 숙였다. 동방의 나라라 불리는 꾸리아는 뚜바이부르파가 태어난 성지다. 급 공손해진 경비원이 사무실로 안내했다.
“화, 한국을 아네!”
“우리나라도 많이 발전했구마.”
사정을 모르는 정필수와 김명진이 감탄했다.
“삐에세 데 와킬(와킬의 방), 사장실인가?”
룸에 붙은 목패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김명진이 방안에 들어서자 만세를 불렀다.
“세상에! 금성 에어컨이잖아.”
로고도 선명한 국산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고 있었다. 고생고생해서 찾아온 아프리카 오지에서 만난 국산 에어컨은 감격이었다.
“헉, 저 저!”
정필수가 더듬거렸다. 정면 벽 전체를 차지한 한 폭의 벽화가 눈텡이를 때렸다. 푸른 호수를 뒷짐 지고 걷는 인간, 황금색으로 타오르는 후광, 하늘에서 쏟아지는 서광, 호숫가에서 열광하는 수많은 군중…….
‘저 인간이 왜?’
정필수의 영혼이 유체이탈했다.
“예수님은 아닌데…….”
김명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몇 번을 봐도 두루마기 비슷한 흰옷을 입은 남자는 잘생긴 동양인 청년이었다.
“악트! 뚜바이부르파 에스터 아베크 누!(뚜바이부르파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경비원이 부동자세로 외쳤다. 정필수가 입을 쩍 벌리고 어리둥절한 김명진이 경비원을 쳐다보았다.
“예를 올리시오. 노바토피아의 주인, 위대한 신인 뚜바이부르파 님이십니다.”
경비원이 당장 총을 쏠 듯이 굳은 얼굴로 재촉했다.
“니미 조또!”
정필수가 썩어 문드러진 얼굴로 허리를 숙이고 김명진은 영문도 모르고 허리를 숙였다.
“정 선배, 저 사람은 누굽니까?”
“우리가 만날 사람이다.”
“엑! 우리가 사이비 교주를 만나려고 지구를 반 바퀴나~”
“헛!”
정필수가 잽싸게 김명진의 입을 막았다.
“명진아, 석 달 열흘 피똥 싸고 싶지 않으면 입을 조심해라.”
“퉤퉤, 손이나 씻어요. 도대체 누굽니까?”
“에이 씨, 나도 몰라. 우리 같은 서민은 평생 연구해도 모를 사람이다.”
정필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골치가 지끈거렸다. 덜컹- 군복 차림의 석탄처럼 검은 거인이 들어섰다. 흑인이 벽화를 향해 공손히 절하고 돌아섰다.
“앗 살람 알라이 쿰. 푸르싸 싸이-다, 아나 우드아- 킴 와 정 꾸리아.(알라의 가호가 있기를, 처음 뵙겠습니다. 한국의 김과 정입니다.)”
김명진이 갈고닦은 아랍어를 뽐냈다. 그리고 곧바로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나는 마탕가다. 한국인인가?”
흑인의 입에서 유창한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헉!”
“머라꼬예?”
오리지널 한국인 두 사람의 입이 쩍 벌어졌다.
“놀랄 것 없다. 노바토피아 제1공용어가 한국어, 제2공용어가 프랑스어다.”
“끄윽, 빌어먹을 인간!”
김명진이 뒷목을 움켜잡았다. 노바토피아가 뭔 나라인지 모르지만, 아랍어는커녕 프랑스어도 필요 없지 않은가! 억울한 나머지 눈물이 찔끔 나왔다.
“한국인이 찾아왔다기에 이 방으로 모셨다. 이 방은 주인님의 주인님이신 뚜바이부르파님이 머물렀던 방이다. 영광으로 생각해라.”
‘퍽이나!’
정필수가 삐죽거렸다.
“노바토피아의 차량, 전자제품, 의류 등은 전부 한국산이다. 저 에어컨도 일본제 에어컨이 보기 싫다고 뚜바이부르파님이 보내 주셨다. 내 방에도 한국산 에어컨이 잘 돌아간다.”
‘일본을 싫어하는 걸 보니 뚜바이부르파가 박무쌍이 맞나 보네.’
정필수가 비시시 웃다가 아차 했다. 마탕가는 노바토피아를 여러 번 언급했다. CIA 자료에서 노바토피아를 얼핏 본 적이 있다. 아프리카 신생 공화국이거니 했는데 흑인의 입에서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노바토피아는 어디에 있나?”
“허, 한국인이 위대한 뚜바이부르파의 나라, 노바토피아를 모르다니……. 당신들 한국인이 맞나?”
마탕가가 반문했다.
“뚜바이부르파 고향이 짚은다리인가?”
정필수가 확인 들어갔다.
“오! 지푼다리를 알다니 한국인이 맞는군.”
마탕가 표정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노바토피아 수도 지푼다리는 뚜바이부르파 고향 마을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렇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다. 당신이 와킬 상회 사장 옴부티인가?”
김명진이 재차 확인했다. 아랍인은 이름에 부족, 씨족, 가계까지 넣으므로 이름이 소꼬리만큼이나 길다. 마탕가가 옴부티의 미들 네임일 수도 있다.
“아니다. 나는 위대한 뚜바이부르파님의 다섯 번째 하인 아흐마드 님의 제자다. 현재 하인장 옴부티 님을 대리해서 와킬 상회 사장을 맡은 하인 후보자 마탕가다.”
마탕가가 가슴을 쭉 폈다. 자부심과 자긍심이 철철 넘쳤다.
‘씨바, 하인이 벼슬이냐! 하인 후보자는 또 머꼬? 그 인간과 관련된 것들은 전부 맛이 갔어.“
정필수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는 하인이란 명사가 가지는 의미를 상상도 못 했다.
“옴부티 씨는 어디 있나?”
“본국에 계신다. 그분은 위대한 뚜바이부르파 님을 대리해서 노바토피아를 다스리는 총독이시다.”
“옴부티 씨가 총독이라고? 그럼 뚜바이부르파가 왕인가?”
정필수는 현기증이 일었다. 용병, 프랑스 고위 관료, 죽음의 천사 블랙맘바, 사이비 교주, 신생 국가의 왕, 서른도 안 된 인간이 이럴 수는 없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한국인이 뚜바이부르파 님을 모르다니 이해가 안 되는군. 우리의 왕 뚜바이부르파 님은 알라의 화신이시다. 하인이 아닌 나는 감히 위대한 분을 언급할 수도 없다.”
마탕가가 왕방울 같은 눈으로 김명진을 응시했다.
“알라의 화신!”
김명진과 정필수가 입을 쩍 벌렸다. 마호메트도 알라의 전령, 예언자에 불과하다. 이슬람에서 알라의 화신이란 말이 갖는 의미는 엄청나다. 당장 전쟁이 벌어질 망발이다.
“저 그림이 진짜란 말인가? 그는 인간이다.”
빈정 상한 정필수가 도발했다. 마탕가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슁- 섬광이 번쩍했다.
“헉!”
기겁한 정필수가 후다닥 물러났다. 철컥- 두 자 길이의 중도가 칼집에 들어갔다. 후두둑- 정필수의 상의 단추 다섯 개가 줄줄이 떨어졌다. 아연한 정필수가 대거리할 엄두도 못 내고 멍하니 마탕가를 쳐다보았다. 상상도 못 해본 엄청난 검술이었다.
“어리석은 인간, 한국인이 아니었으면 목을 잘랐다. 저 벽화는 한치의 틀림도 없다. 우리의 왕께서 보름달이 뜬 날, 신수 디노를 거느리고 광휘를 뿌리며 신성한 호수를 건너오셨다. 그리고 노바토피아 헌법이 된 호수 수훈을 내리셨다. 내가 목격하고 노바토피아 신민 수만 명이 목격했다.”
“헐!”
정필수와 김명진은 할 말을 잊었다.
“뚜바이부르파 님은 잠시도 눈을 깜박이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는 존재하는 신이시다. 무정한 신이 아니라 따뜻한 신이시다. 당신은 절망에 빠진 수백만의 난민을 위해 자신의 땅을 대가 없이 내줄 수 있는가? 그들을 먹여 살리려고 수백억 달러를 내놓을 수 있는가? 생면부지의 인간을 위해 수만 명의 적과 맞설 수 있는가? 힘없는 늙은이, 부모 잃은 고아, 남편 잃은 과부를 위해 집을 짓고 일거리를 만들 수 있는가?”
마탕가의 눈이 불꽃처럼 번쩍이고 목소리에 진심과 경건함이 가득했다.
“……”
“흐으~”
할 말을 잃은 정필수와 김명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광신도 이쯤 되면 예술이다. 박무쌍이 얼마나 쪼잔하고 독한 놈인지 말했다간 목이 댕강 날아갈 판이다.
“뚜바이부르파께서 말씀하셨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지만 주어진 시간은 공평하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라. 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뚜바이부르파여 영원하라! 그래서 우리도 구하러 왔다.”
김명진이 순발력 있게 말꼬리를 잡았다.
“이곳을 어떻게 찾아 왔나?”
“와킬 상회가 한국으로 보낸 특송 물품 주소를 들고 찾아 왔다.”
“헐, 뚜바이부르파 님의 고향 사람이 다르긴 다르군!”
마탕가가 감탄했다. 땟국이 줄줄 흐르는 행색이지만, 무모할 정도의 용기와 기백이 마음에 들었다.
“왜 왔나?”
“뚜바이부르파의 전화를 받았다. 질문에 답해주려고 직접 왔다.”
“오오! 신실하도다. 뚜바이부르파여 영원하라!”
마탕가가 두 팔을 쳐들고 외쳤다. 뚜바이부르파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온 손님이다. 급 호감이 생겼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라. 슈베르제 후보자로써 도와주겠다.”
“명진아, 슈베르제가 머꼬?”
“진정한 귀족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 슈베르제는 뚜바이부르파의 위대한 하인이다. 무엇을 도와줄까?”
“교통편을 알선해 달라.”
“계신 곳은 알고 있나?”
“모른다. 전화 발신지는 자이르였다.”
“자이르로 가는 방법은 알고 있나?”
“모른다.”
“그곳의 사정은 알고 있나?”
“모른다.”
모른다는 대답만 해야 하는 정필수는 죽을 맛이었다. 차라리 마탕가가 한국어를 모르면 뭉개기라도 할 텐데 그럴 수도 없었다.
“당신들 준비가 많이 부족하다. 한국인은 똑똑하다고 했는데 당신들은 아닌 것 같다.”
기어이 맹구 아니냐는 카운터 펀치가 날아들었다. 정필수와 김명진의 얼굴이 벌게졌다. 멍청한 한국인이 된 두 사람은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뚜바이부르파 님은 미사일과 로켓포가 쏟아지고 맹수와 독충이 날뛰는 자이르 북동부 이투리 정글에 계신다. 이투리는 수만 명의 군인과 반군 게릴라, 첩보원들이 뒤엉켜서 하루에도 수백 명이 죽어 나가는 아수라장이다. 자비로우신 뚜바이부르파 님은 신민의 희생을 원치 않으셨다. 쫄따구 하인님만 데리고 가셨다.”
정필수와 김명진의 얼굴이 허옇게 떴다.
“정 선배, 우린 조졌다.”
“니미, 그 인간과 선이 닿았을 때 이미 조졌어. 이럴 줄 알고 내사마 유서까지 써 놓고 왔다 아이가.”
정필수는 정말 억울했다. 블랙맘바와 엮이게 된 원인이 이대덕의 명령이었다. 상관을 잘못 만난 탓에 밥숟가락을 놓게 생겼다.
“은자메나에서 맘바사로 갈 방법은 항공기밖에 없다. 맘바사에서 제일 가까운 부카브 비행장까지 2,700km다. 부카브에서 맘바사까지는 직선거리로 465km, 도로를 타면 1,100km다. 교통수단이 없으니 어차피 걸어야겠군.”
“뜨헉!”
“헉!”
두 사람은 헛바람을 뱉었다. 2,700km면 서울에서 도쿄 간 거리의 두 배도 넘는다. 게다가 정글을 뚫고 465km를 걸으라고? 이역만리 아프리카 땅에서 노상귀가 될 판이다.
“마탕가, 방법이 없겠소? 우리가 무슨 재주로 찾아갈 수 있겠소?”
“당신들이 뚜바이부르파님께 꼭 필요한가?”
“필요하다. 뚜바이부르파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내게 전화를 했겠소.”
정필수가 기합을 팍팍 넣었다. 마탕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박무쌍을 만나기는커녕 아프리카에 묻힐 판이다.
“옹고르!”
“넵!”
앳된 젊은 흑인이 들어섰다. 옴부티가 이투리에서 구해준 청년이다.
“우까 빌루까 리아우왈 옹고르, 마르라 마으리 파타쿰(처음 뵙겠습니다. 옹고르입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청년이 깍듯이 인사했다. 제대로 교육받은 티가 팍팍 났다.
“즐루를 불러와!”
잠시 후 마탕가보다 덩치가 더 좋은 흑인이 나타났다. 블랙맘바가 도바 사마리아 농장에서 좀비가 되기 직전에 공진파로 신체를 재구성해준 청년이다.
“헐!”
2m가 넘는 키, 핏발선 눈, 자신의 다리만큼 굵은 팔뚝, 황소를 한 방에 때려눕힐 듯한 기세에 정필수와 김명진은 기가 질렸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평범한 인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