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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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장 아프리카의 한국인6
“즐루는 맘루크 전사다. 경호원으로 대여한다.”
“맘루크가 뭐요?”
“뚜바이부르파님의 은혜를 입은 전사다. 즐루는 맨손으로 성체 수사자를 때려잡는다.”
즐루가 벌건 잇몸을 드러내고 씩 웃었다. 정필수와 김명진이 꿀꺽 침을 삼켰다. 톱날 같은 이빨이 목을 물어뜯을 것 같았다.
“돈은 있나?”
“유에스 달러 오천 불이 있소.”
“콩고 프랑은?”
“준비 못 했소.”
김명진은 자이르 화폐단위가 콩고 프랑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알았더라도 국내서 콩고 프랑을 구할 수도 없었다.
“흐음, 준비성이 부족하군. 삼천 달러 내놔.”
마탕가는 삼천불을 받고 콩고 프랑 한 뭉텅이를 김명진에게 내주었다.
“일천 불에 해당하는 콩고 달러다. 유에스 달러를 사용하다간 정글에 묻힌다. 노바토피아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된다. 총독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요청해라. 뚜바이부르파 님이 쓸어버린 오덤 연합군 잔당이 도로에 출몰한다는 정보가 있다. 어설프게 대항할 생각 말고 즐루에게 맡겨라.”
“나머지 이천 불은 뭐요?”
쪼잔한 정필수가 물었다.
“당신은 생면부지의 사람이 도와달라고 불쑥 찾아오면 공짜로 도와주나?”
마탕가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정필수는 얼굴이 화끈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국회의원과 고위관료가 외국에 나가면 공짜 관광을 한다더니 자신도 똑같은 놈이다.
“이천 불은 지프와 항공기 사용료, 즐루 임대료, 당신들 숙식비, 상담료다. 나는 상인이자 공무원이다.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모든 비용을 실비로 계산했다. 당신들이 뚜바이부르파 님의 손님이 아니었으면 백만 불을 지불해도 불가능한 서비스다.”
“내가 더위를 먹은 모양이오. 고맙소.”
정필수는 자신의 입을 때리고 싶었다. 괜히 실없는 인간이 되었다.
“숙소는 메르디앙 샤리 호텔에 예약해 두었다. 시설도 좋고 여자도 깨끗하다. 여자와 숙식비는 지불했다. 편히 쉬기 바란다.”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이유가 뭐요?”
은근히 불안해진 김명진이 즐루를 힐끔 쳐다보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노예로 팔려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엠무소뚜 이생기땀(응무소주 이생기심)! 뚜바이부르파께서 도와주려면 홀딱 벗고 도와주라고 하셨다. 당신들은 뚜바이부르파 님을 만나면 살 것이고 못 만나면 죽는다. 머나먼 타국에서 목숨을 잃으면 당신의 가족이 얼마나 슬프겠나. 본인의 경험과 생각에 갇히면 진실을 보지 못한다. 앗 살람 알라이쿰!”
“……”
김명진은 아찔했다. 자신도 모르게 미개한 아프리카, 무식한 흑인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서 깊고 순수한 호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
그날 저녁, 정필수와 김명진은 메르디앙 샤리 호텔에서 생각지도 못한 향응을 받았다. 깨끗한 룸, 유럽식 사우나, 화려한 프랑스 요리, 피로를 풀어주는 안마와 성욕 해결까지. 아프리카 오지에서 이천 불이 아깝지 않은 풀코스 서비스를 받을 줄은 몰랐다.
“명진아, 마탕가가 박무쌍의 행적을 순순히 알려준 이유가 뭘까?”
“충성심이겠지요. 박무쌍의 의문을 풀어줄 사람이니까요.”
“충성심은 개뿔이, 보안이 뭔지도 모르는 장사꾼이라서 그래. 감시인을 붙였으니 그건 아닌가?”
정필수가 합석을 마다하고 그림자처럼 한쪽에 앉아있는 즐루를 슬쩍 눈짓했다.
“정 선배, 마탕가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찌들어 살아온 우리가 속 좁은 놈이지요. 나는 마탕가가 절대적으로 존경하는 박무쌍을 꼭 만나보고 싶어졌어요.”
“어이쿠, 광신도 리스트에 한국인도 올라가네. 인마, 너는 그 자식이 얼마나 쪼잔하고 독한 놈인지 몰라서 그래.”
정필수가 턱도 없다는 듯이 손사래 쳤다.
“뭔 소리를 하는 거요? 마탕가가 우리를 환대하고 향응을 베풀어줄 이유가 없어요.”
“인마, 우린 박무쌍과 동향이잖아. 잘 말해달라는 뜻이겠지. 아까 슈베르제 후보라고 했잖아. 승진하려면 약을 써야지.”
‘어휴, 내가 말을 말지.’
김명진이 입을 다물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사람을 판단하고 상황을 분석한다. 본인의 경험과 생각에 갇히면 진실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머릿속에 뱅뱅 돌았다.
“그만 마시자. 지옥에 들어가려면 컨디션을 유지해야지.”
“그러죠. 달착지근한 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네요. 다시 마실 수 있으려나.”
김명진이 아쉬운 눈으로 아라크 병을 흔들었다.
“인마, 재수 없는 소리 하덜 말어. 마누라와 딸년은 우짜라고.”
정필수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박무쌍을 만날 수 있을지, 악마구리 전장에서 살아 나올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정필수의 머리엔 먹고살기 막막해진 아내와 딸이 뱅뱅 돌았다.
******
이튿날, 옹고르가 새벽같이 지프를 끌고 왔다. 두 사람은 잠도 덜 깬 채로 잘 정비된 고속도로를 달려서 지푼다리에 도착했다. 마탕가의 연락을 받은 옴부티는 촌각도 지체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물의 나라 노바토피아의 위용에 놀랄 틈도 없이 비행장으로 끌려갔다.
“허억!”
팰컨 방풍도어를 나서는 순간 정필수와 김명진은 숨이 컥 막혔다. 동아프리카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은 누구나 겪는 현상이다. 뒤따라 트랩을 내려가던 즐루가 두 사람을 밀어젖히고 우당탕 뛰어 내려갔다.
“악트! 와킬 상회 경비대장 즐루입니다.”
“쉬라우, 편히 쉬라우!”
깡마른 단신의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마비비에서 고기동 차량을 타고 달려온 선우현이다.
“여어, 남조선 동무래 반갑수다.”
난데없는 억센 함경도 사투리에 두 사람은 식겁했다.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은 남자는 말투가 아니라도 북한군 장교 냄새가 풀풀 났다. 사무직인 김명진의 의식 교란은 더 심했다.
“윽, 빨갱이!”
정필수가 반사적으로 자세를 잡았다.
“야야, 집어치우라우. 와킬을 찾아온 남조선 동무임메?”
“와킬? 우리는 박무쌍을 찾아왔소.”
“죽고 싶나? 무시기 간나새끼들이 와킬 함자를 함부로 부르고 지랄임메.”
선우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마비비에서 부카브 비행장까지 험악한 그레이트 밸리 단층대 350km를 급하게 달려왔다. GPS가 없으면 엄두도 못 낼 험악한 산악 정글을 되짚어갈 생각만 해도 뼈마디가 쑤셨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판에 척 보기에도 두 놈은 혹 덩어리다. 마음 같아서는 죽여서 묻어버리고 싶었다.
“이름 부른 게 잘못이오?”
싸늘한 반응에 정필수가 움찔했다.
“당연히 잘못이디. 세 번째 하인이자 장군인 나도 열주머니(쓸개) 떼고 박박 기는데 핏덩어리들이 감히 나대고 지랄임 둥. 와킬이라 부르라우.”
선우현이 버럭 했다.
‘미쳤나?’
아연한 정필수가 김명진을 쳐다보았다. 미개한 흑인이야 그렇다 치고 북한 장교까지 하인 운운하며 유체이탈 상태였다. 주체 사상에 물든 북한 장교까지 부하로 둔 박무쌍이 대단한 인간이긴 했다.
“알겠소. 나는 김명진, 이쪽은 정필수요. 마중 나와서 고맙소.”
김명진은 욱하고 나서려는 정필수의 허리춤을 잡아당기고 고개를 숙였다. 북한 장교 아니라 고릴라가 마중 나와도 엎드려 절할 판이다.
“내래 선우현 준장이디. 동무들은 와킬 덕분에 살아난 줄 알라우. 즐루, 운전대 잡아!”
운전대를 넘긴 선우현이 지프 바닥에서 아씨발 두 정을 꺼냈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우. 한눈팔면 나자빠져서 썩어 버리디. 표범에게 먹히거나 독사에게 물리거나 늪에 빠져 죽는다는 말이디. 아씨발 조토는 쏘련 특수전대가 사용하는 우수한 무기임메. 영광으로 알라우!”
“아씨발 조또?”
김명진이 정신없이 소총을 받았다. 내근직인 그는 총질 경험이 없다. 본부 지하실에서 분기로 시행하는 권총 실사격이 전부다. 눈앞이 캄캄했다.
“여기서 얼마나 걸립니까?”
정필수는 산전수전 겪은 현장요원이다. 총기를 받아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의 연속이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쪽팔리고 싶지는 않았다.
“상기 스무 시간은 달려야 함메. 고조 2번 북로가 생긴 덕분이디. 도로사정은 겪어보면 알거임메. 가자우!”
지프가 도로 아닌 도로를 맹렬히 달렸다. 붉은 먼지가 자욱하게 따라붙었다. 과연 겪어보니 알만했다. 말만 도로지 교목과 잡목, 바위만 대충 치운 오프로드였다. 지프가 놀이공원 디스코 팡팡처럼 튀어 오르고 바퀴가 잠기는 늪을 가로질렀다. 툭하면 내려서 진흙에 빠진 지프를 밀고 길을 막은 나무를 치워야 했다.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안기부 직원 둘은 녹초가 되었다.
맹렬히 달리던 지프가 속력을 늦추었다. 엉성한 통나무 차단봉이 도로를 가로막았다. 즐루가 등에 십자로 매고 있던 강철봉을 잡았다.
“야야, 시간 없슴메. 사고 치지 말고 상기 계산하라우.”
선우현이 손을 저었다.
“넵, 아클란!”
즐루가 5불을 주고 검문소를 통과했다.
“르완다 반군임메. 저런 거지새끼들이 삼만 명쯤 설치고 있지비. 어케 된거이 무더기로 뒈져도 숫자가 줄어들지 않디.”
선우현이 투덜거렸다.
“이 정도 속력으로 달리면 대여섯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지 않겠소?”
“배부른 소리 말라우.”
불행히도 선우현의 말이 끝나자 말자 지프가 덜컹 멈추었다. 흙탕물이 도로를 끊어놓았다. 즐루는 별다른 불평 없이 핸들을 꺾어 차량을 수풀로 밀어 넣었다. 르노사에서 특수 제작한 300마력 엔진이 관목과 수풀이 우거진 이차림을 밀고 나갔다.
정필수와 김명진은 쉴 새 없이 달리고 밀었다. 평생 못 잊을 오프로드의 진수를 맛본 두 사람은 기어이 뱃속에 든 반 숙성 물질을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꼬박 여섯 시간을 달려서 석양이 질 무렵 키부 호수 북안의 작은 마을인 킨키(Kinki)에 도착했다.
“남조선 동무들, 수고 했음메. 쉬었다 가자우.”
즐루가 텐트를 치는 동안 기진한 두 사람은 떡이 되어 땅바닥에 눌어붙었다. 종일 롤러코스터를 타고 노가다를 했으니 지칠만했다.
“오늘은 호수를 타고 오는 길이라 길이 순했음메. 내일은 조금 힘들 거임메.”
“헉!”
“이런 젠장!”
절로 비명이 튀어나왔다. 오늘 달려온 길이 순하면 독한 길은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갑자기 삶이 싫어졌다. 그 와중에 쪼르륵하고 신호가 울렸다.
쉭- 선우현이 손을 뿌렸다. 커다란 황갈색 뱀이 김명진의 어깨에 철썩 떨어졌다. 커다란 삼각형 대가리에 표창이 꽂혔다.
“으악!”
식겁한 김명진이 뒤로 자빠졌다. 즐루가 굵은 몸통을 미친 듯이 꿈틀거리는 독사를 덥석 집어서 가죽을 쭉 벗기고 모닥불에 올렸다.
“물리면 10분을 넘기지 못하는 가분바이퍼(Gaboon Viper)디. 그래봐야 이투리에서 명함도 못 내밀어야.”
선우현은 바퀴벌레 한 마리 잡은 듯 심드렁했다.
“헐!”
얼이 빠진 김명진이 제대로 익지도 않은 뱀고기를 뜯어먹는 즐루를 쳐다보았다. 인간도 뱀도 야만적인 포스가 철철 넘쳤다. 검은 땅 아프리카가 진저리쳐지게 다가섰다.
“와킬이 계셨으면 매운탕도 푸짐하니 먹고, 멧돼지 바비큐도 즐길 텐데, 기껏 뱀고기와 육포로 배를 채워야겠음에.”
“사냥하면 되지 않소?”
선우현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정필수를 쳐다보았다.
“사냥? 동물이 나 잡아 잡슈하고 기다리기라도 함둥. 설피 생각하면 낭패임메. 무시기 대책 없이 온 거디. 와킬께서 내래 보내지 않았음 동무들은 벌써 맹수 뱃속에서 소화되었던지 개미에 뜯어 먹히고 있을 거임메.”
선우현이 철없는 동생을 혼내듯 타박했다. 두 사람은 할 말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모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배낭엔 초콜릿이 몇 봉지 들어있을 뿐이다. 아프리카엔 도로도 없고 식당도 없다.
“노바토피아는 도대체 어떤 나라요? 서둘러 오느라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사하라에 그처럼 놀라운 나라가 존재할 줄은 상상도 못 했소. 난 신기루인 줄 알았소.”
김명진이 불쑥 물었다.
“흐흐흐, 제대로 알면 놀라자빠질 거우다. 뚜바이부르파가 만든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고 아름다운 나라, 정의와 낭만이 넘치는 나라지비. 다음에 관광 오라우.”
선우현은 자부심이 넘쳤다. 북조선이 김일성과 당 간부들의 낙원이라면 노바토피아는 시민의 낙원이다. 김명진이 머리를 끄덕였다. 스쳐 지나가듯 보았지만, 노바토피아는 자연과 사람이 잘 조화된 유토피아였다.
“뚜바이부르파가 블랙맘바 맞소?”
“어떻게 알았디?”
선우현이 정필수를 노려보았다.
“CIA 한국지부에서 안기부에 협조를 요청했소. 차장이 차일피일 뭉개자 놈들이 문화원에 요원을 투입했소.”
“응심제에 요원을 투입했다고? 양키 간나새끼들이 미쳤구먼. 흔적없이 사라졌겠지. 크크크!”
선우현이 낄낄 웃었다. 블랙맘바만큼이나 겁나는 존재가 응심제에 도사리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차장의 말에 의하면 요원 30명을 잃은 CIA는 프랑스 문화원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아무리 요괴 소굴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알아서 뭐하게? 대충 배를 채웠으면 눈을 붙이라우.”
정필수는 머릿속에 가득한 물음표를 꾹꾹 눌렀다. 묻는다고 대답해줄 인간도 아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빠서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소.”
“해발고도 2,500m를 넘었슴메. 가까운 곳에 니라공고 활화산이 있고, 그 옆에 니라물라기라산이 있지비. 고온다습한 대기에 화산 열기와 이산화황이 섞였기 때문이디. 자라우. 눈을 붙여야 내일 힘을 쓰디.”